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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02
$#1. 복도
수연이 소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병실 문 앞에 굳은 듯 서있다.
$#2. 병실
초췌한 모습의 소희가 중년에게 냉정하게 몰아치고 있다.
소희 가, 너 싫어.
중년 소희야, 왜 그러니? 아파서 그러지, 이 녀석. (팔을 잡으려 한
다)
소희 (뿌리친다) 어디다 손을 대, 감히? (냉소한다) 내가 너 같은 늙
은이하고 평생을 살 줄 알았지?
중년 이 녀석, 몹쓸 말만 하네. 네가 좀 예민한가 보다.
소희 (링겔병을 당겨 깨뜨린다) 만지지 말라 그랬어요, 분명히...
수연, 달려와 소희의 팔을 잡는다.
수연 소희씨.
소희 저 남자 가라 하세요, 선생님.
중년 (슬픈 눈빛으로 서있다)
수연 (링겔 카데타를 부랴부랴 잠근다)
중년 난 니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소희 ...(냉정한 입매를 연다) 당신이 내 유일한 남자라고 생각해요?
착각이라고 말해드리죠. 알잖아요, 나 그렇고 그런 여잔 거...
중년 모른다, 난.
소희 그럼 지금 아시면 되겠네요. (다른 환자들을 둘러보며) 저 그
렇고 그런 여자예요. 다들 아시는 게 좋겠네요.
중년 (가만히 바라보다 등을 돌린다) 바람 좀 쐬고 와야겠다.
중년의 나가는 뒷모습을 보던 소희.
힘없이 침대에 눕는다.
아무 말 없이 새우처럼 옆으로 몸을 움츠리며..
조용히 감은 눈 위로 계속 눈물이 흘러내린다.
수연 ...시원해요?
소희 (눈감은 채) ...퇴원할래요.
수연 이렇게 무너지는 거 안 좋으네요. 보기 싫으네요.. 소희씨..
이때, 수연 앞에 나타나는 하경.
화들짝 놀라는 수연.
하경 어느 과 선생님인가? 우리 관 아닌 거 같은데...
수연 (일어선다) 네. 전 신경내과 레지던틉니다. 소희씨 다시 들를게
요. (인사를 꾸벅하고 문 앞으로 간다)
이때, 문 앞에서 수연과 맞닥뜨리는 상희.
상희 한수연 선생, 뭐하니, 여기서? 트랜스퍼 환자한테까지 들러붙
어 있을 만큼, 그렇게 한가해?
하경 (언뜻 상희 쪽을 보곤 걸어와 상희의 이름표를 본다) 신경내과
주치의신가? 박, 상, 희 선생?
상희 네. 선생님, 치픕니다.
하경 그쪽에선 의사한테 들러붙는단 표현을 쓰나요? 의사가 껌인가,
들러붙어 있게..
상희, 수연을 보고 하경은 상희를 보고 수연은 하경을 바라본다.
잠시 긴장.
상희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하경 그래주면 고맙지.
$#3. 병실 밖
수연이 나오자마자 벽에 등을 대고 있는 중년 남.
수연, 놀란다.
중년 남 (허공을 바라보며) 우리 소희, 혹시 죽어야 되나요? 선생님?
수연, 아무 말이 없다.
중년 남, 고개를 가로 저으며 힘없이 멀어져 간다.
계속 고개를 가로 저으며...
중년 남 안 되는데. 그럼 안 되는데...
$#4. 수술방 안
순영,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수술준비를 하느라 오락가락 하는 사람들을 쳐다본
다.
겁에 질려서... 태동이 주사바늘을 들고 와 순영 앞에 선다.
태동 이건 뭐냐? (순영 입에 꽂힌 손수건을 뺀다)
순영 (소리친다) 안돼, 비켜. 나 수술 안해. 악, 악, 악.
놀라서 뒤로 물러서다 멀찍이서 다시 손수건을 우겨 넣는 태동.
태동 이 여자, 왜 이러냐?
재봉 정신과에서 트랜스퍼 온 환자예요.
태동 사진 보니까 피까지 터졌는데 피터진 여자가 왜 이렇게 쟁쟁
하냐?
아가씨, 아가씬지 아줌만진 잘 모르겠지만 좀 자요, 응? 자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
태동, 링겔에 마취제를 넣는다.
계속 눈을 부릅뜨고 있는 순영.
태동 저 정신력이면 마취제도 안 듣겠다. 야.
부릅뜬 눈이 가물대는 순영.
인찬이 손수건을 빼낸다.
순영 (가물대는 눈이 갑자기 또렷해지더니 소리지른다) 그래! 짤라
라, 내 머리통. 짤라. 짤라. 짤라...
잦아드는 순영의 목소리, 가물대는 눈동자.
$#5. 스탭의국
형광판에 걸려있는 동석의 MRI.
현우가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하경,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와 현우 앞에 선다.
하경 (사진을 꺼내며) 볼만큼 봤으면 자리 좀 양보해 주시죠, 장선
생님
현우, 흘깃 하경을 보곤 사진을 뽑으려는데 하경이 제지하곤 유심히 동석의 사
진을 본다.
하경 김소희.. 장선생, 너 수술할 의사 없으면..
현우 (거칠게 사진을 뽑으며) 넌 수술이라면 그냥 덤벼드냐?
현우, 신경질적으로 나간다.
$#6. 수술실
수술준비가 끝난 상태로 순영 옆에 무균처리된 수술까운을 걸치고 재봉이 서있
고 상도는 일반 수술복을 입은 채 태동 옆에 서서 태동과 나란히 팔짱을 끼고
섰다.
이미 입혀진 녹색 수술까운 위에 수술장갑을 톡 끼워넣는 남준.
나머지 조끼의 매듭을 묶으며 필름판 앞에 선다.
남준 며칠 전에 나이트 환자랑 똑같으네. 왜 있잖아, 그 남자. 기가
막히게 똑같다.
