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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비석에 새겨진 문자 그는 쌍아가 뒤따라오고 있으면 자기가 방이와 너무 다정하게 굴 수가 없으니 따라오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숲속을 걸어갔고, 꽃향기는 더욱더 짙어졌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 꽃의 향기는 대단한 걸. 설마하니 선화(仙花)란 말인가?" 그리고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풀밭 속에서 삭삭거리 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눈앞에 누런 그림자가 번뜩이는 가운데 일곱 여덟 마리의 노란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독사들이 튀어나왔다. "어이쿠!" 소리를 지르며 그는 방이를 잡고 몸을 돌려 되돌아 나오려고 했다. 그 런데 한 걸음 내딛게 되었을 때 눈앞에 다시 칠팔 마리의 뱀이 길을 막 는데 그 뱀들은 전신이 핏빛처럼 붉었고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쉭쉭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뱀들은 모두 세모꼴 머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서운 독을 품 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방이는 위소보의 앞을 막고 칼을 휘두르며 부르짖었다. "그대는 빨리 도망쳐요. 내가 독사를 맡겠어요." 위소보는 그렇게 의리를 돌보지 않고 혼자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재빨리 비수를 뽑아들고는 말했다. "이쪽으로 갑시다." 그리고 그는 방이를 끌고 비스듬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두 걸음을 옮겼을까 말까 했을 때 목이 서늘해졌다. 한 마리 독사가 나무 위에 둥 지를 틀고 있다가 아래로 지나가는 그를 보고 내려와 덥석 그의 목을 감아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자 그는 혼비백산해서는 큰소리로 부르짖 었다. 방이는 재빨리 손으로 그 뱀을 떼어 내려고 했다. 위소보는 부르 짖었다. "안 되오." 그런데 그 뱀은 고개를 돌리더니 대뜸 방이의 손가락을 물고서 놓아 주 지 않았다. 위소보는 급히 비수를 휘둘러 뱀을 두 토막냈다. 바로 이때 였다. 두 사람의 발과 다리에 독사들이 칭칭 감아들었다. 위소보는 비수를 휘둘러 독사들을 베려고 했다. 그 순간 왼쪽 다리가 마비되었다. 어느덧 독사에게 물린 것이었다. 방이는 칼을 던지고 그를 얼싸안고는 울부짖었다. "우리 부부가 오늘 이곳에서 죽게 되었군요." 위소보는 비수의 예리함을 믿었다. 그리하여 비수를 휘둘러 한 마리의 독사를 다시 두 토막냈다. 그러나 숲속의 독사들은 점점더 많이 모여 들었다. 두 사람이 허둥지둥 숲속에서 빠져 나오게 되었을 때 몸에는 이미 독사 들에게 일곱 여덟 군데를 물린 이후였다. 위소보는 그저 머리가 어지러 웠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저 멀리 한 척의 조그만 배가 큰배 쪽 으로 저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간격이 너무 멀었다. 방이가 몇 번 불렀으나 배에 타고 있는 사공들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방이는위소보의 바짓 가랑이를 걷어올리고 몸을 구부려서는 그의 다리 에서 뱀에게 물린 곳의 독을 빨라내려고 했다. 위소보는 놀라 부르짖었 다. "안...... 안 돼오." 돌연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누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뭐하러 이곳에 왔지?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위소보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세 명의 중년 사내가 그곳에 서 있 었다. 그는 황망히 부르짖었다. "아저씨, 목숨을 살려주시오. 우리들은 뱀에게 물렸소이다." 한 명의 사내가 품속에서 약을 꺼내더니 입안에 넣고 질경질경 씹었다. 그리고는 그 씹은 약을 위소보의 뱀에 물린 상처에 발라 주었다. 위소 보는 말했다. "그대는..... 먼저 그녀를 치료해 주시오." 이때 위소보의 두 다리는 새까맣게 변해 있었으며 전혀 감각을 느낄 수 가 없었다. 방이는 약을 받아들더니 스스로 상처에다 약을 발랐다. 위소보는 말했다. "누나......"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는 털썩 하니 뒤로 벌렁 쓰러지 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때 그는 입안이 바짝 마른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가슴팍에도 격렬한 아픔을 느꼈다. 참을 수 없어 그는 신음소리를 내었 다. 그러자 그 누가 입을 열었다. "이제 됐다. 정신을 차렸구나." 위소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고 보니 한 사람이 약그릇을 들고 그 의 입가로 가져왔다. 그 약은 매우 비릿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주저 하지 않고 마셨다. 입안에 들어간 그 약은 매우 썼다. 약을 다 마신 이후 그는 입을 열었 다. "아저씨, 목숨을 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저의 누나는 아 무 일 없겠죠?" 그 사람은 말했다. "다행히 일찍 구원을 해서 별일은 없소. 우리가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 했더라면 두 사람은 목숨이 없어졌을 것이오. 그대들도 정말 대단하구 려. 어쩌다가 이 신선도까지 오게 되었소?" 