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기
□ 정전 여덟 번째 시간
□ 제1총서편 – (제1장 개교의 동기)
정전 시작 한지 두 달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정전 반을 넘었습니다.
오늘은 정전 21페이지입니다. 정전이 총 91페이지입니다. 실지로 앞의
20페이지를 했단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20페이지를 쉽게 생각해요.
그러나 아주 중요합니다.
자. 앞부터 보겠습니다.
먼저 원불교 교서 차례. 원불교는 7대 교서가 있습니다.
원불교 교전에는 정전과 대종경이 있는데 정전은 대종사님 당대에 직접
편찬된 것이고 대종경은 대종사님의 언행록입니다. 대종경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내용이 좀 있다. 정전은 어떻게 보면 무미건조한 것 같은데 어느
나라 국민에게나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불조요경은 불교와의 관계와 새 불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이라는 것은 신앙에 바탕 한 어떤 수행이 함께 엮어져서 나타난 것.
그것이 예입니다.
두 번째 종법사님인 정산종사님 법어는 세전과 법어가 있습니다.
다음 원불교 교사가 원기 56년 반백 주년까지의 역사가 나와있고.
그 다음 성가가 나와 있습니다. 맨 마지막 교헌은 너무 커서..
전에 제가 보여드렸죠?
그리고 다음 장을 보면 원불교 교전 나오고 일원상이 나왔죠?
일원상은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이것은 원불교 개교 표어입니다.
물질이 개벽되니, 현재 이미 개벽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신을
개벽해야 한다. 구하는 정신, 사용하는 정신을 개벽해야 한다.
뒤 페이지 넘어가면 원불교 신앙의 표어인 처처불상과 사사불공.
수행의 표어인 무시선 무처선. 원불교 사상의 특징인 동정일여와
영육쌍전. 그 다음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이 있습니다. 불법을 선반에다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 속에 가져다 써먹고 생활 속에서 불법의
가치를 구현해 내는 그것이 원불교의 생활종교로써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 교리도가 나오는데, 저번 주까지 교리도에 대해서 했습니다.
맨 위 중앙에 일원상을 놓고, 가운데 일원상에 대한 설명.
일원은 법신불이니 우주 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 중생의 본성이다. - 그렇게 해놓고 게송으로..
왼쪽엔 인과보응의 신앙문, 우주만유 전체가 다 법신불인데 인과의
성격적 위력으로 네 개로 나누었더니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사회에 불공할 것이냐 이것이 사요입니다.
그것을 표어로 했더니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다.
오른쪽은 진공묘유의 수행이다. 일원상의 내용이 진공묘유이다.
일원상의 속성을 세 가지로 말하면 공, 원, 정이다. 그래서 공의 특성을
회복하는 것이 정신수양이고 원의 특성을 그대로 발현 시키는 것이
사리연구고 정의 속성을 그대로 나타난 것이 작업취사인데 그것을
도와주는 원동력이 신 분 의 성이고 만사성공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것을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있는데 불신 탐욕 나 우이다.
이것들이 방해하는 것이다.
동정간의 불리선, 그것을 표어로 하면 무시선 무처선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내 마음에 일심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사대강령으로는 지은보은과 정각정행 무아봉공과 불법활용으로써
교단의 방향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 마치 거북이와 같이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넘기시면 원불교 교전 차례가 나옵니다.
제1부가 정전이고, 2부가 대종경입니다.
그 다음. 부 안에는 편이 있습니다. 편은 총 세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총서편.
둘째는 교의편이요.
셋째는 수행편입니다.
제1 총서편은 총체적인 서설을 이야기 합니다. 서두, 서론을 이야기
합니다. 다음 제2 교의편은 그 총체적인 총론을 어떻게 강론으로써
그것을 구체화시킬 것이냐. 그 목적을 어떻게 달할 것이냐가 나옵니다.
건물로 말하면 건물을 이러이러하게 지어야겠다는 구상. 방향이
총서편이라면, 몇 층짜리로 어떻게 해서 안에다 무엇을 짓겠다는 도면을
치는 것이 교의편이다.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겠다는 개교의 동기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법이 있어야 하는데 그 교법의 도면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일원상과 사은,사요, 삼학, 팔조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 마지막
사대강령까지 해서 7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넘기시면 제3 수행편입니다. 수행편은 도면을 쳤으면 실제로
시공을 해야 한다. 어떤 방향을 잡고 교리를 내놓았으면 그 교리의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이냐? 실천의 방법이 17장으로 나와있습니다.
제1장 일상수행의 요법은 삼학팔조 사은사요를 9개 강령으로 내놓은
것이고 그 강령을 실행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날마다 강령을 외운다고
되나? 그것은 실지로 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제2장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이다. 정기훈련은 고요히 편안하게 깊이 있게 해보는 것이고
상시훈련은 내가 활동 속에서,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두루 법을 갖다가
쓰는 것이다.
