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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방법 4/ 마태복음 6:9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IGElQy5Bayg&list=TLPQMTUxMjIwMjRURUUy3Fgosw&index=2
저는 오늘까지 네 번째 기도의 방법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이명희 사모님께서 기도의 방법을 이렇게 자세히 알려주는 설교는 처음이라며 속으로 ‘세상에 이런 설교는 없다.’고 하셨답니다. 제가 사모님의 말을 듣고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제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제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이 진짜 의지를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맛있는 진수성찬을 차려줘도 가족들이 먹지 않으면 절대 그들의 배는 부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유튜브로 멋진 식스팩을 가진 강사가 하는 운동에 관한 강의를 아무리 많이 봐도 여러분이 운동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몇 주일 동안 저에게 기도에 관한 설교를 하게 하시지만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제 설교는 그림의 떡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셔야 기도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기도의 방법을 나누겠습니다.
14. 듣는 기도입니다.
제가 수녀님들의 예화는 잘 안 드는데, 이 설교 내용에 가장 적합한 예화이기 때문에 사용하겠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인도에서 평생 빈민봉사를 하셨습니다. 수녀님이 미국방문을 했을 때에, CBS의 뉴스앵커 댄 래더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앵커는 수녀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수녀님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듣습니다.” 당황한 앵커는 다시 물었다. “당신이 듣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분도 들으시지요.” 최고의 기도는 듣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중요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들음을 성경으로 국한 시킵니다. 사실 이것이 옳은 것 같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경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것은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하지만 성경에 없는 것은 어떻게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사가 되거나 특별한 사역에 헌신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부르심이 성경에 있나요?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잘 알아듣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국어로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다른 언어로 말하면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수준에 맞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저속한 말을 사용하실 때도 있습니다. 청담대교 북단에 갈보리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가 전에는 머릿돌교회였습니다. 제가 머릿돌교회를 담임하시던 조정해목사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분이 젊을 때 전두환대통령을 따르며 정치인을 꿈꾸다가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실 때 “너 전두환 따라다니면서 꼬봉 노릇 할래, 아니면 내 종이 되어 세계를 다니며 말씀을 증거 할래?”라고 하시더랍니다. 하나님은 “꼬봉‘이라는 속어도 사용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 가장 피부에 와 닿게 말씀하시기 위해서였겠죠. 권영재목사님은 철도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멈춰선 열차와 열차 사이로 떨어졌는데 하나님께서 ”쭉 뻗어!“라고 하셔서 기차 밑에 납작 엎드렸는데 갑자기 기차가 출발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하나님의 음성대로 엎드리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쭉 뻗어!“라고도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이 두 분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잘 알아듣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의 영감은 완전하기 때문에 더 이상 성경에서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하나님의 음성은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은 성경을 완성하신 후에는 성경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는다.”라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말씀하셨고, 복음 시대에도 말씀하셨고, 사도시대에도 말씀하셨으며,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물론 모든 것의 기준은 성경이 맞습니다만 지금도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방학을 맞이해서 아버지가 방학동안 아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종이에 기록을 해서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 종이를 받은 아들이 거기에 기록된 대로 방학을 보내면 아빠가 참 기뻐할 것입니다. 그 종이에는 아빠의 마음과 의도가 잘 기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빠가 자기의 뜻을 종이에 기록했다고 해서 더 이상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요? 만약 아들이 아빠에게 어떤 질문을 하면 아빠는 아들에게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으면서 종이에 기록한 내용만 보게 할까요? 아니죠. 아빠는 그 종이에 자신의 모든 뜻을 자세히 기록해서 아들에게 주었지만 아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하죠. “성경은 완전영감이며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계시하셨으니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으면 성경만 봐라.” 이게 과연 맞는 말일까요? 맞지만 100% 그런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서로 자기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건 대화가 아닙니다. 일방적인 주장이죠.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의 한 영감님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꿩알을 주웠습니다. 나무도 하고 꿩알도 주운 영감님은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청년을 만났습니다. 나무를 지게에 지고 산에서 내려오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청년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세요?”, ”꿩알이다.”,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시느냐고요?”, “열 두 개다.”, “아니,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시느냐고요?”, “이놈아, 그런다고 내가 안 먹고 너 줄 것 같으냐?” 