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기가 잠에서 깰 즈음, 내국인 선수와 외국인 선수가 피부색과 국적으로 차별받지 않는 프로야구가 돼있을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아군이 이럴진대 상대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상대팀 투수는 로빈슨을 향해 침을 뱉었다. 안타라도 맞으면 “빌어먹을 검둥이”하며 욕을 했다. 로빈슨이 2루 수비를 볼 때면 상대팀 주자들의 스파이크는 루가 아니라 로빈슨을 향했다.
인종차별도 그런 인종차별이 없었다. 그러나 로빈슨은 말이 없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자신의 플레이에만 집중했다. 동료의 시선이 바뀌었다. 상대팀도 그를 같은 선수로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빈슨이 퇴장을 당했다. 심판 판정에 항의한 까닭이다. 생경한 장면이었다. ‘순둥이’ 로빈슨이 심판에게 항의하다니. 하지만, 그보다 이상한 게 있었다. 로빈슨의 표정이었다. 표정이 밝았다. 퇴장을 기뻐하는 눈치였다. 동료가 물었다.
“이봐, 로빈슨. 왜 실실 웃는 거야? 너무 기분이 나빠서 그래?”
로빈슨이 심판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아니. 저 심판 말이야. 내 피부색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퇴장을 시키더라고.”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사진 가운데)(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7월 15일 목동 KIA-히어로즈전. 한 외국인 선수가 속에 쌓아뒀던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스트라이크존”이라며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스트라이크존이 빅리그보다 넓다는 건지 좁다는 건지 보충설명은 없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이었다. “한국 심판들이 외국인 선수에게만 불리하게 판정한다.”
국내 상주 외국인이 150만 명을 넘었다. 한해 국제결혼이 전체 결혼의 12%를 차지한다. 그과거 혼혈인을 가리키던 ‘튀기’라는 말은 사어가 된 지 오래다. 외국인을 보며 곁눈질을 하던 시대도 지났다. 그래서인가. 여기저기서 다문화 시대의 도래를 알린다.
야구계도 예외가 아니다. 프로야구야말로 다문화 시대의 축소판이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래 올 시즌까지 한국땅을 밟은 외국인 선수는 총 194명이다. 타이론 우즈, 훌리오 프랑코, 펠릭스 호세, 매트 렌들 등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 선수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다. 한국프로야구의 질적 향상에도 일조했다.
외국인 지도자도 만만치 않다. 올 시즌 1, 2군 코치와 트레이닝 코치 그리고 정기 인스트럭터까지 합치면 외국인 코치는 스무 명가량이 된다. 적지 않은 수다. 따지고 보면 1982년 프로야구가 태동할 때부터 한국야구는 외국인 지도자들의 노하우를 받아들였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메이저리그 출신 지도자였던 마티 디메리트 전 삼성 투수코치. 그가 체인지업과 스플리터를 전수하지 않았다면 한국야구는 지금도 커브와 슬라이더가 변화구의 전부일지 모른다. 과거 쌍방울의 주루코치였던 조 알바레스는 또 어떤가. 그가 “두려움 없이 뛰라”고 외치지 없었다면 한국야구에서 ‘뛰는 야구’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거나 먼 미래의 일로 간주했을 것이다.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는 수년 전부터 중남미에서 어린 유망주들을 데려와 육성하고 있다. 한국야구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분명한 건 국내 프로야구에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외국인선수를 가리켜 흔히 ‘용병(傭兵)’이라고 한다. 용병은 ‘돈을 주고 고용한 병사’라는 의미다. 국가간 스포츠 경기를 ‘전쟁’으로 칭하고 국가대표팀을 감독의 성향을 따 ‘함대’ ‘사단’으로 표현할 때 스포츠의 다양성은 사라진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극단적 스포츠 문화에서 용병의 가치는 오직 성적으로만 판단될 터. 다른 건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부상을 숨기는 외국인 선수가 많은 게 현실이다. 사진은 삼성 양준혁과 외국인 선수 루넬비스 에르난데스. 얼굴 크기가...(사진=삼성) |
반면 국내 야구관계자들은 외국인 선수와 지도자에게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한국야구를 더 존중하길 바란다. 그러나 로마법에 따르려면 로마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존중받고 싶으면 상대 먼저 존중하는 게 기본이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조종규 KBO 심판위원장이 로이스터 감독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심판들의 뜻을 정중히 전달했다. “항의를 줄여달라”라는 내용이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설명을 듣고 나니 합리적인 요구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올 시즌 로이스터 감독의 항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심판들도 안다. 사실 심판들은 로이스터 감독을 좋아한다. ‘항의는 많아도 선을 넘지 않는 이’로 통하기 때문이다. 롯데 야구가 선이 굵은 이유다. 경기가 단순하게 전개되는 까닭이다.
서로 오해를 줄이는 방법은 끊임없는 소통밖에는 없다. 무엇보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다문화 시대에 발맞춰 외국인 선수와 지도자를 바라보던 그간의 시선을 한 번쯤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국인 감독에게 반말해도 무방한 시대가 오지 않는다면, 외국인 감독에게 반말하는 시대는 중단돼야 한다. 그와 같은 의미로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한국프로야구에서 뛴다면 판정의 기준은 당연히 한국이어야 한다.
이 평범한 진리가 현실을 지배하는 날이 올 때 프로야구는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