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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역대하 33장1~25절
제목 : 므낫세의 죄와 회심
왕위에 오른 므낫세는 부왕의 모든 개혁을 후퇴시키며, 아하스의 길로 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으로 끌려간 후에는 회심하여 회복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1. 므낫세이 통치(1~20절)
1) 므낫세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1~9절)
본문은 므낫세의 우상 숭배에 관한 기록으로 왕하 21:1-9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열왕기의 기록과는 달리 이방 문화의 본질과 근원에 대해 첨언하고 있습니다(Williamson).
(1) 므낫세가 십이 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아 다스림(1절)
“[1]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며 ”
나이 십이 세라 - 이로 볼 때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생명을 연장받은 15년 동안의 기간에 태어난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는 히스기야가 15년간의 생명을 연장 받은 때로부터 제3년째 태어난 셈입니다(왕하 20:6).
한편, 병행 구절(왕하 21:1)에는 므낫세 모친의 이름이 '나는 그녀 안에 있다'란 뜻의 '헵시바'(Hephzibah)였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본절에서 므낫세(Manasseh)의 모친 이름이 생략된 기록 형태에 대해 월리 암슨(Williamson)은 이것을 본서 저자의 규칙적인 습관이라고 이해합니다(II Chronicles, p. 390).
(2) 므낫세 왕이 악을 행함(2절)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 이는 주로 열왕기서에서 우상 숭배의 죄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입니다(Curtis).
3-7절에서 보듯 므낫세는 본래 가나안 원주민들이 숭배하던 가중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직접 악을 시행했습니다(28:3 ; 왕하 16:3 ; 17:8, 11).
이방 사람의 가증(可憎)한 일을 본받아 -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왕하 21:2의 주석을 참조하라(신 18:9-14).
(3) 므낫세 왕이 우상을 숭배함(3~9절)
첫째, 히스기야가 헐었던 산당과 바알의 제단을 재건하고, 아세라 목상을 새로 만들며, 일월성신까지 숭배했습니다(3~5절)
“[3]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5]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 - 이에 대해서는 31:1을 참조하라.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 - 여기서 바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원어는 복수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병행 구절인 왕하 21:3에는 바알과 아세라 목상 둘 다가 단수로 언급되어 있으며 이와 같은 표현 뒤에 '아합의 소위(所爲)를 본받아'라는 설명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이로 볼 때 열왕기 기자는 구체적인 어떤 바알상과 아세라 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한 듯합니다.
이에 반해 역대기 저자는 바알들이란 표현으로 가나안인들의 신들을 지칭하고 있으며(17:3), 아세라 목상은 따로 구별하여 언급하고 있는 듯합니다(14:3, Curtis).
한편, 아세라(Asherahs)는 가나안 땅에 있던 어떤 신들 중 하나로 우가릿(Ugarit) 문서에는 '바라의 여신'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신은 가나안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여러 지방에서 숭배되었는데 남부 아라비아인들에게는 엘(El) 신의 배우자로, 아람인들에게는 여인의 출산과 관련된 신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 해, 달, 별들과 같은 천재들을 숭배하는 것은 고대 이방 종교에서 널리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 같은 천체 숭배가 남유다와는 달리 북 이스라엘에서는 널리 만연해 있던 것처럼 보입니다(왕하 17:16).
그러나 남유다에도 일월성신(日月星辰) 숭배가 아하스 때 처음으로 소개되어(왕하 23:12) 므낫세 때에 비로소 널리 유행한 듯합니다.
그런데 율법에서는 이런 것들을 숭배치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신 4:19 ; 17:3).
한편 학자들은 앗수르의 영향 때문에 므낫세가 일월 성신을 숭배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Curtis, Payne, Wycliff), 이 시대에 이러한 우상 숭배가 만연해 있었던 사실에 관해서는 습 1:5과 렘 8:2 ; 19:13을 참조하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 여호와께서 한 곳을 택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이미 신 12:14에 나타나 있습니다(6:6 ; 7:16 ; 왕상 8:16 ; 9:3).