위소보는 방이가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그 리고는 그저 고맙다는 인사말만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서야 자신이 침 대 위의 이부자리 속에 눕혀져 있으며 전신의 옷이 벗겨진 상태임을 깨 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다리는 아직도 마비된 감이 있었다. 그 사내의 얼굴은 매우 추악했다. 그리고 온 얼굴 가득히 흉터가 있었 다. 그러나 위소보고 볼 때 그 사내는 그야말로 목숨을 구해 준 보살처 럼 느껴졌다.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배의 사공이 이 섬에는 선과가 있어서 먹게 된다면 장생불로한다고 말 했소이다." 그 사내는 하하 하고 웃었다. "만약 정말 선과가 있다면 그들 자신은 왜 따라오지 않았을까?"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어이쿠, 그 사공들이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었구려. 배 뒤에는 또 한 명의 동료가 있었는데 혹시...... 혹시 나쁜 자의 술수에 말려든 것 이 아니오? 아저씨, 방법을 강구해서 그녀를 구해 주시구려." 그 추악한 사내는 말했다. "그 배는 사흘 전에 이미 떠났는데 어디로 가서 찾는단 말이오?" 위소보는 이해할 수 없어 망연하게 말했다. "사흘 전이라구요?" 그 추악한 사내는 말했다. "그대는 이미 정신을 잃은지 사흘 낮 사흘 밤이 되었소. 아마 그대는 모르고 계시겠지." 위소보는 쌍아를 생각했다. 그녀는 무공이 지극히 고강한 편이나 넓고 넓은 바다에서 더군다나 홀몸으로 뭇악당들의 독수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그만 크게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 추악한 사내는 위로의 말을 하였다. "지금은 조급하게 서둘러도 소용이 없소. 그대는 조섭이나 잘하도록 하 시오. 이 섬의 독사들은 대단하오. 적어도 이레 동안 약을 먹어야 독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이외다." 그는 위소보의 성명을 물었으며 자기의 성을 반(潘)이라 했다. 사흘째 되는 날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서는 벽을 짚고 천천히 걸음을 옮 길 수 있게 되었다. 그 반가라는 추악한 사내는 그를 데리고 방이를 보 러 갔다. 원래 그녀는 따로 부녀자들이 돌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초췌해져 있었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만나게 되자 기뻐하는 한편 괴로워 하기도 했다. 따라서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후 두 사람은 낮에는 한방에서 지냈다. 독사의 무서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었을 때 하나같이 머리카락과 솜털까지 곤두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엿새째 되는 날 그 반가가 말했다. "우리 섬의 의원인 육(陸)선생께서 바다로 나가셨다가 돌아오셨소이다. 나는 이미 위형제를 돌봐달라고 그에게 부탁했소이다." 위소보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얼마후 한 사람이 들어왔는데 그 표정 은 매우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위소보가 독사에게 물린 경과를 물어 본 후 말했다.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몸에 웅황사약(雄黃蛇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독사를 몸에 놔 두어도 그 독사는 즉시 도망을 칠 뿐 감히 사람 을 못한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원래 그랬었군요. 그렇기 때문에 반형 등은 두려워하지 않았군요." 육선생은 그의 상처를 살펴보더니 여섯 알의 알약을 꺼내서 말했다. "세 알은 먹고 세 알은 그대의 동료에게 주도록 하시오. 매일 하나씩 복용해야 하오." 위소보는 매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이 백 냥의 은표를 꺼냈다. "약소하나마 수고비입니다. 선생께서는 웃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육선생은 깜짝 놀라더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토록 많이 주실 것 없소이다. 공자가 나에게 두 냥의 은자만 주면 매우 고맙게 여길 것이외다." 그러나 위소보는 한사코 받으라고 하였다. 육선생은 부득이 그 돈을 받 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공자께서는 굳이 내리시는 것을 마다한다면 공손한 태도가 되지 못하 겠지요. 공자께서는 이곳에서 지내느라고 답답했을 것이외다. 오늘밤 공자는 그 여자 분과 함께 우리집으로 가서 술을 한잔하시는 것이 어떻 겠소이까?"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그러겠다고 선뜻 대답했다. 해질 무렵 육선생은 뒤채의 대나무로 엮어 만든 교자를 위소보와 방이 에게 보내왔다. 이 대나무 교자라고 하는 것은 기실 대나무 의자 밑에 다가 두개의 기다란 대나무를 댄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앞뒤에서 사람 이 떠메는 것이었다.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구는 매우 간단해서 진짜 교자는 찾아볼 수 가 없었다. 두 채의 대나무 교자는 산 개울을 따라 나아갔다. 계곡의 물소리가 졸 졸거렸고 초목은 싱그러워 사람의 마음을 넓게 하고 또 정신을 말게 했 다. 그러나 위소보와 방이는 커다란 나무가 기다란 풀을 보기만 해도 전율을 느꼈다. 