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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프렌드 산동 백구두
이홍사
‘산동 백구두’로 불리던 이가 있다.
아니다. ‘불리던’ 이가 아니라 ‘불리는’ 이가 있다. 그가 건재하게 존재하는 한 그 별명은 현재진행형이다.
산동 백구두는 내 친구다.
그것도 고향동기 중에서 절친했던 친구다.
백구두라는 호칭을 들었을 적에 그 어감이 풍기는 뉘앙스와 떠오르는 이미지가 어떤 무늬인가? 건달이나 빈 가방! 다시 말해 날라리 아니면 속에 든 것 없이 외모에만 신경 쓰는, 겉멋이 잔뜩 들어있는 작자를 떠올릴 것이다.
초저녁부터 한잔 걸치고 중앙로에서 구두를 사들고 동사무소 앞을 지나오는데 불쑥 그 산동 백구두가 떠올랐다. 벌써 삼십 년이 넘은 그의 뒷모습이 실루엣처럼 떠오른 것이다. 완연한 봄이다. 언제나 봄은 계절과 유행을 앞질러가는 산동 백구두의 가랑이 사이로 온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의 패션은 언제나 계절을 앞질렀기에. 쇼핑백에 든 구두를 슬쩍 보았다. 색깔은 분명 백구두는 아닌데 어딘가 모르게 스타일이 백구두를 연상시킨다.
산동 백구두!
그를 떠올리자 바로 눈앞을 스쳐가는 바지가 있다. ‘당꼬바지’ 라 불리는 바지인데 모양새를 설명하자면 발목부분은 발을 꿰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고 허벅지는 풍덩하며 배꼽 위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바지다. ‘당꼬바지’ 그 어원을 짐작하면 원래 탱고 춤을 출 적에 입는 탱고 바지인데 그 유행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들어오면서 발음이 일본식으로 변해 ‘당꼬바지’라 불리었지 싶다. 산동 백구두는 그 당꼬바지를 유행시켜 우리 친구들 사이에 저변확대, 보급 시킨 인물이다. 그는 눈이 시리도록 하얀 당꼬바지에 하얀색 재킷이나 짙은 보라색 재킷을 걸치고 빨갛고 좁다란 넥타이 매고 다니며 가을이면 발목까지 덮이는 롱 바바리에 그 때 유행하던 단발머리를 고집하던 친구다.
그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항상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첨예한 방향으로 줄기차게 달렸고 주변 친구들은 늘 한 발 늦게 산동 백구두의 패션 궤적을 쫓아다니느라 주머니가 텅텅 비곤 했다. 기성복이 흔하지 않고 양복점이나 맞춤집이 옷을 맞추어 입던 시절이라 그렇게 취향대로 맞추어 입을 수가 있었다. 신발도 기성화보다는 제화점에서 수제 신발을 맞추어 신던 그 시절, 산동 백구두는 그 당시 또래보다 튀는 패션에 감각을 지니고 있었고, 재수하는 주제에 백구두에 빨간 넥타이! 튀는 패션으로 K대에 다니는 계집애도 여럿 거느리고 DJ가 있는 음악다방을 들락거렸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그의 아버지조차도 철호라는 본명을 두고 ‘산동 백구두’라고 호명할 정도로 튀는 인물이었다.
고향인 산동에서 정미소와 양조장을 겸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재력을 광배삼아 맞춤집에서 부처처럼 빛을 발하던 백구두! 왜 갑자기 산동 백구두를 떠올렸을까? 이 신발 때문인가?
나는 쇼핑백에 넣어서 들고 오던 새로 산 구두를 다시 보았다. 큰 마음먹고 산 갈색구두는 쇼핑백에 오롯이 들어있다. 지금 신고 있는 캐주얼 스타일의 랜드로버가 너무 낡아 정장차림에 맞지 않을 것 같아 한 켤레 장만한 것이다. 정장차림에 어울리는 구두가 없는 것은 아닌데 술기운이 작용해서 충동구매를 한 것이다.
나는 신발을 보고 산동 백구두를 떠올렸고 인간이 한 평생을 살면서 몇 켤레의 신발을 신을까? 그런 영양가 없는 의문이 일었다. 백 년 전만하더라도 우리 같은 민초는 짚신을 신고 다녔으니 그 짚신은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고 근대화 이후에 헤아려보는 게 마땅할 것이다. 평생 오백 켤레 이상 신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삼십 켤레도 못 신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집에 있는 신발장에는 신지 않지만 버리기 아까운 구두와 운동화, 다니는 절에서 스님이 조선 나이키라며 주신 하얀 고무신과 더불어 등산화에 골프화, 현장에서 신는 안전화까지 열댓 켤레의 신발이 있고 승용차 트렁크에도 두어 켤레의 신발이 있다. 아내나 아이들의 신발이 아닌 내 신발만도 거의 스무 켤레가 넘는다. 그렇다면 나는 평생 살면서 몇 켤레의 신발을 신을까? 다시 의문이 일었지만 그 정답을 모르겠다.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단돈 천 원을 주고 산 것이다. 천 원에 신발을 사다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 천 원에 사서 벌써 삼 년이 넘게 신고 있는 신발이다.
