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다빈치 코드>가 아직 한국인이 인식하기 전, 나는 이 책에 대한 비판의 글을 여름에 썼다.
당시 여러 신문사에서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신문에 있는 내용을 복사하여 소개했다. 그해 가을 나는 분주했다.
그것이 소설이기에 비판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해 봄에 미국에서 출판된 역사 소설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이 책을 접했다. 당시 나는 <여인들의 발자취>라는 책을 쓰는 중이었다. 초개교회시대에 활동한
신앙의 여인들을 조사하는 중 마리아에 관한 기사가 유독 인터넷에서 뜨겁게 다뤄지고 있었기에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책의 내용을 점검할 수밖에 없었고, 분석하고 연구하며 비판의 글을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인터넷 신문에 글을
기고한 것이다. 그해 가을 나는 한국 사회에 중심인물로 부상했다. 거의 일 년 동안 교파를 초월하고 매스컴을
초월하면서 초청받아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현재는 잊힌 내용이지만 당시엔 교계엔 뜨거운 감자였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황당무계한 내용을 문학이란 망토로 둘러싼 음모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간파한 로마가톨릭교회는 나에게 접근하여 함께 싸우자고 제안했고, 로마가톨릭주의를 반대하는
나는 그들과 손을 잡고 더 악한 적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작금에 1974년 발생한 한국의 불행한 사건을 다룬 영화가 큰 이슈가 돼 정치판이나 인터넷 또는 유투브에서
뜨거운 열띤 경쟁을 하고 있다. 한 편으로 북한 정부의 사주를 받아 만든 것이 아니냐? 좌파가 선전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 등등 여러 추정 가운데 연기한 배우들도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문학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문학은 글로 매개체로 예술의 세계이다.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어느 책에서든 감독이 채택하여 그것을 영상으로 옮길 때 편향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전에 우파 계열 영화가 나와 천만 명 이상 시청한 적이 있었다. 정치인들은 그것을 보고 격찬했고,
다른 계열의 사람들은 폄하했다. 어떤 평가를 내리던 국민 중 1/4는 그 영화를 시청했다. 많은 수가 시청했으니
괜찮다는 것이 아니다. 예술의 영역은 돈과 분리되지 않는다.
물질이 없으면 수백억 원의 자원이 드는 작업이 불가능하고, 누가 무슨 이득을 남기지 않으면 거대한 금액을
투자하지도 않을 것이다. 돈이든, 명예든, 이념이든 겹쳐서 만든 종합 예술이 영화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나는 신앙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행을 타는 정치인, 자칭 예술인, 돈의 좀비가 얼마나
이 사회를 좀먹고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누구든 진실을 알 수 없을 땐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재고하여
재점검해 봐야 한다. 20~30대 젊은이들이 유독 이번 사태에 뛰어들고 있다. 세대가 바뀐 것이다.
그 당시의 역사를 알지 못하던 세대가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는데 반응이 뜨겁다. 세대가 바뀐 것이다.
나는 앞으로 한국교회도 이렇게 바뀔 것이라 한 가닥 희망을 갖는다. 수적 성장에 눈멀어 초교파로 치달았던
현 상태를 정의와 공정을 향한 판단을 바로 내려 기성세대가 허물어버린 지난 한 세대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열어보겠다는 이 분위기는 일단 환영한다. 하지만 그들도 세월이 지나면서 썩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른 편으로 슬프다. 이런 세상이 역사에서 반복되는 것은 진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인 것을 알기에
쉽게 실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적어도 바른길로 걷겠다는 일말의 양심이 있다는 것엔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개혁은 완벽한 개혁을 꿈꾸게 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Solus Chris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