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51) 미녀 초선(貂蟬) <상편>
그로부터 수일 후, 왕윤은 금관(金冠) 하나를 만들어, 은밀히 여포에게 보냈다.
평소에 돈과 뇌물을 좋아하는 여포는 크게 기뻐하며, 곧 적토마를 비껴 타고 왕윤의 집에 인사를 왔다.
"참으로 귀하고 값나가는 물건을 보내 주셔서 고맙기 한량없소."
왕윤은 예를 갖춰 대답한다.
"지금 천하에 영웅이라고는 장군 한 분이 계실 뿐이니, 이 왕윤은 장군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그 선물을 보낸 것이오."
여포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자,왕윤은 곧 주안상을 내오고, 초선이더러 나와 술을 따르게 하였다.
"이 낭자가 대체 누구시오?"
여포는 초선을 보자 정신이 황홀해하며 묻는다.
"내가 기르는 딸이나 다름없는 아이요. ...애, 초선아, 인사드려라. 이분이 바로 당대의 영웅 여포 장군이시다!"
초선은 얼굴을 붉히며 꽃다운 자태로 절을 올리고 나서,
"한잔 드사이다!"
하고 술을 권했다.
여포는 오로지 황홀할 뿐이었다.
"허어...., 대감 댁에 이런 절세 규수가 계셨던가요?"
"이 애가 집에만 있어놔서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게요."
"이처럼 아끼는 따님을 오늘은 나를 위해?..."
"그처럼 어여쁘게 보아 주시니 감사하오."
"정말 천하 절색이오."
"너무도 과분하신 말씀 .... 이미 나이가 찼는데 배필을 구하지 못해 걱정이오."
여포는 초선이 따라주는 술을 연달아 마시면서 물었다.
"어떤 서랑(壻郞)을 구하시길래 그러시오?"
"천하의 영웅을 사위로 맞아 보았으면 싶은데, 오늘날 천하의 영웅은 여 장군 한 분밖에 안 계시니 큰일이오. 하하하...."
왕윤은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하였다.
여포는 그 말에 황홀한 미소를 짓는다.
"왕 대감!"
"예?"
"천하의 영웅을 사위로 삼고 싶으신데 오늘날 영웅이 나 한 사람 뿐이라면 외람된 말이오마는 따님을 나에게 주시면 어떻겠소?"
여포는 농담 비슷이 말했으나, 초선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미 이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왕윤 역시 여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도록 모든 상황을 꾸며댔던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왕윤은 매우 황공한 듯이 깜짝 놀라 보이면서 말한다.
"황공하신 말씀...실은 이 사람은 이미 심중으로 벌써 그런 생각을 품고 있기는 했사오나, 감불생심(敢不生心) 어찌 그런 뜻을 외람되이 입 밖에 낼 수 있겠소. 장군께서 그런 의향이 계시다면야 우리가 그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겠소."
"천만의 말씀, 나를 사위로 맞아 주신다면 내가 장인 대감을 위해 견마(犬馬)의 노(勞)를 다하겠소."
"나로서는 그저 고맙고 황공할 뿐이오!"
"그러면 규수를 분명히 나에게 주시겠소?"
"길일을 택해 장군 댁으로 보내도록 하겠소. 보아하니, 초선이도 여 장군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오.? 초선아 ,그러지 않으냐?"
왕윤이 초선을 바라보며 묻자, 그 순간 초선의 귀 밑이 빨개지는 것이었다.
"하하하하, 그렇다면 더욱 기쁘구려! 내가 몹시 취해서 이제는 집에 돌아가기가 어렵겠는걸!"
여포는 왕윤의 허락과 초선의 태도로 보아 하룻 밤을 자고 가려는 늑대의 심정을 드러내었다.
"물론 우리 집에서 주무셔도 좋겠지만 나중에 동 태사(董 太師)가 아시면 곤란하니, 오늘밤은 그냥 돌아가 주시오. 혼례는 곧 길일을 받아서 거행합시다."
"그것도 좋을 것 같소. 그러면 내가 내일이라도 날을 택해 보내드리리다."
여포가 돌아가자, 왕윤은 초선을 바라보며 위로하였다.
"너같이 아름다운 아이를 희생시켜서 미안하구나!"
"나라를 위한 일이오니, 저를 너무 못난 여자로 생각지 마시옵소서."
"오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용기가 새로워진다. 그러면 내가 불일간 동탁을 집으로 초대할 것이니 그때에는 동탁을 녹여내도록 하여라."
"염려 마시고 계획대로 진행시켜 주시옵소서."