삼 년 전쯤 언제인가 토목 설계업을 하는 형님의 사무실에 들른 적이 있다. 사무실 입구에서 슬리퍼를 갈아 신으며 보니 신발장에 랜드로버, 갈색 단화 한 켤레가 있었는데 디자인이 너무 깔끔하고 발이 편해보였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슬쩍 한 번 신어보았다. 내 발에 꼭 맞고 발바닥이 폭신한 게 맘에 들었다. 이런 신발을 한 켤레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형님의 사무실로 들어가 인사보다 먼저 신발에 대해서 물었다.
-형님! 신발장에 있는 랜드로버가 누구 거요?
-내 신발인데 현장 다닐 적에 신으려고 한 켤레 샀다.
-어디서 샀는데요? 내 발에 꼭 맞고 가벼운 게, 엄청 맘에 드는데 나도 한 켤레 사야겠어요.
-그렇게 마음에 들면 신고 가렴. 딱 한 번 신었다. 새 신발이야.
-정말요?
-그래. 네가 신어.
-형님! 신발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래요. 단돈 백 원이래도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냐?
-아무튼 그렇데요. 여기 천 원 있어요.
나는 주머니에 든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도면을 그리고 있는 형의 책상에 던져주고 이 랜드로버의 주인이 되었다. 짚어보니 이 신발을 신고 안 다닌 곳이 없다. 일본 후쿠오카, 몽골 울란바토르와 고비사막의 도로현장, 대만 타이베이 전자 박람회,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비롯하여 국내 각 현장과 관공서는 물론이고 티베트의 포탈라 궁을 구석구석 밟고 다녔으며 친구 부친상을 당했을 적에 봉분을 짓는데 이 신발을 신고 달구를 밟았고 내가 다니는 절에서 성지순례를 갔을 때도 이 신발을 신고 여러 도량을 누볐다. 그 동안 테마공원 옆에 있는 구두달인의 컨테이너로 된 가게에서 염색을 세 번이나 했고 밑창이 갈라져서 똑 같은 신발을 사러 랜드로버 대리점에 갔다가 같은 신발이 없어 점원의 요구대로 오만 원이나 주고 AS로 밑창을 갈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신을 모르지만 내 평생 가장 오래 신은 신발로 기억에 각인이 될 것이다.
이 신발을 신고 다닌 길이 몇 킬로미터나 될까?
그것이 은근히 궁금했다. 그 궁금증 속에 오늘 산 구두와 지독히 닮은 한 켤레의 구두가 눈에 아롱거렸다. 그건 바로 삼십 년 전, 백구두의 궤적을 좇을 때 한 짝을 잃어버린 신발이다.
그렇다. 여태 살면서 잃어버린 것 중에서 가장 아까운 물건을 들라면 바로 그 한 짝을 잃어버린 갈색 구두를 들먹일 것이다. 정확한 금액은 생각나지 않으나 당시 주머니가 궁한데 꽤나 비싼 값에 제화점에서 맞춘 구두인데 며칠 신지도 않고 술에 취해 잃어버렸다. 한 켤레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한 짝만 잃어버린 것이었다.
삼십 년이 넘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내 인생의 악보는 온통 먹칠 투성의 방황시기였다.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열패감을 느끼며 술을 마시고 떡이 되어, 필름이 완전히 끊긴 상태에서 친구의 자취방에 기어 들어가서 잤다. 재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자아 정체성에 대해서 극심한 혼란을 겪던 나는 다음날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술이 깨어 일어나보니 자취방 입구, 부엌 겸 현관에 있어야할 그 아끼던 구두 한 짝이 없었다. 당시에 내 거처는 없었고 친구들의 자취방을 전전했었다. K대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기의 자취방은 K대학 맞은 편 단독주택 단지에 본채에 붙여 방 두 칸을 달아낸 방 중의 하나였다. 들어서면 연탄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있고 다시 미닫이 목문을 밀면 자취방이었다. 연탄아궁이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어야 할 구두 한 쪽이 사라진 것이다. 한 켤레가 다 없어졌다면 누가 신고 갔거니 하고 찾지 않을 것인데 애석하게도 한 짝만 없어진 것이다. 구석구석 아무리 찾아도 한 짝이 없었다. 그 때 그 상실감은 두어 개의 발가락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가슴이 아렸다. 산동 백구두의 신발을 보고 같은 스타일로 있는 돈 없는 돈을 긁어모아 맞춘 구두인데.......