혹시나 독사가 기어 나오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교자가 칠팔 마장 가게 되었다. 그리고 세 칸의 대나무집 앞에서 멈추었다. 그 집의 벽이 나 천장 등은 하나같이 사발 만한 굵기의 대나무로 엮어 만든 것이었 다. 보기에 매우 견고했다. 강남이나 북경 땅에서 이와 같은 모양을 한 대나무 집은 일찌기 본 적 이 없었다. 육선생은 마중을 나왔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안으로 모셨다. 대청에 이르게 되었을 때 삼십여 세 되는 부인이 나와 손님을 맞았다. 바로 육 선생의 처였다. 그 부인은 방이의 손을 잡고 매우 다정하게 굴었다. 육선생은 위소보를 서재로 데려가 앉도록 했다. 서재의 대나무로 엮은 서가에는 적잖은 책 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면의 벽에는 서화폭이 잔뜩 걸려 있었 다. 아마도 육의원은 매우 의젓한 선비인 것 같았다. 육선생은 입을 열었다. "불초는 이 외딴 섬에서 살고있는 만큼 견문이 매우 좁습니다. 위공자 는 중원 땅에서 오셨고 또한 귀한 집 자제이니 눈이 높아 작품을 감상 함에 있어서 매우 탁월한 식견을 지녔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대가 보 기에 이 몇 폭의 서화는 전문가의 눈에 들만합니까?" 이 몇 마디 점잖은 말씨는 위소보로서 겨우 알 듯 말 듯한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벽의 서화폭을 손가락질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보니 한 폭의 그림은 산수화였다. 그리고 다른 한 장의 그림에 는 백학과 한 마리의 거북이가 그러져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입을 열 었다. "이 늙은 거북이는 꽤 재미있구려." 육선생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한폭의 두루말이를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위공자, 그대가 보기에 이 비문에서 탁본한 글은 어떻소이까?" 위소보는 그 글씨가 꾸불꾸불한 것이 마치 부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요, 매우 좋습니다." 육선생은 또 다른 한 폭의 글시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한폭은 진랑야태각석(秦瑯야台刻石)인데 위공자는 어떻다고 생각하 십니까?" 위소보는 그저 좋다고만 하면 약간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가 로저었다. "이 한폭은 별로 좋지가 않군요." 육선생은 매우 엄숙해져서는 말했다. "위공자의 가르침을 받고 싶소이다. 이 한폭의 글자의 약점이나 잘못된 필획이 어디에 있는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잘못된 필획은 많지만 잘된 필획은 무척 적소이다." 그는 잘못된 필획이 있으면 자연 잘된 필 획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그 와 같이 대답했다. 육선생은 갑자기 잘된 필획이라는 말을 듣자 약간 어리둥절하더니 고개 를 끄덕였다. "정말 고명하십니다. 고명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서쪽에 있는 한 폭의 초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한 폭의 초서를 위공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소보는 고개를 돌려 잠시 바라본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몇 자의 글씨는 먹이 말랐는데도 먹을 짓지 않았구려. 음, 저 가느 다란 획을 질질 끄는 것은 깨끗이 보이지 않습니다." 육선생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크게 변했다. 초서는 먹을 한번 찍어 쭉 쭉 내리쓰며 획을 따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먹물이 잔뜩 묻은 데와 제 대로 먹물이 묻지 않은 데가 있어 상호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그리고 먹물이 짙은 데와 옅은 데가 있는 것도 하나의 음양조화를 꾀한 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이 서법에는 여러 가지의 따지는 법칙이 많았는데 그러한 법칙을 위소보는 알 턱이 없었다. 따라서 위소보가 몇 마디의 말을 하게 되자 그만 밑천을 드러내고 만 셈이 되었다. 육선생은 다시 한 폭의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한 폭은 모두 다 갑골고문(甲骨古文)이외다. 이 형제는 학문이 얕 아서 한자도 모르니 공자께서 지도해 주시죠?" 위소보는 종이의 글자들이 하나같이 올챙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마치 오대산 금수봉 보제사에서 본 비석에 새겨진 글자와 같다는 생각 이 들었다. 따라서 그는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마가 있어서 입을 열었 다. "이 몇 자는 내가 알고 있소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글귀이지요 '신룡 교의 홍교주는 만년이 가더라고 늙지 않으며 선복(仙福)을 누리리라. 신통력이 광대하며 수명은 하늘같이 높게 되리라.'" 육선생은 얼굴 가득히 기쁜 빛을 띠우고 입을 열었다. "천지신명께 감사드립니다. 그대는 과연 이 글자를 알고 있었구려." 그가 무척 기뻐서 말하는 소리까지 떨리는 것을 보고 위소보는 대뜸 의 심이 들었다. (내가 이 몇 자를 알고 있는데 그는 어째서 이토록 기뻐할까? 혹시 그 역시 신룡교의 사람이 아닐까? 아, 야단났다. 뱀..... 뱀 영사(靈 蛇)..... 그렇다면 이곳은 신룡도(神龍島)가 아닐까?) 이와 같은 생각이 들자 그는 불쑥 물었다. "반두타는 어디에 있소?" 육선생은 깜짝 놀라 몇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대는..... 