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禮讚
靑松 장 병 학
진시황이 세상을 살피려고 돌아보던 중,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을 때 커다란 나무가 가까이 있어 소나기를 피할 수 있었다. 비가 그친 후, 나무를 쳐다보는 순간 마치 용이 하늘을 향해 용틀임하면서 비상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진시황은 소나기를 피하게 해준 덕으로 그 나무에게 공(公)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소나무는 나무 목(木)자에 귀인 공(公)자를 붙여 송(松)이 되어‘공적이 되는 나무’혹은‘나무가 공적을 쌓다’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나무는 예로부터 솔나무, 소오리 나무, 한자어로는 송(松), 적송(赤松), 송목(松木), 청송(靑松)으로 불려오고 있다.
백가지 나무 중 십장수인 소나무만이 상목(上木)이라고 불려오고 있다. 소나무는 더위나 차디찬 겨울에도 꿋꿋한 절개와 의지를 갖고 청초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소나무를 친근한 벗으로 삼고 있음에 다정한 친구로부터 소나무처럼 신념과 의지가 남달리 강하다면서 내게 청송(靑松)이란 호까지 선사받았다. 나의 블로그명도‘청송 장병학’이며, 오래도록 초록빛깔을 내며 강건하게 살아가는 청송(靑松)처럼 살고 싶다. 연중 푸르름을 선사하는 나무라 수십 년간 소나무 분재를 기르며 소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우리나라 곳곳에 소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있는 송림 숲을 즐겨 찾는다. 솔향(率香)이 온 몸을 향긋하게 감싸줄 때 내 마음까지 취하며 녹아내리는 듯하다. 팔월 한가위 때 솔잎을 겹겹이 깐 송편은 솔잎의 향긋한 맛을 내면서 추석날 조상님 차례 상에 일등 식품이 아닌가?
소나무는 5월에 꽃이 핀다. 새가지 아래 부분에 노란색으로 타원형을 이루며 수꽃이 핀다, 암꽃도 새가지 끝부분에 달리며 자주색을 띤 달걀모양으로, 수꽃의 노란 송화 가루를 암꽃에 날리면서 수정하여 열매를 맺는다. 영양분이 있는 곳에서 자란 커다란 소나무는 솔방울이 보통 100여개까지 달리지만, 영양분 부족 시는 더 많은 솔방울을 맺으면서 종족보존에 박차를 가하려 함은 천륜의 법칙이 아닌가?
충주에서 구황서가 지방관으로 재직할 무렵, 안위가 출간한 조선 최초의‘충주구황절요(忠州救荒切要)’라는 현존하는 책에는 보릿고개 시절, 백성들이 굶주릴 때 흰죽에 솔잎가루를 섞어 먹으면 기력을 돋군다고 했다.
최두익이 편찬한 송순, 송피, 송화 가루를 먹는 방법 등 솔잎의 종합판도 생각났다. 솔잎을 잘게 잘라 먹는 법, 가루 내어 먹는 법, 김치 담가 먹는 법, 즙내어 먹는 법, 환으로 먹는 법 등도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일본 치욕에서의 해방을 맞이한 이듬해 내가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파하고 십리 길을 걸어 집에 오는 동안, 친구랑 허기진 배를 웅켜 잡으며 껍질을 벗겨 소나무즙을 빨아먹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나는 두 번이나 우리 가곡인‘선구자’노래에 나오는 중국 용정시에 있는 일송정을 찾았다. 함경북도 최북단 위에 자리하고 있는 용정시내에서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타고 다시 남쪽으로 굽어 돌면서 우뚝 솟은 비암산에 올랐다.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깎아지른 듯한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푸르름을 자랑하는 소나무가 있다. 소나무 옆에는 돌기둥에 청기와를 얹은 정자와 비슷한 일송정(一松亭)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당시 용정 청년들이 이곳 일송정에 모여 나라를 사랑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본을 강력히 규탄하는 시 낭송도 하고, 반일가도 부르면서 항일투쟁 했던 역사적이며 눈물겨운 곳이다. 우리나라의 영토였는데 지금은 중국영토가 되었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렸다.