그러면 정기훈련와 상시훈련을 잘하려면? 정기훈련은 조석으로
정신수양해라. 염불과 좌선 하라고 했는데 그 염불법이 3장에
나와있습니다. 염불법의 요지와 방법과 공덕이 나와있습니다.
제4장 좌선법도 요지와 방법과 공덕 그리고 단전주까지 나와있습니다.
그 다음 사리연구 과목으로 제5장 의두요목이 나와있습니다. 좌선이
끝난 후에는 의두를 들어라. 평상시 사색 후 문사수다. ‘문’ 듣는다 많은
법문을 들어야 한다. 그 다음 ‘사’ 생각해야 하고 그리고 ‘수’ 실지로
닦아봐야 한다. 의두요목은 내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입니다.
원불교는 신앙만 있는 종교가 아니라 수행과 함께하는 종교이다.
그 가운데에 깨달아야 한다. 모르고 믿으면 미신이다. 알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일기로써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일기로써 표현해봐라.
즉 체크하라는 것입니다. 작게 작게 쪼개서.. 대체적으로 많은 분들이
법문을 하면 총론만 해요. 정신을 수양합시다. 착한 일하고 삽시다.
복지읍시다. 기도합시다... 이렇게 말하면서 삽니다.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냐? 그것을 하면 어떤 결과가 되냐? 그리고 그것을 날마다
체크해서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것이냐? 내 스스로 평가하는 것.
이것이 제6장 일기법입니다.
그리고 제7장 무시선법은 삼학의 종합입니다. 앞에 염불 좌선은 수양.
의두요목과 일기법은 연구. 일기법과 무시선법은 취사로써 되어있습니다.
무시선이 삼학의 종합입니다.
그 다음에 신앙의 방법이 나옵니다. 신앙은 참회가 필요하고 비우려고
했더니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진리불공입니다. 실지불공은
불공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는데 있어서 최소한에 해야 할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은 제11장 계문으로 단계별로 10개씩 30개가 주어졌고.
해야 할 것은 제12장 솔성요론으로 16조가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과 수행은 결국 이 세상의 병을 치료하고 우리
사회를 맑히자는 것입니다. 그 사회를 맑히자면 나를 고치고 사회를
고치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 방법으로 먼저 제13장 최초법어. 수신의
요법, 제가의 요법, 강자약자 진화상의 요법, 지도인의 요법이
나와있습니다.
그 다음이 제14장 고락에 대한 법문입니다. 이것은 개인이 어떻게
온전한 정신으로 취사를 해서 좋아하는 낙을 어떻게 얻을 것이며,
싫어하는 고를 어떻게 버릴 것인가? 영원한 낙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이것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 제15장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 이 사회가 병이 들었거나
지도자가 병든 줄 모르면 함께 치료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원불교인은 결국 수행을 해서 무얼 하자는 것인가? 영과 육을
쌍전 하자는 것이다. 과거 종교인들은 영에만 치우쳐있고, 일반인들은
육, 즉 의식주의 삶만을 추구하는데 앞으로 미래의 종교인의 모습은
수도와 생활, 영과 육이 둘이 아닌 종교여야 환영 받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제17장 법위등급입니다. 공부 단계를 테스팅하고 확인해봐야
합니다. 정신의 수양력 사리의 연구력 작업의 취사력의 단계별로
여섯단계. 삼급 삼위를 두어서 범부에서 중생으로 중생에서 부처로
얼마나 진급 해나가는지 단계를 스스로 체크하고 다른 사람을 평가 할
수 있도록 내주신 것이 바로 법위등급입니다.
오늘은 총서편의 개교의 동기입니다.
총서편은 총체적인 서설이라고 했습니다.
총론, 방향, 목표, 목적입니다. 그래서 원불교의 회상관이 나옵니다.
원불교의 시작은 대종사님의 대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각하지
않으셨으면 원불교는 출발하지 않았다. 대종사님이 왜 세상에
나왔나느냐? 그것은 시대에 따른 것이다. 과거의 성자들께서는 시대의
인심을 따라서 법을 펴십니다. 그러나 어두운 시대였기 때문에 한
지역을 맡으셨다. 서가모니 부처님도 인도쪽, 공자님은 이쪽, 예수님은
저쪽, 대종사님도,, 우리나라에서..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개벽시대가 되었다. 개벽시대란 것은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삶의 형태가 바뀌어졌다.
옛날은 농경 사회였고 정치적으로 군주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민주 사회가 되고 이제는 지식정보화 사회가
되어서 국가의 울도 다 터지고 언어도 통일되어 가고 있고 돈도
통일되어 가고 있습니다. 유럽 같은 데는 국경의 차이가 없다.
제가 프랑스에 갔을 때 그 곳에서 어떤 공연이 있었다. 그런데 옆 나라
애들이 차 몰고 공연을 보러 오는 것입니다.