친구의 슬리퍼나 운동화를 끌고 다니며 잃어버린 한 짝을 찾아다녔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사나흘 후에 찾기를 포기하고 남은 한 짝 구두를 대문 앞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한 짝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가슴이 너무 쓰려 쓰레기통에 처넣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쓰레기통에 한 짝 구두를 처넣은 일주일이 넘어서야 잃어버린 왼쪽 구두를 발견했다. 친구 자취방 지붕, 슬레이트 위에 엎어져 있는 구두를 찾은 것이다. 그게 왜 그리 올라갔는지 모르지만 발견당시의 기분은 반갑기보다 한 짝을 쓰레기통에 버릴 때보다 더 더러웠다.
그 아까운 구두의 디자인과 색깔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고 그 기억을 더듬으면 지금도 속이 쓰리다. 산동 백구두 뒤를 따라 내 패션은 나날이 달라져 갔고 나 역시 백구두 수준에 거의 도달할 즈음 고향집에 다니러 와서 옷을 벗어 바람벽에 걸어두었는데 때마침 병장이었던 형이 말년 휴가를 나왔다.
-너는 어째 옷을 벗어 벽에 걸어두었는데 옷이 저렇게 혼자 까불고 있냐?
형은 내 패션을 그렇게 지적했다.
이듬해 나는 산동 백구두와 같이 따라지 지방대학에 들어갔고 한 한기를 마치고 자아 정체성을 구걸하러 국방부로 도주했다. 당시에 삼십이 개월의 군 생활을 만기전역하고 오니 철이 들었는지 군에 가기 전에 입던 옷이나 신발은 하나도 입고 신을 수가 없었다. 그 나이에 입기엔 너무 유치하고 튀는 것뿐이었다. 제대를 하고 보니 나는 아무래도 산동 백구두의 궤적을 쫓을 인물이 아니었다. 복학을 하지 않고 군에서 주특기였던 중장비로 한 우물을 삼십 년 가까이 파며 숟가락을 쥐고 있다. 산동 백구두는 나보다 육 개월 늦게 제대를 하고도 튀는 패션을 고수하며 7080세대로 따라지 대학을 간신히 졸업하고 그 대학 출신으로는 드물게도 의류업계로는 유명기업에 들어가 디자인 일을 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남다른 감각으로 의류업계에서는 알아주는 기업의 부장 자리를 이십 년이 넘게 지키고 있다가 지금은 이 도시로 내려와 그 메이커의 대리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아무나 돈이 있다고 그 대리점을 내주지 않는 회사다. 그렇게 대리점을 내주는 것은 명예 퇴직하는 자 중에서도 회사 기여도를 참작해서 전관예우에 해당한다. 고향인 이 도시에 판매 대리점 낸다는 소리를 듣고 개업하는 날 내 이름이 큼직하게 적힌 화한을 보냈고 몇 번 들러 그 메이커의 옷을 산 적이 있다. 녀석이 오늘도 백구두를 신고 출근했는지 모르지만 구두 한 켤레를 사서 들고 오며 백구두에 대해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들을 짜깁기 해보니 참 아득한 옛날의 푸근하고 아련한 추억이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데........ 쩝!
오늘은 해가 지기도 전에 일찌감치 L을 만났다.
만난 시간이 공무원 퇴근시간이 되기 전이었다. 일을 마친 나는, 오늘은 누구랑 어디 가서 한 잔을 할까 궁리하다가 술친구 중에서 전직 공무원이었고 지금은 후배가 경영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는 수필가 L에게 전화를 넣었다. L은 사무실에서 하릴없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한 이유가 무엇이겠냐고 물었다. L은 그 답을 꿰뚫고 있었다. 만나자는 약속은 불문율로 정해졌다. 그건 우리 술친구들의 공식에 해당한다.
일찌감치 배차를 끝내고, 끝냈다기보다는 내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로 인해 배차를 대충하고 경리 겸 유일하게 내근을 하는 여동생에게 사무실 문단속을 부탁하고 술을 마실 요량으로 차를 두고 택시를 타고 형곡으로 향했다. 택시비가 겨우 오천 원 남짓 나오는 거리다.
약속장소는 L이 사는 집 부근의 자주 가던 돼지국밥집이었다. L보다 내가 먼저 도착했다. 옛날에는 단골이었으나 참 오랜만에 간 돼지국밥 집이라 수더분하게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하도 안 와서 이사를 간 줄 알았다고 하며 나를 반겼다. 나는 이사를 간 게 아니라 북한에 파견 근무를 일 년 다녀왔다고 농담으로 둘러댔다. 돼지국밥 집에서 마주 앉은 L과 술친구 중에서 문화유산 해설가를 하다가 두어 달 전에 타개한 K를 들먹이며 그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K의 몫으로 소주를 한 잔 부어놓고 돼지국밥과 머리 눌린 고기를 안주삼아 소주 두 병을 사이좋게 비웠다. 여럿이 할 때와는 달리 단둘이 앉으니 술을 마시는 행위 외에는 할 말이 궁했다.