그대는..... 이미 알고 있었소?"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육선생은 점잖 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대가 모두 알고 있었다며 오히려 더 잘되었소." 그리고 그는 책상가로 가서 먹을 갈고 종이를 펴더니 말했다. "아무쪼록 그대는 이 올챙이 같은 고문을 한 자 한 자 옮겨 써 주시오. 어느 글자가 홍 자이고 어느 글자가 교 자인지 말이외다." 그리고 붓을 들고 먹을 듬뿍 찍더니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위소보가 붓을 들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의 목숨을 빼앗는 일만큼 난처한 노릇이 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육선생의 안색이 일그러 져 있는 것을 보고 감히 그 뜻을 어길 수 없어 체면불구하고 책상가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쳐 붓을 쥐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손이 주먹을 쥐는 꼴이 되었다. 그가 붓을 들게 되었을 때 마치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듯 듯했는데 그래도 그 모습은 어느 정도 글쓰는 사람이 붓을 잡는 법 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주먹을 쥐게 되자 마치 돼지를 잡을 때 칼을 잡는 법이나 망치를 들고 못을 박을 때의 꼴이 다를 바가 없었다. 천하에 이와 같이 붓을 잡는 꼴은 없는 것이다. 육선생은 더욱더 노기를 얼굴에 떠올렸다. 그러나 억지로 화를 참는 듯 한 어조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먼저 자기의 이름부터 써 보시오." 위소보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붓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먹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무 글자도 모르오. 개방귀 같은 글자도 쓸 줄 모른단 말이오. 뭐가 홍교주의 수명이 하늘처럼 높더란 말이오. 나는 그저 나오는 대로 씨부려서 그 고약한 두타를 속였던 것이오. 그대가 나에게 글을 쓰라고 한다면 내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오. 이제 그대는 나를 살리든 죽이든 마음대로 하시오. 내가 눈살 한번 찌푸린다 면 호걸이 아니외다." 육선생은 냉랭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아무 글자도 모르오?" 위소보는 말했다. "모르오. 그대의 거북이의 거 자도 모르고 그대는 후레자식이라는 후자 도 모르오." 그는 들통이 나게 되자 그만 수치가 분노로 변하게 되었다. 어쨌든 간 에 뱀의 섬에 끌려온 이 마당에 죽어 살아 남지 못하리라는 생각과, 이 렇게 된 마당에 빌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먼저 입으로 득을 보 려고 하였다. 육선생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붓을 들고 종이에다가 올챙이 문자를 쓰 고 물었다. "이게 무슨 글자요?" 위소보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만두시오. 나는 모른다고 했으면 모르는 것이오. 설마 거짓말일 턱 이 있겠소?" 육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원래 반두타가 그대의 속임수에 놀아났군. 그러나 이 일은 이미 교주에게 알려졌단 말이야. 네 이 좀도적 같은 녀석!" 그러더니 벌떡 몸을 일으켜서 위소보의 목을 두 손으로 잡더니 점점 조 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를 갈면서 말했다. "너는 우리로 하여금 교주님을 속이는 죄를 짓게 했다. 이제 모든 사람 들은 너 때문에 죽어 뼈를 묻힐 곳이 없단 말이다. 모두 함께 죽는 것 이 그 무궁무진한 혹형을 당하는 것보다 깨끗한 것이다." 위소보는 그가 목을 조르게 됨에 따라 숨을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온 얼굴은 시뻘겋다 못해 새파래졌으며 혀를 내밀었다. 육선생은 자기가 다시 손에 조금 더 힘을 쓰게 된다면 이 어린애가 죽 어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일이 매우 중대하다 는 사실을 상기한 그는 속으로 놀라 손을 떼어 내고는 두 손으로 밀어 버렸다. 그 바람에 위소보는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육선생은 그를 매섭게 한번 노려보더니 화가 난 태도로 방을 나가고 말 았다. 한참 후에야 위소보는 놀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몸을 일으킬 수 있 었다. 후레자식이니 좀도적이니 하는 욕을 수백 번이나 했다. 그러나 이 독사도에서는 도망갈 데도 없었다. 만약 수풀이나 숲속으로 몸을 숨 겼다가는 더욱더 빨리 죽음을 당하게 될 뿐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한 그는 문가로 가서 문을 밀어 보았다. 그 대나 무 문은 바깥 쪽에서 걸어잠근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창밖을 바 라보았다. 창 아래쪽은 깊은 골짜기라 도망칠래야 도망칠 수 없는 형편 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 있는 서화폭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까짓 것들이 뭐가 좋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는 땅에 떨어진 붓을 집어들고 먹을 듬뿍 묻혀서는 한 폭의 서화폭에다가 큰 거북이니 작은 거북이니 수없이 그려댔다. 수십 마리의 거북이를 그려대자 그것도 피곤해졌다. 