그러듯이 이제는 유로를 사용하고 나라의 국한이 다 터져버렸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이렇게 바뀌어서 이 세상 전체. 이 지구의 이 지상의
하나로 통합된 가치. 진리, 사상. 그런 것이 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
선천과 후천의 교역기가 되어도 그렇지만 물질 문명이 엄청 발달해서
그런 것이다. 그때 대종사님이 나오시게 된 기연이 된 것이다.
원불교 다니시는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 따로 있고 예수님 따로 있고
노자 따로 있고 공자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어떻게 보면 다
같은 뜻을 가지시고 민심에 따라서 그 나라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많은 생명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성자의 모습으로서 여기저기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총서편은 개교의 동기와 교법의 총설인데 앞에 보면 개교의 동기는
현재의 시대와 사회에 대한 분석이 나와 있습니다. 교법의 총설은
종교와 제도에 대한 분석이 나와 있고, 교법에 대한 통일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시대와 사회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으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씩 들어가보겠습니다. 현하-
지금 대종사님이 정전을 쓰신다면 현하라는 말을 안 쓰셨을 것 같습니다.
요새. 지금.. 이런 말을 쓰겠죠? 일제 시대 때 썼던 글이라 그렇습니다.
요새 과학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
과학문명이 어떻게 발달했어요?
대종사님이 일제시대 때 한 번은 부산 초량교당에 가셨어요. 그때
얼음을 깨고 빨래하는 제자에게 말씀하시길 ‘야 걱정 마라. 너는 나중에
얼음 안 깨고, 기계가 빨래를 싹 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땐 뭔 말인
줄 몰랐죠. 지금으로 말하면 세탁기죠. 그리고 대종사님이 ‘아침에는
서울서 밥 먹고, 점심을 일본에서 먹고, 저녁을 미국에서 먹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 말을 했으니 어땠겠어요? 그러니까 대종사님은
‘밥도 집에서 안 해 먹는다, 빨래도 안하고, 신발에 흙도 안 묻힌다.’ 고
하셨어요. 이렇게 말하니 제자들은 웃기는 소리다 부앙부앙하신다고
했거든요.
대종사님은 물질문명의 개벽을 예감하신 것입니다. 일제 시대에 굶어
죽을 때 먹고 살 것도 없을 때,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이미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났지만
한국에서는 캄캄했습니다. 더구나 영광 바닥에서 말이죠.
깨달음을 얻어서 정신수양을 해서 사리연구와 작업취사로 역어 지면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생깁니다. 조금 수양을 쌓으면 허령이 뜨고 그 다음
지각이 열리고, 그 다음 신명, 마지막엔 중화의 도로써 종횡무진 도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종사님은 내 법이 5만년은 갈 것이라고
도수를 예측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전무후무한 법이라고 당신이 자신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역대 어떤 성자도 당대에 경전을 쓰고 가신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 총서편이 바로 비젼이고 교의편이 강론입니다.
대종사님이 선천과 후천이 완전히 개벽된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옛날에는 밤 시대라면 이제는 낮 시대다. 옛날은 천권시대,
지금은 인권시대입니다. 지금 시대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여러분 인정하십니까? 이젠 성자들도 지역을 맡아서 했다.
이제 나온 성자는 세상 전체를 맡아서 해야 한다.
제가 십수 년 전에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갔는데, 일본 초등학교
애들이 그곳에 수학여행을 왔었습니다. 나는 지지리 가봤자, 경주
석굴암, 설악산 이런데 갔는데.. 제가 독일 갔더니, 또 일본 애들이
와 있었어요.. 나찌가 유태인을 죽인 곳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국가에서
못 가게 하니까. 참 놈들이 참회를 안 해요. 그때 제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앞으로 세계시장을 상대로 학문, 언어, 기업,
예술을 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대원군처럼 폐쇄적인 정치를 했습니다. 지금 북한도 이렇게
개방 안 하면 엄청 손해입니다. 이제는 마음의 벽을 터버려야 합니다.
종교도 나라도 네 것 내 것 필요 없습니다. 미국이 사태가 나니까
세계가 흔들리잖아요? 내가 기업 아무리 잘해도, IMF 나니까 다같이
망해버리잖아요? 이렇게 하나의 세상이 되었다.
옛날엔 차별시대였다. 대종사님은 1934년도에 남자, 여자 수위단회를
결성했다. 영국은 1920년도에 여자에게 겨우 참정권을 주었습니다.
그 당시 유교사회에서 대종사님은 여자를 잘 써서 원불교가 이렇게
커졌다. 안 그랬으면 지금 원불교의 크기의 반에 반도 안 된다. 지금은
완전 평등사회가 되었다.
