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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에 국토해양환경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어. 제목이 ‘꿈꾸는 항구’. 그리고 인천광역시 미술전람회에 전시한 작품은 ‘풍요로운 마음’.
아직은 화가로 불리고 싶지 않아. 그냥 늙어서 취미 생활하는 할머니. 늙어서 그림 그리며 시간 보내는 할머니고 싶어. 화가는 싫어.
지금은 애들이 결혼해서 다 살만하고 큰아들은 대기업에 잘 다니고, 며느리는 애들 데리고 살림 잘하고 경제적인 것도 손 안 벌릴 만하고, 작은아들도 공무원으로 앞가림하고, 우리도 애들 만나면 용돈도 넉넉히 줄 수 있으니 행복하지. 우리 신랑이 78세인데 아직 돈 벌어. 농사지으니까 생활비 안 들고 노후 걱정 없이 잘 살아.
궁금해요
○젊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비결? 왕언니는 나이가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동료, 같이 그림 배우는 수강생들이라고만 생각한다. 사실 나이 많다고 내세울 것도 별로 없고, 내심 상대방이 상처를 입거나 거리감을 느낄까봐 우려를 한다. 항상 이런 생각을 미리 하는 건 아닌데 평소 그런 마음으로 그냥 자연스럽게 지낸다. 젊은 이웃들을 친구처럼 생각한다. 왕언니는 그저 모두의 큰언니다. 진실을 감추는 맘 없이 있는 대로 드러내며 살려고 하는 왕언니다. 왕언니는 남편인 할아버지를 ‘우리 신랑’이라 부른다. 남편이 농사를 직접 짓다보니 아무래도 배추니 파니 농산물이 풍족하다. 그걸로 먹을 것 만드니, 슈퍼에서 재료를 사다가 하는 것보다 풍족하다. 몸과 마음이 따뜻한 왕언니는 나눠먹는 행복을 아는 분이다. 매주 월요일 그림 수업을 마친 후 동아리 반에서 점심을 함께 한다. 왕언니의 음식 맛이 이때 많은 이들에게 먹는 즐거움을 준다. “그저 집에 있는 거 싸가서 선생님과 동료들과 같이 먹는 거지. 있는 거니까”. 맛있다는 동료들의 칭찬에 소녀처럼 겸연쩍어 한다. 왕언니의 손에는 늘 무언가 들려 있다. 그래서 이웃에 사는 동료 젊은 엄마도 조금씩 왕언니를 닮아가고 있다. 왕언니가 힘들까봐 나눠 준비하곤 한다. 왕언니는 빙 둘러앉아 모여서 커피 마시고 깔깔대며 얘기하는 게 너무 좋다. 맛있다고 하고. 남으면 싸가기도 하고. 둘러앉아 맛있게 먹다보니 먹는 데 정이 솟는다고 가족처럼 보인단다. 이 동아리가 겨울 4개월 쉬는 동안에 점심을 안 먹게 되었다. 빈손으로 나오니 왕언니는 뭐 잊어버린 것 같고 허전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들고 다니며 나눠 먹는 게 얼마나 즐거웠으면 빈손이 허전할까.
○마음과 몸이 젊게 보인다고? 젊은 분들이 어르신이라 부르지 않고 왕언니로 부르니 늘 친근하다, 틈틈이 차와 다과를 나누며 함께 모여 그림 그리는 일들이 왕언니의 나이를 잊게 한다. 언니로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하다 생각한다. 그림 선생님이 지어주신 왕언니라는 호칭을 정말 좋아한다. 왕언니는 체머리 흔들 때까지 같이 어울리며 그림 그리는 게 바람이다. 피카소 같은 작품이 나올 때까지……. 왕언니는 항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느긋한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한다, 이른 새벽에도 잠이 깨면 일어나 움직인다. 너른 공간을 움직이는 자체도 운동 아닐까? 이웃과 함께 생태공원에서 열심히 걷는다, 습관처럼 들고 간 뜨거운 물로 컵라면도 먹고 오는 재미가 좋다, 운동을 1시간 하면 1시간은 놀다온다. 벤치에 앉아 그냥 공기만 마셔도 좋다. 함께 간 이웃들과 수다도 떨고……. 왕언니는 낮잠도 자지 않는다. 정말 피곤하지 않으면 잘 안 눕는다. 타고난 건강 체질에 즐겁게 사니 건강은 그저 따라 다니는 친구다.
