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이 내리는 날 가고 싶었던 길을 오늘에야 걸었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고 때를 따라 푸르름은 깊어가는데 몇 년 동안 주춤했던 힐링, 호흡으로 빨아들이고
햇살 한 줌 주머니에 넣고 신나게 출발했지만 걷다가 지친 다리가 한숨을 쉴 때쯤 쉬어가기 딱 좋은 자리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보니 서로 앞다투며 시도 때도 없이 재롱잔치를 펼치는 이들이 다 아들이고 딸이다 외롭다는 느낌 따윈 전혀 모르실 명당을 차지한 *그 영감은 좋으시겠다
어쩌나 저 모양은 수호지 보호 핑계로 철조망 감옥 신세 오랜 세월 동안 물살에 떠 받치고 비바람에 쓸려 살이 찢겨지고 찢겨지고 헐벗은 앙상한 다리에 허리는 휘어질 때로 휘어진 채 온몸으로 버티는 삼백 살 넘긴 *저 노인네 누구 하나 봉양할 수 없으니 쓸쓸한 주검만이 유일한 희망일 뿐
*무덤 주인장 ** 나이테 삼백 년이 넘은 나무
화장하는 이유 / 조현경
너 왜 울려고 하니 또 거울 봤구나
너 더는 거울 보지 말라했잖아 슬퍼져 아니면 심장 망가지던가
거울만 보면 무너져 그래서 변장술 배우지
입체적인 인물화 한점 그려보자고 잘 세운 콧날을 기준점 세우고 구도 잡아봐 좌우 대칭이 알맞게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 것 같은 갈매기 눈썹에 눈두덩이에 펄이 섞인 섀도우 펼쳐 바르고 짙고 볼륨 있는 마스카라가 필요하지
입술엔 꽉 깨물고 싶은 사과색으로 하자 겨울을 이겨내는 생명 같은 빨강으로
마지막으로 볼우물 같은 꽃 연지 찍고 누구나 반할 것 같은 향기는 귓볼에 뿌려주는 감각은 팁 자 이제 이만하면 됐어 아무도 몰라볼 거야
오늘은 완벽한 변장 끝 낯설게 하기는 여기에도 있어
네일아트 / 조현경
너무나 짧기에 또 놓칠세라 미리 가을의 단풍을 그렸어요 붉은 그러데이션으로 알맞게 물들였어요
빛이 살짝살짝 비치는 느낌도 살렸어요. 첫눈이 올 때까지 절대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길어지면 잘라야 하는 단점은 있겠지만 괜찮아요 어차피 낙엽도 하나둘씩 떨어지니까요
가을 단풍만큼 그립고 보고픈 눈송이도 그렸어요 만지면 꽁꽁 얼어버릴 것 같은 얼음집도 빼지 않았죠
예전엔 거칠고 뭉뚝뭉뚝해진 손이 부끄러웠어요 이젠 어느 것 하나 부끄럽지 않아요 반짝거리는 열 손가락을 보면 오히려 자신감이 뿜뿜 솟아나지요
잘못했나 봐요 슬슬 욕심이 생겨나네요 아예 사계절을 다 그려 넣어야겠어요 내겐 아직 물들이지 않은 열 개의 발가락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