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키루스를 통한 주님의 승리와 바빌론과 그 신들의 몰락(44,24-48,22)

[리나]

5. 키루스를 통한 주님의 승리와 바빌론과 그 신들의 몰락(44,24-48,22)

이제 주님의 승리와 이방 신들의 무력함이 역사적 사건에서 드러난다. 이미 이방 신들과 논쟁한 결과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이 드러났다(41,1-42,13). 이제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느님께서 승리를 어떻게 성취하시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부분은 네 장면으로 나눠 바라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 키루스를 부르시고(44,24-45,25), 바빌론의 신이 몰락하며(46,1-13), 거대한 제국의 도성과 그곳에서 유행하던 주술적 가르침이 종말을 맞는다(47,1-15). 마지막으로 유배를 회고하고 바빌론에서 탈출하라는 요구와 함께 마무리된다(48,1-22).

1) 키루스를 통한 주님의 승리 (4,24-45,25)

키루스는 기원전 539년 10월에 바빌론에 무혈 입성하였다. 이로써 바빌론의 시대는 저물고 키루스가 통치하는 페르시아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이사야 예언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키루스의 위대함으로 바라보지 않고, 주님께서 역사를 주도하시는 가운데 이뤄진 일로 보았다. 그러므로 키루스의 승리에서 키루스의 위대함이 칭송되지 않고, 하느님의 이끄심이 강조된다. 이 대목은 여섯 장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키루스의 등장이 하느님에 의한 것으로 선포되고(44,24-28), 키루스를 향한 하느님의 신탁이 이어진다(45,1-8). 뒤이어 불행 선언이 언급된다. 하느님의 이해할 수 없는 계획에 대해 빈정거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45,9-13). 모든 민족이 이스라엘을 향해 모여오고, 그 안에서 주님의 구원이 선포된다(45,14-17). 이어서 숨어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창조와 구원 활동을 하시는 하느님이 우상들과 대비되어 선포된다(45,18-25).

44,24-28 키루스 신탁을 위한 준비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구원자’요, ‘빚어 만드신 분’으로 소개하신다(44,24). 이 표현은 제2부에서 주로 사용되면서 역사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힘을 드러낸다. 이러한 힘을 지니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과 사자들의 말과 계획을 성취시키리라고 말씀하신다(44,26). 바빌론의 점쟁이와 비교할 수 없는 그들을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의 재건을 예고하신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이 실현되고 성취되는 데서 그 말씀의 힘이 드러난다. 이어서 하느님께서 깊은 물을 말려 마른 땅을 준비하신다. 마른 땅은 혼돈으로 무너진 세상을 재건하는 토대이다(50,2; 51,10 참조). 예전에 주님께서는 갈대 바다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그곳을 건널 수 있게 하셨다. 그리하여 억압되었던 그들은 자유롭게 되었다(탈출 14,16.22.29; 15,19; 시편 77,16; 106,7). 이 모든 예고 뒤에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가 언급된다(44,28). 그는 바빌론의 뒤를 이어 고대 근동을 지배하는 새로운 권력자다. 그러나 이사야서는 키루스가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이루지 않았으며, 비록 그는 하느님을 모르지만, 하느님께 종속된 인물임을 강조한다.

45,1~8 키루스를 부르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 키루스를 당신의 도구로 부르신다. 이 부르심을 이해하려면 하느님께서 그를 부르는 두 가지 호칭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호칭은 “나의 목자”이다(44,28). 키루스는 주님의 지상 대리자로서 임무를 수행하며, 하느님의 뜻을 모두 성취하게 될 것이다. 목자라는 호칭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이끈 모세를 연상시킨다(63,11; 시편 77,21). 둘째 호칭은 “기름부음받은이”다. 이 호칭에서, 이사야서가 키루스를 다윗 임금의 위상과 관련하여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민족의 통치자에게 목자와 기름부음받은이라는 호칭을 부여하시고, 그를 통하여 역사를 주도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키루스 신탁의 수신자는 키루스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이다. 따라서 이 신탁의 목적은 키루스가 새로운 시대의 통치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본문은 키루스를 주님의 목자, 기름부음받은이로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역사를 기획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강조한다. 이 점을 아는 게 중요하다