옛날에는 하늘만 숭상했다. 지금은 땅도 같이 해야 한다. 옛날에는
아버지만 우대했습니다. 어머니는 무시하고.. 지금은 오히려 여자가 더
세진 것 같아요. 옛날엔 사만 우대했는데. 지금은 농공상 전부 다
우대한다. 옛날에는 사가 권력을 독점했잖아. 지금 미국에서 제일
잘사는 사람은? 공. 연구하는 사람. 기술자. 엔지니어이다. 그 다음에 상.
주식 잘하는 사람. 제일 부자죠. 더구나 요새는 금수초목까지 함부로 할
수 없다. 이것이 동양사상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입법자가 권력을 휘둘렀죠. 지금은 민주시대가
되었잖아요. 이것이 바로 평등사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진짜 엄청난
평등사회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이 평등사회가 된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간 큰 사람이죠.
옛날에는 무슨 시대였나. 정의 시대였다. 차분하고 편안한 사람
좋아했죠. 도인이라고.. 지금은 직장에서 그런 놈 뽑지도 않습니다.
적극적이고 열정 있는 사람을 뽑는다. 왜그러냐? 지금은 동시대이기
때문이다. 활동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대산종사님도 활동하지 않는 사람은 부처의 명부에서 빼라고
말했습니다. 시대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옛날에는 신앙도
그렇고 타력의 시대이다. 하느님 내놓으세요. 부처님 내놓으세요.
지금은 자력시대이다. 내가 부처다..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다.
제가 토요일날 목포를 갖다 왔는데 아침에 좌선을 하고 바로 목포를
가서 입관식을 하고 법문하고 밥도 거기서 먹고, 서울에 올라와서
법회를 또 봤어요. 옛날 같으면 한 달이 걸려야죠. 그러나 제가 하루에
끝냈잖아요.
종교도 이제는 형식적 종교, 신화적종교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은
남다르다. 알에서 나오질 않나 옆구리에서 나오질 않나.. 태어나자마자
달려들지 않나. 이제는 이런 시대가 끝났단 말이다. 이제는 신화적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 사실적이고 진리적이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 대중은 신비적인 종교를 찾습니다. 보조국사가 ‘수심결’에서
신통, 이적, 장엄을 찾지 마라고.. ‘내 마음이 부처요. 내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밖에서만 찾고 있다. 그 말이죠..
요새는 교장이나, 교감선생님이 목에 힘을 댕댕히 주고 있으면 일이
안 된다.
그러나 중생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신앙도 뭔가 크고 장엄한데 가서
고개 숙이고 싶고.. 나와 다른 어떤 것을.. 존엄만을 생각해서.. 뭔가
따르려고 하고 모시려고 하고 받들려고 하고.. 우리가 그렇습니다.
대종사님은 나오셔서 ‘네가 부처다.’, ‘너한테 그런 위력이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종교의 모습도 하나가 되어야 하고, 진리와
직통해야 하고, 어떤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받드는 종교 그리고
진리의 자체를.. 어떤 인과라든가.. 어떤 참마음의 세계를 밝히는
종교여야 한다. 종교가 원만해야 한다.
그 다음에
-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그 쇠약한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
맞습니까? 옛날에는 고등학교 2, 3학년 되면 때가 끼었다. 지금은
초등학생 때부터 때가 끼었다. 너 왜 공부하냐? 그러면.. ‘잘 먹고
잘살려고.. 돈 벌려고..’ 중요한 것은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바뀌었다. 돈이나 수단을 위해서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요즘은 직장생활이 인생의 3분의 1에서 거의 반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직장은 돈 버는 곳입니까? 소중한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그 순간입니다.
나중에 대장이 되어서.. 퇴근하고서.. 나이 먹은 다음에.. 그때 행복해야
합니까? 그 순간 순간 내가 낙원을 함께해야 하고 하루의 일과도 낙원이
되어야 한다.
제가 신라 호텔 갔던 이야기 했죠? 원남교당으로 첫 발령 갔더니,,
백산 정도진교도님이 계셨는데 돌아가셨어요. 그 분이 교무님들 새로
오셨으니 신라호텔에서 밥을 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무님
가십시다’ 하고는 승합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는데, 우연히도 그 분의
차가 내차 바로 앞에서 같이 가게 되었다. 우리를 초대하신 그 분은
벤츠를 타고 있었고, 나는 그 당시에 현대 그레이스를 타고 있었다.
신라 호텔 앞에 도착하니까, 모자 쓴 그 양반 있잖아요. 그 사람이 벤츠
앞에서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깍듯이 하더니 차를 바로 앞에 대라고
하였고, 내가 차 문을 열었더니 ‘아저씨는 저~기. 밑으로 가서 구석에
주차하세요’ 라고 하였습니다. 한 편으로 이해가 됩니다. 사람을 보고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차를 보고 사람이 대접받는..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은 차를 사려고 하는가?
내가 은행을 갔더니 나는 대출을 안 해준대요... ‘나 기관장인데 왜 안
해줘요?..’ 그랬더니 종교인은 안 해준데. 돈이 없고 재산이 없으니까.
