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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地震)이란 「지구 내부에 급격한 지각변동이 생겨 그 충격으로 발생한 지진파로 인해 땅이 흔들리는 현상」 이라고 하고, 「지구의 표면은 10∼12개의 판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년에 수∼수십 cm 이상의 속도로 천천히 이동하는 데 이를 판구조론이라 함」 이라고도 나와 있다. 뭔 말인지? 왠만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쉽사리 이해하기가 어려운 설명인듯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땅이 흔들려 집이 무너지는 등 하지 않으면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땅 위에서는 감지되지 않는 수많은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고는 알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지진이 바로 오늘인 2024년 07월 26일 11시 33분 현재, 대만 화롄현 북북동쪽 20km 해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진의 피해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많은 인명피해는 물론 가옥의 파손, 산사태 등으로 심지어는 수천년에 걸쳐 이룩한 인류의 문화자취를 삽시간에 무너뜨리고 만다.
내가 직접 겪었거나 들었거나 현장을 본 세 가지 경우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 첫 번째 이야기 :
북양트롤선 2등항해사로 승선했던 70년 11월에 시작한 첫 항차는 어떻게 마쳤는지 기록이 없다. 일본에서 선박을 인수 후 한국 국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어구제작과 작업을 위한 모든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거기다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냉동(冷凍)이 아닌 냉장(冷藏)을 위해 얼음을 실은 것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첫 항차는 불난 호떡집처럼 후딱 지나갔다. 뭣이 뭔지도, 겨울철의 북태평양 바다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체 막무가내로 부닥뜨렸으면서도 무사히 마친 것은 사실이다. 모르는 놈이 용감하다더니….
지금 러시아의 캄차카반도 부근 어장(漁場)에서 만선(滿船)의 기쁨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통상 물길이 좋아도 열흘은 잡아야 하는 부산까지의 뱃길이지만 이때는 당장에라도 눈앞에 부산이나 묵호항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러시아령(領) 쿠릴제도를 오른쪽으로 보면서 남하 중이었다. 러시아의 캄차카반도에서 일본의 홋카이도까지 총 길이 약 1,300여 킬로미터에 걸쳐 뻗은 56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섬들이다.
일본에서는 이 열도를 지시마렛도(일본어: 千島列島)라고 부른다. 이들 섬 가운데는 2차대전 전에는 일본령이라 주장했었던 것도 있다.
그 아래의 일본 홋가이도(北海道) 섬 남쪽에 뾰족하게 튀어 나온 에리모미사키(襟裳岬) 등대가 있다. 갑(岬)은 우리말로 곶이다. 이 곶의 등대를 바로 우현으로 보면서 코스를 꺾어 일본 혼슈우[本州]와 홋가이도[北海道] 사이인 쓰가루해협[津軽海峡]를 빠지면 부산이나 묵호로 직선항로를 그을 수 있게 된다.
2등항해사의 당직시간이 자정(子正)부터 새벽 4시까지다. 선교(船橋 : Bridge)에 올라와 교대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배 밑바닥에서 콰다당탕! 하는 소리가 났다. 엄청나게 큰 소리였다. 선저가 뚫어지는 줄 짐작했다. 큰 암초나 다른 선박 또는 빙산에라도 부딛쳐 당장에 침몰할 것 같은 소리였다. 위치상으로 봐서 해저(海底)에는 아무 장애가 없는 곳이며, 주위에 다른 선박이 없음은 늘 눈으로 확인한다.
전 선원이 잠에서 깼다. 선장이 급히 전활 했다. “이기 무신소리고?”.
소리만 났을 뿐 아무 변화는 없었다. 원인을 찾기에 정신이 없었다. 견시원(見視員) 들을 선수(船首) · 선미(船尾) 쪽으로 급히 보냈다. 배는 정상적으로 제 코스를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기관실에 연락했다. 자기들도 소리를 들었기에 원인을 찾고 있는 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일단 스피드를 낯추어 본다. Radar로 현재의 위치도 재확인 했다.
