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102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아니쉬 카푸어 | artist
오늘의 레터, 인도출신의 영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아니쉬 카푸어 입니다.
Photographs by Alex Majoli / Magnum for The New Yorker; Art works © Anish Kapoor / ARS
아니쉬 카푸어는 1954년, 인도 뭄바이에서 인도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인도에서 보냈습니다. 70년대 중반 영국으로 넘어가 호른지 예술대학과 첼시 예술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현재까지 런던을 거점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영국을 대표하여 ‘프리미오 듀밀라(Premio Duemila)’를 수상하고 다음 해 영국에서 터너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과 영예를 얻었어요. 2003년 에는 시각예술에 대한 공헌으로 영국 기사 작위를 받습니다. 동양과 서양 두 개의 정체성을 지닌 그의 작업은 동양의 철학(여백, 명상, 간결함)과 서구적 지식이 결합해 전에 없던 숭고한 미감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잠깐!! 👀
아트레터 구독자님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20세기 중반 이후 나타난 예술 및 문학 사조로, 근대성에 대한 반발과 해체의 중점을 두고 크게 확산했어요.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다양한 문화 간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요소가 뒤섞인 형태를 추구했죠. 작가들은 진지함보다는 재미와 아이러니를 좋아했어요. 포스트모더니즘 1편에 이어 2편으로 더욱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알아볼까요?
쉽고 빠르게 '포스트모더니즘' 2편 배워봅시다! 너무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채웠어요.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
1. 동서양의 미를 가진 작품 🥗
인도와 유대계 문화 그리고 서구의 물질주의 경험은 그의 예술세계를 이루는 근간이 됩니다. 그의 조각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비움과 채움,’ ‘존재와 부재’를 넘나들며 유동적이고 독특한 관점을 취합니다.
2. 공간과 교류하는 조각 🏘️ 💞
아니쉬 카푸어는 전시하는 공간, 건축물에 맞춰 작품을 제작합니다. ‘스테인리스’라는 재질을 이용하여 반사되는 공간과 실제 공간이 맞물려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공간을 꽉 채우는 작품의 스케일(ex. 리바이어던)이 주는 압도적인 힘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공포, 혼란스러움, 두려움, 경외감을 주기도 합니다.
3. 정치적 예술가 🧑🎨
작가 본인이 직접 공언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종종 역사,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됩니다. 예를 들어, 베를린의 ‘사랑하는 태양을 위한 심포니 Symphony for a Beloved Sun’ 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의 현장을 연상시킵니다. 때로는 정치적 사안에 있어서 작가가 직접 정부에게 거침없는 발언을 하기도 하죠.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예술
Anish Kapoor, Cloud Gate, 2004 © Anish Kapoor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품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작품이 공간과 분리된 존재로서 존재감을 나타내지 않고 공간과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작품들이에요.
‘클라우드 게이트 Cloud Gate’는 아니쉬 카푸어의 첫 번째 공공 미술 작업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중 하나이기도 하죠.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대형 스테인리스 조각품은 가로 10미터, 세로 20미터, 높이 12미터에 무게는 110톤에 달합니다. 형태는 타원형에 아치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양 때문에 사람들에게 ‘콩 The Bean’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립니다. 작품은 이름에 걸맞게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표면에 반사하고 왜곡해 하늘과 관람객 사이를 연결하는 문의 역할을 합니다.
Anish Kapoor, Cloud Gate, 2004 © Anish Kapoor
아치의 하단을 걸어 들어갈 수 있는데, 움푹하게 들어간 스테인리스 표면에 독특하게 반사되는 상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포토존이 됩니다.
액체 수은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고 해요.
이음매 없이 매끈하고 거대한 스테인리스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2003년부터 2년에 걸쳐 제작된 이 작업은 제작비가 2,3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제작을 위해 카푸어는 건설업체의 엔지니어들과 협업했습니다. 먼저 3D모델링으로 샘플을 만들어 도안을 제작합니다. 그리고 표면을 지지할 내부 철골 구조물을 만들고 강철 패널을 붙이고 표면을 마감한 후 철골을 제거했다고 합니다. 거대한 작품을 옮기기 위해서는 개별 플레이트를 따로 트럭으로 운반해야 했어요. 그렇게 밀레니엄 파크에 운반된 클라우드 게이트는 이후에도 마무리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시카고의 랜드마크 ‘The Bean’으로 거듭나게 되었죠.
(좌부터)Anish Kapoor, Leviathan, 2011/ Orbit, 2012/ Marsyas, 2002 © Anish Kapoor
이외에도 카푸어는 관객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건축적으로 규모가 큰 공공 프로젝트를 해왔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리바이어던 Leviathan’, 런던 옥스퍼드의 ‘궤도 Orbit’, 테이트 모던의 ‘마르시아스 Marsyas’ 등이 있습니다.
나의 붉은 모국
카푸어는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서는 붉은색이 돋보입니다.
Anish Kapoor, Svayambhu 2007, wax, oil-based paint, variable dimensions. © Anish Kapoor. All Rights Reserved SIAE, 2023. Photo- Ela Bialkowska, OKNO Studio
작품의 제목 ‘Svayambhu’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산스크리트어로 ‘스스로 탄생한 자, 저절로 만들어짐’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문 아래 20m의 레일 위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육면체 왁스 덩어리가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문보다 큰 크기와 움직임으로 인해 버터 같은 질감의 왁스는 문과 바닥에 마치 도륙의 현장을 연상시키는 자국을 남깁니다.
Anish Kapoor, My Red Homeland, 2003, Wax and oil-based paint, steel arm and motor, D1200cm, Courtesy the artist and Lisson Gallery
Anish Kapoor, Shooting into the Corner, (2008-9).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2009. Photo- Dave Morgan. Courtesy of the artist.
