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 수필을 물러나면서
한용유
수필 청보리와 연을 맺은 지가 어언 17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갑니다. 남부도서관에 수필 강좌 프로그램이 생기고 견 일영 선생님이 강의를 맡게 된 때부터 수강하게 되었으니 창립멤버인 셈입니다. 견 선생님의 3개월 단위 수필 강좌 3기 수강을 마치고 가야산 국립공원 산행에서 하산 하다가 식당에서 남부도서관 수필문학 독서회 창립을 발의 하고 씨를 뿌린 것이 2002년 11월이었으니 올해로 만 16년이 흘러갔습니다. 2003년 창간호 이름을 청보리라 짓고 창간을 시작, 2014년 11집 까지 내고 그 후 3년을 중단상태로 발표와 합평만 계속해 왔습니다.
창립 당시 회원이 16명이었는데 한 때 20명까지 이르기도 했으나 이제 7명으로 줄었습니다. 그 때 창립회원 중 3명이 남았습니다. 그중에 내가 들었으니 감회가 깊습니다.
그동안 고령 대가야고분탐방(01년01월)을 비롯하여 객주문학기행까지(04년4월) 열여덟 번의 문학기행과 나들이를 한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그러니까 창립은 2002년 11월이지만 수강을 시작한지는 2001년이니까 18년이 되는 셈이지요. 18번의 문학 기행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2005년도 부산해운대 모래사장을 거닐면서 날아드는 갈매기의 군무(群舞)에 함께 마음을 날리고 석양의 황금빛 노을에 취하기도 했지요. 리조트 11층에서 여장을 풀고 수필문학 토론에 젖으며 준비해간 주과를 나누면서 소담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광안대교의 야경, 망망대해의 전망을 바라보며 삶의 먼지를 틀기도 했습니다. 이어 노래방의 흥 풀이, 다음 날 새벽 해풍에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적시며 수평선으로 솟아오르는 해돋이 장관 또한 잊을 수 없군요. 하룻밤 인연의 리조트를 되돌아보며 자갈치 시장으로 가서 신선한 회로 점심시간이 지난 공복허기를 채웠지요. 또 한 가지는 포항 대구 교원연수원 1박2일, k선생님의 취사요리솜씨에 놀랐고 캄캄한 밤에 심한 바람을 받으며 폭죽 쏘기, 이튼 날 돌아오는 길에 견 선생님의 100km의 과속 스릴, 팔공산 벚꽃놀이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동안 나이도 많고 귀도 어둡고 해서 더 이상 노추를 보이기전에 물러날까 하고 여러 번 생각을 했습니다. 연만하신 견 선생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아무런 대가없이 시종여일 봉사 하시면서 노년으로 애용하시던 자가용도 처분하고 20km넘는 원거리인 경산에서 2코스의 지하철을 갈아타시며 현충로역에 내려 남부도서관까지 30여분을 그 무거운 20여권의 책보자기를 손수 들고 걸어오셔서 논아주시고 강의 하시는 열성에 너무 감복했습니다. 근래 선생님의 건강 악화는 고질과의 투병으로 극복은 하셨지만 그 후유증과 80노구에 무리가 가중된 것이 아닌가? 염려도 들어 송구해서 참아 내가 먼저 물러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18년간 정이 흠뻑 던 회원님들과 연을 끊기 어려워 오늘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견 선생님도 건강상 나오시기 힘들게 되었으니 더 이상 무리를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고 나 또한 견 선생님과 진퇴를 함께하기로 약속했으니 이제 더 머물 명분이 없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견 선생님께서 불편한 몸으로 계속 빠짐없이 나오셨습니다. 청보리를 아끼시는 충정은 감사하나 더 이상 무리는 말리는 것이 우리의 도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11월 월례회 때 오는 12월 월례회를 끝으로 청보리 모임을 마감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출발하기로 의론이 되어 윤언자 회장님께 일임키로 했습니다. 마감 날을 12월 월례회 일인 12월18일(화요일)로하고 장소는 남부도서관으로 정한 후 다과를 나누면서 그동안 겪은 소감문과 대표 수필을 발표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청보리 카페(수필풍경)를 활성화하여 카페를 통해 작품발표도 하고 이-메일 교환으로 연을 이어가기로 잠정 의론이 되어 윤 회장에게 일임키로 했습니다.
지난 2015년 초여름 견 선생님의 지도와 여러분들의 격려로“먹구의 푸념”이란 수상록을 내기도 해서 청보리 와는 더욱 애착이 진합니다. 80평생 나의 삶의 片鱗을 한권의 책으로 내게 된 것은 오직 청보리 수필과 함께한 얻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80 이후의 수필 70여 편과 편지글 10편, 종사관계 글 20여 편을 모아 놓았습니다. 여기에 앞으로 쓸 수 있을 때까지 더해 추려서 두 번째 수상록을 준비 하고 있습니다.
有始有終이요 會者定離라 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맛나면 이별이 따르게 된다지요. 아쉽지만 삶의 과정이라 받아드리고 회가 새로운 모습으로 활로를 찾기를 빌며 물러가도 수필풍경 카페와 메일로 글도 올리고 서로 안부도 교환 하면서 정의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빌면서 두서없는 고별말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12월18일 한용유 드림
첫댓글 김기덕감독 신성일 엄앵란 주연 "떠날 때는 말없이" 영화 주제 가 떠오릅니다. 안동 모르는 등 말없이
물러가지 뭐 잔소리가 많어냐? 다들 그렇게 떠났는데. 그러나 강산이 두번 변한 세월이 내 마음을 잡네요.
옷소매만 스쳐도 전생의 연분이라 했는데. 어느날 청보리 카페에 소식이 없으면 정말로 떠난줄 아세요.
'인생은 나그네 길 어듸서 왔다가 어듸로 가는가." 최희준 가수도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