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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가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낮의 기온은 일상적인 폭염의 수준을 넘지만 벼 이삭이 성글어가고 논두렁 너머 둔덕에 껑충하게 서 있는 해바라기를 보는 순간 가을이 느껴집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막을 떠나 귀경한 후 여행짐을 꾸렸습니다. 여행 중에 꼭 필요한 물건 중심으로 준비하면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10% 식 줄이다 보니 25L 배낭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짐을 꾸린 후 간편복으로 상하를 준비하고 모자도 선택한 후 신발도 가볍고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으로 선택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혼잡한 구간을 벗어난 후 여유로운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며 과거 추억의 시간 속에 산재해 있는 과거의 시간을 넘나들며 휴게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식을 챙길 목적이었으나 얼마나 소란스럽고 복잡한지 단박에 포기하고 간식용으로 몇 가지 종류를 구매한 후 외지고 한가로운 테이블 발견하고 그리로 가 나눔 한 후 다시 점봉산 아래로 뚫린 긴 터널을 빠져나와 양양에 도착하였습니다. 요즈음 양양은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여행지로 변신 중입니다. 젊은 여행자들의 심리를 따라가며 스치듯 마음과 일치하는 풍경을 얻으려는 기분으로 떠난 여정이 바로 오늘 여행입니다. 양양 IC에서 다시 하행 7번 국도를 이용하여 미리 계획해 두었던 주문진 항 등대 아래 식당을 찾았습니다.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식당입니다. 맛과 가격도 참한 식당이라 주문진에 오면 늘 즐겨 찾는 곳입니다. 생선구이 모둠과 물 회 등을 시켜 점심을 챙겼습니다. 사실 어항으로서 가장 큰 항구가 주문진 항입니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고 진부 오대산 초입에서 진고개를 넘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주문진 항입니다. 진고개를 넘어서면 소금강이란 수려하고 아름다운 계곡도 탐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진고개는 오대산 주 능을 이어받아 선자 령 대관령으로 가는 백두대간 줄기입니다.
다들 맛있다는 수다로 식사를 마친 후 식 후 컨디션 조절을 위한 산책을 제안하며 일행을 방파제로 안내를 하였습니다. 잔뜩 흐린 날씨는 백두대간 오대산, 대관령 구간을 구름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아쉬운 부분입니다 주문진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선자령에 설치된 은륜을 그리며 도는 풍력발전기 모습은 운해와 더불어 아름다운 정경을 보여주는데 오늘 그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행 중 일기는 여행 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오늘은 답답함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항구 해안선 따라 설치된 스피커에서 너울 파도를 조심하라는 경고 방송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양양권역 바다는 바람이 좋아 여러 가지 해양 스포츠를 하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길고 폭이 적당한 모래사장도 한몫 거들고 있어 자연스럽게 젊은 해양 문화가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속초와 양양 읍은 설악산 권역으로 산을 매개로 하는 활기찬 산악활동이 주도한다면 양양 읍 아래 해안과 강릉 사천 항 위로 포진된 해안은 해양스포츠의 메카입니다. 방파제 옆 수중 속에 내려놓은 콘크리트해파리 침식 방어구조물 사이로 튀어 오르는 너울은 간담을 서늘하게 힐 정도를 공격적이었습니다. 해안선 따라 너울 파도가 일으키는 비말들이 안개를 만들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은 늘 신비를 묘사하는 재주꾼입니다. 시간은 벌써 숙소를 체크인할 수 있는 시간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주차해 놓은 곳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옛 추억의 모습이 다가왔습니다. 