제단들을 쌓고 - 이는 여호와의 전에 바알 주상들과 다른 이방 신들의 우상들을 세웠음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므낫세는 단지 우상들을 숭배함으로 여호와를 배교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사악하게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같은 므낫세의 행동을 여호와의 주권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여호와의 신앙(신 5:7)에 대한 반항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전(殿) 두 마당에 - 이는 성전의 안뜰과 바깥뜰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안뜰을 다른 말로 '제사장의 뜰'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4:9의 주석을 참조하라.
둘째, 이방의 가증한 행위를 따랐습니다(6절)
“[6]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
본절에는 므낫세가 신 18:10, 11에서 금하고 있는 가증한 행위 6가지를 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⓵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 여기서 '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바나요'는 '세우다', '짓다', '건축하다'를 뜻하는 '바나'에서 유래한 복수형입니다.
그러나 병행 구절인 왕하 21:6에는 단수 '베노'가 언급되어 있어 이곳의 표현과 약간 다르게 나타나 있습니다.
아하스의 이 같은 범죄를 언급하고 있는 28:3에서도 아들을 복수로 언급하고 있고, 왕하 16:3에는 단수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므낫세는 한 아들만을 희생 제물로 바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Keil, Zockler).
왜냐하면 역대기에 나타난 복수형을 저자와 사상을 자연스런 방법으로 기술하기 위한 수학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열왕기에는 이 제사가 '한 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드려졌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⓶ 점치며- 점(soothsaying)에 대해서는 성경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레 19:26 ; 사 2:6 ; 렘 27:9 ; 미 5:12).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넨'을 '구름' 또는 '하늘'이란 뜻의 어근 '아난'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Davidson), 또 '눈'이란 어근 '아인'에서 파생 돤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것은 점치는 행위가 구름의 현상들을 눈으로 보고 해석하는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단어가 '뱀이 내는 쉿하는 소리' 또는 '목이 쉰 거친 소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Curtis).
어찌 되었든 이 같은 점치는 행위에 대해서 성경은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출 22:18 ; 레 20:6, 27 ; 신 18:14).
⓷ 사술(邪術)-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훼쉬'의 어근 '나하쉬'가 '뱀'을 뜻하는 '나하쉬와 비슷하기 때문에 사술의 행위는 뱀을 이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Davidson).
그러나 어근이 이와 같이 비슷한 것은 마술사가 내는 소리가 뱀의 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인지 사술이 뱀을 사용해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은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창 44:5, 15에서 요셉은 컵으로 점을 쳤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당시 애굽에서 유행했던 것으로서 아마 컵에 담은 물의 파장이나 빛의 굴절을 보고 예언하는 점인 듯이 보입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사술'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어떤 징조를 보기 위한 점술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레 19:26).
⓸ 요술(妖術)- 이에 해당하는 동사 '카솨프'의 의미는 매우 여러 가지로 설명이 됩니다.
즉, (가) '풀잎이나 약초를 자른다'는 의미로 설명되는 경우입니다(Curtis). 요술의 행위를 약초나 마법의 풀을 잘게 부수어 끓여서 '마법의 물'을 만든 뒤에 무당과 같이 신적 행위를 하며 사용하는 점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나) '주문을 속삭이다', '흐리다', '마술을 걸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Zockler).
요술의 행위를 상대에게 주문을 걸어 청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율법(신 18:10-12)은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⓹ 신접한 자와 ⓺ 박수를 신임하여- 이는 일반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점, 사술, 요술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신접자'는 '접신술'(接神術)을 하는 사람, 곧 '죽은 자와 교통하는 자'를 가리키고, '박수'는 남자 무당을 가리킵니다.
한편, 삼상 28:8에 신접한 여인이 나오고, 행 16:16 이후에도 귀신들린 여자가 점을 친 사실이 언급되어 있음을 보아 이러한 자들은 유대인들이 생활 깊숙히 침투해 들어 왔었던 것 같습니다.
므낫세 또한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수시로 자문을 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습니다(7~8절)
“[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8]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령한 일들 곧 모세를 통하여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
성전에 제단들을 쌓았고 아로새긴 목상을 세웠습니다.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 - 왕하 21:7에는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목상은 '아세라 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Keil).