상도 어, 비슷하네요. 김, 뭐였는데...
태동 머리에 피 터지면 힘도 세지나? 마취하기도 겁나는 여자예요,
저 여자.
남준 여자? 여자 이름이 뭐 이래? 김석출..
재봉, 흠짓 놀라서 필름 쪽으로 간다.
조그맣게 씌여있는 이름을 확인, 눈을 질끈 감고마는 재봉
남준 (수술 의자에 앉는다) 메스.
재봉, 간호사가 메스를 내밀자 자신이 받아 쥐고 있다.
남준, 의아한 듯 재봉을 바라본다.
재봉 과장님.(무릎을 꿇고는 남준의 손을 잡는다) 잘못했습니다.
남준 왜 이래. 얘?
재봉 (일어나 포를 벗겨내면 순영의 잠든 얼굴이 보인다) 이 여잔
김석출이 아니라... 문순영입니다.
눈을 똥그랗게 뜬 상도.
후다닥 가서 필름 꺼내 이름 확인한다.
눈을 질끈 감는다.
남준, 벌떡 일어선다.
아무 말 없이 조끼 벗고, 까운 벗고 장갑까지 벗어 던져버리고는 문을 나셤.
남준 고상도 선생. (상도 쪽으로 얼굴을 반쯤 돌려 눈을 번뜩인다)
거기서 보자.
남준, 수술 방을 나가면 필름판 앞에서 고개를 수긴 채 화를 삭이는 상도.
태동 (팔짱끼고 보고 있다가 유유자적하게 어기적대며 순영의 얼굴
을 들어다 보며 마취레지에게 지시한다) 이 아줌마 깨워라.
(재봉에게 비웃듯) 머리털까지 밀었는데, 빡빡.
재봉, 순영의 맨 머리를 만지작대며 멍청히 서있다.
$#7. 병동 스테이션 앞
준서, 벽 쪽으로 나가떨어진다.
괴성을 지르는 간호사들.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준서.
벽 쪽에 나뒹구는 병원용 식기들.
분에 겨워 씩씩대는 선재 부가 주먹을 쥔 채 준서를 노려보고 있다.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듯 이동 배식대의 식판들을 집어던진다.
선재 모가 선재 부의 팔목에 매달려 선재 부를 말리고 다른 보호자들, 삼삼오오
몰려서 구경만 하고 있다.
간호사들이 전화를 하고 준서에게 다가가려 한다.
선재 부 뭐? 싸인이 어째? 네가 의사야? 우리 아들놈, 처음에 여기 들
어왔을 때 멀쩡했어 간호사 양반들, 당신들도 봤잖아. 머리에
물 찼다고 그것만 빼면 된다 그랬잖아. 근데 어떻게 됐어? 너,
이 나쁜 자식아.
선재 모 (울부짖는다) 선재 아빠, 그만 좀 해, 왜 이래요?
선재 부 놔, 이거, 이 개자식아! 수술 전에 수술 허락서에 보호자 사인
했지 않느냐? 그래서 너 같은 놈이 환자를 죽이던 말던 입 다
물고 가만있어라 그거야?
선재 모 선재 아빠.
선재 부 법정소송이고 뭐고 필요 없어. 내 새끼 죽으면 너도 죽어, 알
어?
간호사들에게 이끌려 오는 경비원의 모습.
경비원 이 양반이 근데, 신성한 병원에서... (선재 부의 팔목을 잡으려
한다)
선재 부 (경비원의 손을 뿌리친다) 놔, 이거.
그래, 눈물나게 미안합니다. 이 신성한 곳에서.. (그리고 벗어
던진 옷을 주워들고 뒤돌아서 씩씩대며 복도를 걸어간다)
준서, 간호사들이 부축하려 달려들자 뿌리치고 천천히 일어나 이마의 피를 닦는
다.
준서 앞에 눈물이 마르지 않은 채 원망스런 시선을 꽂고 있는 선재 모.
그 뒤에 하경이 서있다.
$#8. 대학 체육관
남준이 도복 끈을 묶으며 옷깃을 절도 있게 탁탁 턴다.
상도와 재봉, 그 앞에 나란히 서서 도복차림으로 어깨를 움츠리고 섰다.
상도와 재봉 한사람 한사람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는 남준
그리곤 기합소리와 함께 상도를 향해 달려들고 상도가 공중으로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재봉이 볼새라 재빨리 재봉의 옷깃을 잡아채서 업어친다.
바닥에 떨어지는 상도, 그 위에 떨어지는 재봉.
재봉을 추켜세우는 남준.
남준 부모님이 네게 이름을 지어주셨을 땐 내 자식이 다른 자식의
이름으로 불리워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재봉을 자신의 어깨
너머로 내 던진다, 재봉의 괴성) (상도의 멱살을 잡는다) 사진
에 이름이 새겨진 이유는 그 환자가 그만의 이름으로 불리워
져야 하기 때문이다. (상도를 업어치기 한다, 상도의 괴성) (양
손으로 동시에 둘의 팔을 꺾는다, 둘의 괴성) 왜냐하면 그들의
고귀한 생명과 인격을 우리가 함부로 뒤바꾸어 놓아선 안되기
때문이다.
널부러져 초주검이 된 상도와 재봉.
남준 (도복을 갖추어 입는다) 만일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너희 두 놈
들 머리통을 바꿔 놓을 거다, 이상.
남준, 널부러진 둘에게 절도있게 인사를 한다.
둘, 미쳐 일어날 새도 없이 널부러진 채 엉거주춤 인사한다.
남준이 씩씩하게 걸어나가고 재봉이 가까스로 일어나 기어 나가려 한다.
상도, 누운 채로 재봉의 도복을 잡는다.
상도 허재봉 싸가지, 어디 가?
재봉 안가요?
상도 안가, 일단 옷이나 고쳐 입자.
