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후배들에게 드리는 글
사랑하는 고려대학교 재학생 후배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고려대학교 재학시절부터 민주주의와 통일을 염원하는 한편, 사랑하는 모교의 민주적 발전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졸업 후 만든 모임 《고려대학교 민주동우회》에 속한 선배들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한창 바쁠 때에 이렇게 선배들의 뜻을 모아 재학생 후배에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지난 3월 12일의 한겨레신문 보도를 접한 후 선배로서 가만있을 수만 없어서입니다.
이 편지는 재학생들의 자치활동에 선배들이 간섭하려 함은 아닙니다. 언론에 보도된 ‘확인된 사실’로 인해 많은 선배들이 충격과 상처를 받았고, 이를 바로 잡기를 열망하는 ‘사랑하는 선배들의 간곡한 호소’임을 먼저 밝혀두고 싶습니다.
지난 3월 11일에 있었던 ‘고대 전학대회’에서 새 학기 교육투쟁의 목표로 제시되었던 9개의 항목 중에서 세 번째인 <청소노동자와 시간강사 투쟁 지지> 조항을 삭제하였고, 그 사유가 이 분들의 투쟁내용이 ‘재학생 등록금인하 및 복지증진과 배치되기 때문’이라는 기사의 내용은 선배로서 믿고 싶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고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선배들은 심각한 충격, 자괴감, 분노, 허망함 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심지어 다른 대학 출신들의 비웃음까지 감내해야 했습니다. 고대의 학풍과 전통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아 비통하기까지 했습니다.
‘고려대학교’가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고 마음의 고향일 수 있음은 가장 ‘고려대학교다운 학풍과 전통’에 있습니다. 그 핵심정신은 구 교가의 가사에서 절절하게 숨 쉬고 있습니다. 구 교가의 가사는 고대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젊은 가슴, 숨은 생명. 힘 넘쳐 뛰노나 / 이 힘이여, 이 생명을 펼 곳이 어디냐
눌린 자를 쳐들기에, 굽은 곳 펴기에 / 쓰리로다, 부리리라 이 힘과 이 생명
그렇습니다. 고려대학교의 학생이라면 넘치는 젊은 힘과 열정을 바로 “눌린 자를 쳐들고, 굽은 곳을 펴는데” 쓰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후배 재학생들의 학업도 장래 비전도 바로 이러한 고대정신의 전통 위에 설 때만이 가장 고대다울 수 있고, 그래서 재학 시절은 물론이고 졸업 후에도 고려대학교는 ‘마음의 고향’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학대회의 결정은 전혀 고대답지 못합니다. 재학생의 자부심을 훼손한 것은 물론이고, 선배들의 마음의 고향에 흙탕물을 뿌린 것과도 같습니다.
이는 ‘눌린 자를 더 억누르는 결정’이며, ‘굽은 곳을 더욱 굽게 하는 잘못된 결정’입니다.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아픈 현실을 외면하면서 재학생들의 복리증진만을 외친다면, 그것은 ‘자유’도 ‘정의’도 ‘진리’도 아닙니다. 오로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재학생들의 집단이기주의’에 불과합니다.
연봉 600만원이란 박봉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가장 많은 강의시간을 담당하는 시간강사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면서, 여러분은 강의의 질이 향상되길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사용하는 강의실과 화장실을, 여러분이 걸어 다니는 교정을 매일 청소하며 쾌적한 면학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는 미화노동자분들이 아무리 비인간적 대우를 받더라도 그건 재학생 여러분의 문제와는 별개라고 진정 믿고 있나요?
그 분들에 대한 처우가 나아지면 여러분의 등록금이 올라간다고 정말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건 어디에서 나온 논리인가요? 그런 셈법은 비겁한 재단 측에서나 내놓을 한심한 셈법입니다. 전혀 고대답지 못합니다. 학생, 교직원, 시간강사, 미화노동자, 학교병원노동자, 졸업생 모두가 고대의 공동구성원이고 가족입니다. 이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힘을 모을 때만 오만한 학교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지난 반값등록금 투쟁 당시 여러분을 돕고 지원하셨던 미화노동자 아주머니들이 여러분의 기억에서는 잊혔나요?
현재 재학 중인 학생 중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이 외면해버린 척박한 시간강사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미화노동자 아주머니들의 자녀들이 고려대학교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 분들은 바로 여러분 동료의 어머님이고, 내 어머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분들의 투쟁은 ‘타인의 투쟁’이 아닌 바로 ‘재학생 여러분 자신의 투쟁’인 것입니다. 이런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셨나요? 그럼 지금부터 다시 생각하셔야 합니다.
고대 민주동우회 선배들은 후배 재학생들이 자신의 안위만이 아니라 약한 자 편에 설 줄 아는 정의를 실천하는 올바른 가치를 함양하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민족과 민중의 편에 섰던 가장 고대다운 전통과 자부심을 이어가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잘못된 결정을 조속히 그리고 스스로 바로잡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에 선배로서 재학생 여러분께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선후배 간담회를 제안합니다. 과연 고대다운 학풍이 무엇인지, 이번 전학대회의 결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고대 민주동우회 선배들과 총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및 기타 학생대표자들이 참가하는 간담회는 선후배간 이견을 좁히고, 서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 시기는 3월 25일 이전이 되길 희망하며, 장소는 교내 어디든 좋습니다.
둘째, 3월 29일로 예정된 민족고대 총궐기대회 이전에 전학대회를 재개최하기를 제안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이번 결정에 대해 다시 토론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길 선배로서 강력히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이번 결정으로 상처받은 가족 같은 학교공동체구성원들은 물론이고 자괴감과 아픔을 느꼈던 많은 선배들에게도 바른 모습을 보여주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 두 가지 제안에 대해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 대표자간에 협의된 긍정적인 회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눌린 자를 쳐들고, 굽을 곳을 바로 펴는 진정한 민족고대의 모습을 보여주시길 희망합니다.
2012년 3월 20일
고려대학교 민주동우회 선배 일동
(회장 박 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