노년의 삶 공간은 늘 과거로 회귀하고 싶다는 욕망이 너울 파도처럼 넘 실 거릴 적이 참 많습니다. 그런 유혹은 대부분 추억이 부채질을 한답니다. 그래서 늘 지금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의 생각과 행위에 따라 아름다운 추억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추억에 이끌려 조금 늦은 시간에 찾은 남애리 모래사장, 아이들이 3살, 4살 때 찾은 곳입니다. 찾은 이유는 숙소에서 작은 길을 건너가면 모래사장이 펼쳐지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안가 물 깊이도 낮아 함께 해수욕을 즐 길 수 있고 즐기다 쉬고 싶으면 물건들을 챙겨 바로 숙소로 들어올 수 있다는 매력이 자주 선택한 배경입니다. 이곳에서 이틀 정도 머물다 귀경 길에 청태산 숲을 찾아 야영을 하며 해수욕의 정취를 말끔하게 삼림욕으로 씻어낸 후 귀가하는 것이 가족들의 여름휴가 여행이었습니다. 때로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소금강을 찾아 계곡물에 전신을 담그고 소일하던 시간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역시 시간이 흐르면 문명의 힘에 의하여 자연의 풍광은 변하는 것 같습니다. 해안가에 올망졸망 놓여 있는 갯바위의 아름다운 모습이 안전을 목적으로 설치한 가교가 생겨 갯바위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 같은 너울 성 파도에 휩쓸려 가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가고지만 옛적 아름다운 풍경은 사라져 아쉬웠습니다. 문명은 알게 모르게 자연을 갉아먹는 본심이 도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옛 추억의 회상은 너울에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체크인을 하기 위하여 예약해 둔 숙소로 차를 돌렸습니다. 해안도로에서 좌회전 후 송림 사이를 빠져나오면 너른 분지형태의 숲 중앙에 리조트가 나옵니다. 본관에 들러 수속을 마친 후 열쇠를 받아 숙소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정갈하게 정돈된 룸, 이곳에 머물 인원에 맞춰 각자 위치를 잡고 개인물건들을 수납하고 휴식을 취한 후 리조트 단지 탐방에 나섰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아침 산책 길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제일 컸습니다. 걷는 동선을 정해 두려는 의도가 바로 나의 의중이었습니다.
노천클럽도 살피고
그 옆으로 난 세 죽나무 길도 살펴보고
Whiskey, Cocktail 꼬임에도 잠시 빠져보고
노천 수영장 옆으로 자리 잡고 있는 휴식코너도 가만히 다가 가 앉아 보았습니다. 하늘은 점점 암흑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등불이 하나, 둘 들어올 때까지 탐방을 이어갔습니다. 매년 확장해 나가는 리조트, 입구 언덕도 숲을 해체하고 황토 빛으로 바꿔 놓고 있는 것을 보아 곧 신축 건물이 들어설 것 같습니다.
야간 개장을 준비하느냐 분주하게 돌아가는 노천 가든을 물러나온 후숙소로 돌아와 과일과 준비해 온 술을 꺼내 서너 잔을 마신 후 일찍 자리에 누웠습니다. 등줄기가 편안하게 펴지면서 아늑함을 몰고 왔습니다. 바로 행복한 순간입니다. 직립인간으로서 느끼는 기분 좋은 휴식은 바로 허리가 바닥에 닺는 순간입니다. 그 아늑함이 숙면을 불러왔는지 긴 잠의 시간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다들 곤하게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며 조용히 물 한 병과 알약 하나를 챙긴 후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오전 5시 30분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미천골까지 걷고 싶었으나 하루 일정에 피해를 줄 것 같아 매일 걷는 8,5km 정한 후 리조트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점점 리조트를 벗어나 한가로운 마을 길을 찾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산막 숲에서 느끼는 향기와 전혀 다른 공기를 접하며 해안가 부근에서 경험했던 익숙한 축축함을 느끼며 걸었습니다. 송림 숲에 갇혀 있는 리조트 그 속과 달리 한가롭게 느껴졌습니다 나처럼 걷는 것보다 해안으로 일출을 보기 위하여 부산하게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늘 날씨를 보아 일출경험은 택도 없는 짓이지 하며 속보로 변경하고 빠르게 걸어 나가다 송림을 배경으로 서 있는 한옥을 발견하고 반가움에 다가섰습니다.