당시 일본은 악에 바쳐 야간에 군경들을 파견하여 우리 민족이 그토록 숭상하고 꿋꿋한 절개와 의지를 뿜어내는 기상과 절개가 곧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후추가루와 대못까지 박아 비련하게 죽게 했다는 가이드의 말에 치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용정 시민들은 울분을 참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다시 작은 소나무를 심었으나 끝내 살려내지 못했다. 그 후, 실패를 거듭하여 겨우 살려낸 소나무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 민족의 얼과 한이 서려 있음을 인지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때가 눈에 선했다.
집 앞의 야산에 아침 일찍 등산할 때마다 아침햇살이 찾아오면서 소나무 잎들끼리 서로 맞닿으며 오늘은 내 키가 더 컸다며 손뼉 치면서 키 재기 자랑의 향연에 마음의 박수를 보냈던 아름다움이 살포시 떠올랐다.
나는 늘 청초한 소나무가 오덕(五德)을 갖추고도 뽐내지 않는 소나무를 좋아한다. 소나무의 오덕(五德)은 지(智), 신(信), 용(勇), 인(仁), 업(業)과 엄(嚴)이다.
가난을 이겨내고 몸이 아플 때 약이 되는 것이 智요, 사철 변함없어 군자의 마음 같은 것이 信이다. 어려움에 굴하지 않으니 勇이요, 줄기는 재목되고 잎은 자연으로 돌아감은 仁이요, 척박한 토양에도 잘 적응하며 개척정신이 있음은 業이요, 눈바람에도 위풍당당함은 嚴이다. 그래서 오덕(五德)을 갖춘 소나무를 좋아한다. 나는 이덕도 못갖췄는데 오덕을 갖춘 연중 청순한 소나무에게 박수를 주고 싶다.
보은 속리산 행차 시 세조께서 타고 가셨던 연(輦)이 소나무 아래를 지날 때 소나무가 스스로 자신의 가지를 들어줘 왕이 타신 연이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지금도 세조께서 신기하고 기특하여 정이품 관직을 하사하신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이 너무도 신선하다. 갑자기 윤선도의 오우가와 성삼문이 죽음을 당했을 때 지은‘독야청청(獨也鯖靑)하리라’라는 충절의 시가 생각나면서 소나무의 기상, 곧은 절개의 이미지가 가슴을 에운다.
다정한 친구로부터 내게 붙여준 늘 푸르른 청송(靑松)처럼 고품스런 오덕의 솔향이 넘쳐나는 십장수인 소나무의 禮讚속에서 함께 살아감은 나에게 커다란 축복이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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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의식(문예한국) 수필(1986), 한국아동문학연구회 동시 등단(2002)
충북수필문학회장, 청주문인협회 회장, 충북글짓기지도회장, 중부문학회 회장,
국제펜충북위원회 회장, 한국아동문학연구회 부회장 역임
충북수필문학상, 충북문학상, 충북아동문학상, 진천문학상, 청주문학상,
박화목아동문학상, 한인현문학지도상, 문예한국작가상 수상
‘꿈을 주는 동시’, ‘별님도 덩실덩실’(동시집)
‘늘 처음처럼’, ‘신이 내린 선물’(수필집)
‘함께 가는 융합 미래사회’(칼럼집), ‘수준별 열린교육’(김천호 공저)
‘고장을 빛낸 사람들’ (효열, 청백리 21명 집필, 충청북도 발행)
'내고장 전통가꾸기' 집필, 편집 (진천군지, 진천군청 발행), '내고장 인물' 집필(진천교육청 발행)
현)수필의 날 조직위원,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아동문학회 중앙위원,
충북아동문학회 고문, 한국문협 전통문학연구위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