교당건물은 법인꺼고 너는 수입이 없잖냐. 그래서 대출 없다. ㅋㅋ
미국에 가려고 비자를 끊으러 갔더니 세금 끊은걸 내놓으라고 하는데..
‘나 세금 낸 적이 없다..’ ㅋㅋ
환경문제에 대해서 좀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과학문명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일어나고 해서 환경이 안 좋아져서
우리에게 많은 불편을 주고 있습니다. 토양, 공기, 물… 등등 모든
것들이 오염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가치관도 물질만능주의로 흐르고, 이런 것들도 알고 보면
물질문명의 발달로 따른 인간성의 상실. 가치의 전도입니다. 그것은
결국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나는 아파서 병원에 가본적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애들은 맨날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가네. 원남교당 있을 때... 왜 병원에 자주 가는지
요새 다 그런다는 겁니다. 참 희한하다. 요즘은 의사가 애기도 잘 낳게
해주고 세균 따지고 영양 따지는데 왜 그럴까요?
제주도에서 귤이 나오는데, 그 귤에 팥찌라는 것이 있어요.. 너무 큰
귤은 가치가 없어요.. 귤은 주먹보다 작아야 가격을 받을 수 있는데…
그 팥찌를 델몬트인가요? 주스 회사에서 사갑니다. 그것을 저온이나,
고온으로 해서 팍 삶아요.. 그래야 오래 보관 하거든. 그것을 캔이나
유리병에 담아서 시장에 나와요. 그걸 사람들이 맛있다고 먹습니다.
여러분도 캔에 든 음료수 마시세요? 하여간 사람 손이 들어 갈수록 안
좋습니다. 왜 고생하고 안 좋게 만듭니까? 웃기죠? 돈 들고?
이게 뭐냐. 과한 욕심 때문이다. 과한 욕심을 다시 풀면 탐 진 치라고
그럽니다. 탐심, 진심, 치심이라고 그럽니다. 지금 정치 문제, 사회 문제,
가정의 윤리 문제. 알고 보면 전부 다 탐심 관계입니다. 욕심
관계입니다. 성질 나서 죽여버리고, 사회 정치는 치심으로 가득 차고,
개인적으로는 탐심이 많고…
이것 때문에 우리가 주종이 거꾸로 바뀌어버린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대종사님이 깨닫고 보니까 개벽시대를 맞아서 물질이 앞으로 엄청 발전
하는데… 그럼 어떻게 정신문명이 물질문명을 선용하게 할 것인가?
물질이 사람을 잡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이 물질을 잘 쓸
것인가? 이러기 위해서 대종사님이 나오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물질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 노예 맞아요? 노예 생활
하십니까? 엄마들은 왜 이렇게 바빠졌습니까? 빨래도, 밥도, 청소도
기계가 다 해주는데.. 나무 안 때고 돌리기만 하면 물도 따뜻해지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바쁩니까? 그리고 여기 와서 ‘늦어서 죄송애요’,
저기 가서 ‘늦어서 죄송해요’ 왜 그래요? 시간은 그대로 가고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누가 옷을 뭣 샀다더라. 누가 어디 갔다더라.. 누가 뭘 배운다더라.
그러면 못 참죠.. 요새 엄마들이 뉘 집 아이는 학원을
다닌다니까. 자기 아들도 거리로 옮기고 서울에 학원
제한하니까 ‘경기도로 보내지’ 그런답니다. 경기도 근방에 학원이
생기려다 제도가 바뀌었죠. 이 욕심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이것이 진짜
너무 너무 잘못됐어요.. 무엇이 과연 행복인가? 무엇이 행복해요?
돈 많으면 행복해요?
엊그저께 제사를 지냈는데, 5녀2남의 7남매였습니다. 내가 가족들이
화합하니 참 좋다고 그러니까... ‘우리는요 잘 살지 못해서 그래요..’
재산이 없으니까 화합을 잘 한답니다. 그 말 까닭 있는 말이죠.
재산이 있는 집일수록 변호사에게 돈 가져다 줍니다.
물질의 노예 생활이다. 시간의 노예 또는 감정의 노예, 돈의 노예,
명예의 노예. 욕심의 노예.
-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고해가 없으리요. –
파란 고해란 고통의 세계라고 했는데, 하나씩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정신의 수양이 없는 파란고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신의 수양력이 크지 않으니까 우울증 환자가 우리나라의 1/4가 되고,
서울대 공대는 전체가 30~40%가 우울증 환자랍니다. 그것 때문에
자살자가 많습니다. 정신의 수양을 하지 않고 오직 돈과 욕심만을
위해서 달리니까 정신에 문제가 많습니다. 제가 보면 요즘에 정상이
아닌 사람이 많아요. 육신이 어디가 좀 불편하면 괜찮습니다. 몸 바꾸면
되고 도구를 활용하면 됩니다. 정신이 문제가 되면 정말 골치가 아파요...