하느님과 키루스의 관계는 하느님과 주님의 종의 관계와 유사점이 많다. 하느님께서 키루스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신 것처럼(45,1), 종의 오른손을 붙잡으신다(41,13). 또한, 하느님께서 키루스의 이름을 부르신 것처럼(44,28; 45,1), 주님의 종인 야곱/이스라엘을 부르신다(41,9; 43,1; 49,1). 이러한 유사점과 함께 분명한 차이점도 보인다. 키루스가 부르심을 받은 이유는 정치·군사적 행위를 통해 바빌론을 멸망시키는 주님의 도구로 쓰이기 위함이었다. 반면에, 주님의 종은 이방 신들과 논쟁하여 참되고 유일하신 하느님을 증명하는 증인의 역할을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이러한 유사점과 차이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가 바빌론의 정치·군사적 영역에서의 해방이 아닌 바빌론의 모든 우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키루스의 군사 행위가 가능했던 이유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이사야서는 키루스가 주님을 알고자 희망했는지는 주요 관심사로 두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키루스가 주님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 주님께서 키루스를 당신 계획에 따라 불러 세우셨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키루스를 부르시는 이유는 키루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야곱/이스라엘 때문이었다(45.4).

45,9-13 불행 선언과 하느님의 응답

키루스 신탁의 이전 본문은 하느님을 하느님 백성의 구원자며 창조주로 이해한다(44,24-28). 하지만, 키루스 신탁 이후에 전개되는 본문은 하느님 구원 행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이방 민족의 임금 키루스를 선택하시고 그를 도구로 삼으셔서 주님의 백성이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키루스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본다(45,9-1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의혹이 정당하지 않으며, 당신의 창조와 구원 능력을 조합하여 하시는 일의 위대함을 선포하신다(45,12-13).

45,14-17 이스라엘을 향해 모여 오는 민족들

이집트, 에티오피아, 스바인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모여 온다. 이방 민족이 모여 오는 모습은 이사야 예언서가 묘사하는 종말론적 구원의 한 장면이다(2,1-5; 19,16-25). 여기에 등장하는 이방 민족은 유일하신 하느님을 고백한다. 그들은 하느님을 제외하고 다른 이도, 다른 신도 없음을 고백한다.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이에게는 구원이 약속되지만, 우상을 섬기는 이들은 수치를 당하고 부끄러워하게 된다(40,19-20; 41,6–7; 44,9–20; 46,1-2.6-7 참조).

45,18-25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우상의 비교

이 단락은 하느님께서 숨어 계시는 분이신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제시한다. 이미 하느님은 숨어 계신 분으로 언급되었다(45,15).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숨어서도, 어두운 땅 어느 구석에서도 이야기하지 않으셨음을 분명하게 밝히신다(45,19). 하느님께서 숨어 계시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질문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주제이다. 이에 대한 전제는 하느님께서 숨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인간의 눈에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키루스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이스라엘 백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눈으로 하느님의 행위를 인지할 수 없다. 곧 하느님께서는 명확하게 창조와 구원 행위를 베푸시지만, 인간은 이것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현존이 인간에게 명확하게 인지되지 않으나, 이사야서는 그분의 현존을 근본적으로 신뢰하며 살아가야 함을 알려준다(45,19).

이방 민족에게는 하느님이 여전히 숨어 계시는 분이시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현존을 신뢰한다. 그리하여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숨어서 자신의 현존을 드러내지 못하는 우상이 대비된다(45,20). 하느님과 우상의 대조에 이어 하느님을 신뢰하는 이들과 우상을 섬기는 이들이 대조되어 나타난다.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겠지만, 우상을 섬기는 이들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낄 뿐이다(45,24-25).

2) 바빌론 신들의 몰락 (46,1-13)

46-48장은 키루스의 소명 이후(44,24-45,25), 바빌론에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선 바빌론의 신들이 몰락하고(46장), 바빌론의 수도 바빌론의 몰락이 이어진다(47장). 이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바빌론에서 도망치고 빠져나오라고 명령하신다(48장). 46-48장은 단편적 예언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바빌론의 멸망 과정을 보여주는 연속된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사야 예언서는 바빌론의 멸망을, 권력의 중심지이며 우상숭배의 본거지가 파괴되는 일로 바라본다. 바빌론의 멸망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하나의 경고이다. 곧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라는 가르침인 셈이다.