한편 '목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멜'은 '닮다'란 뜻의 어근에서 유래한 용어로 '우상', '형상'을 뜻합니다(신 4:16 ; 겔 8:3).
그러므로 28:2의 '부어 만든 우상'(마쎄케)과는 구별됩니다.
그래서 '아로새긴 상'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로 '새기다', '조각하다', '베다'를 뜻하는 용어에서 유래한 '페셀'을 쓴 것입니다.
성전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택한 곳이며, 당신의 이름을 영원히 두실 곳으로 지정한 곳입니다.
므낫세는 이런 하나님의 의중을 업신여겼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전해준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백성들이 지켜 행할 때는 기업의 땅에서 계속 거하게 하시지만, 그렇지 않으면 땅에서 쫓아 낼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 이는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땅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삼하 7:10)으로서 율법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영원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유다의 백성들에게 율법에의 순종만이 요구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신12:10 ; 수 21:44).
넷째,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꾀어 악을 범하게 했습니다(9절)
“[9]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 므낫세는 신정 왕국인 유다의 최고 통치자로서 자신이 마땅히 참 여호와 신앙을 준수하는 모범을 백성들에게 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우상을 숭배해 섬겼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행위를 백성들이 본 받도록 강요함으로써 자신의 범죄를 가중시켰습니다.
이로써 유다는 바벨론의 침입을 받았으며 므낫세 자신도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흔히 지도자들의 타락은 그 자신 뿐 만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기에 몰아 넣습니다.
실례로 르호보암의 타락은(12:1) 애굽 왕 시삭의 침입을 초래했으며(12:2-12), 여호람은 자신의 사악함으로 인해(21:4-6) 에돔과 립나의 반역을 당했습니다(21:8-10).
그러므로 국가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힘써야 하며, 공의로 백성들은 통치하기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 이는 유다에 죄가 관영하는 심판의 때가 찼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러한 유다의 죄악과 배반을 회상시켜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 앞에 더욱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썼을 것입니다.
2) 므낫세의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10~17절)
(1) 므낫세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자, 하나님은 앗수르 군대를 보내 므낫세를 포로로 잡아가게 하셨습니다(10~11절)
“ [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 병행 구절인 왕하 21:10-15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면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들에게 심판의 말씀을 전했을 것으로 추축됩니다.
므낫세의 통치 기간(B.C.697-642)에 어떤 선지자가 활동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으나 열왕기와 비교해서 본절을 이해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또는 익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선포되었음이 분명합니다(왕하 21:10).
한편 11절은 므낫세가 바로 그 경고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형벌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
앗수르 왕 - 이 왕은 에살핫돈(B.C.681-669)이거나 그의 아들 앗술바니팔(B.C.669-626)일 것입니다(Curtis, Barker).
그러나 므낫세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때를 B.C.648년으로 추측해 보면 여기에 언급된 앗술 왕은 앗술바니팔이 틀림없습니다.
이유인 즉, 이 때는 바벨론에서 4년 동안 지속되던 형제들의 반란을 앗술바니팔(Asurbanipal)이 진압하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므낫세를 사로잡고. - 여기서 '사로잡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호힘'은 유일하게 여기서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에 따라서 이 단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됩니다.
⓵ 야생동물의 코를 꿰어 끌고 가듯 므낫세를 그렇게 다루었다는 뜻(Baker, Keil).
왜냐하면 원형 '호아흐'는 '찌르다'라는 뜻의 어근에서 유래한 용어로 '가시 고리', '고기를 끌어내는 갈고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⓶ 쇠사슬과 비슷한 족쇄(足鎖)를 채웠다는 뜻(LXX, Targum).
⓷ 가시로 만든 울에 가두었다는 뜻(Starke).
⓸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엘로힘'이라는 어떤 장소로 끌려갔다는 뜻(Thenius).
그런데 대영 박물관에 보관된 앗수르 시대의 부조(浮彫)에서 당시 앗수르 왕들이 때때로 포로들의 코에 갈고리를 꿰고 끌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Barnes).