여러분 남대문 불태워버린 사람.. 그게 정상이에요? 지가 지 땅 돈 못
받았으면 됐지.. 왜 국보 1호를 태워? 그건 정상이 아니지.. 그 정상이
아닌 것들이 다 뭣 때문에 그러나? 다 돈 때문이다. 정신의 수양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신수양에 보면 가패 신망 번민 망상 분심
초려.. 요새 젊은애들 눈빛을 보면 안정이 안되어 있습니다. 차분하지
않습니다. 뭔가 도전적인 눈빛이던가 눈빛이 불안합니다.
내가 금요일에 시청에 갔었는데,
갔는데 진실로
불만이 많은 사람들을 보고 참 놀랬습니다. 아. 화합을 언제 할건가..
이게 수양을 안 하면 부정적 세계관이 됩니다. 삐딱하게 나오고 그냥
넘어갈 것도 신경질이 납니다. 자꾸 오해합니다. 수양이 부족하면
자기가 자기를 괴롭게 합니다.
연구가 부족하면 생각이 단촉해.. 짧아.. 눈앞의 것밖에 안 봐요.
취사력이 부족하면 자기 맘대로 안 됩니다. 습관과 업력에 끌려 다녀요..
아따 아침에 일어나서 졸지 말고 선 좀 하라는데 습관 때문에
못일어나고 겨우 앉았는데 졸고 앉아있고.. 이게 습관의 힘이다. 업력
이라고 한다. 이제 답을 알면서도 안 된다는 것이죠.. 그 업력의 힘이
무섭습니다.
거기다 제일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은 원망 생활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루 동안에 내 마음에 원망심이 많은가? 적은가?를 대조해
보시면 알아요. 내가 낙생활을 하느냐? 아니면 고생활을 하느냐?
내가 불평불만이 많고 얼굴이 찌푸려져 있다면 그것은 내가 원망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의 수양력이 제대로 안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내가 낙원을 맞이하지 못한 것입니다.
- 그러므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
자. 여기서 진리적 종교라고 했죠? 진리가 뭐예요? 신앙의 대상이
진리입니까? 주산종사님이 진리를 이렇게 표현해주셨습니다.
‘고금을 통하여 변함이 없고. 두루 해도 다함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어디서나 다 통할 수 있다.’ 그것이 진리이다. 어떤 때에는
진리 같아도 세월이 지나면 웃음거리가 되고 아닌 소리가 되면 그건
진리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종교라는 것은 종지를 내세워 일체 많은 생령들을 교화하는 것이 종교다.
그런데 그 종교를 내놓는 것은 유교는 중도로써, 불교는 깨달음으로써,
도교는 도로써, 기독교는 하나님으로써, 원불교는 일원의 진리로써..
종지를 세워서 많은 생령들을 고통의 삶이 아닌 복락의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진리적 종교와 종교적 종교는 다르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어떤 사람은 교조적 종교다. 예수님이 말한 종교, 노자님이 말한 종교,
서가모니 부처님이 말한 종교. 이런 종교적 진리와 진리적 종교는
다릅니다. 그 종교에서만 말한 진리가 아니라 진리 본체, 자체를 말한
종교여야 한다. 그래서 원불교는 일원상을..
진리 자체 덩치를 모셔놓은 것입니다.
우리 원불교도 종교적 진리라면 대종사님을 여기 앞에 모셔놓으면
됩니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은 신앙을 인격화, 의인화해야 존경심이
일어납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은 진리적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고
어떤 자타력을 병진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어떤 하늘에 계신 따로 존재. 그 대상이 신앙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우주만유 전체가 다 신앙의 대상이다. 개체가 아닌 전체
신앙이다.
옛날에는 미신 신앙이었지만, 이제는 사실 신앙이다. 옛날에는 바다에서,
당산 나무에서, 하늘에서, 부처님 불상에서 무슨 죄복이 나오는 줄 안다.
그것이 아니라 이제 당처 당처에서 다 죄복이 나온다. 내가 만나는
대상을 기분 나쁘게 하면 나한테 기분 나쁘게 한다는 말입니다.
돈을 벌려면 손님에게 잘해야 합니다.
이제는 미신적 신앙이 아니고 사실 신앙이다. 형식 신앙이 아니라 진리
신앙이다. 어떤 불상이라는 형식이 아니고 인과의 진리, 마음의 진리,
진리 자체의 신앙이다. 종교적 진리나 교조적 진리가 아니라 진리적
종교이다.
그 다음 사실적 도덕의 훈련은 비사실 또는 관념적 도덕이 아니다.