둘이 앉아서 가장 시간이 잘 가는 화제는 정치에 대한 얘기이고 그 다음이 한 놈을 찍어 씹는 것이다. 한 놈을 안주로 씹고 맞장구치면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시게 된다. 그러나 L의 정치에 대한 얘기도 나와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고 누구를 험담하기도 좋아하지 않는다.
틀에 박힌 공무원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연금이 나오기에 해당하는 딱 이십 년이 되는 날, 서랍 속에 장전해놓은 실탄이라는 사표를 과감하게 쏘아버리고 포로가 수용소에서 나오는 기분으로 옷을 갈아입은 L이기에 나는 아무리 술자리라도 그의 눈치를 살피며 싫어하는 얘기는 피하는 편이다.
우리 술친구는 술을 마시면 이 차는 절대로 없다. 적정량을 마시면 그걸로 끝을 낸다. 대신 매일 마시는 독특한 인간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술친구란 같이하는 향토문화 연구회 회원들을 말한다. 늘 같이 마시던, 학예연구관인 J가 인근도시로 승진되어 갔기에 꿩 대신 닭으로 오늘은 L을 불러낸 것이다. 오늘 술을 마시며 나눈 얘기는 몇 달 전 저 세상으로 간 K에 대한 얘기였고 그 다음이 건강관리에 대해서 얘기했다. 내가 잇몸이 부실해서 풍치가 생겼다고 하자 자연히 민간요법에 대해서 L이 아는 건강 상식을 동원하여 거론했고 민간요법에 대해 얘기하다가 잇몸에 좋다는 야생화 이야기로 돌아갔다. L은 야생화에 대해서 남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야생화가 별 흥미가 없지만 L의 야생화 이야기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말머리를 돌리고 자리를 털었다. 의성에서 벌이는 이번 주말에 산수유 축제에 같이 가자고 했음에도 그 대답을 받아내지 못한 L은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나의 계획은 오 분 후를 예측할 수가 없다. 사흘 후를 약속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산수유축제에 가고 싶지만 그 날이 되어봐야 알 수가 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약속을 먼저 해놓으면 펑크 내기가 십상이라 가급적이면 약속을 하지 않는다. 하물며 언젠가 지리산 산행을 가다가 급한 전화를 받고 고속도로 입구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 정도로 내 일은 예측할 수가 없어 꼭 약속을 하지 않고 그냥 ‘그날 봐서’ 라는 미련을 남기는 언어로 말꼬리를 사리게 마련이다.
항상 그렇지만 L과 술을 마시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소주 세 병 비우는 시간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술을 좀 급하게 마시는 편이고 L은 술잔을 놓았다가 들었다가 하며 얘기하는 타입이다. 둘이 앉아서 세 병을 마셨다면 두 병은 내가 마신 셈이 된다. 기분 좋은 취기를 느끼며 돼지 국밥집을 나와 둘이서 L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L은 내가 타고 올 택시를 잡으려고 큰길로 눈을 던졌지만 내가 만류했다. 걸어서 술을 깨우며 가는 데까지 가다가 택시를 잡겠다고 하며 L을 들여보냈다. 시간이 남아돈다. 초저녁에 일찍 들어가 술기운에 누우면 새벽 두 시나 세 시, 어중간한 시간에 깨어 불면의 시간을 죽이기 마련이다. K가 떠나고부터 그 정도가 심해졌다. 최대한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개나리가 피어 있는 산책로를 따라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가끔 형곡에서 술을 마시면 걷는다. 술도 깨울 겸 운동 삼아 걸어서 오는데 오늘은 인도 옆 언덕위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서 지겨운 줄 모르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중앙로까지 걸었다.
중앙로 역시 지겹지 않은 거리다.
그 상가가 늘어선 거리에서는 극장에서 어떤 영화가 지금 히트를 치고 있는지 찬찬히 훑어볼 수가 있고, 사지도 않을 옷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재킷정도는 한 번 입어보고 나와 걷다가 보석가게에 들어가 귀한 것, 돈이 되는 것들의 디자인을 둘러보고 또 서점에 들어가 신간들을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한 권 사서 나오면 바로 중앙시장이다. 시장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시식하라고 진열되어 있는 젓갈도 이쑤시개로 찍어 맛을 보고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중학 동기가 운영하는 가방가게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얻어 마시곤 한다. 그게 내 평소의 동선인데 오늘은 살짝 빗나갔다. 신발 때문이었다.
