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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학성동(鶴城洞), 학성-학성산(鶴城山)밑이 되므로 학성이라 했다. ◈학남(鶴南)-학성 남쪽에 있는 마을 ◈학서(鶴西)-학성 서쪽에 있는 마을 ◈학(鶴)안-학성 안쪽에 있는 마을 ◈독리-학남 동북에 있는 마을 ◈푸지샘-학남 남쪽에 있는 샘.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음 ◈이시명 충혼비(李時溟 忠魂碑)-그는 임진왜란때 왜병 5명을 논갈던 쟁기로 타살한후 숨어 살다가 왜군에게 붙들려 사지를 찢겨 순사하여 시체도 못 찾았다. 조정에서 훈련원정(訓練院正)을 증직(贈職)하고 충혼비를 세웠다. ◈학성(鶴城), 필봉, 학성공원, 신학성, 신두산, 계변성, 시리성, 증성(甑城), 도산성(島山城)-옛날에는 산의 모양이 뾰족하게 솟아 붓끝처럼 생겼으므로 필봉(筆峯)이라 함. 신라 49대 헌강왕이 울산지방을 순회하다 학의 무리가 모여들고 경치가 좋아서 잠시 쉬어가다 이 산을 학산이라고 불렀다. 신라 변방을 수비하는 토성을 쌓은 자리이므로 계변성(戒邊城)이라 하고, 이 고을의 주신 계변천신이 학에게 멍에를 지워 타고 이 산 꼭대기에 내려와 사람의 수록(壽錄)을 주장했다 하여 신두산, 신학성이라 했다. 임진왜란때 울산 도산 전투가 가장 치열했다고 기술 하고 있으며 대망(大望)이란 소설에서도 평수길(平秀吉) 치하의 조선 파병군이 울산성에서 완강이 부딪혀 많은 희생자를 냈다고 함. 학성공원에는 충혼탑과 태화사터에서 출토된 석종형 2지부도상과 임진 전적비, 북쪽 낮은 정상에는 시민헌장비, 동요작가 서덕출의 봄편지 노래비, 독립투사 박상진(朴尙鎭)의사 추모비, 김홍조 송덕비(金弘祚頌德碑)등이 있다. ◈태화강역-동해남부선(부산진~포항) 기차역 ◈영호정(永護亭)-김홍조가 세웠다. ◈환학정(喚鶴亭)-학성동에 있던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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