따라서 이것은 문자적인 의미로 므낫세의 코를 갈고리로 꿰고 또 쇠사슬로
결박하여 끌고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Zockler, Williamson, Curtis).
바벨론으로 - 혹자는 바벨론이 아니고 니드웨라고 하기도 합니다(McCurdy).
그러나 대부분의 보수적 성향을 띠는 학자들은 이곳이 바벨론(Babylon) 이라고 여깁니다(Keil, Williamson, Zockler).
(2) 환난을 당하자 그는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앞에 겸비했습니다(12절)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여호와께 간구하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구문의 문자적인 의미는 '여호와의 면전(面前)에서 애걸하다', '신음하여 앓다', '자비를 구하다' 혹은 '여호와의 얼굴을 어루만지다'입니다(출32:11 ; 삼상13:12 ; 왕상13:6 ; 단9:13).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환난을 통해 겸비하게도 하시며 간구하게고 하셔서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3) 므낫세가 겸비함에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다시 왕위에 앉게 하셨습니다(13절)
“ [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
므낫세가 기도한 내용은 모두 이스라엘 열왕의 행장(18절)과 호새의 사기(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외경 가운데 하나인 '므낫세의 기도'와는 그 내용이 다른 것으로 이해됩니다(P. C. Barker, Keil, Zockler).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 므낫세의 이러한 깨달음과 연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므낫세는 여호와를 이방신들과 동일하게 여겼다가 그제서야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욥과 비교해 볼 때 그 신앙의 차원은 다르지만 이것을 계기로 하여 므낫세는
지금까지의 정책을 바꾸어 일대 개혁을 단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깨달을 때만이 진정한 신앙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므낫세의 신앙 개혁 착수(14~17절)
여호와가 하나님이 심을 깨달은 므낫세는 신앙개혁을 착수합니다.
“[14] 그 후에 다윗 성 밖 기혼 서쪽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되 어문 어귀까지 이르러 오벨을 둘러 매우 높이 쌓고 또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 지휘관을 두며 [15]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제단들을 다 성 밖에 던지고 [16]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령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 [17] 백성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더라”
첫째, 산당과 제단을 세우고 우상을 만들었던 그가 이제 예루살렘 성벽을 확장하고 쌓아 수도의 방비에 힘썼습니다(14a절)
“[14] 그 후에 다윗 성 밖 기혼 서쪽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되 어문 어귀까지 이르러 오벨을 둘러 매우 높이 쌓고 또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 지휘관을 두며”
본절에서는 므낫세가 외성(外城)을 쌓은 사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히스기야가 쌓은 외성(32:5)을 다시 더 확장하고 높게 쌓아 그 공사를 마무리 한 것을 의미하는지(Zockler), 아니면 므낫세가 새로 다른 외성을 쌓은 것을 가리키는지(Keil) 분명치 않습니다(Barker).
기혼 서쪽 골짜기 - 이는 다윗성의 서편에 있는 골짜기(Keil), 즉 다윗 성과 그 아래 성 사이에 있는 골짜기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쌓은 외성이 예루살렘의 남동쪽(32:5 주석 참조)인 것을 고려해 볼 때 이곳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Curtis).
어문 어귀. - 느 13:16에도 암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이 문은 예루살렘 성전의 북쪽 방향에 있습니다(Baker,Wycliff, Cuetis).
그러나 재클러(O. Zockler)는 이 문이 성의 동쪽 방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양자의 견해를 종합해 볼 때 어문 어귀는 성벽의 동쪽 끝, 북동쪽 모퉁이에 있는 망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Keil).
오벨을 둘러 매우 높이 쌓고. - 여기서 '오벨'(오펠)은 작은 산, 또는 언
덕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의 원뜻은 '부풀다', '치켜 올리다'에서 유래한 '둔덕', '성채', '튼튼한 요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므낫세는 성의 서쪽에서부터 북쪽 어문 어귀까지 언덕을 쌓고 언덕을 이용하여 성을 아주 높이 쌓았을 것입니다(Zockler).