그는 붓을 땅바닥 에 내던지고 의자에 웅크리고 앉았다가 잠시 후에는 그만 잠이 들고 말 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날은 이미 캄캄해져 있었는데 그 누구도 달 려오는 기척이 없었다. 그리고 뱃속에서는 쪼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육가라는 늙은 자라가 나를 굶어 죽게 할 모양이군.) 잠시 후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문틈으로 등불 빛이 새어 들어왔다. 곧이어 대나무 문이 열리면서 육선생이 촛불을 들고 방안으 로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위소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위소보는 그 의 얼굴에 희노애락의 표정이 없는 것을 보고 속으로 더럭 겁이 나는 것을 느꼈다. 육선생은 촛대를 탁자 위에 놓더니 흘낏 하니 벽에 걸려 있는 서화폭들 에 모조리 다 꼴같지 않게 먹칠을 해 놓은 사실을 발견하고 그만 미친 듯한 노기가 끓어올라 부르짖었다. "너는...... 너는......" 그리고 손을 쳐들고 내려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손은 허공에서 주춤했 으며 차마 내려치지를 못하는 모양이었다. 끝내 그는 노기를 참고 말했다. "너는...... 너는......" 그 소리는 목에 걸려서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위소보는 웃었다. "어떠시오? 내가 그린 것이 그럴싸하오?" 육선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맥없이 주저앉더니 말했다. "좋아, 잘 그렸어." 그가 때리려다가 그만두고 오히려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는 말에 위소 보는 천만뜻밖이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 표정은 처연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마음속을 지극히 아파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와 같은 표정을 대하자 그는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어 입을 열었다. "육선생..... 미.....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의 그림을 마구 못쓰게 망 가뜨렸군요." 육선생은 고개를 가로저음 입을 열었다. "괜..... 괜찮소." 그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얼싸안더니 탁자 위에 엎드려서는 한참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대가 배가 고플 것이니 밥을 먹은 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기로 합시 다." 어느덧 객당의 탁자위에는 네 가지의 찬과 국그릇이 놓여 있었다. 닭고 기도 있었고 물고기도 있는 것이 매우 풍성한 편이었다. 곧이어 방이가 육부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다. 네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였다. 위 소보는 속으로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혹시 내가 수십 마리의 자라를 그렸던 것이 좋았기 때문에 육선생은 기뻐서 나에게 한턱 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사정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몇 번이나 입을 열고 물어보려고 했으나 육선생 의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밝아졌다 하는 것을 보고 혹시 그이 비위를 거슬릴까봐 두려웠고 더군다나 밥을 배불리 먹지도 못했는데 밥그릇을 빼앗길까봐 물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즉시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그저 밥만 배불리 먹어 치웠다. 식사가 끝나자 육선생은 그를 데리고 다시 서재로 들어갔다. 육선생은 땅바닥에서 붓을 들더니 종이에다가 위소보라는 세 글자를 써 서는 말했다. "이것이 그대의 이름이오. 그대는 쓸 줄 아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그는 나를 알아 보지만 나는 그를 알아볼 수 없소이다. 그런데 어떻게 쓴단 말이오?" 육 선생은 음 하더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물끄러미 생각에 잠겨 있더니 외손에 촛대를 들고 그 올챙이 글씨가 있는 곳 앞으로 다 가섰다. 그리고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글자 하나를 가리키면 서 입으로 중얼중얼 무슨 소리를 뇌까렸다. 그러더니 책상 곁으로 다가와 한 장의 백지를 꺼내서 펼치고는 글을 쓰 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올챙이 모양의 갑골문자의 자수를 헤 아리더니 다시 자기가 종이에 쓴 글자수를 헤아렸다. 그리고 다시 종이 위에 글자를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쳤다. 그런 연 후에 고개를 돌리고 다시 그 올챙이 모양의 글자를 보며 연신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저 세글자가 같으니 이 두글자도 마찬가지어야만이 전혀 빈틈이 없게 되고 사리에 맞는 일이아니겠는가." 한참동안 생각하고 그는 다시 종이 위에 글씨를 이리저리 고치더니 한 참 후에야 기쁜 듯 말했다. "됐다." 