건축연대는 1883년 2월 25일로 현 소유자 10대 조가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는 집으로 안채와 바깥사랑채로 구분되는 특이하게도 兵자형입니다. 최초 건물은 현 사랑채로 사용되는 건물을 먼저 짓고 그 후에 안채를 증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원도문화재자료 제80호로 현남 면 개매 길 215~5(현남 면 전포매리 106-1)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건축연도에 대하여 알 수 없었는데 최근에 건물 대들보의 상량문에 의하여 건축연도가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현 주택 소유주는 정상철 씨입니다. 이 댁은 원래 초계정 씨 관동파 중 향 동파의 종가 댁입니다. 조 규승이라는 이름은 정상철 씨의 어머니 함자이며 문화재자료로 지정을 받을 당시에 어머니가 호주였기에 조규승 가옥으로 등록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건물 뒤편에 사당도 있었다고 합니다. 참 아름다운 한옥입니다. 아침 산책 중에 만난 소중한 한옥입니다. 한옥을 자세하게 살핀 후 다시 걸음을 옮겨 리조트를 중앙에 두고 원형을 그리며 걸음을 이어 나갔습니다
멋진 송림 길에 이르러 평상심 중에 제일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 나가다
좌측으로 데크 길이 불쑥 나타났습니다. 저 앞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다가가자 길은 하늘공원으로 이어졌습니다. 흑마 두 마리가 고개를 옆으로 젖힌 채 서 있고 달을 뜻하는 둥근 고무풍선이 부풀어 올라 있었습니다. 야간에 바람을 빼놓고 새벽에 다시 자동으로 바람을 주입하여 달을 세우는 것입니다. 새벽에 만난 달은 만월입니다. 선주들께서는 달에게 늘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믿음으로 달을 신성 시 여겼습니다. 개인적으로 달빛 중에 가장 아름다운 빛은 창호지에 스며드는 달 빛입니다. 그 은은함에 매료된 것입니다.
잔디광장에 자라고 있는 흰색 버섯 4형제, 생명은 조건만 성숙되면 지상에 모습을 보이지요. 포자가 바람에 날아와 안착한 다음 조건이 성숙되자 이만큼 자라난 모양입니다. 생명은 참 신비스럽습니다.
잔디광장에서 다시 이어지는 테크계단에서 내려 선 후 리조트 외곽으로 돌아
숙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침 걸음여행 결과는 상쾌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샤워실로 가 세신을 끝낸 후 잠옷 등을 정리하여 배낭에 정리해 두고 오늘 일정에 대하여 스크린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마음 깊은 곳에 여백 심기입니다. 촘촘함을 거부하고 느릿하고 여유로움으로 마음을 감싸주는 일정입니다. 오늘은 느긋한 마음으로 음식투어를 시작으로 하루일정을 열 계획입니다. 경포대 솔밭에 허균의 시비가 있습니다. 그의 생가 초당 마을은 조금 아래에 있지만 허균보다는 누이인 허난설헌의 대한 이야기 꽃이 피는 곳입니다. 이에 반해 허균은 잔인하게 처단된 만고의 역적 신분이라 무엇 하나 제대로 들어낼 수 없었던 비운의 혁명가였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 해송 숲이 무성한 깊은 솔밭 사이에 시비가 숨어 있는 듯 서 있습니다.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 솔밭을 지나 오르면 사천항이 있습니다. 사천항에서 해안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내용이 충실하고 맛이 좋은 식당이 있습니다. 모둠 회만 시키면 나머지 반찬은 여러 가지로 제공받고 매운탕을 비롯하여 후식도 함께 제공을 받습니다. 이 정도로 준비해 주는 곳은 동해 안 일대에서 전무하다 할 정도로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는 식당입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한 후 다시 거슬러 올라 해안선 명소를 탐방한 후 양양을 거쳐 남 설악 오색을 찾아가 온천욕과 사우나 부대시설 10개를 체험하며 피로를 풀어낼 계획입니다.
계획대로 사천항 인근으로 내려 가 맛과 포만감이 느껴지는 근사한 음식을 챙긴 후 오색으로 가는 도중 해안 명소를 찾아 탐방을 한 후 남설악 호텔 온천을 찾았습니다. 설악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점봉산 권역을 남설악이라 칭하며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명소가 바로 오색입니다. 오색약수가 유명하고 주전골과 흘림골이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용소폭포도 있습니다. 점봉산은 한계령으로부터 백두대간의 맥을 이어받아 구룡령까지 이어 나가는 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산이 장대하다 보니 극상림을 이루고 태백산맥을 넘어 다니는 조침령 북암령 등이 있어 령이 많은 산입니다. 단목령으로 올라 넘어서면 강선리로 넘어갈 수 있으며 이곳을 통해 곰배령에 오를 수 있지만 단목령에서 능선을 타고 올라 홍포수막 샘을 지나 점보산 정상에서 길을 잡아 나가면 바로 곰배령으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점봉산에 산채가 많아 산나물을 이용하여 산채정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이 오색에 많았습니다. 수학여행자들의 인적이 자취를 감춘 후 설악동과 더불어 퇴락의 여행지로 변했지만 대신 주전골과 흘림골을 찾는 등산객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케이블카 설치로 급선회한 정책으로 요즈음 오색은 다시 각광받고 있습니다.
