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 이야기
여름에 피는 진짜꽃은 몽우리일 때 흰색이다가 이내 연노란색으로 바뀌고, 수정이 되고 나면 다시 점차 붉은 색으로 익어가다가 땅에 떨어진다.
꽃 진 자리에는 밤톨만한 열매가 열리는데 덜익어 말랑말랑 할 동안에 따먹으면 달짝지근하고 쫀득한 식감이 별미이다.
시월하순 경이면 씨방이 열십자로 갈라지면서 팝콘이 터지듯 들판 한가득 하얀 꽃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이 쯤에서 감이 온다면 필시 오학년 후반이나 육학년을 지나고 계실 겁니다.
짐작하신 대로 수수께끼의 정답은 #목화(木花),
정확히는 "목면화(木綿花, Cotton)입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목면" 또는 "면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먹는것, 입는것, 집짓는것, 병고치는약...
인간은 삶의 모든 대목에서 식물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목화 만큼 인류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식물은 없다.
의복의 혁명 즉, 추위로부터의 해방이 그 공로이다.
겨울추위를 극복함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사계절 모두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인류는 그 전에 비해 월등히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목화는 산업적 측면에서 전세계 경제패권의 지도를 바꾸어 놓기도 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그러했고, 미국이 거대한 부를 축적 고려말의 선각자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붓뚜껑에 숨겨 밀수(?) 해 온 목화 씨앗 몇 알이 이 땅의 민중들을 추위로부터 해방시켰다.
특히 세종대왕은 나라의 시책으로 전국에 면화 재배를 장려함으로써 비로소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왕족이 아니라도 무명천으로 옷을 지어 입을 수 있게 되었고, 목화솜으로 누빈 외투로 추위에 떨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게 되었다.
목화에서 뽑아낸 실로 짠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기 이전에는 주재료가 삼베와 모시였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났을까?
엄동설한에는 아예 두문불출 했을 것이다.
남루한 삼베 바지저고리 만으로 겨울을 나야 했던 코흘리개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한 것도 따지고 보면 흑인노예들의 노동력을 이용한 면화 생산이 원동력이 되었다.
한 때 일본경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세계최대의 자동차메이커 도요타도 면화방적기 사업이 그 시발점이었다.
게다가 목화를 따서 옷감을 만들기까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문익점의 손자 문래가 발명했다 하여 "물레"라 불리는 도구를 이용해 뽑아낸 실을 한올한올 엮어서 천을 짜야 했다.
주로 아낙네들의 몫이었던 이 고된 작업을 "길쌈"이라 했다.
길쌈질로 만든 천을 "무명"이라 불렀다.
일일이 손으로 짜는 무명천은 폭이 좁지만, 훗날 등장한 방적기계로 짜낸 것은 폭이 넓어 "광목"이라 불렀다.
광목이 나오면서 의복의 대량생산이 가능해 졌다.
덕분에 아낙네들은 고된 길쌈질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시집갈 딸의 혼수이불을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목화의 황금기는 한 세기를 넘기지도 못하고 막을 내렸다.
"검은 황금" 석유 때문이다.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거기를 가공해 만든 더 가볍고 값싼 화학섬유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아파트와 기름보일러 보급으로 두터운 솜이불도 필요가 없어졌다.
늦가을이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동네 솜틀집도 사라졌다.
갓 튼 이불솜의 포근하고 뽀송뽀송한 촉감의 기억도 함께 잊혀졌다.
그 아쉬움을 달래고 싶은 것일까? 지난 겨울에는 목화가 꽃꽂이 소재로 대인기를 누리면서 대박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