연속된 세 개의 이야기 가운데 바빌론 신들의 몰락을 언급하는 46장은 네 단락으로 구성된다. 바빌론의 신 벨과 느보의 몰락에 대하여 이야기하고(46,1-2),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고 도우시는 하느님의 의지가 표현된다(46,3-4). 이어서 우상의 무력함을 소개되는 가운데 바빌론 신들의 무력함이 강조된다(46,5-7). 마지막으로 불성실하고 마음이 굳은 이들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선포된다(46,8-13).

1-2절 바빌론 신들의 몰락

바빌론의 벨과 느보 신이 무너지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것은 바빌론이 키루스에게 점령되었음을 의미하며, 이어서 신상을 짊어지고 도망치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묘사된다(46,2).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숭배가 지닌 허상을 경고하며 우상을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3-4절 하느님의 대비되는 행동

이어서 바빌론의 신들과 대비되는 하느님의 행위가 묘사된다. 바빌론의 신들은 사람이 짊어지고 가야 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태에서부터 업고 다니고, 태중에서부터 안아주셨다. 그분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다.

5-7절 우상의 실체

하느님과 바빌론 신들이 뚜렷하게 대비되어 표현된 이후에 우상의 실체가 밝혀진다. 우상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우상 앞에 경배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움직이지도, 대답하지도, 구원을 주지도 못한 하나의 상(像)일 뿐이다(46,7 ; 47,15 참조). 반면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이에게 구원을 선사하시는 분이시다(43,3.11.12; 45,8.15.17.20-22).

8-13절 불성실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들을 향한 말씀

하느님께서는 불성실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들에게 우상숭배가 무의미함(46,8)과 주님께서 역사의 주도권을 쥐고 계심(46,9)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분이 새로운 권력자 키루스를 직접 부르시는 모습에서 하느님과 우상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났다. 우상은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는 존재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동쪽에서 맹금을 불러오고 먼 나라에서 당신 계획을 이룰 사람을 불러오는 분이시다(46,11). 그분은 이러한 사실을 믿지 못하는 야곱/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과 의로움을 가져오셨음을 선포하며 이스라엘을 위하여 시온에 베푸실 구원을 약속하신다(46,13).

기억하라는 하느님의 명령(46,8-9)은 기억하지 말라는 하느님의 앞선 명령(43,18)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충돌이 아니다. 곧, 기억하지 말라는 명령은 단절을 강조하며, 새로운 것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반면에 기억하라는 명령은,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가 지속됨을 잊지 말라는 의도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기억과 기억 금지의 명령은, 같은 사건과 현상에 대한 상반된 명령이 아니라 기억할 것과 기억하지 말 것에 대한 명백한 식별을 전제한다.

46장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말한 대로, 바빌론의 마지막 임금 나보니두스는 전통적인 바빌론의 신 마르둑 대신 달의 신 신sin을 섬겨 마르둑의 사제들과 충돌을 빚었다. 그래서 역사에서 볼 때 바빌론의 신 마르둑은 키루스의 등장과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바빌론 점령 이후 마르둑의 사제들은 다시 마르둑을 섬길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며 마르둑의 상을 들고 바빌론의 중심에서 행렬을 졌다. 그들의 행렬 모습이 46,1-2에서 묘사된다.

문제는 키루스의 바빌론 점령으로 하느님의 구원이 완수되었다고 생각한 이스라엘 백성이 마르둑의 행렬을 바라보면서 신학적 충돌을 체험한 데 있다. 하느님께서 키루스를 불러 그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셨는데, 오히려 바빌론의 신이 칭송받는 현실을 보며 의혹을 가진 것이다. 이사야 예언서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신앙에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에게 하느님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한다. 하느님께서는 의로움을 가까이 가져오셨으며 멀리 있지도 않고, 구원을 지체하지 않으심이 선포된다. 아울러 이스라엘과 시온을 위해 행하실 구원도 함께 예고한다(46,13).

