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듣는 귀가 아쉽소!

[해바라기]

판사의 듣는 귀가 아쉽소!

김승웅

 

재판은 어찌 보면 황당한 게임입니다. 이렇게까지 단언하는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습니다. 저 스스로 법정에 서, 그 황당함을 체험했기 때문이지요. 파리특파원 시절 음주운전에 걸려 기소됐습니다.

제 변호를 맡은 파리 여성변호사가 “한국대통령의 방불(彷佛)을 맞아 프랑스기자들과 밤늦게까지 취재계획을 짜다 그리 됐다며 한불 두 나라의 친선을 위해서도 선처를 바랬습니다만 여성 판사는 단호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한국 대통령한테나 털어놔라 더니 방망이를 때리는 겁니다. 운전면허정지에 벌금 3천 프랑! 안되겠다 싶어 항소한즉 (이번에는 남성)판사가 제게 직접 묻더군요. 피고는 죄를 지었다고 여기는가? 속으로 ‘이런 젠장, 죄를 지었으니까 여기 왔지……’싶어

예! 라 대답한즉 법정이 온통 웃음바다로 바뀌었습니다. 판사부터 배를 움켜잡고, 검사도 웃고 화를 낸 건, 제 변호를 맡은 여변호사뿐이었습니다.

무슈 킴, 그렇게 답변할 바에야 내가 왜 이 자리에 온 거요?” 당연히 아니오라 말했어야 옳다는 겁니다. 대신 판결은 관대했습니다. 무죄! 그렇습니다. 재판은 황당한 게임입니다. 저의 무지와 솔직마저 승소의 무기가 됐던 곳이 재판정입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95년 10월, 전처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미국 흑인 풋볼선수 O.J. 심슨의 언도공판 때 예의 ‘황당’을 거듭 체험했습니다.

검사측이 피살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DNA가 99.99% 심슨의 그것과 일치됨을 입증했음에도 LA법정은 심슨한테 무죄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변호인단은 실제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아내가 그 남편한테 살해당한 경우는 0.1%도 안 된다고 강변, 결국 배심원 전원의 동의를 얻어낸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 대표적인 언어유희였습니다.

판결 후 숫자풀이에 능한 미국 칼럼니스트 존 앨런 파울로스가 내린 진단을 지금껏 기억합니다. 변호인 측 주장은 일응 맞다. 그러나 심슨의 전처는 이미 죽었다. 그 경우 평소 때리던 남편이 범인일 확률을 계산했어야 옳았다. 그럴 확률은 무려 80%가 넘는다.

더 황당했던 건 그 판결에 환호작약하던 일부 미국인을 제가 목격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임지가 워싱턴으로 바뀌어 교외 골프장을 돌던 중이었는데, 저와 한 조(組)가 되어 라운딩 하던 미국인 셋이 라디오를 통해 ‘무죄’를 듣는 순간 서로를 부둥켜안고 뒹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 백이면 백 누구나 명백한 오판으로 여긴 그 판결을 저토록 골프채까지 내던지며 열호 하는 저들을 도시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저 셋은 대관절 누굴까? 워싱턴시내 로펌에 근무 중이던 변호사들이었습니다. 이 세기적 오판을 지구인들은 또 한 차례 목격할지 모릅니다.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보던 12명의 관객을 쏴 죽이고 70명을 부상시킨 제임스 홈스(24)의 공판이 엊그제부터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변호인이 또 무슨 황당한 게임으로 배심원단을 설득시킬지가 관전의 포인트입니다.

피의자 홈스가 평소 정신질환 병력의 소지자라는 점에서 변호인 측 변론이 무엇일지는 뻔합니다. 정신질환자의 경우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미국만 아니라 우리 형법(10조)도, 이웃 일본 형법(39조)도 심신장애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황당한 게임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문제의 핵심을 직시하는 판사의 부재 때문입니다. 새삼 간난아이의 소유를 놓고 서로 생모라 다투던 두 창녀에게 

유대 왕 솔로몬이 3천 년 전 내린 “아이를 칼로 두 토막 내라!”던 판결이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명 판결은 이처럼 하늘이 내립니다.

당시 솔로몬이 하늘에 구했던 걸 구약은 지혜라 번역해왔습니다만

그 지혜의 원 뜻은 히브리말로 ‘듣는 귀’, 더 정확히는 진짜 생모가 ‘자궁에서 내지르는 함성’(렙쇼메아)이었습니다. 논고나 변론을 훌쩍 뛰어넘어 문제의 핵심을 들을 줄 아는 판사가 아쉽습니다.

저의 무지와 ‘솔직’을 듣고 무죄를 언도한 파리의 그 판사처럼.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문화일보 워싱턴 특파원 역임>

5월 1일字 내일신문 《신문로 칼럼》

Kitaro(기타로) - Song For Peace

[금붕어]

짤막하게 한 마디
멋진 대답, 멋진 판결 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