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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이어령의 단편소설 <장군의 수염>이 발표됐을 때 한국 사회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1965년 미국의 압력으로 단행된 ‘한일국교정상화’로 촉발된 사회-정치적 불안정의 파장은 문화-예술계까지 파급되었다. 1965년 단편소설 <분지>로 소설가 남정현이 중앙정보부에 소환돼서 고문받고, 검찰에 송치되었다가 석방된다.
사정당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1966년 남정현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기에 이른다. <분지>가 반미사상을 부추겨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에 동조한 작품이라는 것이 검찰의 기소 요지였다. 이때 33살 청년 비평가이자 소설가 이어령은 피고 측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한다. 그가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은 오늘날에도 음미할 만하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저항이다. 아무리 평화 시대라 해도 작가는 저항성을 지닌다. 병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자는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자는 놀라지 않는다. <분지>는 소설이지 신문 기사가 아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1965년 국교 정상화로 얻어낸 5억 달러와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베트남 파병으로 물적 토대를 확보한다. 이런 자신감에 기초하여 군사정권은 1967년 ‘동백림사건’을 조작하여 이념공세를 펼친다. 거기에 기름을 끼얹은 사건이 1968년 1.21사태였다. 그에 대응하여 군사정권은 같은 해 684부대(실미도 부대)를 창설하고, 12월 5일에는 <국민교육헌장> 제정으로 전면적인 국민 사상개조 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른다. 그 모든 것은 1969년에 실행된 이른바 ‘삼선개헌’을 위한 밑거름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68년에 <사상계>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이 ‘불온시 논쟁’을 펼쳤다는 점이다. 진보 진영의 대표 시인 김수영과 떠오르는 신예 비평가 이어령의 논쟁은 당대 지식인 사회의 참여문학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보자.
“우리나라 문화인이 허약하고 비겁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을 그렇게 만든 더 큰 원인은 정치권력의 탄압이다. 해방 직후와 4.19 이후를 회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불온성은 예술과 문화의 원동력이며, 인류의 문화사와 예술은 불온의 수난을 담은 역사다.” (김수영)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 자신들의 소심증에 더 많은 책임이 있다. 불온한 작품이 서랍 속에 있는 한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을 밖에 내놓을 때 비로소 그 문학은 참여하는 것이다. 봄이 오듯 영광된 사회는 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참여의 본질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는 것이다.” (이어령)
오늘날에도 의미가 적잖은 참여 논쟁은 1968년 6월 16일 김수영 시인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일단락된다. 영화 <장군의 수염>은 이런 사회-정치적인 상황에서 1968년 9월 14일 서울 충무로의 명보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주인공의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의식과 생활방식 때문에 흥행에 실패할 것이란 세간의 평가는 10만 관객 동원으로 완전히 어긋나 버린다.
사진기자 김철훈
<장군의 수염>을 각색한 이는 당대 모더니즘 소설로 이름을 날리던 김승옥이었다. 그는 23살이던 1964년 <무진기행>을 발표했고, <서울, 1964년 겨울>로 1965년에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1967년 개봉된 영화 <안개>는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것이었는데, 김승옥 자신이 각색을 담당했다. 1968년에 김승옥은 영화 <장군의 수염>으로 대종상 각본상을 받는다.
<장군의 수염>은 추리물 형식을 가진다. 전직 사진기자 김철훈이 세 들어 살던 방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노련한 박 형사와 후배 형사는 열린 난로 뚜껑으로 새어 나온 연탄가스를 사인(死因)으로 보고 타살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들은 소설가와 신문사 동료, 정 박사와 미지의 여인 나신혜 등을 수사선상에 올리면서 철훈의 행적을 추적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의 예심판사 포르피리처럼 그들은 여러 각도로 철훈의 생각과 삶의 행로를 따라간다. 그리하여 철훈의 가족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인식과 세계관이 조금씩 관객에게 밝혀진다. 북(北)에 터를 둔 명문가이자 대지주였던 권위적인 아버지와 해방 이후의 토지개혁, 맏아들의 저항과 멸문지화(滅門之禍)의 상황.