그렇게 해서 므낫세는 내성(內城)인 예루살렘 이외에 외성(外成)까지 쌓아서 방비벽을 이중으로 구축하여 앗수르의 침입에 대비했던 것 같습니다.
둘째, 유다의 요세 성읍에 군대 지휘관을 두어 지역 방비를 보강했습니다(14b절)
“[14b] 또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 지휘관을 두며”
셋째, 성전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영적 개혁을 두 가지로 단행합니다(15~16절)
⓵ 가증한 일을 뒤엎는 작업입니다(15절)
“[15]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제단들을 다 성 밖에 던지고 ”
우상을 제하며...다 성밖에 던지고. - 왕하 23:6, 12에 따르면 므낫세가 섬기던 우상들을 완전히 제거한 왕은 요시야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학자는 므낫세가 우상들을 제거하였다가 다시 우상들을 섬겼다(Eward)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상들은 므낫세에 의해 완전히 제거되어 성밖에 버리워졌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던지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라크'는 '멀리 던지다', '아래로 던지다', '밖으로 세게 던지다'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제하여'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원형 '수르'는 '쫓아버리다', '치우다', '잡아 찢다'란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악한 므낫세의 아들 아몬이 다시 그것들을 제자리에 세웠기 때문에 요시야 때 가서야 비로소 완전히 부수어 지고 태워졌음이 분명합니다(Keil).
그래야만 이러한 견해는 34:3-7의 말씀과도 완전히 일치합니다.
즉, 므낫세는 우상들을 여호와의 전에서 옮겨 밖에 버리기는 하였으나(헤씨르) 완전히 부수고 빻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카라트).
⓶ 올바른 제사를 회복한 것입니다(16a절)
“[16a]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 드리고 ”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이는 므낫세가 번제단을 다시 세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보수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이켄'의 의미는 '세우다', '고정시키다'로서 다시 건축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번제단을 언제 제거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에 대한 본절의 의미를 축소하여 '수리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O. Zockler).
그러나 아마 므낫세는 아하스 왕이 했듯이(왕하 16:14) 일월성신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단을 쌓을 때에 번제단을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이 분명합니다(5절, Eward).
그래서 므낫세는 이 번제단을 본래의 자리에 되세우는 것을 개혁의 큰 성과로 생각하고 실행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의 성경 번역본들이 이를 '세우다'라고 옮기고 있습니다(공동 번역, '세워' ; Living Bibble, rebuil).
넷째, 백성에게 악을 장려하던 그가 이제는 여호와를 섬기라고 독려합니다(16b절)
"[16b] 유다를 명령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
이에 백성들은 하나님께만 제사합니다.
이처럼 므낫세의 영적 개혁은 행동이 수반된 진정한 회개였습니다.
반면에 여전히 미비한 부분도 있었습니다(17절)
“[17] 백성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더라”
본절은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라고 한 므낫세의 명령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즉, 백성들은 므낫세의 명령 때문에 겉으로는 여호와만을 섬겼으나 실제로는
중앙 성소에서 예배드리지 않고 옛적 산당 예배를 다시 부활시켰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⓵ 므낫세의 개혁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15절을 보면 므낫세가 우상과 그 단을 제기하기는 하였으나,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15절 주석 참조).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중앙 성소에서 예배드리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하지 못하고 산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그냥 방치 하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⓶ 장기간의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백성들을 참 여호와 신앙으로 회복시키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즉, 므낫세가 B.C. 697년에 즉위하여 B.C. 650년경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기까지 약 반세기 동안 우상 숭배를 적극적으로 강요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백성들은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있었을 것입니다(Payne).
그래서 그러한 백성들의 악습을 6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개혁으로 고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⓷ 중앙 성소가 므낫세에 의해 이미 더럽혀졌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므낫세가 여호와께 회개하고 종교 개혁을 실시했다고는 하나 한번 우상 숭배에 빠졌었기 때문에 그의 참된 명령은 백성들로부터 큰 신뢰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예배의 중앙 집중화는 붕괴되고 산당 예배가 활상화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3) 므낫세의 통치 종결부(18~20절)
므낫세의 통치 종결부는 악한 왕으로만 언급한 평행 본문(왕하21:17~18)과 달리 그의 선과 악을 다시 묘사하고 있습니다.