우리는 도덕하면 관념적 도덕이 많습니다. 어떤 명분, 도덕적 어떤 관념,
형식이 아닌 사실에 바탕한 도덕이다. 사실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원불교의 어떤 훈련을 제일 잘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낙원 생활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훈련을 잘하는
것이냐? 먼저 진리적 종교의 신앙입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을 바탕
위에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해서 실질적 소득을 걷어내야 한다.
그러면 제일 짧게 말하면 순간 순간에 내 마음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루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즉, 기질 변화가 되었느냐?
안되었느냐? 입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관념적인 것은 기질 변화가 안된 거잖아요? 얼굴 표정이 바뀌고
내 습관이 바뀌고 내 일과가 바뀌고 내 삶의 태도가 바뀌고 내 세상의
바라보는 가치와 이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결국 훈련은 트레이닝이야.
트레이닝은 ‘~ing’가 붙었잖아요. 계속 하는 것이고, 우리말로
반복입니다. 반복이란 소리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커나간다. 그게 정신
세력의 확장이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반복을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바뀌냐. 범부가 성자가 되는
것이다. 훈련을 통해서… 보통급 특신급 상전급을 넘어서 항마위 출가위
여래위로 바뀌어 나간다. 이것이 훈련의 효과다. 그 훈련을 제일 잘하는
것은 먼저 정기훈련을 깊이 있게 받아야 하고 직장, 가정, 사회,
교당에서 지속적으로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상시훈련이다.
상시훈련을 더 쉽게 말하면 일과에서 훈련이다. 원불교를 만나서 아직도
아침에 퍼자고 있다. 이것은 사실적 훈련이 아니에요. 저녁 늦게
텔레비전을 보다가 잔다. 이건 원불교의 사실적 훈련이 아닙니다.
사실적 훈련이라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이 실지로 삶에서 바뀌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아침에는 온전한 정신을 가지기 위한 수양 시간을
갖고 저녁엔 참회 대조 시간을 갖고 낮에는 죽어라 보은해라. 일심으로
해라. 그래서 그 직장 내에서 보은하는 것이 일심이 되고 일심하는 것이
보은하는 것이 되고. 이것이 원불교의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다.
그것이 바로 삼학 공부이죠.
그런데 원불교 만나서 법문 잘하네, 교리가 좋네. 생활 종교인 것 같네?
이렇게 한번씩 교당에 와서 마사지 받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 하는 짓거리죠. 원불교에서 원리 배워서 직장과 사회에서
그 마음을 갖다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쉽게 안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잘 안되거든요.
그래서 하루 일과를 일기로 유무념을 잡아서 해야 합니다. 하루 중에
한꺼번에 다 못하니까 유무념을 잡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좌선을
잘합니까? 일어나는 것부터 합니다. 일어나려니 몇 시에 자야겠다.
아침에 선을 하고 졸아도 괜찮아. 그 다음에 자세를 바로 잡겠다는 것을
유무념으로 잡습니다. 눈을 뜨겠다. 그 다음에 호흡을 제대로 하겠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단계적으로 잡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유무념을 편 떼기라고 했습니다. 땅 따먹기 해보셨죠? 우리가
어릴 때 땅 따먹기를 하면 조금씩 조금씩 따먹었죠. 이것을 편 떼기라고
합니다. 이것이 유무념입니다. 유무념이라는 것은 포커스를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업에서는 전략이라고 한다. 무엇을 선택해서 거기다
집중하는 것이다. 어떻게 다 잘합니까? 그 중에 내가 약속을 못 지키면
약속 지키는 것을 유무념으로 잡아서 확실히 길들어질 때까지.. 습관이
될 때까지 고쳐나간다. 내가 먹는 것 조절이 잘 안되면 그것을 잡아서
계속한다.
근데 며칠 하다 안 하는데 그건 왜 안 해요? 의지가 부족해서도
그렇지만 체크를 안 하니까 그렇습니다. 체크하는 것이 일기법입니다.
혼자 체크하면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니까 일요일에 교당에 와서 점검
받아라. 그래도 안되니까 훈련 때 받아라. 그리고 연말에 신분검사
받아서 매 3년마다 검사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종사님은
징그러워요. 끝까지 하게 해놓았습니다.
총서편을 하기 위한 교의편이에요. 설계도입니다. 교의편을 하기 위한
수행편이에요.. 한 개인이 성공하고 성공 못하는 것은 구체화와
집중력의 문제인 것 같아요. 두리 뭉실한 사람 일 못해요. 일 시켜보면
알아요. 6하의 원칙이 빠지면 안되요. 구체화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삼학 공부에요.
원불교의 낙원은 일체 생령의 광대무량한 낙원이다. 사람을 넘어서서
일체 생령. 영이 있는 유정물은 모두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광대무량한
낙원 이것이 참 중요한 얘기인데, ‘내 마음 편하려고 종교에 왔는데
교무님은 왜 사람 일 시켜서 더 괴롭게 만드세요?’ 왜냐하면?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럽니다.