선장도 선교에 올라와 “이처럼 큰 소리면 분명히 무슨 사고가 있을 것이다”라고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느닷없이 기관장(機關長)이 선교에 올라왔다. 거의 없는 일이다. 순간 긴장감이 돈다. 키가 작으면서 콧방귀를 습관처럼 ‘흥흥’하고 뀌는, 나이 많으신 분으로 2차대전 중 일본 수송선을 타고 동남아로 전쟁물자를 운반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당시는 모두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선(蒸氣船)이었다. 기관실이 너무 더워 거대한 연돌(煙突) 밑에 앉아 쉬려는데 미군(美軍)의 기뢰(機雷)를 맞았다. 덩치가 작아 그 압력으로 연돌을 따라 밖으로 튕겨 나와 생존자 몇 명 중의 한 사람이 되었고 선박은 침몰했다는 얘기를 자랑삼아 한 적이 있다.
두어 번 콧방귀를 뀌더니 “지진이여, 방금 일본 라디오에서 방송했어, 이 부근에서 지진이 터졌는데 바다 위라 진동으로 소리가 났어. 걱정마러” 했다. 역시 오랜 경험이 약이었다.
“영감탱이, 용케 빨리 알았네” 하며 빙그레 웃는 선장의 목소리에는 안심과 기쁨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일단 안심은 했지만 그래도 가슴이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수백미터 지하에서 그만한 소리를 나게 할 진동이라면 얼마나 클까? 상상도 못 해 봤다.
◎ 두 번째 이야기 :
1995년 1월 17일 새벽, 일본 고베(神戶)에 규모 M7.3인 지진이 발생, 단 20초만에, 태평양 전쟁 이후 최대규모로 사상자 6,400명, 부상자 43,800명, 피해총액 약 10억 엥의 피해를 남겼다. 일본에서는 이 지진을 한신-아와지대진재[阪神-淡路大震災] 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1923年 간토대지진[關東大地震] 이래 최대규모로 땅이 옆으로 흔들린 것이 아니고 수직으로 흔들렸다고 했다.
마침 이 지진의 중심부에 내가 잘 알고 지냈던 안과의(眼科醫) 다나카(田中 毅) 박사가 국제로타리클럽의 이 지역 총재를 지낸 분이 살고 있었다. 지진(地震)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도 나도 컴퓨터 쪽에 취미가 있어 메일로 연락도 자주 했다. 10살 정도 위라 마치 큰형님이나 스승처럼 따랐다.
2000년도에 들어 그의 집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고베[神戶]와 오오사카[大阪] 사이에 아마가사키시(尼崎市)의 깔끔한 바닷가 주택단지 속에 아담한 일본식 2층 양옥을 지어 부인과 살고 있었다. 2층에는 자신의 개인 사무실과 취미였던 모형기차를 큰 방에 깐 레일 위를 마치 실제처럼 달리게 만들어 놓고는 좋아했다. 마치 초등학생들의 장난감처럼… .
당시에 컴퓨터로 자료를 검색하고 문서를 만들어 저장하는 등의 작업을 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실력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던 때였다.
그에게 지진 당시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불사신(不死身)’이라고 했는데 그럴만 했다. 지진이 발생한 순간, 집들이 무너지는 등 난리 소리에 눈을 뜨고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자 마자 자신이 누었던 자리에 천장에서 끝이 뾰족한 전등(電燈)이 떨어져 꽂혔다고 했다. 지진에 앞서 그 사실에 우선 소름이 확 끼쳤다고 했다.