(1) 그가 하나님께 한 기도와 겸비한 내용, 이에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신 것이 부각 되었습니다(18~19절)
“[18]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가 하나님께 한 기도와 선견자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권한 말씀은 모두 이스라엘 왕들의 행장에 기록되었고 [19] 또 그의 기도와 그의 기도를 들으신 것과 그의 모든 죄와 허물과 겸손하기 전에 산당을 세운 곳과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세운 곳들이 다 호새의 사기에 기록되니라”
하나님께 한 기도와 선견자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권한 말씀. - 왕하 21:17에는 '므낫세의 기도'에 대한 언급이 없고 다만 선지자의 권고한 말씀만을 왕하 21:10-15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편 혹자는 본서 저자가 말하는 '므낫세의 기도'는 외경에 나오는 '므낫세의 기도' 내용의 근거가 된다고 말합니다(Dictionary of the Bible).
그러나 대부분의 보수적인 학자들은 외경에 나오는 므낫세의 기도와 본문의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이해합니다(13절 주석 참조, Barker, Keil, Zockler).
이스라엘 왕들의 행장(行狀) - 좀 더 현대적인 감각에 의해서 의역해 평향하면 '잇, 라엘 왕조 실록'(공동 번역)을 가리킵니다.
대부분의 영어 역본들은 이것을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 혹은 역사'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Living, NIV, the Annals of the kings of Israle ; RSV,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
호새의 사기 - 이는 역대기 저자가 사용한 독립적인 자료로서 열왕기 저자와 다른 자료를 사용한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35:20-27 주제 강해 '구약 성서 기록에 사용된 자료들'을 참조하라.
(2)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됩니다(20절)
“[20] 므낫세가 그의 열조와 함께 누우매 그의 궁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그의 궁에 장사되고 - 왕하 21:18에서는 보다 정확하게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편 '웃사의 동산'의 위치에 관해서는 왕하 21:18 주석을 참조하라.
2. 아몬의 통치(21~25절)
“[21] 아몬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 동안 다스리며 [22]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으며 [23]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24]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25] 백성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라”
본문은 므낫세의 뒤를 이은 아몬의 통치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것은 왕하 21:19-24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데 다만 본서에는 그가 므낫세와 같이 스스로 겸비치 않고 더욱 범죄하였다는 기록만이 첨가되었을 뿐 오히려 그 내용은 보다 더 축소되었습니다.
1) 아몬은 20세에 왕이되어 2년동안 다스립니다(21절)
“[21] 아몬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 동안 다스리며”
아몬이 왕위에 오를 때에 - 이는 B.C. 642년을 가리킵니다.
아몬은 이때에 므낫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므낫세가 오랜 기간 동안 (B.C. 697-642) 통치한 것과는 달리 그는 단 2년간이라는 짧은 기간만 통치하였습니다.
아몬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 이로 볼 때 아몬의 아들 요시야(B.C. 640-609)는 결국 그가 16세 때 낳은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왕하 21:19에는 아몬의 모친이 욧바 하루스의 딸 므술레멧(Meshullemeth) 이라고 기술되어 있으나 본서에서는 밝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모친이 이방 여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왕하 21:9 주석 참조).
2) 아몬이 므낫세가 제거한 우상을 다시 섬겼습니다(22절)
“[22]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으며”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으며 -왕하 21:21에는 '그 부친의 섬기던 우상을 섬겨 경배하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본서 저자는 아몬이 므낫세가 제하여 버린 바로 그 우상을 다시 세우고 섬겼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15절주석 참조). 그래서 페인(Paynx)은 이 같은 기록이 므낫세가 우상을 파괴시키지 않았으며, 예루살렘에만 개혁을 집중시켜 오히려 우상 숭배를 분산시켜 행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보고 있습니다(17절 주석 참조).
