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구원받은 자의 행복
02/19수(水)눅 19:1-10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눅 19:9).
우리 삶의 가정, 사회, 국가 모두 관계성 속에 살아갑니다. 관계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행복이 관계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어긋나면 삶이 실패합니다.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상사와 부하의 관계, 관계가 좋을 때 행복합니다. 본문의 삭개오는 외적 콤플렉스를 가진 자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가 다 막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창조 원형의 상태로 돌아가야 합니다. 관계회복은 주님만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그 사람 속에 주님이 오실 때 회복됩니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삭개오의 문제는 먼저 하나님과 관계 단절입니다. 이때는 주님을 영접하면 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눅 19:9). 하나님과의 관계는 주님이 오실 때 회복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회복됩니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자신과의 관계가 바로 서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눅 19:5-6). 주님은 삭개오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늘 주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고 믿어야 자신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이 자신을 부르자 급히 내려와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해주신다는 것을 내가 깨닫는 순간 나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기방어를 하지만, 예수를 만나 자신이 회복되면 모든 것에 너그러워집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내적 치유가 됩니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주겠습니다”(죽 19:8). 주님이 오시면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것은 타인을 섬길 때 가능합니다. 내가 남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실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지금, 이 공동체에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소유의 절반, 빼앗은 것의 네 배를 갚겠다는 것은 삭개오의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환경과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눅 19:2-4). 돌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에서 흔하고 쓸모없는 나무지만, 그곳에 올라가서 예수를 만납니다. 이처럼 자신의 열악한 환경은 주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환경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빌립보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And...
이혼하는 사람 중, 성격 차이로 이혼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남편은 논리와 원칙을 내세우고, 아내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라면 늘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가 다르니까 당연히 갈등이 있고 함께 살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만일 성격이 같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서로 다른 것때문에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상대와 다름으로 거절되고 소외될 것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 다른 것에 대한 분노와 무시하는 마음이 사실은 갈등과 불화의 원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자아에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것이 존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서로 얼마든지 도움으로 공존할 수 있으며 공존함으로써 더욱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상한 마음의 치유일 뿐, 서로 다르다는 것이 결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다양한 것을 주셨다는 것, 그리고 실제는 서로 다른 것보다 같은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고 동질성 속에서 이질성을 볼 수 있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길르앗 치유문화원 원장-
하나님을 깊이 알기 전에는 모든 원인을 상대에게 찾습니다. 그래서 늘 관계가 삐그덕 거리고 부조화 속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그것이 불만이 되고, 불화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거짓 자아에 속는 자신을 볼 수 있고, 상대의 존재 자체에서 의미를 찾으면 있는 그대로, 그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모든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문제는 해결되는 길로 갑니다.
‘조화’란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의 부족함을 보충해줄 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상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니 다툴 일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만나게 하실 때 그 사람의 부족함을 채우도록 만남을 허락하십니다. 내 필요를 상대에게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부족함을 내가 채워주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는 참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그 부족한 사람을 만나게 하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관계가 깨어진다는 것은 나 중심의 삶에서 오는 결과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이웃, 자신, 환경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구원받은 자의 복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가 살면 모든 관계가 회복됩니다. 주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깨어졌던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부영 동행
https://youtu.be/UK9u41YbUf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