어린 시절 철훈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한다. 그것은 엄격한 아버지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사대부 자손이 상놈들의 자식과 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이 어린 철훈이 겪어야 했던 타의적(他意的)인 소외와 고독은 오래도록 심리적인 상흔을 남긴다. 아울러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인두로 인해 얻은 이마의 상처는 성인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는다.
철훈은 내재적이고 외재적인 상처를 가진 채 성장했으며, 양자는 철훈의 생애 마지막 지점까지 동행한다. 그에게는 마음을 나눌 친구 하나 없었고, 급변하는 세태에 적응하지 않으려는 그의 의식적인 노력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인물도 없었다. 1960년대를 살아간 한국 사회의 ‘외로운 늑대’ 철훈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만화영화가 <장군의 수염>에 등장한다.
<장군의 수염>과 만화영화
1960년대 한국 영화에서 ‘만화영화’를 도입한 경우는 처음인 듯하다. 한국 만화영화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신동헌 감독이 주인공이다. 1927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인 그는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영화관용 만화영화 <홍길동>을 연출하여 50만 관객을 동원한다. 1967년에도 그는 만화영화 <호피와 차돌바위>를 연출하여 28만 관객을 모은다.
<장군의 수염>에 도입된 만화영화는 21세기 20년대 관점에 보아도 전혀 낡지 않은 수작(秀作)이다. 독립을 위해 투쟁한 위대한 장군이 그를 추종하는 군인들과 함께 말을 타고 독립국의 수도로 진군한다. 장군에게는 거대한 수염이 달려 있었고, 독립군도 하나같이 수염을 기르고 있다. 수염과 독립은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모든 국민이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다.
단 한 사람만은 수염을 기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심한 그는 사람들에게 소외되어 실직하고 추적망상에까지 빠진다. 그는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당하고 추적망상에 시달린다. 경찰서에 들러 자수하러 왔다고 하지만, 수염을 기르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란 말만 돌아온다. 모두 수염을 기르는 판에 수염을 기르지 않겠다는 나약한 시민의 마지막 길은 무엇인가?!
수많은 사람이 불빛을 따라 날아다니는 부나방처럼 떠도는 세태에 홀로 성성(惺惺)하게 깨어 독야청청 살아가려는 인간이 마주해야 하는 최후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196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사로잡은 전체주의의 망령에 대한 청년 지식인 철훈의 미소(微小)한 저항은 아니었을까?! 시류(時流)에 휩쓸리지 않는 영혼과 정신을 지키려는 처절한 싸움 아니었을까?!
나신혜와 김철훈
60년대 흔한 풍경 가운데 하나가 경찰이 불시(不時)에 불법 댄스홀을 급습하는 것이다. 이때 경찰은 사진기자들을 대동하기 일쑤였다. 텔레비전과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곤 했던 댄스홀 고객들은 탈선한 중년 남성들과 신분 상승을 꿈꾸는 배고픈 젊은 여성이었다. 그런 장면 하나가 절실하게 화면에 잡히고 신혜가 호송차에서 애절하게 구원을 호소한다.
자신을 대신하여 반신불수 아버지를 며칠 동안 수발해달라는 신혜의 부탁을 선선히 들어주는 철훈. 우리는 여기서 신혜의 가족사와 만난다. 영화 장면은 충남 아산 출신 이어령과 무관한 북의 풍경을 다시 보여준다. 독실한 목회자로 살아온 신혜의 아버지는 6.25 한국동란 당시 국방군을 숨겼다는 혐의로 인민군에게 가혹한 고문을 받고 반신불수가 된다.