붉은 왁스를 이용한 또 다른 작품은, 기계를 이용해 붉은 덩어리를 벽에 쏘는 ‘모서리에 쏘기 Shooting into the Corner‘와 ‘나의 붉은 모국 My Red Homeland’ 이라는 왁스가 칠해진 붉은 원반을 망치가 긁으며 지나가는 작품입니다.
작품을 전시했던 뮌헨의 하우스데어쿤스트(Haus der Kunst)미술관은 ‘압축된 피를 연상시키는 이 거대한 붉은 덩어리는 거의 종말론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킵니다. 흥미롭게도 붉은 암소나 parah adumah(히브리어로 adom은 빨간색을 의미하고 dam은 피를 의미함)는 유대교에서 종종 종말과 연관됩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죽음, 학살, 홀로코스트 등을 연상시키며 스스로 움직이는 작품은 그 자체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뿜어냅니다.
빨간색은 지구의 색이지, 깊은 우주의 색이 아닙니다. 분명히 피와 몸의 색입니다. 저는 그것이 드러내는 어둠이 파란색이나 검은색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운 어둠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아니쉬 카푸어
예술계 최초 색 독점사건
Anish Kapoor, Descent into Limbo, 1992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현대미술의 거장 중 하나로 칭송받는 아니쉬 카푸어가 작가들에게 미움을 받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반타블랙 Vantablack’ 때문인데요. 빛 흡수율 99.96%로 빛 반사가 거의 없어 마치 주변의 모든 빛을 흡수한 블랙홀처럼 보이게 하는 검은색입니다. 2016년 반타블랙의 예술적 가능성을 알아본 아니쉬 카푸어는 개발, 연구에 투자하고 제조사와 독점계약을 맺습니다. 그렇게 카푸어는 예술 작품에 반타블랙을 쓸 수 있는 전 세계의 단 한 사람이 된 것이죠. 이런 전무후무한 미술계의 색 독점사건으로 그는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완전한 검정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많은 예술가들은 평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엘리트주의적 행위라며 카푸어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카푸어는 합법적 과정을 통해 독점권을 얻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반응을 보여요.
the world’s pinkest pink © Stuart Semple
이때 영국의 예술가 스튜어트 셈플 Stuart Semple이 카푸어에게 대항할 기발한 방법을 생각합니다. 스튜어트는 ‘세상에서 가장 핑크다운 핑크(the world’s pinkest pink)’ 안료를 제작, 판매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조항을 달았죠. ‘아니쉬 카푸어와 그와 관계된 자들은 구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후에도 ‘세상에서 가장~다운~색’을 연달아 판매합니다. 물론 카푸어는 쓸 수 없다는 조항을 달고요.
Anish Kapoor's instagram
이에 대한 아니쉬 카푸어의 대답입니다. 기사 작위를 받은 인물의 품위 있는(?) 언행에 사람들에게 더 질타를 받게 되죠.
심지어 그의 작품이 각종 밈으로 재생산되면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이 이슈는 또 다른 '세상에서 가장 검은색'의 등장으로 종결됩니다. 2019년 MIT 연구진이 반타블랙보다 흡수율이 무려 7배(99.995%)높은 나노물질을 개발한 것인데요. 그렇게 반타블랙은 세상에서 가장 검은 검은색의 자리를 빼앗깁니다. MIT는 이물질을 항공 우주, 과학을 비롯해 예술분야에서도 누구나 비상업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습니다.
이 이슈는 '개인이 '색'을 독점할 수 있는가?' 라는 난제를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자본주의 제도하의 정당한 개인의 소유로 보시나요? 아니면 미술의 진보를 막는 권력가의 횡포로 보시나요?
그럼, 반타블랙으로 카푸어가 구현하고자 한 것을 볼까요?
Anish Kapoor, Descent into Limbo, 1992 (outside)
‘림보로의 하강 Descent into Limbo’ (림보는 구약성서의 지옥으로 들어가기 전 구역을 의미합니다)은 육면체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2.5m 깊이로 뚫린 검은 원을 마주하게 됩니다. 관객은 자신이 평평한 원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구멍을 보는 것인지 공포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원은 블랙홀처럼 빛 한 점 반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는 공간을 식별할 수 없어요.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포르투갈 현대미술관에서 한 60대 이탈리아 남성이 림보에 추락해 다쳤다는 소문이 있어요.
Anish Kapoor, L’Origine du monde, 2004 Concrete and pigment, Japan Photograph- Shideo Anzai © Anish Kapoor. All rights reserved DACS, 2021
Anish Kapoor, Viewers of Descent into Limbo, 1992
저는 항상 두려움이라는 개념, 현기증, 떨어지는 느낌, 안으로 끌리는 느낌에 이끌렸습니다. 이것은 빛과의 합일이라는 그림을 뒤집는 숭고함의 개념입니다. 이것은 반전이며, 일종의 안팎으로 뒤집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둠의 비전입니다. 두려움은 눈이 불확실한 어둠이며, 손이 접촉을 바라며 향하고, 상상력만이 탈출할 가능성이 있는 어둠입니다.
-아니쉬 카푸어, 바바와의 대화, 199
오늘의 뉴스레터 내용 요약 💌
1.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아니쉬 카푸어의 문화적 배경은 그의 작품에 동서양의 조화로 나타납니다.
2. 대형 건축조각품으로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클라우드 게이트'입니다.
3. 프리미오 듀빌라, 터너 프라이즈 영국의 권위있는 예술상들을 수상하고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으며 세계적인 예술가로 인정받습니다.
4. 세계에서 가장 검은 물질이라고 불리던 '반타 블랙'에 대한 예술에서의 독점적 사용권을 얻어 미술계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