이리하여 이번에는 동탁의 정신을 뽑아 놓을 계획을 세웠다.
다음날이었다.
왕윤은 조당(朝堂)에 여포가 없는 틈을 타, 동탁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신의 후원에 매화가 만발하여 혼자 보기가 너무도 아까워서 태사님을 저희 집으로 한번 모시어 구경도 시켜드리옵고, 조촐한 주연을 열어, 약주를 한 잔 대접할까 하옵는데, 왕림해 주시올는지요?"
"허허허, 왕 대감이 청한다면 내 어찌 그 호의를 거절할 수 있겠소? 여러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조회도 끝이 났으니, 오늘 저녁에 대감 댁으로 가리다."
동탁은 즉석에서 흔쾌히 승낙한다.
왕윤은 크게 기뻐하며, 곧 집으로 돌아와 잔치를 크게 차리도록 하였다.
저녁이 되자, 동탁은 천자의 행차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시종과 호위병을 좌우에 거느리고 왕윤의 집을 찾았다.
왕윤은 대문 밖까지 나와 있다가 동탁을 반갑게 맞았다.
"귀하신 몸이 이처럼 누추한 곳에 왕림해 주셔서 영광스럽기 짝이 없사옵니다."
"왕 대감은 우리 나라의 원로(元老)이신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오."
동탁은 매우 기분 좋아 하였다.
이윽고 풍악이 울리고 주연이 벌어졌다.
둘이 서너 순배 돌았을 때 왕윤이 동탁에게 말했다.
"매화는 후원에 있사오니 그곳에 가시면 이곳보다는 호젓한 데다가 풍치도 매우 좋습니다. 그리로 잠깐 모실까 하옵니다."
후원 정자에 도착하니 그곳에도 역시 잘 차려진 주연상이 있었다.
왕윤은 동탁을 상석으로 인도하여 좌정하게 한 뒤에 턱을 들어 신호를 하니, 악사들이 아름다운 풍악을 연주하였다.
동탁은 왕윤의 후원 곳곳을 휘둘러 보았다.
과연 후원에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데다가 ,때마침 불어오는 산들 바람에 꽃잎이 바람을 타고 공중을 날아 다니며, 너울거리고 있었다.
이런 기막힌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동탁의 눈이 가늘게 찢어지며 얼굴에는 만족한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하여 동탁의 기분이 도도하게 되었는데, 문득 동탁의 눈앞에 선녀 같은 미녀가 선율에 따라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동탁은 풍악의 음률과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에 그만 얼을 빼앗기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윽고 음악과 춤이 끝나자,
"음.... 저 선녀 같은 미녀가 누구요?... 이리 좀 오게 하시오."
동탁은 술잔을 손에 든 채로 마시는 것 조차 잊고, 얼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저 아이는 내 집 양녀이옵니다. ... 애, 초선아 ...이리 와서 태사님을 뵙거라!"
초선은 흰백색 날개 옷을 입은채, 후원 누각으로 올라오더니 동탁의 앞에 납신하니 절을 올린다.
"초선아... 태사님께 술 한잔 부어 올려라!"
동탁은 그때까지 한참 전에 왕윤이 따라 준 술잔을 마시지 않고 초선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있다가,
아차 생각난 듯이 얼른 잔을 비우고 초선에게 빈 잔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초선이 섬섬옥수로 따라 올리는 술잔을? 흔쾌히 받으며 물었다.
"너, 올해 몇 살이냐?"
"...."
초선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을 아나고 고개를 수그린다.
"하하하, 네가 부끄러운 모양이로구나. 너는 참으로 선녀 중에 선녀로다!"
동탁이 초선의 미모에 황홀하니 도취한 모습을 보이자 왕윤이,
"태사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저 아이를 태사께 바치오리까?"
하고 물어 보았다.
순간, 왕윤을 쳐다 보는 동탁의 눈이 반짝였다.
"오오, 저런 미녀를 나에게 주겠다는 말씀이오? 그러면 나로서는 그 이상의 기쁨이 없겠소."
"황송하신 말씀, 초선이가 태사의 총애를 받사오면 저로서는 그 이상의 영광이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면 초선이를 곧 태사 댁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왕윤은 시종들을 불러 초선을 태사 댁으로 보내도록 분부하자, 동탁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선다.
"매화 구경은 잘 하였소. 나는 어서 집으로 돌아갈 터인즉, 초선이도 나와 한 수레에 타고 가게 해 주시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하였다.
"왕 대감의 충성심을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소. 곧 큰 보답이 있을 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