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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다-간단하다-명쾌하다-명료하다’는 ‘정확-정밀-치밀-엄밀-섬세하다’와 대체로 정합하지 않는다. ‘복잡하다-번잡하다-난해하다-막연하다’도 ‘정확-정밀-치밀-엄밀-섬세하다’와, 당연히, 대체로 정합하지 않는다. 이런 부정합들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은 ‘차별과 분별을 분간할 수 있고 한글과 한국어를 분간할 수 있는 분별력’의 일부이다.
(2018.06.04.11:33.)
데이빗 흄의 “이성(理性)은 정념(情念)들의 노예이고 노예일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적어도 한반도휴전선이남지역에서는) 정확하고 옳은 듯이 보인다. 이 지역에서는, 예컨대, 이성은 여태껏 ‘이성을 부려먹거나 빙자한 정념(이른바 이념-이데올로기의 씨앗 겸 원력怨力)들의 드잡이질’에 휘말려 본명(리성)조차 거의 망실해버렸기 때문이다.
(2018.06.04.12:12.)
‘아름’의 정체가 무엇이든, 하여튼, “거의” 모든 이족보행포유류(이보포류)는 ‘아름 또는 아름다움’을 감각-감지-인지하는 본능을 타고나는 듯이 보인다. 이렇다면 그들에게 감각-감지-인지되는 ‘아름 또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그들의 타고난 감미본능(感美本能)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이보포류는 저마다 타고난 여러 본능을 여태껏 “대체로” 불미스러운(아름답잖거나 아름답지 못한) 불쾌한 것들로 감각-감지-인지한 듯이 보인다. 이렇다면 그들은 ‘아름 또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그들에게 암시-암여(暗與)해준 본능마저, 그리하여 ‘아름 또는 아름다움’을 감각-감지-인지하는 그들의 감미본능마저, 불미스러운(아름답잖거나 아름답지 못한) 불쾌한 것으로 감각-감지-인지할까?
(2018.06.05.02:08.)
이른바 “그림 같은 풍경”이나 “그림 같은 자연”이라는 상투어구(常套語句)들 내지 관용어구(慣用語句)들은 두 가지 의미를 머금었으리.
1. 중세-근세에는 노예-노비-농노들의 노역이 그런 풍경을 창출했다면, 근대-현대에는 자본이 그런 풍경을 창출해왔다.
2. 저런 상투어구-관용어구의 사용자는 인공-허구를 자연-현실의 평가기준으로 삼는 만큼 인공-허구가 자연-현실보다 미미하게라도 더 아름답다고 자인하거나 암념(暗念)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예컨대, 이른바 단풍놀이나 단풍관광의 진정한 실행자나 주행자(主行者)는 누구 혹은 무엇일까? 단풍일까, 놀이객(행락객)-관광객일까, 자본일까?
(2018.10.30.19:41.)
아래왼쪽그림은 브리튼 조각가 겸 삽화가 로즈 르 켄(Rose Le Quesne, 1886~1913)의 1906년작 삽화 〈그(맘몬)의 사방에 산적된 금홧더미들(Great heaps of gold lay about him on every side)〉이고, 아래오른쪽그림은 잉글랜드 화가 이블린 디 모건(Evelyn De Morgan, 1855~1919)의 1909년작 유화 〈맘몬(돈신) 숭배(The Worship of Mammo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