위소보는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리고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배불 리 밥을 먹었다 싶어서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때 육선생은 다시 한장의 백지를 펴놓고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는 글씨를 느리게 썼다. 다 쓴 후에 고개를 흔들거리며 나직 이 읽었다. 위소보는 신룡교니 홍교주니 수명이 하늘처럼 높다느니 등 등의 어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최후에는 제일권이 어느 곳 어느 산에 있고 제이권이 어느 곳 어느 산에 있다는 글을 읽었다. 이제서야 그는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말은 자신이 보제 사에서 반두타에게 나오는 대로 지껄였던 말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반 두타는 그 말을 정말로 믿고 돌아와 크게 소문을 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날 반두타는 나에게 한사코 신룡교로 와서는 홍교주를 만나자고 했 는데 나는 막무가내로 싫다고 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공교롭게도 우리 가 탄 배가 다시 이곳으로 들이닥치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들통이 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홍교주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야. 그렇게 된다 면 그는 크게 화를 낼 것이고 어쩌면 방이 누나와 나를 뱀구덩이에 던 져 수천 수만 마리의 독사들이 뼈도 남지 않도록 먹어 치울지도 모른 다.) 억수로 많은 독사들이 몸을 칭칭 감는 생각을 하자 소름이 쪽쪽 끼치는 것 같았다. 육선생은 몸을 돌리더니 얼굴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위공자, 그대가 비석의 갑골문자를 안다는 것은 실로 기쁘고도 축하할 일이외다. 또한 본교 홍교주의 하늘에 닿을 만큼 큰 복이로소이다. 그 렇기 때문에 하늘은 그대와 같은 신동을 내려 갑골문을 이해할 수 있게 했소이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조롱하지 마시오. 내가 무슨 올챙이 글을 알고 개구리 글을 안단 말이 오. 나는 올챙이 글은 커녕 두꺼비의 글자도 모르오. 내가 막무가내로 거짓말을 한 것은 그 비쩍 마른 못된 두타를 속이자는 것이었소.) 육선생은 웃었다. "위공자, 너무 겸손해 할 것 없소이다. 이것은 공자가 암송한 비석에 새겨져 있던 글이외다. 내가 한번 베껴 쓴 것이니 혹시 잘못되지 않았 는지 공자께서 가르침을 주시오." 그리고 그는 읽기 시작했다. "대당나라 정관이년 시월 갑자일(十月甲子日) 특별히 위국공(衛國公) 이정(李靖), 우영군대장군(右領軍大將軍) 숙국공(宿國公) 정지절(程知 節), 광록대부(光祿大夫) 병부상서(兵部尙書) 조국공(曹國公) 이훈(李 勛), 서주도독(徐州都督) 호국공(胡國公) 진숙보(秦叔寶)로 하여금 오 대산 금수봉에서 회합을 가지게 한 바 이때 동녘 하늘에 눈부신 붉은 빛이 빛나더니 말대만한 금빛 글자가 구름 가에 드러나더라. 그 글은 다음과 같더라. '천 년 이잔 뒤 대청나라가 세워지리라. 동쪽에 섬이 있어 이름은 신룡이라 하더라. 교주 홍모는 천은을 받은 몸이더라. 위 엄과 영기를 함께 받으니 위세와 능력이 놀랍더라. 요마를 항복 받으니 그의 존재는 떠오르는 해와 같더라. 아래 사람들이 보좌하여 옛것을 물 리치고 새것을 채용하더라. 줄기 줄기 뻗은 상서로운 기운은 온 누리에 뻗치더라. 신복을 영원히 누릴 것이며 온 세상이 통틀어 존경할 것이니 라. 수명은 하늘처럼 높다랗고 문무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인자하고 거 룩하더라.' 곧 이어 하늘가에는 푸른 글자가 다시 나타났는데 그 글은 다음과 같더라. '하늘은 홍모에게 사십이장경 여덟 권을 내리노라. 제 일권은 하남성 복우산(伏牛山) 탕마사(蕩魔寺)에 있으며 제이권은 산서 성 필가산(筆架山) 천심암(天心庵)에 잇으며 제삼권은 사천성 청성산 (靑城山) 능소관(凌소觀)에 있으며 제사권은 하남성 숭산 소림사에 있 으며 제오권은 호북성 무당산 진무관(眞武觀)에 있으며 제육권은 사천 주변의 공동산(공동山) 가엽사(迦葉寺)에 있으며 제칠권은 운남 곤명의 평서왕부에 있더라.' 이정 등은 삼가 하늘이 내린 글을 베껴서 비석에 조각하여 후세 사람에게 전하노라." 육선생은 높고 낮게 억양을 길게 빼어 가며 다 일고 나더니 물었다. "잘못 읽지 않았소?" 위소보는 말했다. "이것은 당나라의 비석인데 어떻게 후세에 평서와 오삼계가 있다는 것 을 안단 말이오?" 육선생은 말했다. "상제("上帝)께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와 모르는 것이 없소이다. 후세에 홍교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자연 오삼계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 아니겠소?" 위소보는 속으로 우스운 것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소."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당신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군.) 육선생은 말했다. "이 비석의 글자를 한 자라도 잘못 읽어서는 안 되오. 위공자가 천부적 인 총명함을 지니고 있지만 내가 볼 때에 그것은 성령(聖靈)이 감동하 여 이 올챙이 글자를 알도록 해주었다고 생각하오. 이후 창졸 지간에 잘못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니 위공자가 이 한편의 비 석에 새겨진 글을 외워 두는 것이 제일 좋겠소. 그리하여 홍교주께서 부르실 적에 물 흐르듯 외운다면 홍교주는 기뻐서 자연 크게 상을 내릴 것이 아니겠소." 위소보는 두 눈을 번뜩거리는 그 순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 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래 그랬었구려. 