상도, 일어서 옷을 고쳐 입는다.
재봉 (울상이다) 선생님.
상도 똑바로 서시죠, 허선생.
자 준비.
재봉, 마음을 고쳐먹고 상도를 노려본다.
인사를 하고 상도의 도복을 잡으려 손을 내밀며 발을 떼려는 순간, 질주하는 상
도의 이단 옆차기 턱이 젖혀지며 뒤로 고꾸라지는 재봉.
재봉 (누워서 턱을 감싸쥐며 소리친다) 반칙이잖아.
상도 나 태권도야, 하.
기합소리를 내며 태권동자 마루치 처럼 폼을 잡는 상도.
상도의 커다란 기합소리.
재봉의 벌어지는 입.
$#9. 대학 체육관 외경
재봉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메아리 친다.
$#10. 과장실
남준의 캐비넷에 던져지는 남준, 그 옆에 걸린 의사까운을 걸친다.
이 때 순덕이 들어온다.
남준 (친절하게) 왜?
순덕 과장님, 전화가 왔었는데... 윤재오 학장님이요.
남준 (눈이 똥그래진다) 학장님이 전활하셨어? (명랑하게) 쾌유하셨
구나. (전화기를 든다) 열 받는데 쐬주나 사달래야겠다.
순덕 (전화기를 빼앗아 내려놓는다) 지금 영안실에 모셨대요, 과장
님.
남준, 무심하게 눈을 깜빡이며 순덕을 바라본다.
그리고 책상 위에 궁둥이를 걸치고 의사까운에 손을 집어넣는다.
창 밖을 무심히 보는 남준,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종이를 벗기고 입안에 껌을
우겨 넣는다.
씹는다, 질겅질겅...
창가를 보며
$#11. 외래 진료실
준서의 얼굴이 찢어져 있고 하경이 찢어진 준서의 얼굴을 꿰매고 있다.
하경 아프냐?
준서 마취했는데 뭐가 아프냐?
하경 마취 안 했다.
준서 (갑자기 인상을 찡그린다) 씨, 어쩐지 아프더라.
하경 안 아플 거다. 그 심리상태에 통증이나 있겠니?
준서 (생각에 잠긴 듯)...
하경 선재아빠 힘 세드냐?
준서 응.
하경 힘세다고 주먹질이냐? 그냥 고소해 버려라. 미국이었으면 어림
도 없다.
준서 소송도 신경 쓰이는데 폭행사건까지 떠들어대라고? 법정에서
결백만 증명되면 된다, 난 이 정돈 참을 만 해.
하경 넌 뭐든 참더라.
준서 그래, 맞다. 너 아무 말 없이 미국으로 훌쩍 훌쩍 떠나버렸을
때도 참았다.
하경 지가 참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어. 저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
리고 그게 떠난 거니? 도망간 거지.
준서 그 때, 그 사고 땜에?
하경 그 때문이 아니다... 싫어져서... 인간이 싫어져서.. 가슴 찢어지
게 싫어져서...
$#12. 의국
수연,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입원환자의 일지를 정리하다 피곤한 듯 의자 등받이
에 머리를 젖힌다.
이때 문득 보이는 중년 남의 모습.
몸을 돌리면 중년 남이 의국 문 앞에 넋이 나간 듯 서있다.
중년 남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 애 그렇게 못 보냅니다. 아무
리 생각해도... 그렇겐 못해요. 근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요. 선생님, 어떡하면 되나요?
$#13. 병원 외부 벤치
수연과 중년 남, 나란히 앉아있다.
남자는 담배를 피고 있고 수연은 손 깍지를 낀 채 만지작댄다.
중년 남 ...
수연 ...
중년 남 ...
수연 ...(고개를 파묻는다) 나, 미친놈이요. (고개를 파묻은 채 손에
선 계속 담배연기가 피워 오른다) 젊은 여자한테 미쳐서 직장
이고 마누라고 자식이고 다 팽개친 그런 한심한 놈들 있잖습
니까? 나, 그런 놈이요. (고개를 들고 수연을 본다) 니 놈이 한
심해서 벌주는 거다, 그러는 것 같습니다, 난. 화가 나요, 막.
나 땜에 저 녀석 저렇게 된 것 같아요.
아마 그럴 거예요, 아마.
...선생님, 내 머리 속에 저놈한테 줄만한 건 없겠습니까? 네,
선생님?
수연 ...전 잘은 모르지만 수술로 다 해결될 수는...
중년 남 무조건 해야합니다. 난 저 녀석 바보가 돼도 좋아할 거니까..
살아만 있어주면 신날테니까.. 때려서라도 시킬 겁니다.
이미, 손끝까지 다 타 들어간 담배꽁초의 재가 툭 떨어질 때까지 중년, 남은 꽁
초를 손아귀에 든 채 수연을 바라본다.
$#14. 응급실
응급실 스테이션 앞
인찬이 보호자를 상대로 설명을 하고 있다.
CT 필름이 앞에 걸려있다.
인찬 고성일씨 보호자분들 다 같이 들으세요. 환자의 외상은 별 게
아닙니다. 지금부터 제 설명을 잘 들으세요, 네? (보호자에게
강단 있는 눈길을 쏘아붙인다) 외상은 그냥 살갗이 찢어진 것
에 불과해서 바늘로 꿰매면 생명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 겁니
다. 문제는 두개골 안에 있는 뇌의 손상이지요.
자, 들으세요.
이 환자는 지주막하 출혈이라는 병으로 생각되구요. 지주막이
란 두개골 안에 얇게 뇌를 싸고 있는 막을 말하는 겁니다.
(CT를 가리킨다) 그 막 안으로 여기 흰색으로 덩어리가 져 있
죠? 이 흰색부분이 출혈된 겁니다. 이건 외상 때문이라기 보단
선천적인 혈관성 질환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혈관이 꽈리처럼
뭉쳐 있다가 터지면 이렇게 뇌 속에서 출혈을 일으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출혈이 생기면 뇌 속에 압력이 높아져
서...