자신이 길러오던 동리의 어린아이들 목숨과 부상한 국방군 병사들의 생명 가운데 양자택일해야 했던 나 목사. 그런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신혜는 신(神)과 종교에 거리를 두고 인간적인 삶을 추구한다. 사랑과 물질적인 풍요에 기초한 그리고 이념적인 지향이나 잣대가 없는 평범한 인생을 꿈꾸는 신혜. 그녀가 없는 시공간에서 철훈은 나 목사와 의기투합한다.
굴곡진 삶의 굽이에서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인간적인 유대와 완전한 소통을 처음으로 이룬 철훈의 얼굴은 그야말로 보름달처럼 환하다. 그녀가 귀환하기 직전에 나 목사는 숨을 거두고, 신혜는 철훈과 동거를 시작한다. 철훈은 그들의 남루한 이층 셋방을 ‘난파선’으로 규정한다. 난바다에서 항해하다가 암초를 만나 좌초한 배에 살아남은 두 사람 철훈과 신혜.
무엇을 고해(告解)할 것인가
<장군의 수염>에서 관객에게 낯선 기법은 주인공 철훈의 잦은 독백이다. 승인받지 못한 자신의 내면세계나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 혹은 선택이나 세계관이 곳곳에서 독백 형식으로 화면 밖으로 송출된다. 이런 까닭에 <장군의 수염>은 당대나 지금이나 일반적인 관객의 눈에서 보자면, 상당히 이질적이고 영화답지 않은 영화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철훈의 독백은 소설가의 적극적인 개입이나, 극작가의 지문처럼 주인공의 내면 풍경을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독백과 더불어 철훈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이 고해 놀이다. 천주교의 ‘고해성사’에서 따온 고해 놀이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과오(過誤)를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다. 유희로 시작된 고해 놀이는 진정한 자기성찰이자 학대로 뒤바뀐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기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1762년에 출간된 <에밀>에서 루소는 인간을 괴롭히는 두 가지 원천을 말한다. 양심의 가책과 육체적 고통이 그것이다. 나이 들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양심의 가책과 육체적 고통이 없는 사람이라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신혜는 고해 놀이를 강요하는 철훈을 더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녀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이른 것이다. 그가 쓰고자 했던 소설 <장군의 수염> 결말을 듣고 난 신혜는 그와 함께했던 누추하고 허름한 이층 공간을 훌훌 벗어난다. 거리에서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방패연이다. 언젠가 철훈이 하늘 높이 날린 방패연이 누더기가 된 채 전선(電線)에 걸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다.
자신을 조였던 과거의 망령과 난파된 현재를 훌쩍 벗어나 화사한 꿈과 머나먼 미래로 날아가기를 바라고 날렸던 방패연. 높푸른 하늘을 박차고 날아올라 미지의 먼 곳에 도달하리라고 믿은 철훈이 의기양양하게 날린 방패연. 하지만 방패연은 어느 사품엔가 줄이 끊어져 술에 취한 듯 빙빙 돌다가 누추한 대지로 곤두박질치다가 전선에 걸렸던 것이다.
절망일까 아니면 희망일까
철훈의 죽음을 타살로 생각했던 박 형사는 조금씩 생각을 바꾼다. 마침내 그는 현대사회의 고독과 소외를 죽음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1960년대 세상과 인간과 절연(絶緣)하고 마침내 자살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지식인 청년 철훈의 내면을 속속들이 이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철훈을 죽인 것은 1960년대 전체주의 한국사회의 모진 냉담함과 무관심이었다.