원래 그랬었구려." 반두타와 육선생은 홍교주에게 어떤 어린애가 비석의 문자를 알아 보았 다고 말씀드렸던 것이 분명했다. 이에 홍교주는 반드시 불러서 물어 보 겠노라고 한 모양이었다. 헌데 알고 보니 모든 것이 가짜가 아닌가. 육 선생은 혹시 교주가 탓할까봐 거짓으로 비석의 글을 만들어서는 교주를 속이려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육선생이 말했다. "내가 한마디를 읽을 터이니 위공자는 따라서 읽도록 하시오. 어쨌든 간에 한자도 틀리지 않도록 해야 하오이다. '대당나라 정관이년 시월 갑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이상 위소보가 읽지 않으려 해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함께 공모를 해서 홍교주를 우롱하는 일을 퍽이나 재 미있을 것 같아 따라 읽었다. 그는 본래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 갔다. 수백 자가 되는 말들을 한번 들은 이후 다시 옮겨 외는데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려면 그야말로 그의 목숨을 빼앗는 것과 같았다. 이짧 은 글은 수백 자에 불과했으나 모든 귀절들이 위소보에게는 난잡하기 그지 없었고 그 뜻을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육선생이 한번 또 한번 읽어 내려가는 것에 따라 읽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육선생은 조금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가르쳐 주었다. 결국 삼십여 번을 읽은 후 에야 한 자도 틀림없이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이날 밤 그는 육선생의 집에서 자게 되었다. 이튿날 그는 다시 외웠다. 육선생은 그가 모조리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그러더 니 종이와 붓을 꺼내서는 한 자 한 자 올챙이 글자를 썼다. 그리고는 그에게 알아보도록 가르쳤다. 어느 것이 당 자이고 어느 것이 정관할 때의 정 자인지를 가르치는 것 이었다. 이렇게 되자 위소보로서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이 올챙이 글은 비뚤비뚤한 것이 그 모양이 비슷해서 하나 하나 분별하고 또한 써 낸다는 것은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힘 들 었으며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더군다나 그는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는 성미인데 어찌 마음을 안정시키고 올챙이 글을 배울 수 있겠는 가. 위소보가 울상을 지었기 때문에 육선생 역시 불안스럽게 여겼다. 육선 생은 이때 그 비석의 문장이 또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 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반두타가 탁본해 온 자수를 헤아려 보고는 달 리 한편의 문장을 ㅁ나들어 억지로 끼어 맞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저 자수가 같도록 만들어 이 글이 홍교주의 환심을 샀으면 하고 바랬 을 뿐이지 원래의 비석에 새겨져 있는 그의 내용이 무엇인지 따질 겨를 이 없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억지ㅗ 맞추고 보니 틀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 다. 대당나라 정관 이년 할 때 이 자는 바로 여섯 번째에 놓여 있었으 나 비석의 원래 새겨져 있는 여섯 번째 글자의 획은 열 여덟 획이나 되 었다. 아무리 따져 본다고 하더라도 열 여덟획이나 되는 글을 이자로 읽는 다는 것은 우격다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의 글자 정관(貞觀)할 때 관자에 해당하는 글은 삼 획 밖에 되지 않아 그야말로 억지로 꿰어맞춘 것이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 러나 동쪽을 살피면 서쪽이 무너지고 서쪽을 살피면 동쪽이 무너지는 꼴이었다. 육선생이 아무리 재주가 좋다고 하더라도 창졸간에 전혀 빈 틈없는 문장은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홍교주는 총명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에 이 가짜 문장으로는 심중팔구 홍교주의 눈을 속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큰 화가 미치게 되었으 니 부득불 억지로 끼어 맞추어 잠시라도 얼렁뚱땅 넘기자는 생각이었 다. 따라서 이후 일어날 화근은 두고 보는 수밖에 없는 형평이었다. 이 날 육선생은 위소보에게 글자를 가르쳤는데 그 진전은 매우 느렸다. 정오 무렵이 되어을 때 겨우 네 개의 올챙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올채이 글은 본래 이상야릇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위소보가 그 리 듯 쓴글은 보기 흉칙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그렇게 눈에 거슬리는 편 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정자로 쓴다면 한번도 글을 써 보지 못한 어린애가 쓴 것 이라 그 누가 보더라도 진짜와 가짜가 즉시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오후에 석자를 배우고 저녁무렵에는 두자를 익혔다. 그러니까 모두 아홉자를 익힌 것이다. 위소보는 끊임없이 떠들면서 몇 번이나 붓을 던지며 배우지 않겠다고 했다. 육선생은 위협을 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다. 