보호자1 (못 참겠다는 듯) 선생님, 우린 설명을 해봐야 모르니까 수술
을 꼭 해야 되는가만 말해주세요.
인찬 (보호자1 노려보며) 수술해야 됩니다.
보호자1 뭐, 약으로 치료할 순 없습니까? 나이도 많은데 괜히 수술했다
가 고생이나 하면...
인찬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저희도 수술 못합니다. 약으로 치료하
시려면 다른 병원에 의뢰를 해보시구요.
보호자2 (약간 기가 ᄌ구어) 수술을 안 하면 죽나요?
인찬 계속 출혈이 된다면 그렇습니다.
보호자1 아니, 약으론 출혈을 못 막냐구요.
인찬 네, 못막습니다. (지나가는 인턴에게) 이영숙 환자 이리게이션
(세척)시키고 인튜베이션(삽관치료) 준비해라. 미취과에 프리미
디(수술 전 마취) 신청해서 오더 받고 파파베린 인젝션(투약)
해. 고혈압 환자 어딨어? 가보자.
인천이 가려하자 보호자1이 인찬을 부른다.
보호자1 선생님. 어디 가세요? 약으론... (다른 곳으로 향하며) 수술 하
셔야 되구요. 약으론 치료가 안됩니다. 그럼 상의들 하시고 결
정하십시오. (다시 가려한다)
보호자1 아이, 어디 가세요 자꾸. 수술 해야죠. 선생님이 하라는데.. 해
야죠. (보호자2에게) 해야 되나봐.
인찬 (간호사에게0 어드미션(수술 동의서) 용지 좀 줘요. 자, 이제
수술에 대해서 설명을 할테니까 보호자 분들은 잘 들으세요.
보호자1, 2 예.
인찬, 보호자를 상대로 어드미션 용지 뒤에 수술 전 검사시 위험성을 적는다.
보호자들, 그냥 고개만 끄덕인다.
인찬 뇌혈관 검사를 하기 위해서 혈관 조영술이란 검사를 합니다.
그때 혈관을 따라 검사를 하기 때문에 위험성을 각오하여야
하는데 동맥 파열의 위험이 있구요. 주사 시 주사바늘에 의한
감염의 위험이 있구요, 알레르기에 의한 패혈증의 위험이 있습
니다. 아시겠습니까? (보호자를 향해 눈을 부라린다)
보호자들, 그냥 고개르 끄덕인다.
인찬 (어드미션 용지를 내밀며) 여기 싸인하시면 됩니다.
인찬, 용지만 내밀고 바삐 다른 침상으로 걸어간다.
인턴이 노트를 들고 인찬에게 설명한다.
인턴 (CT봉투를 내밀며) 고혈합 환잔데요, 보호자 말로는 크로닉
(만성)이랍니다.
인찬 프랙쳐는?
인턴 넘어져서 얼굴 긁힌 것 말곤ᄂ 트라우마나 프랙쳐는 없어요.
인찬, 얼굴에 피딱지가 진 하얀 머리칼의 노인에게 다가가 동공을 먼저 확인하
고 젖꼭지를 꼬집어본다.
반응이 없자 겨드랑이, 허벅지마저 꼬집어 보곤 CT사진을 꺼내 천장의 형광등
에 비추어 본다.
노인의 부인인 듯한 노파가 그런 인찬의 모습을 입을 벌리고 보고 있다.
인찬 (노파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예의 사무적이고 강단 있는 눈길
을 던진다) 보호자 되세요? 자, 지금부터 제 설명을 들으세요.
인찬, 가만히 노파를 보고 노파는 아직도 입을 벌리고 인찬을 본다.
인찬 (얼굴이 풀어진다) 사모님?
노파,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인찬, 다시 노인의 얼굴로 얼굴을 들이민다.
인찬, 손으로 고이 노인 얼굴의 피딱지를 닦는다.
인찬 (노인의 얼굴에 바짝 얼굴을 가져가며 조그맣고 애정어린 목
소리로 입을 연다) 선생님.
$#15. 엘리베이터 안
현우와 하경이 나란히 서있다.
앞만 보고 무관심한 듯 대화한다.
하경 미국에선 김소희 정도면 포기 안해.
현우 너, 미국 살지 여기 왜 왔냐? 거기서도 도망왔냐?
하경이 현우를 노려본다.
현우 수술 후 삶의 질이란 걸 생각해 봐라. 그 여자 수술하면 지금
모습 완전히 없어져.
하경 그래서, 지금 그 여자의 삶의 질은 가히 훌륭한가?
현우 적더오 지금은 수술 후에 동반될 고통은 없다.
하경 적어도 지금, 고통이 없는 대신 좌절은 있다.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수연이 섰다.
둘에게 목례를 하면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수연.
문 앞에 코를 맞대고 둘을 등지고 선다.
하경 (다정하게) 껌 선생님이네.
현우 (소연에게 쏘아붙인다) 그때 보니 레지던트 선생도 성격이 만
만치 않더군, 누구처럼...
수연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죄송했습니다.
현우 괜찮아. 예쁜 여자한테 당한다면 그것도 짜릿해.
곁눈질로 현우를 바라보는 하경.
눈빛이 흔들린다.
수연 (무안한 듯 눈을 굴린다. 망설이듯 고개를 돌리며) 선생님, 혹
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드릴 말씀이...
현우 (웃으며) 없어, 시간.
힘없이 고개 돌리는 수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하경.
$#16. 1층 로비 코너
로비에서 측면으로 보이는 엘리베이터
복도로 내리는 하경, 그 뒤를 따라 내리는 현우의 모습이 보인다.
남준과 순덕, 준서가 걸어가고 있고 바삐 하경이 남준 옆에 붙어 선다.
