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7년 초봄
이제 나 원의 황제 이소영도 12살이 되었다.
조금씩 황제라는 자리의 엄청난 무거움을 느껴간다. 천명을 받아 사직을 튼튼히 하고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황제의 직무가 아닐까.
호코키에게 명해 진회 형님의 몽고기병 부대에 군량을 전하게 했다.
왕대의 지휘 아래 쿠빌라이 칸 대부터 꾸준히 하고 있는, 돈황의 목장을 농장으로 바꾸는 사업이 크게 진척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농장 쪽이 400~500 정도 수확량이 더 높으니 모두 바꿔야 한다. 폴란드에서도 목장을 농장으로 바꾸는 사업이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투퍼다이 형님에게 명해 힌두 제왕조에 재민요술이라는 농경 책을 샨스크리트어로 번역하여 전하게 했다.
나는 지금껏 고려와 함양의 별궁과 궁궐에서만 살아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 몸은 튼튼하지만 아직 어려 잠행은 무리이니 천하를 순시하기로 했다. 일단 농경과 건축의 도시 양양으로 수도를 옴겼다. 양자강변의 도시인 양양은 엄청나게 풍요로운 도시였다. 그 부귀영화에 있어서 원에서 으뜸이라더니 명불허전이다. 황제인 나로서도 놀랄 정도로 풍요로웠다. 번화가를 따라 행진을 한 뒤 양양 중심에 있는 별궁에 들어가 황제로서의 집무를 시작했다. 행진하는 동안 수십만의 백성이 가도에 나와 만세를 부르는 광경을 보니 기분이 참으로 좋았다. 관리들이 백성을 일부러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면서 좋아해서 더욱 기분이 좋다.
정부는 함양에 있지만 세계 곳곳엔 작은 정부가 운영되어 비상시에 대비하고 있다. 양양에도 그런 정부가 존재한다. 양양은 아버님인 쿠빌라이 칸이 불세출의 명장 바얀과 함께 가장 먼저 함락시킨 남송의 도시였기도 하다. 함양은 의학의 도시이기에 만세 불변으로 수도로 삼아야 할 곳이다. 그러므로 나는 순시를 마친 뒤 함양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고 곽수경 등도 안심하는 눈치였다. 곽수경을 정승으로 봉한 다음 양양으로 갔다. 이제 곽수경은 명실상부 원의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사람이다. 곽수경의 나이가 이미 87세인 것이 마음에 걸리나 아직 곽수경은 정정하고 업무도 확실하게 본다. 아무튼 양양은 참으로 마음에 드는 곳이다.
운하 진척 사업도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운하를 따라 나무를 심고 논밭을 만들고 행궁을 세울 것이다. 유람선 만드는 사업은 일단 뒤로 미루고 최소한의 유지 인력만 조선창에 남겨둔 뒤 기술자들을 모조리 임안, 천주, 개성, 대도, 밀주, 다자이후 등지의 조선창에 보내 무역선 만드는 일에 투입하도록 지시했다.
오고타이칸 이래의 악법 중 일부를 폐지하였다.
한족 가정 5개 가구에 몽고 병사 한 사람씩을 보내 관리하도록 하는 제도다. 몽고 병사에 의한 강간 등 나쁜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를 폐지하였다. 몽골 출신 장군들이 반발하였으나 이미 한인들의 세력은 강력했다. 또한 몽고인이 평민을 죽이면 벌금만 내도 풀려날 수 있는 제도를 고쳐 최소한 수족이 잘리는 형벌을 받게 하였다(두 경우 모두 진짜 역사입니다).
임시 수도가 된 양양이 옛 남송 유민들의 세력이 큰 도시였기에 시행하는 정책들이라 할 수 있다. 옛 남송 사람들은 나를 칭송하면서 계속 양양에 있어달라고 조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나는 천하를 순시하고 있는 것이지 한 곳에 눌러 앉으려는 게 아니다. 예쁜 여자들이 많았다. 서진의 무제 사마염은 남방을 순시하러 갔다가 궁녀 5000명을 더 뽑아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궁녀를 거느린 황제가 되었다 했다. 무려 1만 명의 궁녀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인구가 1600만 밖에 안 되었다는데 그런 무리를 하다니... 현재 원의 인구는 2억이나 되는데도 내 궁녀는 1000명이 안 되는데(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폴란드의 인구는 5000만이라 한다. 현재 세계의 인구는 3억으로 추정되니 거의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중국 기본 제도는 궁녀 3000명이라서 궁녀를 더 뽑으라는 압력이 예부를 중심으로 자주 들어온다. 유교는 너무 형식에 치우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라마교는 제사에 치중하고 불교는 관념적이며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엔 정감이 가지 않고 도교는 허황된 미신 같다. 이런 소리를 아무에게도 하지는 않지만 종교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1317년 봄
타브리즈가 트딘투팔이 이끄는 맘루크 왕조군에 공격당했다. 한고은 형님이 군대를 이끌고 나가싸웠다. 적의 수는 1만 2000에 달한다. 트딘두팔 말고도 내가 쫓아냈던 처프베반 형님, 호제다이 형님도 부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트딘투팔 형님의 목을 쳤다. 처프베반 형님은 등용하였다.