○생활 신조? 왕언니는 평소 생활면에서도 모두의 귀감이 된다. 어디서나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 길을 걷다가 찻길에 신문지 같은 것이 보이면 운전하는 사람의 차창을 가릴까 염려가 되어 줍는다. 따뜻한 마음은 음식을 통해서 뿐 아니라 사는 곳 어디서나 나타난다, 편안한 마음으로 베풀며 산다. 속마음이나 겉마음 똑같이 사는 것이 왕언니의 생활신조다. | ○좋아하는 시, 영화? 왕언니에겐 김소월의 시를 좋아하던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시절이 있었다. 결혼하기 전 생활이 어려울 때 슬픈 시가 위안이 되었을 때도 있었다. 이곳 장곡동에 정이 쌓이기 전 늘 광명을 그리워했다. 광명에서는 도서관에 가 책도 빌려 보았다. 경치 좋은 공원에서 책 읽기도 좋아했다. 어느 날부터인지 돋보기가 콧등에 앉아 슬슬 슬퍼진다. 왕언니는 요즘에 동아리 동료들과 조조 영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옛날에 ‘폭풍의 언덕’을 4, 5번 볼 정도로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요즘 ‘보헤미안 랩소디’는 아직 못 봤지만 ‘스윙키즈’도 보고 ‘완전한 타인’도 보았다. 그림 동아리 멤버들과 자주 가는 편이다. 동아리 멤버들하고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라 참 좋다.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도 차 있는 젊은 친구들과 부담 없이 잘 다닌다. 조조 영화를 주로 보니까 할인도 받는다. 일찍 가서 차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다.
○좋아하는 사람 혹은 가수? 왕언니는 나이 먹었어도 젊은 취향이다. K-pop을 좋아하고, ‘복면가왕’도 좋아한다. 젊은 애들이 잘 보는 ‘뮤직뱅크’는 너무 똑같아서 별로다. ‘더 팬’ 같은 프로를 즐겨본다. 황치열이나 임재범 스타일의 노래를 듣는다. 손녀가 엄마 아빠보다 더 신세대라고 할 정도이다.
○음식 잘하는 비결? 왕언니는 음식도 젊은이들 취향에 잘 맞는 맛이다. 시집 둘째 형님이 음식을 잘 했는데 명절이나 무슨 때마다 분가해 살던 형님들이 와서 음식을 준비했다 한다. 왕언니도 같은 맛을 내려고 따라하다 보니 손이 빠른지라 자연스럽게 배웠다. 옆에서 보고 따라 하다 보니 다들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지금도 TV에 음식 얘기 나오면 레시피를 일일이 적어 놓는다. 음식은 배운 적 없지만 늘 적어놓은 레시피를 참고해 간단한 음식 만들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레시피 적은 게 족히 한 권 분량이다. 예전 방식과 요즘 방식을 넘나들며 퓨전으로 젊은이들에 뒤지지 않을 음식 솜씨를 자랑한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번은 왕언니가 동아리실에 가기 위해 장곡고 앞에서 버스를 타려고 서 있었다. 정류장에 중3이나 고1쯤 돼 보이는 어떤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50쯤 돼 보이는 어떤 아저씨가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 되는데.”하면서 꾸짖었다. 남자 아이는 아저씨 말씀을 듣자마자 “신고해, 경찰에 신고해.”하며 달려들었다. 재치 있는 왕언니는 싸움이 나겠다 싶어 “아저씨, 버스 왔어요. 얼른 타세요. 너 잘못했어. 어른한테 그러면 안 되지.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거 알잖아.” 한 마디 던지고 버스에 얼른 올랐다. 왕언니도 사실은 무서웠다.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두려움을 무릅썼던 것이다. 왕언니가 결혼하는 아들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살아보니까 신랑이 아, 하면 신부도 톤을 좀 높여 아, 하고 신랑이 다시 더 높게 아, 하고……. 그러다 보면 서로 소리가 높아지고 감정을 상하게 한다, 같은 톤으로 얘기하다가 물러서라. 목소리를 서로 높이면 싸움이 된다.” 왕언니는 좀 참다 보면 괜찮아지니까. 헐뜯지 말고 다 내 맘 같이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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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 용돈 주는 재미, 애들 맛있는 것 사주는 재미, 자식들 만나면 밥값이라도 낼 수 있는 재미가 좋아. 나도 비상금 쪼금 있고. 하하하. 그렇게 생활할 수 있으니 저축도 좀 있고 관리비 낼 수 있고……. 어려울 때는 많이 슬펐는데…….
5. 살며 사랑하며
갯골 산책하고 돌아오다가 쓰러져 구급차로 실려간 적이 있어. 내가 번데기 알러지가 있더라고. 어려서는 번데기를 먹어도 알러지가 없었는데, 인제 나이 70이 넘으니까 몸에 변화가 온 것 같애. 병 치료하던 친구가 영양제로 먹던 번데기를 주길래 좀 먹었지. 그러고 생태공원 산책을 나갔는데 두드러기가 나고 정신이 점점 혼미해 오는 거야. 병원 가려고 빠른 길로 돌아오려고 뒷길로 서둘렀지. 정신이 너무 없어서 전신주를 잡고 서 있었어. 그때 어떤 분이 얼굴을 가리고 지나가다가 나를 발견한 거지. 내가 마스크를 벗겼잖아. 그랬더니 그게 바로 향화 씨였어. “향화 씨 내가 왜 이러지?” 내가 막 헛소리처럼 그랬잖아. 그 이후는 기억이 잘 안나. 굴다리를 빠져나온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때 쓰러지고 토한 것 같기도 하고……. 그때 향화 씨가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도와 달라 외쳤다면서…….