남준, 아무 말 없이 무겁게 걸어가고 스탭들이 뒤따른다.
남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스탭들, 동시에 멈춘다.
남준 (매섭게 뒤돌아 서며 하경과 현우를 본다) 니들, 감히 거기 가
서까지 싸우면 그땐... 나, 뜰 거야, 병원.
현우와 하경 야단 맞은 학생처럼 긴장한다.
$#17. 영안실로 향하는 복도 (지하)
남준이 앞장서 걸어가고 있고 뒤에 일행이 묵묵히 따라온다.
남준, 다시 선다.
남준 학장님은 하고 싶은 건 다 하셨다. 살아 계신 동안.
근데 단 한가지를 못하셨다.
현우 그리고 하경이 너.
그분께 큰 죄졌다.
현우, 하경, 의아한 듯.
남준 너희 둘, 결혼식 주례 서는 게 소원이셨다.
남준, 다시 걸어가고 있다.
순덕이 따르고
현우, 하경, 준서가 서있다.
준서, 이내 남준을 따라간다.
$#18. 영안실
머리가 하얗게 쇤 채 호령을 하듯 무섭게 인상을 쓰고 있는 학과장의 영정 앞
에 남준이 절을 한다.
절을 하고 영정에 향을 놓고 무릎꿇고 앉아 물끄러미 굳은 드 영정을 바라보는
남준.
그대로 멈춘 듯 계속 영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 영안실 접대실
현우와 하경의 동창생들이 한 술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경과 현우는 대각선으로 멀찍이 앉아있고..
동창1 (하경과 현우보며) 야, 둘이 싸웠냐?
동창2 내숭이지 뭐. 학교 다닐 때 죽어라 붙어 다니던 것들이... 내숭
떨지 말고 붙어있다.
준서 (둘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돌린다) 난 학과장님, 우리랑 같은
인간이라고 새각해 본 적이 없다.
동창1 사실 우리 같은 것들하고야 다르지 뭐. 난 학과장님, 변도 안
보시는 줄 알았다.
동창2 변소는 자주 가셨다. 딴 사람보다... 내가 그건 좀 안다. 난 변
소만 가면 꼭 학과장님하고 부딪쳤어 야.
동창들, 갑자기 회한이 밀려오듯 말문이 끊어진다.
동창2 (소주를 왈칵 비우더니) 씨, 보고싶다, 안 계시니까.
이때 갑자기 들리는 음악소리.
동창1 뭐야? 어떤 자식이 음악을 틀어?
학과장E (테이프에서 나오는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 아.. 님은 갔습니
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
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그려.
동창2 학과장님?
조문객들, 두리번댄다.
남준은 놀란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인상파 학과장의 영정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영안실 한켠에 포터블 카세트가 돌아가고 있다.
학과장E 예... 불철주야 조국의 의료발전을 위해 그 연구와 치료에 몸바
친 사랑하는 동지. 후배 여러분. 보잘 것 없는 노친네로 인해,
이 밤을 또 지새우실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외다.
조문객들, 어리벙벙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남준, 서서히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학과장E 어찌되었거나 죽음을 바라만 보던 이가 죽음을 맞은 감상은
가히 쓰디쓰다 할 바요. 내 몸 어디에 어찌 고장이 났는지, 내
손으로 이 내 몸을 열어, 내 눈으로 직접적으로 확인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겠지만, 그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내 어찌 하겠는
가. 내 먼저 이 곳에서 기다릴 터이니 후배 선생이 차후에 내
게 와서 노티파이를 좀 해주오. 아마도 그 놈이 서남준이가 될
터인데 네 놈은 술 좀 작작 먹고 건강한 몸이 되어 찾아와야
되겠다. 내 있는 곳도 또 다른 세상이 있을진대 네 놈이 와서
또 진창으로 만들까 우려되는 바다.
학과장의 말이 흐르는 동안 숙연하던 영안실에 조문객들이 밝게 웃음을 흘리고
있고 남준은 그저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인다.
그리곤 다시 한번 영정을 바라본다.
웃음 한 점 없는 쓸쓸함이 배어나온다.
학과장E 그럼 계속 시낭송을 하겠다. 좋은 시니까, 너희들도 죽을 때
꼭 써먹어라. (음악이 흐르고)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이 되어 날아갔습니
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
음쳐서 사라졌습니다.
$#19. 농구장 앞 (밤)
현우, 준서, 하경 셋이 걸어오고 있다.
준서, 취한 듯 해죽댄다.
준서 (현우에게) 학과장님, 너희 둘 무지 아꼈어, 그지?
늘 너희 데려다 앉혀서 그냥 좋아라 바라보고 계신 적도 있었
잖냐, 왜. 난 그때 신경외과 전부가 너희 둘만을 위해 존재하
는 것 같았어. 근데 아쉽지, 뭐냐? 둘이 합치는 걸 못 보고 가
셨으니... (키득댄다)
하경 (농구장 옆에 세워진 승용차에 오르며) 가라. 나 먼저 간다.
준서 (불현듯 하경을 보며) 치사하게 혼자 가냐?
우리가 어떤 친구들인데 너 혼자 가냐?
현우 (문득 농구장에 농구볼이 있는 것을 보고 준서에게) 준서야.
우린 농구 한판하고 가자.
준서 좋다. 그때처럼(취기어린 말투로) 그때처럼 하경이 걸구할까?
야, 근데 너무 어둡다. 최하경, 라이트 좀 올려라.
하경 야, 너 취했어, 들어가.
준서 너 자꾸 튕길래? 얼른 올려. (웃통을 벗는다) 자, 가위 바위 보
현우와 준서가 가위, 바위, 보로 공수를 가리고 있고 하경이 피식 웃으며 농구
장을 향해 라이틀 켜준다.
혀우 졌지, 짜식아?... 자, 막어.
현우, 드리블을 하며 골대로 다가가고 준서가 현우의 공격을 막는다.
