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바르텔레미(바르톨로메오) 성당 - 카르카손. 레삭-
▲ 브뤼기에르주교 출생지
▲ 브뤼기에르 주교는 프랑스 남부 카르카손교구 레삭도드 마을에서 태어났다.
사진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어린 시절 다녔던 성 바르텔레미 성당.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는 1792년 2월 12일 프랑스 남부 카르카손교구 레삭도드(Raissac d‘Aude)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 프랑수아와 어머니 테레즈 사이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와인용 포도를 경작하는 자작농이었다.
브뤼기에르가 태어날 당시 프랑스 가톨릭교회는 1789년 일어난 대혁명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성직자들은 왕정체제 때 누리던 권리와 특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교회의 모든 재산은 혁명 정부에 몰수됐다.
주교와 사제들은 1790년 4월 14일 공포된 ‘성직자 민사 기본법’(la Constitution civile du clerge)에선서해야만 했다.
이 법의 골자는 조건 없이 신정부에 연합하겠다는 항복 선언이었다. 선서를 거부한 성직자들은 유배를떠나거나 살해됐다.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신부 모두가 이 선서를 거부하자 혁명 정부는 1792년 신학교를 폐교해 버렸다. 나폴레옹과 정교 협약을 맺고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가 다시 문을여는 데까지 15년이 걸렸다.
프랑스 대혁명은 교회 안에 교리와 전통을 약화시키는 근대주의(modernism)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 여파로 프랑스 대부분 도시에서는 종교적 전통과 열성이 급속히 약화됐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근대주의에 대항해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늘어났다.
특히 북부 노르드와 피카르디, 서부 브르타뉴와 노르망디, 남부 미디-피레네, 동부 알자스 로렌ㆍ프랑슈콩테 지역에서 전통 신앙을 고수하는 가톨릭 회복 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에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모두는 농촌 지역 출신으로 브뤼기에르 주교도 그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