전투에서 이겼으나 아물 수키가 곧바로 쳐들어왔다. 적 병력은 8776명이다. 한고은 형님이 또 다시 승리했다는 소식이다. 한고은 형님의 공은 끝이 없다. 적장 둘의 목을 베었으나 호제다이 형님은 아쉽게도 달아났다.
내 황후 와팔리크가 딸 출차도리를 낳았다. 너무 귀엽다.
함양의 좌승 석환취로 하여금 새로 뽑힌 정백낭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도록 했다.
양양의 영주 김표에게 새로 뽑힌 이준용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도록 한 뒤 나는 행장을 꾸려 임안으로 떠났다. 지금 나는 도도하게 흐르는 양자강변에 있다. 이건 강이 아니라 완전히 바다였다. 수평선 끝까지 물 뿐이니 그야말로 바다다. 그런데도 강이란다. 부산에서 낙동강을 구경한 바 있는 나는 놀라웠다. 더욱 놀라운 점은 초원에서 살던 몽골 무사가 이런 엄청난 대강을 건너 남송을 정복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전에 징기스칸께서는 양자강 못지않은 대강인 황하를 건너 금을 위협하셨었지만.
호코키에게 명해 나까무로 겐이치로 형님의 몽고기병대에 군량을 보급하게 했다.
투퍼다이 형님으로 하여금 힌두 제왕조에 유륜 쟁기의 기술을 전하게 했다. 또한 투퍼다이 형님이 긴급히 전갈을 띄웠는데 힌두 제왕조의 도시 마드라스 근방에 대규모의 코끼리병이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대비책을 강구토록 해야겠다.
1317년 여름
사라이에서 내 형님인 서허무가 폴란드의 신하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분을 잡쳐서 이를 풀기 위해 임안의 양자강변에서 뱃놀이를 성대하게 열었다. 수많은 배들이 경주를 하고 숱한 사내들이 수영 솜씨를 겨루고 아름다운 누나들이 강변을 거닐며 구경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기분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호코키로 하여금 강감찬 형님의 몽고기병대에 군량을 보급하게 했다.
투퍼다이 형님으로 하여금 힌두제왕조에 용골차의 기술을 전하게 하였다.
임안으로 향하는 길에 나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어 행장이 잠시 늦어지는 소동이 일었다. 참으로 대단한 무사가 아닐 수 없다. 2000명이 넘는 행렬에 홀로 잠입하여 나를 암살하려 하다니. 내 무술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행 장수들은 옛 남송 땅 출신인 그를 죽이고 그의 9족을 멸하자고 주장했으나 나는 그를 감옥에 가두고 후한 대접을 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원은 모든 민족의 나라임을 공표토록 했다. 내가 너그러운 황제임을 천하에 알려야한다.
1317년 성하
임안에 입성하자마자 타브리즈가 내가 일전에 추방했던 호제다이 형님 및 모케므불 형님이 이끄는 맘루크 왕조군에 공격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도 한고은 형님이 군대를 이끌고 맞서 싸우러 나섰다 한다. 타브리즈의 성문이 무너졌다는 소식이다. 걱정이 앞선다.
한고은 형님이 또 다시 승리하였다는 소식이다. 호제다이 형님을 등용하였다. 모케므불 형님은 달아났다.
투퍼다이 형님에게 명해 힌두 제왕조에 농서를 전하게 했다.
임안에서도 행진을 했다. 이번에도 수많은 백성들이 가도에 나와 나에게 호응을 보내주어 기분이 좋았다. 임안도 대단히 풍요로운 도시였다. 항구에서도 행진을 했는데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 중엔 5000톤이 넘는 것도 흔하다고 했다. 정말 엄청나게 큰 배들이다.
임안에서 8명의 황후를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세 황후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눈치다. 몇 명이나 내 침실로 올지 기대가 크다. 목욕을 깨끗이 하고 사향도 은은하게 뿌렸다. 미혜비, 광진공주가 찾아왔다. 둘 다 상당한 미녀들로 나를 멋지게 리드해주었다. 난 사실 잘 모른다. 난 아직 술은 입에 대보지도 않았고 섹스도 황후들 이외에는 모른다. 아름다운 궁녀들이 은밀하게 추파를 보내기도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내겐 3명의 예쁜 딸이 있다. 잘 크고 있는 지 모르겠다.
1317년 가을
바쿠 부근에서 알짱거리는 맘루크의 군대 하나를 가르마 형님으로 하여금 치게 했다. 가르마 형님은 전투99 지모81의 명장이니 잘 해내리라 믿는다. 어느 정도 피해는 입었으나 순조롭게 무찔렀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
철존명 형님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었다. 맘루크 왕조의 한 군대를 치게 하고 전멸시켰으나 추격엔 실패하였다 한다.
