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 여행 여드레째, 중도객잔을 출발해 차마고도와 호도협을 거쳐 오후 네 시가 넘어 샹그릴라 실크 시러스 호텔(蜀錦沐云酒店)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룸메이트 뽑기를 했는데 리장에서의 방짝이 다시 룸메이트가 되었다. 객실은 품격 있고 깨끗했다. 해발고도 3,200m가 넘는 도시라 그런지 오월인데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서늘했다. 먼저 침대의 전기장판과 난방 상태를 점검하고 잠시 쉬었다.
저녁은 고성을 둘러본 다음 맛집을 찾아 먹기로 했다. 고산병과 감기 증세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친구는 호텔에 남고 나머지는 옷을 따스하게 챙겨입고 고성으로 갔다.
두커종 고성(独克宗古城)은 다리나 리장고성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구이산(龟山) 정상에 있는 대불사와 대형 마니차가 석양에 물들고 티베트 전통가옥이 즐비한 거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티베트어로 ‘달빛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고성은 고대 차마고도를 잇는 핵심 역참이었다.
중국 정부는 제임스 힐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지리적 배경을 중뎬이라 발표하고 2001년 중뎬현(中甸县)을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변경했다. 목적은 경주시 양북면을 ‘문무대왕면’으로 바꾼 경우와 비슷하리라 추측된다. 현재의 샹그릴라는 디칭 티베트족 자치주(迪庆藏族自治州) 현급 시다.
저녁은 사방가 인근 식당에서 우리나라 신선로와 비슷한 야크 화로 요리를 먹었다. 경쾌한 음악 소리에 이끌러 광장으로 나와보니 사람들이 시계방향으로 빙빙 돌아가며 티베트 전통 춤인 궈좡(锅庄)을 추고 있었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여유를 찾는 춤사위처럼 보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백 명의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중독성 강한 음악에 맞춰 율동하는 모습은 여행의 또 다른 맛과 울림을 줬다. 한바탕 어울리고 싶은 마음을 접어 두고 동영상을 찍으며 분위기를 즐겼다.
간식 골목에 들러 죽과 주전부리를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의 여행이라 그런지 피곤이 쉽게 밀려왔다.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곳, 탐욕과 증오가 없는 곳,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땅을 찾아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윈난성 여행 아흐레째, 송찬림사, 티베트족 마을, 나파하이, 두커종 고성을 관광한 다음 고속열차를 타고 쿤밍으로 갈 예정이다. 머리가 아프다는 룸메이트에게 남아 있는 산소 한 캔을 건네고 욕조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열 시쯤에 송찬림사 매표소에 도착해 셔틀버스를 타고 사원 입구로 갔다. 불병산(佛屏山) 기슭에 있는 갈단 송찬림사(噶丹 松赞林寺)는 달라이라마 5세가 창건한 윈난성 최대의 티베트 불교 사원으로 작은 포탈라궁으로 불린다. 달라이라마의 권위를 인정하고 포용 정책을 편 청나라 강희제의 후원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문화혁명 당시 사원이 불타고 승려들은 쫓겨났으나 중뎬현이 샹그릴라시로 개명되고 관광 붐이 일어나면서 불사가 중창되었다.
입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정문을 들어서니 가파른 계단과 왼쪽의 종카바 대전(宗喀巴大殿), 중앙의 자창 대전(扎仓大殿), 오른쪽의 석가모니 대전이 내려보고 있었다. 황금색 지붕에는 마니차, 사슴, 팔정도가 황금빛을 머금으며 《잃어버린 지평선》에 있는 ‘황금색 지붕으로 된 라마교 사원’이 바로 여기라고 말하고 있었다.
해발 3,380m에 있는 대전까지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친구들과 함께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합장하는 자세로 사진을 찍고 사방을 둘러봤다. 산기슭에 있는 백탑(白塔)에는 룽다(風馬)가 펄럭이고 정상의 천장장(天葬場)에는 까마귀 떼가 맴돌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고 오른발부터 문턱을 넘어 종카바 대전으로 들어가 시계방향으로 둘러봤다. 티베트 불교 겔룩파 창시자인 종카바 대사의 불상이 있는 대전으로 부처로 환생해서 그런지 내가 아는 부처의 모습과 비슷했다. 자창 대전은 달라이라마 5세의 화신인 관세음보살과 미륵보살, 달라이라마 7세 불상이 있는 대전으로 108개의 기둥과 오색찬란한 만장, 정교한 탕카와 벽화들이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오르며 층층이 구경하다가 4층 베란다로 나갔다. 달라이라마 5세가 삼 년간 움막을 짓고 수행했다는 라모안초호(拉姆央措湖)와 멀리 샹그릴라 시내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지붕과 마니차, 팔정도, 사슴의 황금색은 부처님의 거룩한 몸빛과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를 나타낸다고 한다. 사원의 황금빛은 인간의 황금과는 다른가 보다.
계단을 내려와 석가모니 대전에 갔다. 거대한 석가모니와 문수보살, 화려한 색상의 만장과 섬세한 조각들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대전 마당에서 우리나라 여행객을 만나 여행 중에 얻었던 꿀팁을 주고받았다. 생머리를 단아하게 묶고 마니차를 돌리는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다 사원을 나와 티베트족 마을에 갔다.
인상간마농가락(印象嘎玛农家乐)이란 티베트 전통 양식의 음식점 겸 민박집에서 수유차와 야크 요구르트, 야크 샤부샤부 등 전통음식을 먹으며 집안을 구경했다. 입구 현판에는 행복인가(幸福人家)와 당원호(党员户)라는 문구가 있었고 내부에는 역대 중국 주석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마을은 차마고도를 오가던 마방 소속의 마부, 농민과 머슴들이 주로 살았는데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해방되었다고 했다.