하경, 차안에 들어가 둘의 모습을 미소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현우의 공을 준서가 빼앗아 골을 넣고, 현우가 수비를 하고 다시 현우가 공격을
해서 골을 넣는다.
하경, 수진한 미소로 박수를 치려다가 이내 굳은 표정.
다시 준서의 공격, 그러다 이내 농구장을 비추던 헤드라이트가 돌아가고...
어느새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하경의 승용차.
농구공이 코트에 힘없이 흐르고 바닥에 취해서 주저앉은 준서와 하경의 승용차
를 바라보고 선 현우.
어둠에 쌓인 농구코트.
$#20. 차 안
농구코트를 뒤로하고 운전을 하는 하경의 굳은 모습.
굳게 얼어붙은 입술.
눈가에 고인 채 애써 떨구어지지 않는 눈물.
$#21. 가발 가게 안 (아침)
재봉이 가발을 보고 있다.
가게주인 누가 쓰실 건가요?
재봉 여자요...
가게주인 애인 주실려구요?
재봉 (손을 내젓는다) 무슨 애인이에요? 아휴, 내 참, 애인이래.
가게주인 두상크기를 알아야 되는데...
재봉 (손으로 크기를 잡는다) 이따만해요.
가게주인 얼굴형은 어떠신데요.
재봉 되게 복잡하네.
뭐 딱 꼬집어 얘긴 할 순 없는데... 그냥 못생겼어요.
가제주인, 망설이듯 가발들을 고르더니 산발끼가 있는 가발을 보여준다.
재봉 에이 이건 꼭 미친 여자 머리털 같잖아.. (말해놓고 보니 이상
하다) 저기요.. 안 미친 여자 같은 머리로 하나 주세요.
$#22. 패쇄 병동
문이 열리고 재봉이 선물 상자를 들고 와 주변을 살핀다.
재봉, 여기저기 살피다가 뒤를 보는데
순영 (장풍 포즈로) 얍!
재봉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진다) 에그머니나. 이 아줌마가 근데?
재봉이 순영 보자, 머리에 붕대를 감았다.
순영 (자신의 두 손바닥을 입으로 후 분다)
재봉 문순영씨, 머리에 왜 붕대는 감았어요?
순영 당신이 내 머리통 짤랐잖아.
재봉 (애교스레) 안 짤랐어요, 붕대 풀어요. 자꾸 죄책감 느끼게...
대신 이거.. (상자를 불쑥 내민다)
순영 이게 뭐야?
재봉 (애교를 떤다) 나중에 풀어봐요. 내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서
그런 거니까... (귀염 흘리는 웃음을 던지고 나가려는데)
순영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잠깐... 이걸로 떼울라고?
재봉 (가려다가 인상을 찡그린다) 또 왜에?
$#23. 건물 밖 신축 건물 밖 인도
재봉과 순영이 나란히 휠체어에 앉아있다.
순영 준비 땅!
둘이 열심히 휠체어를 굴리고 있다.
재봉, 땀을 뻘뻘 흘리며 휠체어 경주를 한다.
순영이 목표지점에서 만세를 부른다.
재봉, 낑낑대며 순영이 있는 곳으로 휠체어를 굴린다.
순영 만세, 만세.
재봉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부를 떤다) 역시 순영씨는 대단한
분입니다. (일어서며) 저.. 그럼 전 이만 바뻐서.
순영 어디 가? 안돼. 댁이 나 이길 때까지 해.
재봉 벌써 왕복 세 바퀴 째 아닙니까. 나 의산 거 알죠? 나 없으면
나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순영 댁은 없는 게 도와주는 거야.
재봉 (삐진다) 몰라, 몰라. 나 안 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선다)
순영 어? 자꾸 비협조적으로 굴면 나 의료소송 건다.
재봉 예... (도로 온순히 휠체어에 앉는다) 제가 땅 할까요?
순영 그래, 해봐.
재봉 (이번엔 이기고야 말겠다는 듯 어금니를 문다) 자, 준비.. 땅.
재봉, 어깨에 온 힘을 주다가 출발선에서 우당탕하고 넘어진다.
$#24. 판독실
상희가 지나치다 문득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인턴 하나가 서너개의 필름봉투를 들고 신경내과 칸에 꽂고 있다.
인턴의 뒷모습을 계속 뚫어져라 바라보는 상희.
$#25. 중환자실
인찬의 스승, 준섭이 잠이 든 듯 누워있고 준섭처가 돋보기를 걸친 채 조그만
고전책을 펼쳐들고 앉아서 준섭이 들으라는 듯 조그맣게 읽어주고 있다.
인찬이 다가온다.
인찬 사모님
준섭 처 (안경을 벗으며 미소 짓는다) 왔어요? 권인찬 선생님?
인찬 사모님,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선생님이라요. 선생님, 아직 안
깨어 나셨지요?
인찬이 준섭에게 연결해놓은 심전도 혈압의 수치를 살펴보고 있다.
인찬 수술만 하시면 금방 회복돼요, 고혈압은.
준섭 처 (쓸쓸히 준섭의 손등을 만진다)
인찬 수술 날짜 잡히는대로...
준섭 처 그 얘긴 나중에 하자.
인찬 예?
준섭 처 ...나중에 하자고...
인찬 사모님
준섭E 인찬이니?
인찬 (놀란다) 선생님
준섭 (화사한 웃음) 짜식, 까운 좀 봐라. 의사 선생님이 됐구나. (눈
을 가늘게 뜨고 이름표를 읽는다) 신경외과 전공의 권인찬.
인찬 (눈이 아련해 온다. 조용히) 선생님
준섭 잘했다, 이놈. (힘든 듯 눈을 감는다) 잘했다, 인찬아.
$#26. 복도
현우를 집요하게 따르며 소희의 수술포기를 따져묻는 수연.