향화 씨 덕분에 119 타고 안산 고대병원 응급실에 갔지. 우리 신랑이 뒤늦게 연락 받고 달려왔고……. 그때 혈압이 40-40으로 떨어져 위험하다고 난리가 났어. 죽을 수도 있다는 거야. 힘이 없어서 윗옷을 못 벗어서 가위로 잘랐다지. 윗옷을 왜 벗겨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면서 번데기 같은 걸 먹고 두 번쯤 오면 죽을 수도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날 저녁에 바로 퇴원은 했지만 그 후로 CT도 찍고, MRI도 찍고, 그랬지. 뇌에 이상이 생긴 줄 알고. 이번에 이렇게 끝났지만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위험하다고. 지금도 게 같은 걸 먹으면 두드러기 같은 게 약간 나. 참, 그때 향화 씨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 그때 자기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네.
결혼 초에는 친정에서 별로 일도 안 했는데, 시집가서 완전히 일 잘하는 사람이 된 거야. 시할머니, 시할아버지가 동네 따로 떨어져 사셨는데, 그때 90쯤 되신 것 같았는데 그분이 우리집 오시면 계란 프라이해서 시어머니가 꼭 대접하더라고. 막걸리 받아놨다가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꼭 드시게 하고. 그런데 나는 어르신들 신고 온 하얀 고무신을 깨끗이 닦아놓곤 했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런 이쁜 짓을 했어.
애들 학교 들어가기 전, 우리 애들 예쁘장하게 잘 자랐지. 연년생 둘을 데리고 놀이동산 같은데 앞 세워 가면 얼마나 든든하고 보기 좋던지, 그때는 딸 생각은 못하고 두 아들이 듬직해서 좋았어.
화려한 날, 그런 날은 없어. 맨날 평범하게 살았으니까. 어제가 오늘 같고 또 내일도 오늘 같았으면 하는 바람이지.
6. 에필로그
돌아가고 싶은 날? 그래도 학교 다닐 때, 그때지. 긴 줄로 줄넘기하고……. 엄마가 혼자 사는 모습이 불쌍하게 보여서 다른 아이들 철없이 놀 때도 나는 논에 가서 피사리 뽑는 일도 도와주고 했지. 그런 걸 창피하다 생각 안 했어. 학교 가기 전에 새벽에 그걸 등짐으로 져 날라다 놓고 일등으로 등교해서 교실 문을 열곤 했지. 그 당시 반장이라 열쇠를 내가 갖고 다니니까 기다리는 애들 없게 하려고 그랬지. 엄마 곁에서 나를 따르던 친구들이 함께 하던 그 시절이 좋았지.
지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엄마지. 친정어머니. 평생 고생만 하셨어. 홀로 우리들 위해 애쓰다가 살만해지니까 큰아들이 다 소진하고……. 마음고생 많이 하시다가 돌아가셨지. 그래서 많이 슬펐어. 땅 팔아 돈 좀 만질 때는 우리 오빠가 너무 속을 썩인 거야. 돈을 너무 쓰고 다녀서. 근데 오빠가 정신 차렸을 때는 우리 엄마가 늙고 집안이 이미 기울었지. 그러니 올케 손에 밥 얻어먹는 걸 미안해 하셨어. 그러지 말라고 따뜻한 말씀도 제대로 못해 드렸는데. 그런 어머니가 보고 싶어. 내가 어느새 우리 엄마 나이가 되었네.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 며느리들과 속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누가 그러더라고. 나이 들면 친구도 있어야 하고 엄마 마음 이해해주는 딸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딸이 없잖아. 이른 시간에도 아래위로 오르내리며 모닝커피 나누는 지영 씨, 두경 씨가 내 넋두리 들어주려나? 우리 손주들 고향 같고 우리 신랑 놀이터(텃밭)가 있는 이곳, 장곡동이 요즘 많이 탈바꿈을 하고 있어, 올 6월이면 장곡주민센터가 경찰서 앞 새 청사로 옮긴다고 해. 흰머리가 더 늘어나도 주민센터 어느 공간 이젤 앞에 앉아 갯골 벚꽃 길을 그리며 ‘장곡동 피카소’의 꿈을 꾸고 있을까? 그 때도 향화 씨는 내 이야기 들어 주겠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