3) 아몬이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였습니다(23절)
“[23]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 이 대목은 본서 저자에 의해 첨가된 듯합니다.
이는 앞에서 언급된 므낫세의 겸비함(12절)과 비교했을 때 아몬은 전적으로 겸비치 아니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Williamson).
한편 므낫세가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며 친 앗수르 정책을 펼쳤듯이 아몬도 마찬가지로 부친과 같은 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아몬은 아마 부친 므낫세의 종교 개혁이 친 앗수르 정책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계속 우상 숭배를 장려했을 것입니다(Curtis).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비치 아니했다는 본서 저자의 평가를 받은 듯합니다.
4)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죽습니다(24절)
“ [24]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 아몬은 요아스와 아마샤처럼 신복들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24:25, 26 ; 25:27).
그런데 어떤 학자는 그 신하들이 친 애굽 세력이기 때문에 애굽의 사주(使嗾)에 의해 아몬을 죽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Curtis).
그러나 성경에서는 아몬의 신하들이 왕을 반역한 이유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5) 백성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세웁니다(25절)
“[25] 백성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라”
백성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 여기에 등장하는 '백성'이 어떤 성격의 부류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습니다.
즉, (1) 친앗수르파이든가 아니면
(2) 왕의 권위에 대하여 절대적인 충성심 갖고 있는 일반 백성이라고 봅니다(Barker, Curtis).
그런데 역대기 뿐 만 아니라 열왕기 전체에 등장하고 있는 '백성'의 성격은
(1)처럼 특정한 부류를 지칭하지 않고, (2)처럼 포괄적인 성격의 부류들을 지칭합니다.
그러므로 '백성'은 다윗 왕조의 회복을 갈망하는 유다 백성을 지칭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왕하 21:24 주석 참조).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은 23:16-21 주제 강해, ;'역대기에 나타난 하나님 백성의 특징'을 참조하라.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7b-11절 앞서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자기 백성을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은 성전의 참 주인이시기에, 그분의 이름을 두신 곳에 이방 신들을 들여놓는 것을 참아 보지 않으십니다.
다윗과 솔로몬에게 하신 ‘성전과 예루살렘에 대한 언약’을 근거하여(8절), 므낫세와 유다 백성을 앗수르의 손에 내어주십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몸 된 교회와 그분의 준엄한 말씀을 내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아 더럽힌다면,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신 18:9-14) 우리를 징계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은 무엇인지, 말씀보다 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12,13절 므낫세가 끌려간 땅에서 겸비하여 기도할 때에,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솔로몬에게 약속(7:14)하신 대로 행하신 것입니다.
악한 므낫세조차 하나님의 자비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진심으로 뉘우치고 돌이킬 때 용서하시고 안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7a절 므낫세는 아하스의 길을 충실하게 따릅니다.
그리하여 선대에 추진한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아하스 시대의 영적 어둠이 유다 산하를 뒤덮습니다.
개혁을 지속하기 어려운 것은 이전 체제에서 탐욕을 채우던 세력이 호시탐탐 재개의 기회를 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의와 부정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개혁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제거된 자리에 말씀이 뿌리내리고, 선한 전통이 굳게 서기까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멈추고 안주하면 그 순간 후퇴가 시작됩니다.
종교개혁 이후 17세기 교회들이 주창한 말처럼 “개혁된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합니다.
13b-19절 므낫세가 징계받은 후에야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바벨론에 끌려와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복을 주기도 하시고 벌하기도 하시는 온 세상의 주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20-25절 므낫세는 ‘겸손하여’(12절) 회개하지만, 그의 아들 아몬은 더욱 범죄합니다.
오만한 아몬은 결국 통치 2년에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그럼에도 백성이 그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삼은 것은 다윗의 등불을 끄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은총 덕분입니다(참조. 삼하 7:12-16; 대상 17:10-14).
[기도]
공동체-겸손한 마음으로 주께 돌이키게 하시고, 더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시켜주소서.
열방-코로나19 이후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사역의 위축과 안전의 위협, 철수의 압박을 겪고 있다.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현장 거주 여부를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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