결국 귀가 어두운 영감님과 마을 청년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 할아버지의 문제는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범하기 쉬운 잘못은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하나님의 음성은 안 듣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내용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으로 들어야 하고, 설교로도 들어야 하고, 내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으로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기도가 잘못 되었다면 기도의 내용과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내용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가 있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하는데 하나님이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범하는 실수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한 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일방적으로 그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려고 해도 그는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말을 다하기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 시간이라는 기도 시간을 채우더니, 갑자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고는 벌떡 일어나서 사라져버립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고 하는데, 그는 기도의 자리를 떠나버린 것입니다. 제가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대화는 말하기가 20%이고 듣기가 80%여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도 잘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잘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만 있고 아브라함의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순종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에 갔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는 과정에서 했던 행동들은 대 부분 두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①하나님의 음성 듣기 ②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입니다. 모세가 40년 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때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문제를 해결하는 순서는 대부분 세 단계였습니다. ①하나님께 기도하기 ②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③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였습니다. 모세는 문제를 만나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방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배웁시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대부분 성령의 음성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방법에 순종하면 문제가 해결 될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를 나누었던 내용입니다. 그분은 남쪽 바닷가에 있는 한 교회로부터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7~8번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바쁘지만 그 청을 들어주기로 하고 집회를 인도하러 가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정작 부흥회를 가시니 대접이 너무나 소훌했습니다. 목사님이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한참 후에야 한 사람이 오더니 반갑게 맞이하지도 않고 목사님을 민박집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 민박집 방의 불은 어둡고 이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고, 여기 저기 담배 불 자국이 나 있었고, 베갯잇은 새까맸습니다. 방안에서는 바퀴벌레 두세 마리가 경기를 하고 있었고, 샤워기 호스는 터져 있어 물이 옆에서 막 솟아났습니다. 함께 갔던 교회 직원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안되겠습니다. 방을 옮겨야 되겠습니다.”, “아니에요. 교회에서 정해 준 곳에 있어야지요.” 그러나 목사님은 교회 직원을 보내고 나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상한 교회입니다. 그렇게 와 달라고 간청해 놓고 어찌 이런 곳에 묵게 합니까? 저를 머슴으로 아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 아버지, 그렇지요?” 그때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뭔데 방 타령하느냐? 하늘의 왕 예수님께서 마구간에 계시면서도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네가 무슨 방 타령이냐? 이 방이 마구간보다 얼마나 귀하냐?” 그때 목사님이 많이 울었습니다. 별것 아닌 것이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면서 천사 대접을 받고 좋은 호텔에서 지내다 보니 그랬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구간에도 누워 계셨는데, 자기같이 부족한 죄인이 마음이 상해서 불평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걸레인지 행주인지 모를 더러운 천으로 숟가락을 닦아서 밥상에 놓았습니다. 차라리 닦지 않고 그냥 놓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 숟가락을 국에 한 번 넣어 씻은 다음 밥을 먹는데, 목사님보다 파리들이 먼저 시식을 해서 목사님은 밥과 김치만 먹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정성을 다해 집회를 섬겼습니다. 이 목사님이 기도는 했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목사님은 불평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집회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 집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겠습니까? 듣는 기도입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큰 지혜를 받았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지혜가 어떤 지혜인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왕상 3:9입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왕권을 잘 사용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구했고 듣는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재판을 할 때는 사건을 귀로만 듣지 않고 마음으로 들어서 만민이 놀라는 판결을 했던 것입니다. 지혜는 듣는 마음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듣는 기도를 잘하는 사람이 진짜 기도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15. 묻는 기도입니다.