고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파하이(纳帕海)에 들렀다. 해발 3,270m에 있는 고원 습지로 건기인 겨울과 봄에는 이라초원(依拉草原)이 되고 우기인 여름과 가을에는 거대한 호수로 변한다고 했다. 넓은 고원지대의 초원에는 말과 야크가 풀을 뜯고 관광객은 티베트 전통 복장으로 말을 타고 있었다. 룽다와 타르초(經幡旗)로 구성된 거대한 게르 모양의 조형물을 사진에 담으며 재작년에 갔던 몽골 초원과 비교해 보기도 했다.
오후 두 시경에 두커종 고성 북문에 도착했다. 어제는 저녁 먹으러 나온 김에 두서없이 구경했지만, 오늘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고성은 사방가(四方街)와 월광 광장(月光广场)을 중심으로 거리와 골목이 방사형으로 뻗어 있고 하늘에서 보면 연꽃 형태로 보인다고 했다.
거리는 울퉁불퉁하게 자연석으로 포장되어 있고 수백 년 전 차마고도를 오가던 마방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의 하얀 외벽에 은은한 달빛이 비치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해서 티베트어로 ‘하얀 돌의 성’ 또는 ‘달빛의 성’이라 불린다고 했다. 특히 나무로 된 창틀과 문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 거리 곳곳에 펄럭이는 룽다와 백탑이 눈길을 끌었다.
월광 광장을 지나 구산공원(龟山公园)에 있는 대불사(大佛寺)와 세계 최대 크기의 마니차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대형 마니차에 설치된 끈을 잡고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빈자리를 기다리며 손잡이를 잡고 돌아가는 사람을 헤아려보니 스물네 명이나 되었다. 자리가 생겨 들어가서 끈을 잡고 천천히 돌았다. 생각보다 힘들어 한 바퀴 돌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세 바퀴 돌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해서 끝까지 돌았다.
땀을 식히며 발 아래 보이는 고성을 내려다봤다. 고산 봉우리에 둘러싸인 도시와 고성, 티베트 양식의 건축물과 거리마다 펄럭이는 룽다가 이국땅에 와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월광 광장에는 ‘마음속의 해와 달(心中的日月)’이란 문구와 함께 티베트 전통문화를 공연하는 무대가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옥룡설산, 호도협, 송찬림사, 샹그릴라 고성, 매리설산(梅里雪山) 마그넷 기념품을 샀다. 이층에 있는 발 마사지 집에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고산지대 특유의 두통과 피로를 해결했다.
티베트 전통 요리로 저녁을 먹고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샹그릴라역으로 갔다. 열차는 다섯 시간을 넘게 달려 자정 무렵에 쿤밍역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룸메이트 뽑기를 했는데 같은 날 공직 발령을 받았던 친구가 방짝이 되었다.
다리와 리장, 옥룡설산, 차마고도, 샹그릴라를 거쳐 쿤밍으로 되돌아왔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서로를 알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양보와 배려, 건강한 상식이 동반된 여행은 항상 즐겁다. 오늘도 일상을 벗어나 고지대에서 육체적 한계를 체험하며 샹그릴라를 찾아 헤맸다.
윈난성 여행 마지막 날, 운남민족촌과 석림을 관광하고 자정쯤에 쿤밍 창수이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전세 버스를 타고 열 시경, 민족촌 주차장에 도착했다. 덴츠(澱池) 호수 주변에 있는 운남민족촌(雲南民族村)은 윈난성의 스물여섯 개 소수민족의 전통문화를 재현해 놓은 곳으로 우리나라의 민속촌과는 규모나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민족촌과 곤명고성(昆明故城)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와 호수, 숲과 꽃이 어우러진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곤명고성을 지나 동문으로 들어갔다. 걸어서 구경하기에는 너무 넓어 두 시간에 육백 위안하는 전동차를 빌려 소수민족 마을을 둘러봤다. 와족(佤族) 마을에서 장발무(长发舞) 공연을 관람했다. 두 친구는 통하지 않는 말을 표정과 웃음으로 대신하며 공연 무대에 올라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여행 중에 만났던 다리 고성의 바이족(白族), 리장고성의 나시족(納西族), 샹그릴라의 티베트족(藏族) 전통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민족촌을 반나절 만에 둘러보고 공연을 관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한 시간 반을 달려 오후 세 시에 이족자치현(彝族自治县)에 있는 석림(石林)에 도착했다. 셔틀 전동차를 타고 한참을 가서 대석림 앞에서 내렸다. 자연이라는 조각가가 돌과 시간, 물과 바람을 이용해 만든 바위 숲은 말없이 인간을 내려보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미로 같은 길을 따라 석림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볼 때는 잘 다듬어진 수석처럼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사자, 연꽃, 봉황, 코끼리 같은 다양한 형태의 거대한 바위가 병풍처럼 서 있었다. 대석림에서 소석림까지 셔틀 전동차를 타거나 걸어가며 구석구석 구경했다. 석림승경(石林胜境) 돌기둥에 깊게 새겨진 석림(石林)이란 붉은 글자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생각 차이를 느끼게 했다. 오후 여섯 시에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나태에 빠진 나를 채찍질하며 이상향을 찾아 떠났던 여정이 마무리되고 있다. 내 삶을 이끌었던 이상향은 무엇일까. 남은 생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이만큼 걸었으면 알 만도 한데 아직도 모자라 내년 계획을 세운다.
첫댓글 멋진 곳에 좋은 여행을 하셨습니다. 여행은 삶을 풍족하게 하며 특히 글감을 많이 줍니다. 좋은 글을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