겨우 일어나 아래층의 아내를 찾으니 괜찮다기에 현관을 나와보니 아뿔싸! 용케 자기집만 약간 기울었을 뿐, 주위는 모두 무너졌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광경은 평소에 늘 마주하던 앞집 주인이 하반신이 무너진 자신의 집에 깔려 꼼짝을 못하며 새하얀 얼굴로 “다나까 씨 좀 도와 주세요”하고 애절하게 부르짖는 데도 도와주지 못하고 결국 사망한 것이다. 무너진 건물 때문에 접근조차 할 수도 없었던 상황에 안절부절하다 말았다는 것이다.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마을 자체가 초토화 되었다. 워낙 사상자가 많아 수용할 수가 없어 시(市)에서 큼직한 여객선(旅客船)을 용선(傭船)하여 앞 바다에 띄워두고, 부상자는 모두 거기로 모이게 하고 의사들의 협조로 부상자와 사망자를 처리했다. 자신은 안과(眼科)이지만 의사였기에 사망여부 확인은 가능했기에 ‘사망판정’을 내리면 관계자들이 처리했다고 한다. 응급조치도 많이 했다고 했다.
바로 그의 집 앞 마을 공원에는 그날의 비극을 기념하는 자그마한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그 후에도 그가 직접 만들어 주관하는 ‘로타리의 원류(源流)’라는 세미나 행사에 역시 개인적으로 몇 번 참석하여, 일본 전국에서 모여드는 로타리회원들과 교류(交流)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사이트는 지금도 운영 중이다.
이 분들이 행사에 참석할 때는 각자 자기 고장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니혼슈우(日本酒 : 사케)’을 한 병씩 가지고 와서 자랑을 하며 시음(試吟)을 했는데, 나는 노무현 전대통령 시절 APEC회의가 부산 해운대 동백섬의 ‘누리마루’에서 개최될 때 사용한 공식만찬주였던, 부산에서 생산되는 상황버섯 발효주인 '천년약속'을, 또 한번은 부산 산성(山城)의 “생탁(막걸리)를 가져가 인기를 모았던 적이 있다.
이 ‘천연약속’ 1998년 부산 모대학 생명응용과학과 정영기 교수가 상황버섯의 항암기능을 연구하던 중에 균사체(菌絲體)가 당(糖)을 분해시켜 알코올을 생성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세상에 태어났다. 정 교수에 대한 또 다른 사연은 후에 기회가 있으면 따로 올려볼 예정이다.
그 지진 당시의 모습은 사진으로 그리고 다나카(田中 毅) 박사의 실감 나는 얘기로 간접 경험한 셈이다. 직접 당하는 것과 사진으로 보거나 혹은 얘기로 듣는 간접적인 체험은 전혀 별개의 감흥과 느낌이라는 것을 절실히 경험한 예이기도 하다.
◎ 세 번째 현장 답사
남미(南美) 지도를 보면 서쪽 해안에 있는 나라가 적도선상에 있는 에콰도르를 비롯해서 그 아래로 페루와 칠레가 이어져 있다. 페루 아래쪽, 칠레 북쪽에 볼리비아가 있다. 이 나라는 해안선(海岸線)이 없기 때문에 페루나 칠레의 항구를 빌려 자국의 자원(資源)이나 물품을 수출·입 한다.
페루의 리마(Lima), 칠레의 아리카(Arica),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이키케(Iquique) 등이다. 그 나라의 주된 수출품인 동광석(銅鑛石)이나 1차 가공한 동판(銅版) 또는 동괴(銅塊) 등을 트럭에 싣고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높고 험악한 안데스(Andes)산맥의 바위산을 넘어서 다닌다.
1985년 홍콩 선주(船主)인 Eastern Splender호로 이 코스를 항해한 적이 있다. 칠레의 서북쪽에 있는 아리카(Arica)항에서부터 시작하여 이키케(Iquique),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항들에서 차례로 동제품(銅製品) 싣고 칠레의 관문이라 할 발파라이조(Valpariso)항에 입항하기 전에 대리점으로부터 전문(電文)을 받았다.