헬스라는 전통적인 건강의 개념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질병이 없는 상태를 주문합니다. 이에 반해 1961년 미국의 의학자 헐버트 던(Halbert L Dunn)이 주장한 웰니스(Wellness)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으로 제시한 건강에 대한 정의보다 심화시킨 광범위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건강관리입니다. 2015년 이전까지는 웰니스 연구와 보급은 주로 의학자, 건강 체력 육성분야에 극한 되어 왔지만 2015년 GWI(Global Welleness Institute)가 제창하고 일본 아라카와 마사시 교수가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환경적 건강, 사회적 건강을 바탕으로 멋진 인생(QOL)을 디자인해 가는 자기실현이라며 건강은 기반이고 웰니스는 삶의 방식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제시함으로써 일반화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일반적으로 건강이라 표현은 헬스라고 표현해 왔지만 웰니스는 질병이 없는 상태인 헬스를 기반으로 풍요로운 인생, 멋진 인생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입니다.
웰니스(wellness)는 개인의 삶 전반적인 측면에서 건강과 균형을 추구하는 개념으로 신체적인 건강, 정신적인 편안함, 사회적 만족, 감정적인 안정 등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건강을 추구합니다. 개인 스스로 책임을 갖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하여 자기 관리와 활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휴식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간으로서 웰니스 리조트와 스파가 각광받고 있으며 스마트폰 앱과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여 개인의 건강 상태를 관리하고 모니터링하는 웰니스 앱과 플렛트폼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는 중입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기 위하여 유기농 식품과 건강 기능(보조) 식품의 수요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실행에 옮긴 자연 안에서 스스로 치유하는 웰니스의 건강이념을 토대로 계획한 것이 이번 여행입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온천욕과 더불어 여러 가지 종류의 보조 사우나 시설을 이용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았습니다. 땅거미 내릴 즈음 온천욕을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와 차를 미천골로 몰았습니다. 투박한 강원도 메밀국수를 저녁으로 선택하였기 때문에 찾아 나선 것입니다. 늘 재료를 일정하게 마련하고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다 떨어지면 문을 닫는 집이라 불안했지만 오색에서 가까운 식당이라 용기를 내어 달려갔습니다. 결과는 국수를 삶는 가마솥을 금방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걸음을 되돌렸습니다. 대신 강원도 특유의 된장으로 맛을 내는 해안가 칼국수 집으로 이동하여 강원도 특식을 맛있게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여행 마지막 날, 속초로 이동하여 중앙시장으로 접근하여 선물용 물건을 찾아 구매한 후 주변을 탐방하고 숯불로 생선구이를 만들어 주는 식당으로 가 점심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한계령과 장수대 주변을 탐방한 후 시간 여유가 있으면 목마와 숙녀의 시인으로 유명한 박인환 선생의 고향 인제를 방문하여 문학관을 들러 본 후 귀향할 계획입니다.
명동 백작, 박인환은 멋쟁이였습니다. 종로에 헌 책방을 열기도 하고 애주가였던 박인환은 리얼리스트 김수영과 가까운 벗이었지만 그들의 우정은 때에 따라 반복의 과정을 수없이 거쳐야 했습니다. 애증이 교차했다는 표현이 남자들 사이에 부담스럽지만 사실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 속에도 애증이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그러함이 교차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인환의 우정은 늘 먼저 앞서갔습니다. 자유와 혁명과 사랑을 향한 여정이 김수영의 삶이라 한다면 박인환은 진실한 로맨티스트였습니다. 전란을 겪은 후 어려운 시기 다들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술을 탐닉하고 있었지만 박인환은 탐닉 이상으로 술에 관대했던 시인입니다. 박인환은 명동에 있던 다방에 앉아 메모지 급하게 써 내려간 글을 만들어냅니다. 박인환 옆에 앉아 있던 글을 읽고 감탄하며 방송 극작가로 이름을 날린 이 남섭은 그 자리에서 작곡가로 변신하여 세월 이 가면이라는 노래를 만들어냅니다. 이 곡을 처음 부른 사람은 나 애심이었습니다. 박인환은 여심을 흔드는 주옥같은 시를 써내려 간 시인입니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시인은 망우 공원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가끔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종주산행을 하면 찾아 참배하는 시간을 종종 갖으며 시를 낭송하곤 합니다. 많은 문인들이 묻혀 있는 곳이 바로 망우공원묘역입니다.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뚜에 모아 라는 남녀 혼성그룹 멤버였던 박인희가 부르면서부터입니다. 방송 음악프로의 mc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가수였습니다. 박인환 시인의 생을 되짚으며 노래를 올려봅니다.