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제가 처음 운전했던 차는 교회 봉고차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주차 위반이나 차로 위반 등으로 자주 과태료를 냈습니다. 그 당시에는 봉고차가 갈 수 있는 차로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제가 운전을 하는데 앞 차가 너무 천천히 가면 저는 급하니까 추월을 하죠. 그러면 이상하게 경찰이 기다렸다는 듯이 제 차를 세우고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나중에 봉고차 수명이 다 되어서 폐차시키려고 하니 그동안 내지 않은 과태료가 약 50만원이나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하면서부터는 과태료를 내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차로를 바꾸면서도 물었고, 주차하면서도 물었습니다. “하나님! 차로를 바꿔도 될까요? 하나님! 이곳에 주차해도 될까요?” 저는 하나님께 묻고 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부담감 혹은 감동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고 행동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제가 과태료를 부과 받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행할 때는 과태료가 부과되었습니다.
대상 10:13,14입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을 죽이신 이유는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범죄 내용은 ①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②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굉장히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점쟁이 무당을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인지 알아야 합니다. 혹시 여기 그런 분이 계시다면 철저하게 회개하시고 다시는 그런 곳에 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③여호와께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말이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의지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묻지 않는 교만한 사울에게서 나라를 빼앗아서 하나님께 잘 묻는 다윗에게 나라를 맡기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묻지 않아서 실패한 인생을 살았고, 다윗은 하나님께 잘 물어서 하나님께 사랑 받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그에 합당한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잘 묻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이고, 진짜 지혜입니다.
묻는 기도는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하고 싶다고 가정합시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그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지를 물어야겠지요. 그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또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그 일을 누구하고 시작할까요?”, “하나님 언제 시작할까요?”, “하나님! 어디서 시작할까요?”, “하나님! 어떻게 시작할까요?”, “하나님! 그 일을 무엇을 가지고 시작할까요?”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묻는 훈련을 하십시오. 묻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묻는 기도입니다.
16. 셀프 토크입니다.
자신과의 대화를 셀프 토크라고 합니다. 시 42편과 43편에 보면 셀프토크가 나옵니다. 시 42:5을 보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학자들은 시 42편과 43편을 하나의 시로 봅니다. 시 42편 표제어는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시를 고라 자손의 시로 보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시는 다윗이 압살롬의 공격을 피하여 시온을 떠나 이리저리 피신하던 중에 지은 시인데,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고라 자손들이 시온을 그리워하며 이 시로 노래를 불렀다고 봅니다.
다윗은 셀프 토크에 능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에게 낙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하나님이 도우시므로 승리할 것이고 그 승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도 셀프 토크라고 봅니다. 사람은 보는 대로 살고 듣는 대로 삽니다. 생각은 하나님과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결국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됩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우리는 항상 자신에게 말하며 삽니다. 사람은 타인과 대화할 때 평균 1분당 150개~200개의 단어를 말하고 자신과 대화할 때는 1분에 1,300개의 단어를 말한답니다. 사람은 하루에 말을 얼마나 할까요? 보통 평균적으로 남자는 약 25,000단어, 여자는 약 30,000단어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1년 동안 말한 것을 책으로 만들면 400페이지 분량의 책 약 132권을 말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그보다 7배 정도 많으니까 남자는 하루에 약 175,000단어를 여자는 약 210,000단어를 생각하며 자신과 대화를 합니다. 1년간 셀프토크한 것을 40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낸다면 약 900권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늘 같은 색깔입니다. 내가 1년 동안 같은 사상을 가진 책 900권을 읽는다면 나는 그 책의 사상에 완전히 물들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생각대로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마귀는 가룟유다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생각으로 역사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 불신앙적인 생각, 파괴적인 생각, 악한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 믿음의 생각, 창조적인 생각, 선한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러려면 생각의 연료를 좋은 것으로 넣어야 합니다. 두 대의 자동차가 있습니다. 하나는 최악의 폐유를 주유합니다. 다른 하나는 최고급 휘발유를 주유합니다. 최악의 폐유를 먹은 자동차는 기름이 연소가 잘 안 되어 매연을 품어낼 것이고 오래가지 못해서 고장 날 것입니다. 최고급 휘발유를 넣은 자동차는 연소가 잘 되어서 매연도 없고 고장도 잘 안 날 것입니다. 생각은 우리의 언어와 행동과 습관과 인생의 연료입니다.