3) 바빌론의 멸망(47,1-15)

바빌론은 “처녀 딸 바빌론”, “딸 칼데아”로 언급되면서 주님 심판의 대상이 된다. 도성을 딸과 처녀로 비유하는 표현은 이사야서에서 이미 시온에게 적용되었다(딸 시온: 1,8; 10,32; 16,1; 37,22; 52,2; 62,11; 처녀: 37,22). 유사한 표현을 통해 바빌론과 시온의 대비되는 운명이 암시된다. 여기서 바빌론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이 예고된다(47,1-4). 만국의 여왕이라는 교만에 빠진 바빌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47,5-7). 이제 그들에게 주님의 재앙이 닥쳐올 터인데 바빌론이 신봉하던 마술, 주술, 점성술에서 구원에 필요한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선포된다(47,8-15).

1-4절 바빌론의 멸망 예고

바빌론의 무너짐이 예고된다. 이미 46장에서 바빌론의 신 바벨(마르둑)과 느보는 몰락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바빌론에 왕좌는 남지 않고, 신들이 무너지는 모습처럼 바빌론도 먼지 위로 떨어진다(47,1). 몰락의 결과 바빌론은 여종이 해야 하는 맷돌 가는 일을 하고(47,2), 알몸을 보이는 수치를 당하게 된다(47,3).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이었으며 바빌론을 향한 하느님의 보복이다. 여기서 보복은 분노에 가득 찬 폭력적 행위가 아니라 무너진 질서의 재건을 의미한다.

5-7절 바빌론의 교만

바빌론의 멸망은 이미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바빌론을 더는 만국의 여왕이라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47,5). 이전의 바빌론은 교만함과 함께, 유배지에 끌려온 하느님 백성을 탄압하면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47,6). 바빌론은 자신을 "영원한 여왕"이라 여기면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47,7). ‘영원함’은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이 지닌 고유성이다(40,8.28; 42,14; 44,6).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역을 넘보는 바빌론의 모습이 그 교만함에서 드러난다. 그의 교만은 자기소개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바빌론이 사용한 “나는 이리라”는 히브리어로 “에흐예 אהיה)”로 표현된다. 이 표현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드러내신 자기소개 방식으로 “나는 있는 나다”(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 탈출 3,14)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표현이다. 이처럼 바빌론이 사용하는 영원함과 신적 자기소개 방식은 하느님께 종속된 존재가 아닌, 하느님과 동등함을 넘어서 하느님보다 위에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바빌론의 교만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8-15절 바빌론의 마술/주술/점성술의 무력함

바빌론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과부가 되거나 자녀를 잃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47,8). 이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태평함을 재앙으로 변화시키실 것을 예고하신다(47.9). 바빌론은 이기주의와 교만으로 가득 차서 “나뿐이다. 나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였다(47,10). 이에 대한 심판으로 바빌론을 향한 재앙이 예고된다(47,11). 그들이 믿고 신봉하던 마술, 주술, 점성술, 천체 숭배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그들에게 닥치는 재앙으로부터 그들을 구해주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유배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느님과 우상에 불과한 바빌론의 온갖 술책이 강하게 대비된다.

4) 유배의 회상과 탈출을 위한 외침(48,1-22)

48장은 이사야 예언서의 5편을 마무리한다. 이사야 예언서의 후반부가 전개되면서 언급된 신학적 주제들이 여기서 종합된다. 곧 주님의 종, 야곱/이스라엘의 선택, 주님께서 행사하신 역사의 주도권, 키루스를 부르심과, 그를 통한 바빌론과 그 신들의 멸망이라는 큰 주제가 여기서 마무리된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49-55장은 바빌론이 아닌, 시온을 시야에 담는다(46,13 참조).

48장은 여덟 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씀의 수신자가 소개되고(48,1-2), 하느님과 수신자의 관계가 묘사되며(48,3-5),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가 선포된다(48,6-8). 하느님께서 반역자들을 멸망시키지 않는 이유가 밝혀지고(48,9-11), 야곱/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을 다시 소개하며(48,12-13), 하느님의 계획 선포(48,14-16). 마지막으로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아쉬움(48,17-19)과 그들에게 바빌론 탈출을 명령하는 말씀이 소개된다(48,20-22).