중앙로에 들어서서 극장 로비로 들어가 요즘은 어떤 영화가 히트를 치고 있는지 둘러보고 나와서 걷는데 길 건너편 상가에 점포정리 수제화 세일이라고 큼직하게 방이 붙은 신발가게가 보였다. 나의 감성은 평소에도 충동적이고 외풍이 심하다. 술을 먹으면 그 정도는 더 심하다. 늘 문풍지가 흔들리는데 한잔했으니 문풍지가 아니라 문지방이 외풍에 덜컹거리며 열릴 지경이다. 그 감성의 외풍에 끌려 세일이라는 방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가 만무다. 그렇잖아도 신고 있는 신발이 너무 낡아 정장에 마땅한 신발이 없는데 잘 되었다 싶어 도로를 건너 그 신발가게로 들어섰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신발을 보면 어느 게 발이 편할까를 훑어보고 그 다음이 디자인이고 그 다음이 색깔이다. 나는 검정색보다 늘 갈색을 고집하는 편이다. 색깔까지 보고 마음에 들면 그 뒤에 가격이 살까말까를 결정한다. 신발을 고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진열된 신발을 쭉 훑어보면 한 눈에 딱 집히는 것이 있다. 마치 신발이 저 여기 앉아 있소! 하고 외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열대에 올라앉은 갈색구두가 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천천히 다가가 이 갈색구두를 손으로 들어보았다. 무게를 가늠해보고 또 신고 있던 랜드로버를 벗어 어느 것이 가벼운지 무게를 가늠했다. 신고 있던 신발과 무게가 비슷했다. 그 점은 일단 마음에 들었다. 그 다음 밑창이 야무지게 접착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그 접착부위 때문에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불과 보름 전이다. 그 신발은 밑창의 접착부위가 부실해 메기주둥이처럼 벌어지는 것이었다. 수선집에 가서 붙일까 생각도 했었다. 국내에서 샀으면 그 곳에 가서 반품하고 다른 신발을 골라오면 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신발을 반환하고 다른 신발을 들고 오던 환불을 받으려면 울란바토르까지 가야 한다. 지난달 몽고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음에 드는 신발을 그 나라의 기준으로는 꽤나 비싼 값에 샀다. ‘클릭’이라는 영국제 메이커인데 겨우 사흘을 신고 나니 오른쪽 밑창이 접착부분이 조금 벌어지는 것이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 벌어진 부분을 손으로 벌려보니 힘없이 메기주둥이처럼 아가리를 벌리는 것이다. 유명메이커가 왜 이러지? 이거 이상하다 싶어 신발 안을 꼼꼼히 살펴보니 ‘메이드 인 베트남’이라고 영어로 조그맣게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씨팔’ 이라는 폭발적인 한마디가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 신발은 그날 오후에 쓰레기 봉지로 들어갔다.
그런 낭패로 인하여 밑창부터 꼼꼼히 살폈다. 밑창은 이상무! 그 다음은 가격이 문제다. ‘왕창 세일’이라고 방을 붙였지만 가격이 만만찮다. 가격이 만만찮은 건 문제가 아니지만 신어보니 구두가 발에 헐렁할 정도로 컸다. 한 켤레 팔기 위해 눈치를 살피며 따라다니는 점원에게 좀 크다고 불평하며 조금 작은 사이즈가 없냐고 물었다. 점원은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점포정리라 이 모델은 딱 한 켤레가 남았다고, 미안해야 할 일도 아니건만 굉장히 미안하다는 투로 얘기했다. 그 미안함 심정을 그냥 보아 넘길 내가 아니다. 술기운이 남았지만 순발력 있게 구두가 좀 커고 한 켤레 밖에 없다는 핸디캡을 물고 늘어져 가격을 이만 원이나 깎았다. 이만 원이면 저녁에 돼지국밥집에서 L과 마신 술값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다.
쾌재를 부르며 신발을 쇼핑백에 넣어 들고 나오니 바로 앞이 버스 정류장이다. 택시 잡기가 곤란한 자리라 오랜만에 버스를 타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신시가지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있다면 그게 몇 번인지, 또 요금이 얼마인지 모른다.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에게 슬쩍 물었는데 학생은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그 학생도 내가 사는 동네에 산다고 했다. 그 학생이 시키는 대로 오 분 정도 기다렸다가 손에 준비해서 쥐고 있던 요금을 내고 시내버스를 타고 와서 동사무소 앞에 내렸다.
지금은 동사무소가 아니라 주민 센터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동사무소 앞을 지나오는데 불쑥 난데없이 산동 백구두가 떠오른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는 그 때 이미 의상의 미학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더 격상시켜 표현하자면 패션에 관한한 그는 심오한 경지에서 시대에 맞는 유행을 창출하고 있었던 게다.