자신과의 대화는 주로 생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중요합니다. 렘 6:19입니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유다에 재앙을 내리셨던 이유는 유대인들이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재앙을 당하는 것은 생각의 결과였습니다.
욥 3:25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이 고난을 당한 이유는 많았는데 그 중에 하나는 셀프 토크가 잘못됐던 것입니다. 그의 생각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그 생각대로 재앙이 내렸습니다. 욥은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이 자기에게 임했고 자기가 무서워하는 것이 자기 몸에 미쳤다고 말합니다. 셀프토크에 실패한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이 하나님께 상달되기 때문입니다. 시 19:14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의 묵상을 들으십니다. 묵상은 곰곰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마음의 생각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니 셀프 토크가 기도입니다.
17. 말(언어생활)입니다.
이스라엘의 12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후에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가나안 족속들은 장대하고 자신들은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다고 말했습니다. 도저히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불신앙의 보고였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민 14:2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들으신 대로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부정적인 보고를 한 정탐꾼들과 그에 동조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말대로 40년 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말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소에 하는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말은 곧 기도입니다.
롬 10:10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받습니다. 믿음이 구원을 결정하듯이 말도 구원을 결정합니다.
인생의 방향은 말로 결정 됩니다. 약 3:4,5입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큰 배의 방향을 지극히 작은 키로 조정합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산 전체를 태웁니다. 그처럼 말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말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의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 자동차는 왼쪽으로 갑니다. 자동차의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갑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인생도 나의 말대로 갑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내 인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내 인생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갑니다. 믿음의 말을 하면 내 인생은 믿음의 방향으로 가고, 불신앙의 말을 하면 내 인생은 불신앙의 방향으로 갑니다. 축복의 말을 하면 내 인생은 축복의 방향으로 가고, 저주의 말을 하면 내 인생은 저주의 방향으로 갑니다. 하나님이 내 입의 말을 들으시고 말대로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이 기도입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말을 잘해야 합니다.
건강하고 생기 있고 기쁘게 살려면 말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 신경조직 가운데는 중추신경은 사람의 모든 말과 생각을 몸 전체에 전달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신경조직이 일을 합니다. “아! 피곤하다!”라고 말하면 신경조직은 어떻게 될까요? “주인께서 피곤하다신다. 모두 다 피곤할 준비를 하라!” 그래서 금방 다운됩니다. “아! 기분 좋다!”라고 말하면 “주인이 기분 좋단다. 모두 기분 좋은 준비를 하라!” 그래서 온 몸이 기분 좋은 상태가 됩니다. 나의 몸은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나를 도와줍니다.
정필도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이 중학교 때 축농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워낙 증세가 심하다보니 어머니께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런데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심해지도록 내버려두었느냐?”고 하면서 어머니를 몹시 나무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수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필도 학생은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놓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기독병원이나 혹은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과 연결되어 무료수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도와주시기는커녕 “너는 밤낮 기도를 많이 하면서 무슨 기도를 했느냐?”고 되레 호통을 치셨습니다. 정필도 학생은 그 야단을 맞는 순간 믿음의 오기가 생기고 화도 났습니다. ‘나같이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면 누구 기도하겠는가!’ 정필도 학생은 축농증을 위한 기도는 사흘만 더 하고 다시는 이 문제로 기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정필도 학생은 누가 묻든지 나았다고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아파 죽겠지만 기도해서 나았다고 선포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축농증 증세가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본 결과 축농증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환갑이 넘도록 한 번도 축농증이 재발한 적이 없었습니다. 믿음의 말을 하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말이 곧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의 말을 들으시고 말대로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말을 잘하기를 축복합니다. 잠 12:14입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복록에 족하게 됩니다. 볼록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טוֹב’(토브)인데 뜻은 ‘좋은, 선한, 즐거운, 선, 이익, 번영, 복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에 좋은 것, 선한 일, 즐거움, 번영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말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은 복을 당길 수도 있고 저주를 당길 수도 있습니다. 말이 기도입니다. 말을 잘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록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기도의 방법을 네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14. 듣는 기도입니다.
15. 묻는 기도입니다.
16. 셀프 토크입니다.
17.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