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결 론
인류 역사 이래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환경 이상의 인간의 생존과 지속을 위한 필수조건이어 왔다. 그로 인해 지표상의 자연환경과 인간 간의 관계에서 오랫동안 공유되고 축적되어 온 지리적 지혜나 고도로 구조화된 지식체계로서 지리학이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표상의 어느 한 곳도 동일한 자연환경이 가능할 수 없고 그러한 환경과 관계 맺는 인간의 적응이나 대응 방식이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음을 고려할 때 지리 또는 지리학은 당연히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공간에 대한 차이나는 지리나 지리학의 공존은 시대나 지역을 불문하고 지극히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도 서로 대비되는 두 종류의 지리(지리학) 즉 그동안 한국의 전통지리로 이해돼 온 ‘풍수’와 근대 이행기에 수용되어 현재 정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리로서 ‘Geography’가 공존하고 있다. 그것의 원인이 급속한 서구화⋅근대화에서 비롯되었든, 아니면 차이나는 공간 인식체계의 정상화⋅타자화와 관련된 자연스런 문화사적 변화이든 간에 상호 모순적으로까지 보이는 공간에 대한 인식과 지식체계가 현재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의 출발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확인되는 이들 두 지리 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드러내 보고자 구체적으로 근대 이전 오랫동안 정상적인 지리로 공유돼 왔던 풍수의 위상, 풍수와 Geography 간의 인식론적 기저, 재현의 방식 및 결과 등에서의 차이 등을 살펴보았다.
먼저 인식론적 측면에서 풍수와 Geography는 생태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라는 서로 대비되는 형이상학적 믿음이자 관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가령 풍수의 대전제인 인간-환경 간의 동기간(同氣間) 관계 설정은 Geography의 인간중심적 입장과는 구분되는 풍수의 생태중심적 특징을 잘 대변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풍수와 Geography 할 것 없이 지리의 핵심적 요소인 인간, 자연 또는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 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거나 적어도 유사한 것으로 인식(‘유사인식’)하는 풍수적 전제와 이 둘을 성격이 다른 별개의 독립적 존재로 보고(이원론적 분할) 이들 간의 인과론적, 결정론적 관계에 관심 갖는 Geography를 구분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인식론적 바탕에서 차이를 갖는 풍수와 Geography의 재현양식의 문제인데, 지리 영역에서의 주요한 재현 수단인 지도를 통해 그 차이를 살펴보았다. 풍수적 재현으로서 고지도에는 용맥의 흐름이나 명당 구성 등 풍수의 생태중심적 인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에 반해 정확성, 사실성, 객관성 등을 지도제작과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 Geography의 인간중심적 입장은 근⋅현대 지도를 마치 자연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재현물로 접근하고 있다.
이렇듯 현재 한국사회에는 풍수와 Geography라는 공간에 대한 차이나는 인식론이나 지리가 공존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현재적 상황에서의 두 지리간의 위상 차이를 떠나 각 각의 차이나는 지점들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의 실제적 운용에 있어서의 적절성 여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