여행 마지막날 오늘은 여행 동선이 광폭입니다. 그래서 그랬을까? 다들 빠르게 다시 짐을 꾸려 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출발, 자동차 전용 도로를 포기하고 국도를 선택하여 속초로 출발하였습니다. 간신히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길을 건너 중앙시장과 수산시장이 함께 관광시장으로 육성된 탓에 늘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곳입니다. 인기 있는 품목은 긴 줄에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 한 곳이 속초 시장입니다. 천천히 살피다 우선 생선구이 전문 식당으로 걸어서 도착하였습니다. 대형 에어컨 4대가 돌아도 후끈한 식당, 손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늘 만원입니다. 이 집이 이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직접 잡은 고기를 숯불로 굽기 때문입니다. 생선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종업원이 직접 구워 주고 식탁에 앉아 있는 인원에 맞춰 구운 생선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나누어 주는데 다양한 생선을 종류대로 끝까지 굽고 나누어 주어 손님은 편안하게 앉아 자기 앞 접시에 배분되는 구운 생선을 맛있게 먹은 면 됩니다. 밑반찬도 여러 종류가 공급되는데 필요하면 얼마든지 직접 갖다 먹으면 됩니다. 어릴 적 석 쇠를 이용하여 연탄불에 꽁치, 고등어, 삼치, 오징어를 구워 주시던 어머니의 맛과 같은 생선구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집입니다. 입가에 감도는 비린내를 잡기 위하여 카페를 찾아가 빙수를 시켜 입가심을 하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여름 더위를 식히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옆 좌석에 서양인 부부와 딸과 아들이 자신의 집 거실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으로 보내는 것을 보고 참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유로움~~ 자유로움~~ 공통분모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땀을 식힌 후 용광로 같은 길에 서서 있다 신호등이 바뀌자 다시 시장골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긴 줄에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으로 생각하며 구매를 종료한 후 차에 싣고 한계령으로 달려갔습니다. 오늘은 구름이 좋아 한계령(오색령)에서 바라보는 설악산과 점봉산 사이의 협곡이 근사할 것이라는 예단을 앞세우며 올라섰습니다. 칠 형제 바위 뒤로 펼쳐지는 구름과 산의 세력이 맞물려 있는 멋진 경치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여 조망하다 휴게소 테라스로 몰려 가 사진을 찍다 한방차를 구매하고 속초 중앙사장애서 구매한 옥수수 술 빵을 펼쳐 놓고 간식을 즐기는 시간을 갖으며 한계령과 관련된 노래의 배경을 서로 나누며 소일하며 휴식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한 후 장수대로 내려섰습니다. 한계령 일대가 행정상 양양군에 속한다는 이유로 오색 령이란 표지석을 다시 세웠습니다. 나머지 일정은 여유의 시간이 부족하여 접고 귀경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고 서울에 도착 저녁을 함께 챙긴 후 각자 집으로... 표지석 만으로 이곳에서 한계령 노래를 기억한다는 기회마저 사라진듯하여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한계령이 익숙하다는 핑계로 공유하려고 올려봅니다. 이젠 처서도 지났으니 곧 가을이 올 것입니다 마지막 여름도 잘 이겨내 시기를 소원합니다...
10월 초에 서북주능을 찾을 계획입니다. 장수대에서 출발하여 대승령에서 서북주능을 따라 오른 후 소청을 돌아 봉정암 용아장성 수렴동 백담계곡을 밟으려 합니다. 주변에서 꼭 해보고 싶다는 부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젠 속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느릿한 해걸음으로 옮기다 지치면 소걸음을 흉내 내며 다시 걷고 자연과 친교를 통해 위로 받으며 쉬엄쉬엄 걷다 보면 산맥의 성찰시간도 다 지나갈 것입니다. 한계령이란 노래, 작곡하고 직접 불렀던 그는 사실 죽음을 선택하고 한계령에 올랐다 바람에 떠밀려 죽음으로부터 돌아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 노랫말이 생환의 긴밀함이 알알이 맺혀 있습니다. 그가 지어낸 노래에는 그러한 감정이 물씬 풍기는 매력적인 명곡이 많습니다. 바람은 소중한 생명을 일깨우는 것이 일상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