수행 노트 29
1. 질문 : 좌선 중에 몸에서 어떤 느낌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호흡을 알아차려야 할지 아니면 느낌을 알아차려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답변 :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느낌이 있을 때 일어남과 꺼짐의 호흡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면 느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는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려라. 느낌을 알아차릴 때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 참고 >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알아차릴 대상은 많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크게 네 가지 대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인데 몸, 느낌, 마음, 법입니다. 이것을 한문으로 사념처(四念處)라고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반드시 네 가지 조건이 결합해서 역할을 해야 성립됩니다. 네 가지 조건이 바로 네 가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이거나 이중에 가장 두드러진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좌선을 할 때 몸과 마음에 나타나는 현상은 주로 망상, 통증, 졸음입니다. 그러므로 망상을 할 때는 망상을 알아차리고 통증이 있을 때는 통증을 알아차리고 졸음이 올 때는 졸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 뒤에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다가도 특이한 느낌이 일어나면 새로 일어난 특이한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다른 것은 무시하고 호흡만 알아차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 최선책은 아닙니다.
호흡과 느낌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그래서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가벼운 느낌일 때는 호흡을 알아차리고, 강한 느낌일 때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호흡은 수행자의 주 대상이라서 언제든지 알아차릴 수 있지만 느낌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서 느낌이 일어났을 때 알아차리는 것이 무난한 선택입니다.
좌선 중에 몸이 아프고 쑤시거나 저린 현상이 있을 때는 싫어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싫어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느낌의 실재를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강한 느낌을 통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통증은 여러 가지 느낌을 부르기 위한 관념적인 용어입니다. 그래서 통증이라고 했을 때는 싫어하는 마음으로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때 통증을 알아차리지 말고 통증의 실재인 찌르고, 당기고, 화끈거리고, 쑤시고, 저린 느낌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좌선 중에 두세 가지의 대상 중에 어떤 대상을 알아차려야 할지 선택할 때 한 가지 주의 할 것이 있습니다. 대상을 선택할 때 마음을 속박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호흡을 알아차리다가 마음이 통증으로 갔을 때는 통증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음이 통증으로 옮겨갔을 때는 자연스럽게 통증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마음을 속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은 마음이 하므로 이렇게 하는 것이 일하는 마음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2. 질문 : 좌선 중에 몸이 아플 때는 자세를 바꾸어도 되는지요?
답변 : 좌선 중에 몸이 아플 때는 자세가 바른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세가 나쁘면 몸에 통증이 생긴다. 좌선을 할 때 다리가 심하게 아플 때는 아픈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나 아픈 것을 견디기 어려울 때는 다리를 바꾸어서 앉아도 된다.
< 참고 >
좌선을 할 때 바른 자세가 필요합니다. 먼저 몸 전체의 긴장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턱을 약간 당겨서 바르게 해야 합니다. 턱을 들어서 고개를 쳐들면 어깨가 긴장하여 나중에 통증이 생깁니다. 허리는 자연스럽게 바르게 세우되 너무 곧게 세우려고 힘을 주면 허리가 긴장하여 통증이 생기며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손은 힘을 빼고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아야 합니다. 주먹을 힘 있게 쥐어서도 안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손의 특별한 동작을 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허리가 좌우로 숙여지거나 앞뒤로 숙여질 때도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몸이 경직되어 좌선을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좌선 중에 “지금 자세가 바른가?”하고 몸을 한 번씩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다리가 아플 때는 아픈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아픈 것의 실재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다리가 저리고 아픈 것은 화끈거리고, 찌르고, 당기는 느낌입니다. 이때 그냥 이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하지만 알아차려도 아픈 것이 계속될 때는 다리를 바꾸어도 됩니다.
다리는 바꾸어서 앉을 때는 먼저 다리를 바꾸려는 의도를 알아차립니다. 그런 뒤에 알아차리면서 천천히 다리를 들어서 바꾸면 아픔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한 시간 좌선에 다리를 두 번 이상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리를 너무 자주 바꾸면 탐욕과 성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간은 통증을 견디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좌선은 움직이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을 알아차리기 위한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저리고 아프며, 망상이 떠오르고, 졸음에 빠지고, 하기 싫은 마음이 생기고, 수행에 대한 의심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좌선의 일차적 목표는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때 나타난 것이 모두 알아차릴 대상이라서 법입니다.
법은 와서 보라고 나타났으므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나타난 법을 싫어하거나 좋아하면 대상에 개입한 것이라서 위빠사나 수행이 아닙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수행으로 나타난 현상과 아는 마음을 분리해서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요함을 얻고 단계적 과정의 지혜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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