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1월 29일(수)■
(예레미야 9장)
10 내가 산들을 위하여 울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라
11 내가 예루살렘을 무더기로 만들며 승냥이 굴이 되게 하겠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
12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 같이 불타서 지나가는 자가 없게 되었느냐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14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16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 그들을 흩어 버리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해 보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18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19 이는 시온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거처를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
20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하게 하고 각기 이웃에게 슬픈 노래를 가르치라
21 무릇 사망이 우리 창문을 통하여 넘어 들어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들을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22 너는 이같이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 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버려져 거두지 못한 곡식단 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묵상) ◇ 조상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따른 대가
선지자란 말 그대로 먼저 안 자다. 10절은 아직 닥치지는 않았으나 미래에 예루살렘이 폐허가 될 것을 미리 본 선지자의 탄식이다. 예루살렘에 가축 한마리 남지 않고, 심지어 새와 짐승도 다 도망해버린 황량한 곳이 되어버렸다.
11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언서는 이렇게 화자가 갑자기 바뀌어버려서 잘 읽을 필요가 있다. 종이가 없고 글쓰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기에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것은 생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12절이 예레미야의 질문이라면, 13절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하나님에게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기 때문이다.(14)
조상들이 가르쳤다는 것은 곧 그들의 전통이 된 것이다. 조상때부터 내려온 전통을 버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서 잘못된 전통은 과감하게 버렸어야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것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책망하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대항했다. 이것이 오늘날 명백한 하나님 말씀 앞에서도 고개를 처들고 전통을 고집하며 변명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레미야 시대에서 대략 900년 전에 모세를 통해서 이런 경고를 하셨다.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진대(14)...놀라운 재앙을 내려... 쇠약하게 할 것이요...그렇게 되어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면(18)...너희를 칠 배나 더 징치할지라.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를 대항할진대(23)...너희를 칠 배나 더 칠지라...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대항할진대(27)...칠 배나 더 징책하리니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레 26:14-39)
이 재앙의 기하급수적인 크기를 보라!
회개치 않으면 재앙이 닥치고, 그리고도 회개치 않으면 거기에 7배, 그래도 회개치 않으면 거기에 다시 7배, 또 7배...이것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다. 단순 계산으로 한다면 무려 343배의 재앙이 닥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무리 경고하고 경고해도 회개치 않고 끝까지 버티며 고집을 부린 완고함의 처참한 결과다.
지금 이스라엘에게 닥치는 징책은 바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경고의 성취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어도 아무 문제없었다는 과거 경험은 이제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그런 경험이 독이 되었다. 터지는 순간에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다.
◇ 잘 생각해보라
하나님께서는 '잘 생각해 보라' (17)고 하신다. 무엇을 생각하란 말인가?
지금은 울어야 할 때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통곡해야 할 때다. 그런데 눈물이 나지 않고 회개할 마음도 없다. 그저 당장의 환경과 미래에 닥칠 고난에 화만날 뿐이다. 이럴 때 적어도 그 마음에 좁쌀 한 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회개해야 할 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통곡하도록 곡하는 부녀라도 불러서 도울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회개치 않는 이 고집세고 교만한 마음을 용서해달라고 억지로 울부짖기라도 해야 한다. 우리가 통곡한다면 이미 결정된 징계를 돌이킬 수는 없어도, 어쩌면 하나님의 긍휼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교만과 우상숭배를 가슴 아파하고 회개하는 것보다는 남들의 죄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며 가슴을 치는 것이다. 나 자신이 책망받고 있는 백성임을 잊어버리고, 선지자 자리에 앉아서 남을 판단하고 책망하며 선지자 행세를 한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을 기회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다.
나 자신을 돌아보라. 나는 제대로 서 있는가?
예루살렘에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단 한명이 없어서 망했다. (렘 5:1)
두 명이라도 요구하셨다면 남 탓할 수 있다. 그런데 단 한명을 요구하시는데 누굴 탓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 한사람이 되기를 거절하면서 누굴 원망하겠는가?
나는 목사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장로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이 없고 비판할 권리만 있다는 생각은 교만한 생각이다.
멸망은 그들만의 죄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백성들의 죄도 포함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백성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백성으로서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주님, 이 사회가 망하는 것은, 이 교회가 망하는 것은 남 탓이 아니라, 내가 똑바로 못 서 있는 탓입니다.
저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십시오. 통곡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저의 교만과 자기자랑이 철저하게 깨지게 해주십시오. 나 하나일지라도 정신차리고 분별하며 제대로 믿음에 서서 걷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함께하는 자가 둘이 되고 넷이 되며 무수히 많아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