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순교 성인
44. 성녀 김효임 골롬바
기해박해의 순교자들 중에는 유명한 동정 자매(童貞姉妹)가 있었는바 동생은 앞서 말한 성녀 김효주(아녜스)요, 언니는 성녀 김효임(골롬바)이다. 동생의 꿋꿋한 마음가짐처럼 언니도 성교회의 도리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행동하였다. 특히 그녀가 포청과 형조에서 답변한 내용은 대단히 용감하고 이지적인 것으로, 당시 여교우들이 알고 있던 교리의 깊이 뿐만 아니라 골롬바 자신의 신앙심도 함께 엿볼 수 있는 것이었다.
성녀 김효임(金孝任, 골롬바, 동정녀, 1814~1839)은 서울 근교의 밤섬이라는 마을에 살던 외교인 집안에서 1814년(순조 14년)에 태어났다. 부친이 사망하자, 어머니는 여섯 자녀를 데리고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골롬바는 교리를 깊이 인식하면서부터 동생 아녜스, 글라라와 함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서울서 30리가량 떨어진 오빠 김 안토니오의 집에서 생활하였다.
오빠의 집에서 몇 해를 보내던 중 박해가 일어나고, 5월 3일에는 포졸들이 그곳에까지 들이닥치게 되었다. 머지않아 포졸들이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모두 도망하여 버리고 골롬바 자매와 한 명의 어린 아이만이 체포되었다. 골롬바는 자기 자매들에게 몹시 귀찮게 구는 포졸들을 향하여 “당신들이 우리를 잡아가면 당신들을 따라갈 터인데, 어찌 나라의 죄인에게 이렇게 대한단 말이오” 라고 항변하였다.
포청으로 압송된 후 그들 자매가 받은 혹독한 형벌의 내용이나 꿋꿋한 행동은 이미 설명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골롬바가 문초를 받으면서 답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그 행동에 앞서는 신앙심을 살펴보고자 한다. 포장이 천주교도임을 확인하고 난 후 어찌하여 그 나이에 혼인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골롬바는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보존하여 천지, 신인(神人), 만물을 조성하신 천주님을 공경하고 우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말을 이렇게 정확히 답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의 동정 순교자들과는 달리, 그들 자매는 동정의 의미를 알고 이를 실천함에 조금도 숨길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 포장이 천주교 신봉 자체가 인륜을 파괴하는 일이라 하여 배교를 강요하고, 천주교 서적과 교우들이 있는 곳을 대라고 위협하였으나, 골롬바는 배교할 수 없는 이유와 서적 및 교우들이 있는 곳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타당히 설명하면서 교리를 이해시키려 하였다.
다시 옥으로 끌려간 골롬바 자매는 주뢰를 틀리고, 옷을 벗기운 채 매를 맞았으며, 숯불로 지지는 형벌도 받았으나 안색조차 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형리들이 도리어 지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형벌을 당한 후 며칠 만에 골롬바는 기운을 차렸으며, 불에 덴 자리도 완쾌되었다. 형리들은 이것을 보고는 그녀에게 귀신이 접했다고 생각하여 부적을 써서 그녀의 어깨에 붙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녀들이 당한 곤욕은 비열한 방법에 의해 모욕을 당한 일이었다. 포장은 그녀들의 옷을 벗겨 도둑들의 감방으로 몰아넣고 갖은 욕을 당하도록 명하였다. 이 때 영혼들의 천상배필(天上配匹)이 구원하러 오셨으니, 그녀들에게 초인간적인 힘을 불어넣어 이 곤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후에도 골롬바 자매는 여러 번 문초를 당하였다.
어느 날 골롬바는 가혹한 형벌에 대하여 항의를 하고는 포장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힐난하자,
“포장이 말씀하시는 제사는 헛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생일이나 명절을 당하여 아무리 자식들이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청한다 할지라도 마음대로 옥에서 나가 그 잔치에 참석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러한 헛된 제사를 지내지 않을 뿐입니다” 라고 조리 있게 설명하였다. 그 후 골롬바 자매는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판서 앞에 출두한 그녀들에게 형관은 “천주교인이 되지 않고는 가장 높은 덕을 닦을 수 없느냐?”고 질문하였다. 골롬바는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한 후, 포청에서 당한 모욕을 국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청하였다. 판서는 그녀의 공손하고 타당한 언변에 감동하는 한편, 법외의 형벌에 크게 화를 내어 포장과 포졸들을 엄히 꾸짖고 그 중 두 사람은 귀양을 보내기도 하였다.
분명 골롬바의 영광스러운 투쟁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해 주는 것이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옥에 갇혀 갖가지 괴로움을 당했으며, 열병으로 여러 번 눕기도 하였다. 그리고 5개월 동안의 옥중생활 중 9월 26일 확정된 사형 일에 동정과 순교의 영광을 얻었으니, 이때 그녀의 나이는 25세였다.
★ 발췌문헌 : 김옥희, {103위 성인전}, 도서출판 순교의 맥, 2004, 155~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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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 김효임골롬바ㆍ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