1-2절 말씀의 수신자들

48장은 바빌론의 멸망을 전제하고 있음에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겁다. 그것은 48장의 말씀이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이들이 아닌, 하느님을 반역하고 마음이 완고한 자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신자로 언급된 이들은 야곱 집안에 속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하느님을 진실과 의로움으로 섬기지 않는 이들이다(48,1-2). 이 단락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유배 시기에 당면했던 공동체 분열의 문제를 보여준다. 여기의 수신자들이 이스라엘의 혈통을 지녔지만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이들이므로, 이 말씀은 전반적으로 심판의 뉘앙스를 풍긴다.

3-5절 하느님과 충실하지 못한 백성들의 관계

하느님께서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셨다(48,3).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하느님을 믿지 않고, 하느님보다 우상을 더 신뢰하였다(48,4-5). 백성의 마음이 완고한 탓에 하느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목과 이마가 각각 쇠막대기와 구리에 비유되면서 그 마음의 완고함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다(46,12 참조).

6~8절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

하느님께서는 이들의 완고함 때문에 새로운 일들을 기획하신다(48,6). 지금껏 모르던 일로, 과거가 아닌 지금 창조되었기에 쉽게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일들을 준비하신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창조 앞에서 완고한 이들은 배신만 하고 모태부터 반역자로 불린 이들임을 이미 알고 계셨다고 말씀하신다(48,8).

9-11절 멸망시키지 않는 이유

하느님께서는 “내 이름 때문에”, “내 명예 때문에” 노여움과 분노를 참으신다(48,9). 다만 고난의 도가니 속에서 백성을 시험하실 뿐이다. 주님은 유일하고 참된 하느님이시다. 이는 제2부의 시작과 함께 전개된 중요한 주제이다. 그분은 백성을 위해 멸망이 아닌 단련을 통한 시험을 선택하셨다(48,10).

12-13절 하느님 소개

하느님께서는 야곱/이스라엘을 향해 “내가 바로 그분이다. 나는 처음이며 나는 마지막이다.”(48,12)라고 선포하신다. 하느님의 이름에 부합하여 창조주 하느님의 능력이 다시 언급된다. 역사의 주도권을 쥐고 계시면서 다른 신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하느님의 창조 능력은 유배 중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구원을 준비한다.

14-16절 키루스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

하느님께서는 키루스를 부르시고, 그를 통해 계획하신 구원을 성취하신다(48,14).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성공을 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숨어 계시거나 감추어진 분이 아니다(45,15.19). 하느님의 계획을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의 임금 키루스를 선택하여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의 생각과 눈을 뛰어넘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하느님의 ‘숨어 계심’이라는 모티브와 함께 강조된다. 하느님께서는 숨어 계신 분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현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48,15-16).

17-19절 하느님의 탄식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주님의 가르침과 길을 잘 따를 것을 호소하신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길을 걷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그 길을 걸어갔다면 평화와 의로움이 넘쳐났으며 후손들도 모래알처럼 많아졌을 것이라고 탄식하신다. 하느님의 약속이 충만하게 성취되지 못한 원인은 하느님이 아닌, 이스라엘에게 있다. 그들이 계명을 잘 지키고 주님께 충실했다면 멸망과 유배가 아닌, 평화와 의로움을 가득 누리고 모래알처럼 많은 후손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48,18).

20-22절 바빌론 탈출의 명령

하느님께서는 당신 종 야곱/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바빌론으로부터, 칼데아로부터 탈출을 명령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을 탈출하는 목적은 예루살렘을 향한 귀환과 함께 당신의 종을 구하신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계에 선포하는 데 있다(48,20). 여기서 이집트 탈출 여정과 바빌론 탈출의 차이가 드러난다. 이집트 탈출이 이집트인들에게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면(탈출 7,5), 바빌론 탈출은 세상의 모든 민족이 하느님께서 행하신 이스라엘의 구원을 알게 하는 데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탈출 이후에 이어지는 사막의 여정도 이집트 탈출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집트 탈출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목마름으로 고생하였다면(탈출 17장; 민수 20장), 바빌론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바위에서 물을 솟게 하여 미리 마련해주시기 때문이다(48,21). 그 덕분에 이 여정에 참여한 이들은 하느님께 투정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48장의 마지막 구절은 무겁게 마무리된다. 48장의 수신자로 등장한 반역자들은 하느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구원과 탈출의 여정을 오직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만 제공하신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이들은 구원이 아닌 심판을, 평화가 아닌 고통을 맞게 된다. 그래서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48,22)라고 선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