내일 시간이 나면 장사가 얼마나 잘 되는지 그의 매장에 한 번 들러봐야겠다고 마음을 먹다가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는 산동 백구두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어김없이 내 전화번호에는 본명이 아닌 산동 백구두라고 적혀있었다. 그 전화번호를 찾자 통화버튼을 길게 꾸욱 눌렀다. 경쾌한 흘러간 팝송이 울리는 신호가 몇 번 가자 산동 백구두가 전화를 받았다.
-어라? 깜상께서 어쩐 일이신고?
산동 백구두는 내 별명부터 부르며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전화기에도 아마 내 이름이 아니라 별명이 저장되어있는 모양이다.
간단히 친근감을 돈독히 하는 인사를 하고 어디냐고 물었다. 아직까지 매장에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물었다. 그 다음은 오늘도 백구두를 신고 출근했느냐고 물을 차례다. 헌데 백구두의 대답은 엉뚱한 데 있었다.
-우리 준이 내일 군에 간다고 식구들끼리 한잔 하러 간다.
-뭐라구? 준이가 군에 간다고? 벌써?
-이 친구가....... 자네 아이만 커는 줄 아나?
-지금 어디로 가고 있냐? 내가 그리로 갈게.
-여기? 원호동 농협 뒤에 축협 직판 한우촌이라고 생겼어. 그리로 가고 있어.
-알았어. 바로 갈게.
원호동이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산동 백구두의 집도 원호동이고, 준이 녀석이 군에 간다니 그냥 있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무슨 말이든 해주고 여비라도 몇 푼 쥐어주어야 한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는 건 도리가 아니다. 도로가에 내려서서 조금 기다려 지나가는 빈 택시를 잡아타고 원호동 농협으로 가니 축협 한우촌은 금세 찾을 수가 있었다.
언제 생겼는지 육질의 차별화를 자랑한다고 쓰인 그곳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붐볐다. 내가 들어서는 걸 먼저 본 준이 녀석이, 여기요! 하며 손을 들어 보이고 인사를 꾸벅했다. 야구 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벌써 머리를 깎은 모양이다. 나는 다가가 녀석의 머리통을 한번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본 녀석은 키가 나보다 한 뼘 이상 훌쩍 커 있었다. 백구두의 아내, 백구두, 준이, 작은 녀석 석이, 식구 넷이 오붓한 자리를 연출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괜히 찾아온 불청객이 아닐까 우려가 일었다. 그러나 백구두의 아내는 굉장히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배구두를 재치고 그의 아내와 악수를 하며 안부를 묻고 권하는 자리에 앉아서 보니 석쇠 위에 육질이 좋다는 한우 갈비가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저녁은 먹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만은 술을 마시지 않을 건데.
술잔을 채우며 화제는 자연히 군대 이야기로 돌아갔다.
-준이 너 술 좀 하냐?
-예....... 조금 밖에 못해요.
-술 많이 하는 거 좋은 일이 아니다. 너희 아버지 군대에서 어떻게 했는지 아냐? 외출 나와서 술 진탕 먹고 투 스타 인 사단장 차량에.......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백구두의 손이 목덜미로 철썩 올라와 말문을 막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백구두가 감을 잡은 것이다. 그 당시 휴가 나온 백구두에게 들은 말이지만, 외출 나와서 술의 철퇴를 맞고 인사불성이 되어 번호판 대신에 별이 두 개 달린 사단장 차량 보닛에 위장의 소요물을 역류시켜놓고 악랄하기로 소문난 군기 단속반에 끌려가서 사흘 동안 뭐가 빠지도록 돌았다는 백구두의 훈장 같은 과거지사를 준이에게 들려줄 수가 없음이 애석했다.
화제를 돌려 준이에게 어디로 무슨 주특기로 가느냐고 건성으로 묻고 군대는 자고로 빨리 가야한다며 한마디하고 나는 산동백구두의 신발부터 살폈다. 이 친구만 만나면 살펴보는 오래된 내 버릇이다. 그의 신발을 봄으로서 우리 세대의 유행을 읽을 수가 있다. 근데 백구두의 복장은 정장에 백구두가 아니라 무릎이 나온 트레이닝에 운동화를 꺾어 신고 있었다. 아마도 일찌감치 집에 들어갔다가 나온 모양이다. 아무리 집 앞이지만 백구두에게는 보기 힘든 복장이다.
-오늘은 어째 백구두가 아니네? 나 오늘 신발 한 켤레 샀는데 고수께서 좀 봐 주시죠?