수연 그렇게 손놓고 계시면 안되죠, 선생님.
현우 뭐?
수연 보호자가 원해요. 선생님이 설득을 하셔야죠. 환자를...
현우 내가 설득하고 싶은 건 그 보호자 양반하고 자네야.
현우, 뒤돌아 서려하면 옷깃을 붙드는 수연.
수연 (옷깃을 강하게 부여잡고 있다) 수술 시켜주세요, 선생님. 그
사람들 그렇게 놔두면 안돼요... 제가 빌께요, 선생님. 수술시켜
주세요.
현우 (매섭게) 너 왜이래?
하경E 희망까지 버리라곤 말아주시죠, 장선생.
현우와 수연이 하경 쪽을 돌아본다.
하경 장선생이 포기한 희망을 내가 한번 시도해봐도 되겠죠?
현우 최하경.
하경 (현우에게) 환자를 돌보는 정성만큼 절대적인 치료는 없어요.
한수연시, 내가 해보죠.
따스한 미소를 던지고 뒤돌아서 가다.
현우 최하경
하경 (뒤도 안 돌아보고) 내가 할거다. 장현우.
수연, 굳은 입술을 붙이고 서서 현우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낸다.
$#27. 병실 (밤)
수연이 문을 열면 어두운 병실 내에 목석처럼 소희 앞에 선 중년여자.
그 앞에서 고개 숙인 소희
수연, 몸을 숨긴 채 둘을 바라본다.
중년 녀 누워라 힘들텐데...
소희 ...괜찮습니다.
중년 녀 ...넌 왜 그 모양이니? 누워, 얼른. (손끝으로 살짝 어깨를 눌러
누인다)... 그 사람 떠나보낼 때 난 행복 버렸다. 네가 그거 주
워 가지는 줄 알았어. 근데... 그거 하나도 못 줍니? 거저 들어
온 거...
소희 죄송합니다.
중년 녀 ...부탁 하나 하자.
소희 네.
중년 녀 얘기 들었다. 궁금해서 그 사람하고 전화통화 하면서 꼬치꼬치
캐물었어, 내가... 이 부탁하러 왔다. 수술 받아라.
소희 (여자를 바라본다)
중년 녀 수술 받아야 된다. 내가 너 미워해서 이렇게 된 것 같거든...
어떻게든...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소희, 눈물이 흐른다.
중년 녀, 소희의 얼굴 앞에 손수건으로 내민다.
소희, 손수건을 받으려 손을 뻗으며 중년 녀의 손을 부여잡고 얼굴을 파 묻은
채 눈물을 흘린다.
그대로 안쓰럽게 소희를 바라보는 중년 녀.
$#28. 병동 복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중년 녀.
그 옆으로 수연이 다가와 난간에 기대선다.
엘리베이터 등만 바라보던 중년 녀.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다 눈물이 흐른다.
수연, 다가와 선다.
수연 괜찮으세요?
중년 녀 (눈물을 닦으며) 우리 딸애가 많이 아파요. 이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많이 아파요. 이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많이 아픈
모양이에요. 그렇게 속을 썩히더니...
수연 ...저, 소희씨 미웠어요.
중년 녀 (놀란 듯 수연을 바라본다)
수연 저희 부모님이 저 어렸을 때 헤어지셨는데... 아빠가 젊은 여잘
만났대요, 소희씨처럼.
그랬대요... 그래서 미웠어요. 소희씨가... 근데 소희씨 보면서
그 여자도 이렇게 예뻤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중년 녀 ...(입가에 살짝 미소가 어린다) 예쁜 애지요, 저 아이.
수연 아빨 이해 할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 엄마가 더 더욱 불쌍해
졌어요. 이젠 내 마음까지도 그 여자에게 열려버렸으니...
중년 녀 ...(고개를 숙인다) 그 마음 들키지 마세요. 어머니가 많이 외로
와 하실테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 안에 오르는 중년 녀.
수연 따님, 잘 될 거에요.
중년 녀, 눈물 머금은 눈을 내리 감으며 문이 닫힌다.
난간에 기댄 채 고개를 내려 발장난하는 수연의 모습. (F.O)
$#29. 엘리베이터 앞 (아침)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는 상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인찬이 서있다.
상희, 미소 짓는다.
내려서는 인찬.
인찬 요즘은 컨설트 환자가 많지 않은가 봐요, 박선생님. 자주 못
뵈네요.
상희 입원 환자도 줄었어요. 아이 엠 에프 타잖아요. 우리과는, 왜
요? 보고 싶었어요?
인찬 보고 싶죠, 여잔데. 한가하면 의국에 놀러 오세요.
상희 그럴께요.
인찬 언제 쪼인트로 단합대회 한번 합시다. 1년차까지 모아서...
상희, 씁쓸하다.
$#30. 판독실
수연이 신경내과 칸막이를 허겁지겁 뒤져댄다.
수연 (인턴에게 전화를 건다) 분명히 여기다 넣어뒀어?
없어, 야, 다 뒤져봤어. (한숨) 지금 당장 가져오래... 다시 찾아
볼게.
수연, 다른 봉투에 들어갔나 하고 봉투들을 죄다 꺼내 뒤져보다 사진들이 뒤죽
박죽이 된다.
수연, 허망하게 이마를 짚는다.
인찬이 들어와 수연에게 다가간다.
인찬 판독실이 개판이네. 왜요? 뭐 없어졌어요?
수연 ..담당환자 엠알 사진이 없어요.
인찬 ..갑시다.
수연 (의아한 듯) 네? 어디요?
인찬 편의점이요.
인찬이 수연의 팔목을 붙들고
$#31. 건물창가
상희가 창가에 서서 멀리 병원 마당으로 뛰어가는 인찬과 수연의 모습을 본다.
상희, 벽에 머리를 기댄다.
그리곤 벽에 콕콕 뒷통수를 가벼이 반복적으로 찧으며 허망히 서있다.