그리고 최후로는 방이로 하여금 옆에 앉아 지켜보도록 하자 위소보는 그제서야 겨우 참 을성있게 배워 갔다. 육선생은 한편으로는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 다. 홍교주가 수시로 사람을 보내 부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다. 만약 한편의 문장을 완전하게 배우기 전에 교주에게 불려가다면 위 소보의 머리가 달아나는 것은 뻔할 뿐만 아니라 자기와 자기의 전가족 도 함께 죽음을 당해야 할 판국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조금도 초조하게 서두를 수가 없었다. 위소보가 좀더 빨리 배웠으면 하고 바라는 만큼 위소보는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더디 었다. 뇌리에 그저 집어넣다시피한 그 많은 올챙이 글이 정말 그 뇌리속에서 마구 몸부림이라도 치고 있는 양 정말 제대로 구분을 하지 못했다. 며칠을 배운 결과 위소보가 독사에게 물린 상처는 모두 다 낫게 되었으 나 겨우 알수 있게 된 올챙이 글은 이삼십 자에 불과했다. 그것도 확실 하지 못해 열 자 가운데 종종 일곱 여덟 글자를 틀리는 것이었다. 육선생이 정히 번뇌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때 홀연 문밖에서 반두타의 소리가 들려왔다. "육선생, 교주께서 위공자를 부르십니다." 육선생은 그만 안색이 흙빛이 되어서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 바람에 먹물을 잔뜩 묻혔던 붓이 그의 앞섭자락에 떨어지고 말았다. 곧이어 키가 무척 크고 지극히 마른 사람이 서재로 걸어들어왔다. 바로 반두타였다. 위소보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반존자, 어째서 오늘에야 나를 보러 오는 것이오? 나느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되었소." 반두타는 육선생의 안색을 보자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위소보가 하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나는 마땅히 저 녀석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려야 하는데 그만 욕심에 눈이 어두워 큰 공을 세워 자기 자신을 지 키려고 했던 것인데 오히려 더욱더 빨리 죽게 되었구려." 육선생은 냉소했다. "그대는 기껏해야 혼자 몸이지만 이 육가는 여덟 명의 식구가 모조리 그대를 따라 죽게 되었소." 반두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엇다. "모두의 운명이 그러할지니 이것이야말로 액운이라 할 수밖에 더 있겠 소? 설사 이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교주는 우리들로 하여금 며칠 더 살 도록 해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오." 육선생은 위소보를 한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들과 같은 자들이 우리가 늙어서 마땅히 죽을 때가 왔다고 하니 또 별수가 있겠소?" 그 어조에는 불평과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반두타는 한숨을 내쉬며 말 했다. "나 또한 그의 나이가 어린 것만 믿고 교주의 환심을 사고자 ㅎ뒤 돌볼 겨를도 없이 보고를 했구려. 아!" 육선생은 위소보를 한번 노려보더니 말했다. "나이가 어려도 너무나 어리단 말이오." 반두타는 말했다. "육형,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이상 그대와 나는 함께 죽거나 살도록 합시다. 사내 대장부가 죽으면 죽었지 뭐가 또 두려울 게 있겠소?" 위소보는 손뼉을 쳤다. "반존자의 그 말이 옳소이다. 정말 영웅호걸다운 말이오. 사실 두려울 게 뭐요. 나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대들은 더욱더 두려워할 필요가 없 소이다." "무지한 녀석 같으니, 정말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터운지 모르는군. 그대가 두려움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때가 늦을껄." 그리고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서 있더니 말했다. "반존자는 잠깐만 기다리시오. 나는 안사람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오리다." 잠시 후 육선생은 다시 서재로 되돌아왔다. 얼굴에는 눈물을 흘린 자욱 이 있었다. 반두타는 말했다. "육형, 그대의 승천환(升天丸) 알약을 나에게도 한알 주시구려." 육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속에서 자기로 된 병을 꺼냈다. 그리고 병마개를 뽑더니 한알의 붉은 알약을 꺼내 그에게 주며 말했다. "이 알약을 입에 넘기기만 하면 숨이 끊어지게 되오. 그러니 최후의 고비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반두타는 받아서 쓰디쓰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반두타는 자기 목숨을 가볍게 보지는 않소. 이토록 빨리 승천 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이다." 위소보는 오대산 위에서 반두타가 소림사 십팔나한을 상대로 싸우던 것 을 본적이있었다. 그대는 위풍이 늠름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그가 아때 독약을 얻는 것을 보고는 홍교주가 죄를 물으려고 할 때 자살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때 서야 위소보는 사태가 심각하다 는 것을 느끼고 불현듯 두려움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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