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심한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고 후 1년의 그 날이 오니 가슴인지 등인지 그 가운데처럼 통증이 심하게 일어났다. 태어나고 이렇게 아픈 일은 처음 겪은 일이다. 도저히 참기 어려운 통증이었다. 사고 현상은 자동차 에어백이 터지는 충돌이고 안전띠가 심하게 매우 강한 부딪침의 압박을 느꼈다. 에어백이 터지면서 가슴을 강타당한 느낌도 들고 치료 중 여러 날 통증을 알았다. 통증을 호소하니 병원에서 특별한 증상이 없다고 1주일분의 약물로 치료를 마쳤다. 그래도 약간의 아픔은 있었으나 점차 낫겠지 하고 걱정하지 않은 일이다. 그 시기가 10월경 사고 첫돌이 다가오니 기온도 낮아지고 갑자기 통증이 심하여 견디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가슴 통증으로 느껴졌다. 매우 심하게 아프니까 구역질이 났다. 구역질해도 입으로 토하는 물질은 아무것도 토하는 게 없었다. 얼마 동안 억지로 참으며 견디고 나니 통증이 멈춘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하여 자주 생겼다. 몸에서 체온이 일정 선 이하로 낮아지면 통증이 유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체온의 변화가 없도록 가슴과 등의 보온을 유지하면 통증이 없다. 그것도 모르고 암이라도 생겨서 아픈 줄 착각하고 서울의 큰 병원에서 전신을 PT 촬영등 정밀 검사를 받았으나 암은 아니었다.
통증이 심하게 올 때는 욕실에서 더운물로 씻으면 통증이 금방 사라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통증이 올 때마다 욕실에 가서 더운물로 찜질 목욕을 하면 금방 거짓말처럼 낫는 병이다. 그래서 혈액순환에 지장을 받으면 통증이 온다는 것도 알게 된 일이다. 사고 때 근육의 모세혈관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을 다쳐서 그런 것으로 짐작되었다. 체온 유지가 되면 혈액순환이 원활하여 통증이 없는 것이다. 더운물로 통증의 해결방법은 알았으나 더운물을 갖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여행이나 출타 할 때에는 보온장치가 없으면 통증을 피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서늘한 기후에는 통증 유발이 두렵다. 의자 등받이가 차가우면 금방 가슴과 등의 통증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가용 차는 온열 의자가 되어 있어서 걱정 없으나 그런 시설이 없으면 이용하기 불가능하다. 몸이 이런 상태가 되어 각종 회의 참석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경우를 위해 생각한 것이 전기 온열 찜질기다. 방안의 보일러가 멈추는 시간에도 온도가 내려가서 통증이 온다. 보일러 온도 감지기보다 내 몸의 통증이 훨씬 감지가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전기온열 찜질기로 등과 가슴에 감싸고 자면 잠자는 동안 나타나던 통증은 피할 수가 있었다. 온돌방의 가온도 전기 온수 보이러씩 매트를 이용하니 안성맞춤이다. 일정한 온도 유지로 잠자는 동안 통증의 유발이 전혀 없었다. 온도 유지가 평균적으로 유지되는 현상이다. 이런 방법을 알아내기까지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고통을 수없이 느낀 일이다. 전기는 전자파의 유해성 때문에 온수 매트가 좋게 느껴졌다. 보일러 회사들이 온수 메트를 만들어 팔고 있어서 내 몸에는 아주 훌륭한 치료기구로 활용하고 있다.
계절 따라 여름은 괜찮을 것 같았지만, 여름 더운 날 선풍기나 에어컨을 심하게 사용하면 견디지 못한다. 선풍기 바람이나 에어컨 냉풍이 체온 유지를 방해하여 또 통증을 유발하는 일이다. 건강한 젊은이들이 실내온도를 그들의 몸에 맞도록 하면 나는 곤욕을 치르는 일이 된다. 여행하기 위한 관광버스도 강한 에어컨 바람 때문에 탈 수가 없다. 생활 활동의 영역이 아주 위축되는 생활에 불평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나의 이런 신경통은 여름 계절이 훨씬 좋은 환경이 된다. 여름철은 풍기나 에어컨 강도조절만 잘하면 통증을 피하기 매우 좋은 계절이다. 방문을 모두 열고 주위의 나무나 식물이 내뿜는 신선한 산소를 만끽할 수 있어서다. 신선한 산소를 많이 접하면 정신작용에 아주 좋은 현상을 느끼기 때문이다.
필자가 어릴 때 이웃 어른들이 신경통 통증 때문에 고생하는 일을 보았다. 이분들은 약물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주위에는 신경통 통증을 앓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분들은 그래서 환갑도 채 만나지 못하고 삶을 멈추어야 하는 비극의 세월이었다. 어느 아저씨는 부부가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과용하다 아편쟁이가 되기도 했다. 그 아저씨 전답을 지나치다 보면 마을 돌팔이 의사가 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느꼈다. 진통제를 구해야 살아날 수 있었기에 재물이 견뎌날 수가 없는 것이다. 농촌에는 그 아저씨뿐만 아니라 당시의 많은 사람은 그런 신경통을 앓고 있었다. 이제 생각하니 나는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진통제 한 알 먹지 않고 70 고개 중반을 넘어 팔십을 보는 나이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당시 보통 사람들은 신경통 때문에 변소의 물을 몇 섬을 먹었다고 하는 사람을 보았다. 통대나무를 변소에 담그고 통대나무 빈 곳에 물이 고이면 그 물을 먹고 치료제로 알았다고 한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니 그렇게 당하고만 살아온 이야기다.
몸의 통증 관계로 회의 참석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서울은 이웃집 나들이하듯 하는 사람이 거짓말이 심하다고 한다. 내 지병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내 승용차는 등받이가 따뜻한 전열기 작용으로 통증을 견딜 수 있기에 그 덕택으로 서울을 자주 갈 수가 있었다. 지금은 자식들 차로 따뜻하게 보호를 받으니 가능하다. 회의 장소의 에어컨 바람이나 의자 등받이 차가운 접촉은 죽음 같은 무서운 통증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기가 없던 시절의 사람들이 앓았던 신경통에 비교하면 나는 호화생활인 셈이다. 신경통 통증에 더운물이 즉효임을 알아낸 후 먹는 약을 피할 수 있었다. 전열 치료기를 알게 되어 통증 회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서 안심된다. 통증을 피하는 방법을 알고 건강 유지가 쉬워서 아직은 살아있다는 생각이다. 어느 유명 연예인 부부가 얼마 전 신경통 통증 때문에 자살했다는 비보 뉴스를 생각하니 남의 일이 아닌 듯하다. ( 글 : 박용 2020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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