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파타야 성당
2024. 3. 18
판관기 1장에서 2장까지!
(판관 2,17)
그들은 저희 조상들이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걸어온 길에서 빨리도
벗어났다. 그들은
조상들의 본을 따르지 않았다.
묵상ㅡ
늙은 여호수아가 정년퇴직을 하고
죽게 되자, 그 뒤를 이을 지도자가 필요해졌다.
그런데 그즈음, 주님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업적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이 저희 조상들처럼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지 따라 걷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시는 주님의 심기를
거스르며 다른 제단을 쌓고 우상을
섬겼던 거다. 혼나도 싸다.
이에 주님께서는 판관을 세워
통치하시지만,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라는 말도 있잖은가. 이럴라고
조상들이 그 고생을 했드란 말이더냐!
오늘의 묵상 포인트는 기억에 대한
세대간의 차이점, 뭐 그런...!
탈출기에서 여호수아기까지
반복해서 등장한 대목,
너희를 이집트 종살이에서
끄집어내신분은 주 하느님이시다.
오직 그분 한분뿐이시다.
너희를 파라오의 손에서
구해낸 분은 주님이시다.
기억하라는 거다.
그 엄청난 과거를 잊지 말고 평생을
기억해야 한단 거야.
그래야 신세가 펴서 살만해질때가 와도
주님을 깔축없이 섬기고 사랑할수 있으니까.
사람맘 변덕스러운거 주님이 다 아시고
자꾸만 되뇌이게 하셔서 주입식 교육의
높은 성과물을 기대하셨던 건데..
그런데도 몇번의 타락과 변심으로
주님의 화를 돋우어 마른 하늘에 날벼락
당하고 통탄한적도 여러번.
막 죽기까지 했잖아.
하물며 저희 조상들이 주님께 받은 은혜들을
알지도 못하는 다른 세대가 등장하여,
더 참신하고 대범해진 타락과 우상숭배의
길에 빨리도 접어 들었던 거다.
그러니 이제부턴 기억해야만 한다 라는
차원에서 되새겨주고 기억시켜야만 한다는
차원으로 방향전환이 된거다.
그래서일까. 주님께서는 비교급
문장을 자주 쓰신다.
'저희 조상들이 걸어온 길을 벗어나서!
조상들의 본보기가 되지 못했다.
저희 조상들처럼!'
얼마나 화가 나시고 답답하시면 그러셨을까.
왜 안 그러랴. 너희는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말고 곧장 제 길로만
가라고 하시며, 목동이 양몰이 하듯이,
뒤에서 또는 앞에서 당근과 채찍으로
이끌어오셨는데, 빨리도 그 길에서
벗어났으니 말이다.
어떻게 기억시켜야 하나.
어떻게 알려주고 가르쳐야 할까
'저희 조상들이 주님께 받은 은혜들을
알지도 못하는 다른 세대'라고 하니,
갈길이 멀어 보인다.
내 자녀들이나 하느님을 안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들,
그리고 오랜 냉담에서 돌아온 사람들,
그들이 오버랩되었다.
또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행하기를
후손대대로 각인시키고 가르친
유대인들의 교육방식이 떠올랐다.
우선은 나의 하느님부터 제대로 만나
소통하고 섬기면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셨던 탈출기 사건의 은혜들을
기억하해야 할 터, 신명기에서처럼
'목숨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
주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의 문지방에 써두고,
자녀들과 이웃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할꺼다.
그럴라면 잠시 자가점검 시간이 있어야겄다.
내가 지금 오른길이나 왼길로 벗어났거나
치우쳐 있는지를! 내가 그들처럼 그렇게나
빨리 그 길에서 벗어나 하느님보다 더 좋은 것에
욕망의 제단을 쌓으며 희희낙낙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주님,
아침의 다부진 다짐,
한낮에 흐지부지,
저녁엔 후회막급!
판관기의 신세대처럼,
빨리도 벗어나게 되는
그런 악습을 치유해주소서.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라지만,
부디 잘 고쳐서 써주소서.
쓸만한 사람이 되도록 애써보겠나이다.
첫댓글 묵상 글 잘 읽고 갑니다.
박지현 요셉피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