한고은 형님에게 명해 모케므불 형님의 군을 치게 했다. 한고은 형님은 모케므불 형님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모케므불 형님을 등용하였다.
나까무라 겐이치로 형님의 몽고기병대가 힌두제왕조의 코끼리병단을 공격했다. 손쉽게 무찔렀으나 추격엔 실패했다 한다.
투퍼다이 형님께 명해 힌두제왕조에 파종기의 기술을 전하게 했다. 힌두 제왕조와의 우호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밀주로 이동했다. 밀주엔 거대한 금 광산이 있다. 그곳에 가서 광부들을 위무하고 밀주 남쪽 끝에 있는 호수로 가서 그곳에 막 완공된 행궁에서 가을 풍경을 만끽했다. 참으로 풍요로워 보였지만 가난한 집 출신 관료들의 말을 들어 보니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운 듯해 마음이 편치는 않다. 이제 시 짓는 실력 및 그림 솜씨가 많이 늘었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음악을 들었다. 그러나 집무를 게을리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근본이다.
밀주의 행궁에서 조회를 열고 거란족, 여진족에게 농사와 문자를 가르치는 일에 합의를 보았다. 몽고 평원에 세워진 중국 풍의 도시 울란바토르에 수십만의 여진족과 거란족을 옮기고 이들로 하여금 개간을 마무리하게 했다.
폴란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1317년 겨울
서시베리아를 한파가 기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수십만 명이 얼어 죽었다고 한다. 즉시 근방 도시들에서 식량, 의약품, 생필품을 비롯한 각종 물자를 날라 서시베리아를 구휼케하였다.
강간찬 형님이 힌두 제왕조군을 빅마마 중심가에서 격멸하였다.
빅마마까지 가도가 시원스럽게 뚫렸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즉시 군대를 출격시키도록 명령하였다. 제베와 델리에서 네 형님이 군대를 일으켜 출격했다는 파발이 날라들었다. 경보병을 1부대로 하고 나머지 4부대는 투석기와 화포병으로 채운 부대이다. 우르반과 회회포가 개발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위력은 상당할 것이다.
이미 3명의 형님이 몽고기병대를 이끌고 빅마마 근방에 상주하고 있으니 쓰레기 처리반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했다. 화룡출수가 있는 한 몽고기병대의 화시를 당해낼 존재는 없다.
브레이끼에서 빛고을에의 가도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이다. 동남아시아에서의 물자 교류가 더욱 증진될 것이다.
투퍼다이 형님에게 명해 나침반의 기술을 힌두 제왕조에 전하게 했다. 힌두 제왕조 인들은 여전히 원을 불신하고 있다고 한다.
천하 순시는 계속되어야 한다.
막 밀주의 조선창에서 완성된 6500톤 급 범선들을 타고 황해를 건너 개성으로 향했다(중국에서는 이미 한나라 때에 3000톤 급 배가 있었다고 하죠. 명의 영락제 때 정화가 이끈 함대는 8000톤 급 이었다고 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만경창파 위에 있으니 내가 이끌고 가는 100여 척의 함대도 초라해 보인다.
평양에서 유람한 다음 개성에 입성할 것이다. 내 피의 반은 고려인이며 또한 나 이소영은 고려 국왕을 겸하고 있다. 나는 쿠빌라이 칸 때부터 있던 작은 정부가 있는 도시를 더 늘렸는데 그 중엔 개성도 포함된다. 나는 사마르칸트, 타브리즈, 개성, 가마쿠라, 다자이후, 라사, 델리, 파간, 하노이에도 작은 정부를 운영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호웅이 카리브해 근방의 도시 무뇌충에 입성하였다 한다.
마침내 폴란드가 움직였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다마스커스를 향해 6개 군단이 발진했다는 소식이다. 폴란드는 이번 전쟁에 무려 3명의 왕족을 동원했다. 또한 내 동생 김소월 및 무서운 명장으로 알려졌으며 사위인 월레스에게도 몽고기병대를 주어 내보냈다 한다. 폴란드는 킵차크 한국을 멸망시켰기 때문에 몽고 기병대의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헝가리를 쓰러뜨려 수렵기병의 기술을 배운 폴란드는 이제 몽고기병마저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첫댓글 징기스칸4에 이렇게 이벤트가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징기스칸5를 기대해봅니다^^
오늘부터 님들의 글을 읽기 시작한 초문생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재미있는 글 부탁바랍니다. 저 또한 성심성의껏 꼬리말 달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델리 술탄님 팬-
코에이가 정말 징칸5를 만드려할까염? 내가알기론.. 포기한듯..ㅡㅡ;
만든다고 해도 우리나라에는 발매를 안해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