$#32. MRI실
아이스크림 한통을 기사에게 불숙 내미는 인찬.
기사 (인상을 쓴다) 뇌물이야?
인찬 네, 뇌물입니다.
기사 (아이스크림을 받아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뇌물을 받았으니
요구를 들어줘야지. 신경내과, 환자이름이 뭐라고? (아이스크
림을 우걱우걱 삼키며)
인찬 오진영.
기사 오진영, 근데 왜들 그렇게 사진을 잃어버리고 그러냐? 이것들
이 나 하드 좋아하는 건 알아서 하드만 가져다주면 다 복사해
주는 줄 알아. 야, 이거 뭐냐? 맛있다.
인찬 원본을 괜히 보관하겠습니까? 이런 때 필요한 거지.
기사 근데 네 과도 아닌데 네가 왜 안 하던 짓을 하냐?
인찬 ...(나직히 중얼댄다) 글쎄,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
다.
$#33. 수술실 복도
이동 침상에 눕혀져 수술실로 향하는 소희.
중년 남, 소희를 따른다.
수술실 문 앞.
중년 남, 문 앞에 선다.
중년 남 (소희의 손을 잡으며) 고맙다, 내 부탁 들어줘서...
소희 (중년 녀의 손수건을 꺼내든다) 이거, 좀 빨아주세요. 나한테
소중한 거니까 정성껏요.
멀어져 가는 소희를 바라보다 손수건을 들어보는 중년.
눈을 깜박이다 다시 손수건을 응시한다.
손수건을 감싸쥐며 상념에 잠긴다.
$#34. 수술실
수술 준비를 하는 상도와 마취 레지던트.
마지막으로 소희의 얼굴이 푸른 무균천으로 덮인다.
$#35. 수술실 밖, 수돗가
열심히 솔질을 하는 하경
그 옆에서 쏘아지는 물길
현우가 와서 손을 씻고 있다.
아무 말도 없이 나란히 서서 솔질을 해대는 둘의 뒷모습.
동시에 솔질을 끝내고 하경은 왼쪽으로 현우는 오른쪽으로 나뉘어져 들어간다.
$#36. 신경내과 의국
사진을 상희에게 건내는 수연.
상희 사진 하나 갖구 오는데 시간 꽤나 걸린다. 만들어 왔니, 사진?
수연 (눈을 깜빡이며) 네? (더듬는다) 이를테면...
상희 병동 노티파이했어?
수연 아직, 사진 거느라...
상희 사진사야 너? 그러다 환자들 문제 생기면 어쩔래?
수연 죄송합니다, 선생님.
상희 (히스테릭하게) 가봐.
수연이 나가면
상희, 자신의 서랍에서 같은 사진을 꺼낸다.
사진봉투를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지는 상희.
의자 위에 앉아 등을 젖힌다.
$#37. 수술실
현우의 음악소리가 엷게 깔리고 가만히 앉아서 뚫어져라 소희의 뇌를 보고 있
는 하경.
간호사 선생님, 여기요. (마이크로 시저를 내민다)
하경 ...(계속 뚫어져라 바라만 본다)
상도 (간호사에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경 (고개를 들어 상도에게) 고상도, 음악 좀 꺼라.
상도 저희 방이 아닌데요, 선생님. 장현우 선생님 방에서 틀어놓은
것 같은데요.
하경 (목석처럼 앉아 있다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덮자. (일어서서
나간다)
간호사 (상도에게 속삭인다) 음악 땜에 그래?
$#38. 현우의 수술방
음악소리가 크게 들리고...
문 앞을 지나치는 하경.
문득 눈이 마주치는 둘.
수술방 복도를 힘없이 걸어가는 하경.
지친 듯 수술복 끈을 풀어헤치며 걸어가는 뒷모습.
$#39. 불 꺼진 1층 로비
사복차림의 하경이 빈 벤치에 앉아있다.
하경 앞에 내밀어지는 커피.
올려다보면 현우다.
말없이 커피를 받아 드는 하경.
현우가 하경 옆에 와 앉는다.
현우 뭐하느라 아직 안 갔냐?
하경 (커피만 홀짝댄다)
현우 ...(나직하게) 수고했다.
하경 ...그래, 고맙다. 이해해주니 정말로 고맙다. (한참 말이 없다가
조용히 입을 뗀다) 근데 말이다. 난 아직도 널 이해 못하겠다.
너의 진짜는 도대체 뭐니?
현우 (일어선다) 또 시작이네. 나, 간다.
하경 모른 척 하지마. 내가 이러는 거 미국 가기 전에 중환자실에
서... 난 봤어, 너.. 너 그때...
이때, 수연이 하경 앞에 헐레벌레 달려온다.
수연 (원망의 눈빛을 던지며 흥분된 상태다) 자신있다 그래놓고...
선생님이 한다고 해놓고... 어떻게 그냥 열어만 보고 나오세요?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오셨어요? 구경은 사진으로 다 했잖아요.
(눈물이 흐른다. 흥분이 멎고 냉정한 음성으로 변한다) 실패할
까봐 두려우셨나요?
하경 (당황한 듯) 한수연씨.
수연 책임질 일은 안 하시겠다는 거군요. (뒤돌아 선다) 선생님은...
의사 아니에요. 환자를 버렸어.
눈을 감는 하경.
이때, 뺨 때리는 소리가 거칠게 들린다.
하경이 눈을 뜨면 현우가 일어서서 매섭게 수연을 쏘아보고 있고 수연이 바닥
에 주저앉은 채 자신의 뺨을 손으로 감싸고 있다.
눈물 젖은 눈으로 현우를 바라보는 수연과 놀란 눈으로 현우를 바라보는 하경.
냉정히 수연을 내려다보는 현우의 모습이 텅빈 로비에서 동그란 불빛을 받은
채 석고처럼 정지된다.
제 2 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