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 / 시원
진우는 다섯 살짜리 외손자다. 작년에 아파트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여름쯤에 문제가 생겼다. 신문에 날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문제는 남느냐 떠나느냐 이었다. 우리 딸도 다른 반에서 일어난 일이라 망설이다가 그래도 아닌가 싶었는지 두 살 터울인 형이 다니는 유치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나는 같이 보내는 것도 좋지만 반년을 새로운 형 누나들과 잘 지낼지가 걱정되었다. 녀석은 형이랑 같은 버스 타고 유치원에 간다고 좋아했다. 게다가 어깨를 으쓱대기 까지 하였다. 언젠가 진우에게 어린이집 어떠냐고 물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어린이집이 아니고 유치원이라고 힘을 주며 고쳐준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나 저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는데 말이다.
별일 없이 잘 다니는 녀석이 대견스러웠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 딸네 집안일을 봐 주는 이가 자꾸 진우가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다고 말했다. 딸이 일찍 출근하여서 그가 아이들을 유치원 에 보내는데 자꾸 옷이며 신발로 트집을 잡는 다는 것이었다. 나와 같이 놀 때는 내색을 하지 않아서 몰랐다.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가 잘 알아서 할 거라고 믿고 흘려들었다. 새해가 되면서 유치원에서 무슨 발표회를 했다. 딸이 참관을 해야 하니 엄마가 그 날은 하루 종일 근무해 주라고 부탁했다.
얼마 후에 가족 모임 카카오 톡에 영상이 올라왔다.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서 말하는 발표회였다. 스크린에 자막이 나오면 그것을 읽고 나중에는 선생님 물음에 답하는 것이었다. 진우 차례가 다가왔다. 원복을 입고 입에 마이크를 달고 씩씩하게 나왔다. 그리곤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카 카 카즈’ 라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마이크를 확인하려고 선생님이 올라오고 또 진우에게 뭐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도 시간이 한참 흘렀다. 여기저기 웅성거리기 시작할 때 ‘카 카 카즈’라는 말이 우렁차게 들렸다. 사람들은 걱정대신 박수와 격려의 추임새를 보냈다. 영어로 차들의 종류 쓰임새 색깔 크기를 그리고 엄마 차 아빠 차 형과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차를 말하고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우려했던 거와 달리 더듬거리지도 않고 막힘없이 문제를 해결했다. 더구나 양다리를 번갈아 흔들어대며 리듬까지 맞추고 있었다. 눈앞에 곰 한 마리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진우에게도 이번 일은 처음 일게다. 그래서 피하고 싶어서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게 진우 씩씩하더라. 앞으로 크게 되겠어. 대장감이야. 그랬더니 엄마는 있는 그대로만 보라니까. 제발 오버하지 말고. 내 말의 싹을 잘라버린다. 그래도 그대로만 쭉 가자. 일이 생기면 씩씩하게 즐겁게 해결하는 거야. 그게 재질이 되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큰 인물이 될 거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참 대책 없는 할머니다. 그렇게 조그만 일을 가지고 과대평가하다니. 그래도 봄날에 커다란 꿈을 꿔 본다.
첫댓글 신문에 날 일이 어떤 일인지 궁금하네요. 진우가 옮긴 유치원에서 잘 적응했다니 참 다행입니다.
아이들은 별별 일이 많이 일어나대요. 무슨 큰일이 있었나 봐요.
손자가 커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실 것 같습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신문에 날 일이 뭘까요? 일상에서 진우가 보여준 씩씩함과 성장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손자를 바라보는 할머니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