장난스럽게 서두를 꺼내며 백구두에게 쇼핑백에 든 신발을 꺼내 보였다. 백구두는 신발을 찬찬히 살피더니 ‘이거 수제화네’ 대수롭잖게 한마디 툭 던졌다. 이 정도면 대단한 안목이다. 그 다음에 결정적으로 뱉은 말이 ‘이거 자네한테 좀 커겠는데.......’ 다. 아차! 싶었지만 무릎을 치기에는 늦었다. 이 친구 신발 욕심이 많은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어떤 신발이든 연속 사흘을 신는 법이 없다. 그걸 뒤늦게 깨닫고 내가 말릴 사이도 없이 백구두는 새 신발을 꺼내 신어보고 있었다. ‘십 문 칠이네’ 꼭 맞다는 군대 용어다. 그러고는 나머지 한 쪽마저 신어보고 끈을 묶고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이미 내 신발이 아닐 수도 있다.
-어째 자네한테 좀 커 보이는데?
-그렇잖아도 좀 커서 어쩔까 생각 중이었어.
-얘! 석아 이 신발을 얼른 집에 갖다 놓고 아빠가 엊그제 산 신발 있지? 신발장 맨 위에 얹어놓은 갈색 구두를 좀 가져오너라.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백구두는 신고 있던 때가 꼬질꼬질 묻은 운동화를 쇼핑백에 담아, 고기에 정신이 팔린 석이에게 건네주었다. 사실이지 내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제안이고 언행이었다. 입에 든 고기를 우물거리며 석이가 운동화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가게를 나가자 이야기는 군대 이야기로 돌아갔다. 나는 준이에게 군에서는 일등도 하지 말고 꼴찌도 하지 말고 딱 중간만 하는 게 가장 편하다고 너무 들어서 진부할 수밖에 없는 지침을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군 생활은 이 년간의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자기계발의 시간이라고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고 자아 정체성을 구축하며 인성을 완성시키고 조국의 평화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가 뱉고 생각해도 옳은 말이다. 그러면서도 석이가 가져올 구두가 어떤 스타일일까 몹시 궁금하면서 백구두 안목으로 골랐으니 기대가 된다. 어쩌면 잘 된 일일지 모른다. 신고 보니 뒤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큰 신발이었는데 신을 수 있을지 또 그냥 처박아둘지 모르는 신발이었는데 주인을 제대로 만난 셈이다.
두어 번의 건배를 마치자 쇼핑백을 든 석이가 돌아왔다.
-백구두는 아니지?
-잔말 말고 이거 자네가 신어! 나한테는 좀 작아.
꺼내보니 내가 산, 지금 백구두가 신고 있는 구두와 모양새는 비슷했고 갈색에 끈으로 조이게 된 스타일이다. 나는 못이기는 척 신발을 신어보았다. 발에 꼭 맞고 발이 편안하고 가벼웠다. 백구두가 자기가 신으려고 샀다면 절대 싸구려는 아니다.
-딱 맞네!
-이렇게 바꾸면 간단해. 내가 딱 하루 신었는데 조금 작아. 발등이 조여서 아프더라구.
신발은 그렇게 바뀌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바뀐 신발을 쇼핑백에 잘 넣어 빈 의자에 모셔두고 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를 뒤집었다. 아무래도 오늘저녁 고기값은 내 몫으로 굳어지지 싶다. 그게 안되면 준이에게 여비를 듬뿍 주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우리의 물물교환에는 관심 없는 백구두의 아내가 고기를 야채로 쌈을 싸서 준이 입에 넣어주며 모자의 정을 돈독히 다지고 있었다. 백구두는 내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자! 다 같이 건배하자.
잔을 받아든 내가 뒤늦게 건배제의를 했다.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들 잔을 한 잔씩 채워서 들었다.
-그 명성이 드높은 산동 백구두의 장남 준이의 쌈빡한 군 생활을 툴러!
객기와 오지랖 넓게 부려 ‘툴러’라고 내가 선창을 하자 무슨 뜻인지 모르고 모두 ‘툴러’ 라고 큰소리로 복창하고 원 샷으로 소주를 들이켰다. ‘툴러’란 몽골어로 ‘위하여’라는 말이인데 몽골여행에서 주워들은 말이다.
먼데 사람 보기 좋게, 가까이 있는 사람 듣기 좋게, 건배를 하고 소주잔을 놓을 때 약속이나 한 듯이 백구두의 휴대폰과 내 휴대폰에 동시에 문자가 날아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백구두의 폰에서는 삘릴리, 삘릴리였고 내 폰에서는 문자왔쇼, 문자왔쇼. 라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소주를 마시고 안주를 집는 것조차 잊은 채 메시지를 확인했다.
-J부친상. G병원 장례식장. 모레 아침 발인. 많은 조문바람.