지진으로 인해 발파라이소항이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에, 다른 항구에서 이 항에 들어오는 선박은 누구나 ‘식수탱크에 식수(食水)를 가득(Full Tank) 싣고 들어와 피해 지역에 나누어 주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모처럼 외국에서 좋은 일 한 번 하겠다는 생각으로 항해 중 평형(平衡)을 유지하는 Ballast Tank도 적당한 것 한 개 식수로 채워 두도록 했다.
발파라이소(Valpariso)항의 지진 피해가 심각했다. 항만시설은 물론 시가지의 파손이 엄청났다. 그 때문에 Valpariso항에는 입항하지 못하고 부근의 San Antonio항의 피해를 입지 않은 부두에 접안했다.
칠레에서는 연간 200만 번의 지진이 발생하는데, 느낄 수 없는 지진이나 ‘약한 진동' 수준의 지진도 있지만 규모 8 이상의 강진도 연 1회가량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찌보면 이 나라 사람들은 늘 꿈틀거리는 땅 위에 살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관측 기록된 지진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지진도, 1960년 5월 22일 역시 칠레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칠레의 발디비아(Valdivia) 지역에서 규모 9.5의 최대 지진이 발생, 6,000여명이 사상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리점의 승낙과 용선자 K-line의 현지 대리인인 일본인 무라마쯔[村松]씨의 안내로 현장을 보러갔다. 새삼 지진의 무서움과 자연의 거대한 힘을 확인,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자연의 힘에 비하면 인간의 힘이란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를 느낀다. 15년만에 다시 Chile를 덮친 지진이랬다.
1985년 3월 3일 18:48분 3분간의 강진(强震)이 내습. 180여 명의 사망, 2,000여명의 부상자. 10여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 8억 달러의 손실이 추정된다고 했다. 산안토니오(San Antonio)시는 시가지의 가옥 80%가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과일 선적용 부두는 완파됐다. 엿가락 휘듯이 굽은 철길은 마치 예술품처럼 아름답다고 할 만큼 절묘한 모양으로 휘었다.
새로운 방진(防震) System을 가진 부두를 건설하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설계를 모집하는 중인데 역시 일본의 계획안이 가장 우수한 것 같다고 했다. 항내를 폐쇄하지 않고 개방적으로 할 설계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자연의 재해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절감했다.
우리나라는 최근에 남동부에 가끔 지진 발생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나 칠레처럼 연내 행사처럼 대규모 지진 피해는 겪지 않는다.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자연의 대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차이는 크게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일본이나 칠레의 경우 지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결코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차분하고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는 놀랍도록 안정되고 존경스럽기까지 한다. 그러고는 묵묵히 다시 재건한다.
자연의 힘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에는 같은 태양의 위성(衛星)인 금성(金星)에도 화산활동이 감지되고 있다고 최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어찌 될란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자연도 자세히 살펴보면 반드시 전조(前兆)가 있으며 진행과정에도 기준이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태풍을 양상(洋上)에서 만났을 때 기압계와 풍향계, 시계로 잘 측정하면 아주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자연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변수는 있다. 해수(海水)의 온도와 습기 등에 따라 태풍의 크기와 경로가 달라지기도 한다.
현대의 과학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 부분도 많지만 앞으로 하나하나 베일이 벗겨지면 지진의 크기를 미리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지진, 쓰나미, 태풍, 산사태 등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교훈적 의미에서도 경이롭기만 하다. 그럴수록 영국의 학자 러브록(J. Lovelock) 박사가 세운,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의 균형을 지구 스스로가 조절하는 모습은 마치 지구 자체가 인체의 조정 기능인 것, 즉 생물권, 대기권, 수권(水圈)을 포함하는 지구환경의 일체를 스스로 조절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한다는 가이아 이론(가설 : Gaia hypothesis)이 사실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한편 그런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극복하며 다시 재건해가는 인간도 자연만큼이나 위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