광대무량이라는 것은 어느 지역만이 아니라, 자신만이 아니라, 어디나
누구나입니다. 어디나 누구나 낙원을 맞이한다... 그 낙원은 아까 말한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고통과 아픔이 다 있습니다. 고통이
있는데 그 고통 속에서 낙을 발견할 수 있는, 더 나아가서는 그 낙마저
초월해 버리는 낙. 이것이 바로 낙원이다.
이것은 어떻게 해야겠어요.. 마음을 알아야 한다. 마음을 알아서 그
마음을 지키고 그 마음을 써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광대무량한 낙원은 양면으로 밝혔습니다. 나눠 드린 것 보세요.
대산종사님이 잘 정리해 놓으셨는데.., 광대무량은 양쪽이 다 낙원이라는
말이다. 오른쪽을 보면.. 물질 개벽. 과학문명이죠. 의식주 생활이
개선하고 빈곤과 무지 질병을 물리쳐서 외적으로 일생의 신낙원이다.
몸의 낙원이다. 의식주 과학을 통해서…
왼쪽을 보면 정신을 개벽해서 도덕문명을 다시 세워서 삼학팔조로
마음을 개조하고 사은사요로 세상을 건져야 한다. 안으로 영생의
도덕문명이 아주 발전해서… 그런데 가난했죠.
요새는 외적으로 잘살지만 도덕이 빠졌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다 병진을 해서 지상의 낙원.. 이것을 제대로 해야겠다.
광대무량한 낙원이라는 말이 불교로 이야기하면 성불제중이나
제생의세와 똑 같은 이야기입니다. 좀 더 자세히 하면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낙원이 되는 것입니다. 인도라는 말을 썼죠? 따로 파라다이스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내가 맞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오염된 물을 강에 버리면 고기를 죽이고 모래가 썩고 강가의 풀까지 다
죽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돌연변이 생기고 맑은 물 다 더럽힙니다.
아무리 더러운 곳이라도 원천수가 있어요. 계속 맑은 물이 나오면
깨끗해집니다. 다 살려버린다. 그 원천수가 바로 삼학팔조 사은사요다.
우리의 낙원은 온전한 정신, 사리를 제대로 판단하는 마음, 내가 습관을
넘어서서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힘. 더 나아가서 우주의 사요가
중요합니다. 낙원이라는 것은 먼저 자력이 양성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
지자본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쳐야 한다.. 타자녀를 가르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 맨 마지막에
공도자 숭배입니다. 공익정신. 공도주의. 참 중요합니다.
저도 이거 해보니까 힘드네요. .뭣 모르고 했는데.. 모든걸 다 잘해야 해..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되도 욕얻어 먹듯이 교무도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재미가 훨씬 더 많습니다.
공도자가 환영 받는 사회가 되어야 낙원사회가 됩니다. 공도자가
외롭거나 공도자가 가난하거나 공도자가 슬프거나 공도자가 괴롭거나
공도자를 힘들게 만들면 낙원사회가 아닙니다. 또 공도정신이 골라져야
낙원사회가 됩니다. 여기까지 질문 있으면 해주세요.
===================== 질문 과 답변 ====================
Q_최성양: 옛날보다 지금이 과학문명이 발달하는 속도도 빠르고
물질문명의 지배를 받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과학문명의
발달은 더 빨라질 것이고 물질의 지배도 더 많이 받을 텐데 그것이
종교로서 극복이 되는데 한계점이 있는지 끝까지 종교로서 치유가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A_교무님: 대종사님은 앞으로는 종교를 위한 종교는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울을 다 트고 남녀, 재가출가
구분 없는 용화세상을 꿈꾸신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지가 열려가면 그렇게 된다.
전망품에도 이미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제는 신앙적으로 처처불상의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다녀서 알잖아요. 일반사람들은
죄인이랍니다. 오직 완벽하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원불교는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처불상의 시대이고 미래
사회의 종교 모습입니다.
옛날에는 영웅호걸이 어리석은 대중을 속이기도 하고 억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안됩니다. 보세요. 인터넷이 그 증거인
것 같아요. 싹 드러나버리잖아요. 요새 교통법규 잘 지키죠. 왜 그래요?
카메라가 있잖아. 그런데 더 나아가서 이제 사람들이 인과의 진리라든가,
아니면 자기 자신의 참 행복에 대해서 찾게 됩니다. 다시 어떤 물질이
위주가 되어서 양심을 팔아먹는 시대가 아니라, 자신의 본심을 회복하는
시대가 와서 물질문명을 잘 활용 할 것이다. 원불교는 물질문명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해서 쓰자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교법의 총설을 공부할 것입니다.
어떤 교법으로 그렇게 할 것인가가 나옵니다.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타이핑:
편 집:
|
첫댓글 이번주도 참 감사합니다!^^
언제나 공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화이팅~
"자신의 본심을 회복하는 시대가 와서 물질문명을 잘 활용 할 것이다."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