문자를 읽고 하마터면 들고 있는 소주잔을 떨어트릴 뻔 했다. 문자의 내용은 백구두의 것과 내 폰에 찍힌 것이 철자법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았다. 아마도 동기회 총무가 보낸 단체 메시지인 모양이다. J라면 고향 중학교 동기요.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절친한 고향친구고 지금 인근 농협의 지점장으로 있다. 그 옛날, 정체성 혼란기를 더듬으면 백구두와 거의 삼총사로 지낸 사이다. 그의 부친은 너무 잘 안다. 고향에서 이십 년이 넘게 우체국장을 지내고 깨끗하고 품위를 지니고 늙으신 어른인데, 그 어른은 굽은 소나무가 도래솔 되어 선산 지킨다는 비유로, 가난하게 자랐고 하는 짓으로 미루어 건달이 될 줄 알았는데 자수성가했다고 나를 추겨 세우며 엄청 총애하셨다. 두어 달 전에도 J의 고향집에 갔을 때 정정하게 붓을 들고 진한 묵향 속에서 글씨 연습을 하고 계신 J의 부친을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근데 갑자기 왜?
뜻밖의 문자를 동시에 받은 백구두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로가 얼굴을 마주보며 ‘무슨 일이지?’를 묵언으로 묻고 있었다.
-그렇게 정정한 어른인데....... 이상하네?
-이 시간에 영락이 오는 걸 보니까, 오후 늦게 돌아가신 모양이네. 이럴게 아니라 빨리 가자.
백구두가 서둘고 있었다.
-지금? 내일 일치감치 가지?
-아냐. 내일은 준이 훈련소까지 태워주고 나는 바로 서울로 대리점장들 연수 가야 돼! 지금 못가면, 모레 발인 밖에 못 봐! 지금 잠시 들여다보고 너는 내일 가고 나는 모레 새벽에 가면 되잖아?
백구두는 자기 일정에 나를 맞추고 있다. 아들 군에 보내기 전에 식구들끼리 먹고 마시던 단아한 분위기는 문자 한 통에 파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백구두가 일어서자 나도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백구두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자리를 파하면서 지갑을 뒤져 집히는 대로 준이에게 여비를 조금 주고 다시 등을 토닥여 주며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해야 했다. 녀석은 철이 들었는지 오히려 제 아버지가 딱 두 잔 마신 음주운전을 걱정했다.
백구두의 아파트는 식당 바로 뒤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다. 그 아파트로 인하여 주변에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나는 백구두를 따라가 아파트 화단에 서서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백구두를 기다리며 일정을 미리 짚어보았다. 어르신은 아마도 오늘 오후 늦은 시간에 돌아가신 모양이다. 지금쯤 빈소나 차려 놓았으려나? 내 복장을 살폈다.
콤비에 와이셔츠차림이다. 이 정도면 급한 대로 결례가 되지 않을 차림이다. 이 차림으로 오늘 저녁에 잠시 문상하고 내일은 검정색 넥타이로 정장을 해서 일찌감치 가서 빈소를 지키며 밤을 세고 모레 발인까지 보고 오는 게 도리일 것이다. 어르신이 외동이고, J가 맏이라 까딱하면 내가 장례집행위원장을 떠맡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마다하지 못한다. 사 년 전에 어머니 돌아가셨을 적에 J가 공휴일을 포함해 하루 휴가를 내고 그 경황없는 큰일을 전적으로 다 맡지 않았던가? 당연히 품앗이를 해야 한다.
백구두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파트 현관을 빠져 나오는 백구두를 보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야말로 눈알이 한 뼘 정도 튀어나왔다가 제자리로 들어갔다. 옷차림은 나의 상상을 초월해 뒤통수를 정통으로 때린 듯 정신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아래위로 하얀 양복에 백구두차림이다. 검정색 넥타이를 매지 않고 빨강 나비넥타이를 매었다면 영락없이 카바레 춤추러 가는 복장이다. 참 못 말리는 백구두다.
-야, 백구두! 복장이 너무 튀는 거 아냐? 옷을 다시 바꿔 입고 오지.......
-상관없어. 이렇게 가야 어르신께서 내가 온 줄 알아. J 어른이 여든에 가깝지? 호상인데 딱 어울리는 복장이지. 뭐!
-아무리 호상이라 하더라도 카바레는 아니쥐~
그 말을 혼자소리 뱉고 백구두이 뒤를 따랐다. 패션에 대해서 지적하면 죽으라고 고집하는 백구두의 성격이라 포기하고 한발 뒤에 서서백구두의 뒤축을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마이 프렌드 산동 백구두 네 맘대로 해라.
그렇게 뱉고 다시 보니 삼십 년이 넘은 그의 뒷모습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걸음걸이와 옷차림에서.
근데, 왜? 가슴이 푸근하지. 그 이상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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