하지만 철훈 한 사람이 세상과 작별했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도 통곡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무연하게 어제나 그제처럼 물처럼 흘러가기만 한다. 여기서 누군가 죽어 나간다면 저기서는 누군가가 태어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닌가. 철훈이 삶과 인연을 끊었다면, 신혜는 철훈이 결석한 세상에서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전혀 다른 생을 살아갈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박 형사는 큼지막한 수박 한 덩이를 산다. 한여름의 양광(陽光)이 터질 것처럼 화면을 가닥 채운다. 눈이 부셔서 박 형사는 손으로 가림막을 만든다.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독백이 흘러나온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면 애새끼들이 좋아하겠군. 마누라도 그렇고.” 이런 식으로 산업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소시민들의 삶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절망의 끝이 희망이라거나, 희망의 대단원이 절망이라는 이분법적 대립항은 허망하다. 절망은 희망과 공존하며 늘 동행이다. 절망의 손바닥을 뒤집으면 희망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듯. 인연 따라 이루고, 인연 따라 흩어지는 인간 세상의 미몽(迷夢)은 예나 지금이나 연면부절(連綿不絶)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
불귀(不歸)의 먼 길 떠난 철훈을 애도하며, 재생(再生)의 길로 훌쩍 나아간 신혜의 앞날을 축복한다. 그대들이야말로 2020년대 우리의 쓸쓸한 과거이자 영원한 미래 아니겠는가?! 안녕히!
이어령과 김수영
여기서 다시 한번 철훈이 쓰려던 소설 <장군의 수염>을 생각한다. 식민지를 독립국으로 만들어낸 장군이 훗날 각하가 되어 나라의 대표자가 된다. 그를 추종하던 군인들뿐 아니라, 온 국민이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낸 표상이 수염이다. 나라의 독립이 마치 수염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전도된 세계가 주인공 앞에 펼쳐진다.
세상의 모든 남성은 수염을 기르지만, 그만은 수염을 기르고 싶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수염 없는 그를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지만, 소시민 근성에 포박된 그는 스스로 소외의 길을 택한다. 추적망상에 시달리던 그가 이슬비 뿌리는 여름밤에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운전기사 얼굴은 장군의 수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망막이 점차 뿌옇게 흐려져 간다.
어디선가 멀리서 아이들의 노래가 들린다. 그런데 아이들의 얼굴에까지 작은 수염이 매달려 있다. 아, 이건 아닌데 하면서 주인공은 눈을 감는다. 마침내 그는 죽은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철훈의 삶 역시 난파선 조각처럼 떠돌다가 종착점에 도달한다. 관객은 이 지점에서 철훈의 삶과 소설 주인공의 삶을 비교하면서 의식 있는 당대 청춘의 초상을 되새긴다.
정치권력이 국민 전체의 침묵과 동의를 요구할 때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청춘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이어령은 묻는 듯하다. 여기서 불온시 논쟁을 벌인 두 사람, 김수영과 이어령을 소환해야 한다. 김수영은 지식인을 나약하고 무력하게 만든 본질은 정치권력에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이 아무리 투쟁한다 해도 정치권력의 강고한 위력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어령은 투사처럼 싸우는 지식인이 상황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각자 맡은 영역에서 참여를 통한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기자 철훈과 그의 분신처럼 보이는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가?! 그는 다수가 지배하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소극적인 저항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반향도 없이 비극적인 결말로 종결된다.
이제 수염은 어린것들까지 집어삼켰다. 출구가 봉쇄된 세상을 확인하고 주인공이 무너진 것처럼 철훈도 세상과 작별한다. 모래알처럼 부스러진 개개인의 투쟁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어령이 도달한 것이다. 거대한 정치권력의 폭압에 맞서 싸우는 개인의 행태는 영웅적일 수 있지만, 그것은 극악무도한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장군의 수염>을 집필할 1966년의 이어령과 불온시 논쟁이 펼쳐진 1968년의 이어령은 차이가 있는 셈이다.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었다면, 어차피 이어령도 김수영의 사유와 인식에 동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패배와 파멸을 알면서도 온몸으로 부딪쳐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필연의 선택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전방위적으로 밀어닥치는 권력의 폭압에 작은 돌이라도 던질 것인가, 아니면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것인가, 혹은 제3의 선택지를 생각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