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 임인, 검은 호랑이의 해네요.
모두 카리스마 넘치는 흑호처럼 기운찬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 (검은 호랑이가 어흥~! 포효하는 이모티콘)
그나저나, 다들 올해 목표 같은 건, 어떻게, 좀 세워보셨나요?
전 소소하게 계획해봤습니다. 그중에는 독서 서평을 얼마만큼 남기겠다는 것도 물론 있죠.
제가 저희 가족 독서 평균을 담당합니다. 아무리 10권 넘게 읽어도 막상 4인 가족 평균을 내면 제 수치를 깎아먹어서 얼마 안 된다는 슬픈 현실이......
올해는 더 열심히 독서합시다!
도서명: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
저자: 고정욱
* 이 책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망 아이프리 사이트 도서관 11번 아동/청소년 4번 문학 부분에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메뉴 찾아 들어가기 불편하면 간단하게 전체 검색창에 도서명 입력해 찾으면 편합니다.
* 소개글 서평
고정욱 작가님은 내게 친숙한 작가님이다. 그분의 작품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대학 동화구연 수업 시간에 많이도 써먹었더랬다. 한편 <코끼리를 만질 거야>라는 작품을 교정사로 활동하며 업무상 접하기도 했었다. 그분은 나를 몰라도, 나는 그분을 아는, 그런 친근함. 나 혼자만 친한 포지션.
써놓고 보니, 기분 참 거시기하다.
여하튼 그렇기 때문에, 즉 내가 이 작가님을 친근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 책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에 관심이 생겼다. 평소처럼 제목에 끌린 게 아니라는 거다. ‘책벌레가 나무들을 구하다니, 어떻게?’ 하는 의문도 뒤늦게 찾아왔다.
사진 설명: 창덕궁 후원에 자리한 무려 750여 년이나 된 향나무. 가지가 많아서 바람 잘 날 드물었을 나무의 인생 역경을 짐작하게 한다. 가지 중 몇 개는 벼락도 좀 맞은 것 같다.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의 시작, 자타공인 책벌레가 나무 영계 재판정에 소환당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재미나는 게임. 네가 좋아하는 것은 재미없는 소설책. 우리들의 거리는 하늘만큼 땅만큼. 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
이야기는 놀이공원 체험학습 버스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흥에 겨운 아이들이 분위기와 살짝 안 맞는 유행가를 떼창으로 부르는 상황. 자고로 소풍이나 체험학습을 가는 날은 학생들에게 있어 행복한 날이다. 공부 안 해도 돼, 마음껏 놀아도 돼, 이 얼마나 좋은 날인가!
그런데 이런 들떠 있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 시무룩한 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소년 강산이다. 왜 혼자 꿍해 있는가 하면, 읽을 책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 강산은 모두가 인정하는 책벌레요, 엄마 아빠 왈, 활자중독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소년이다. 밥 먹을 때도 책, 놀러 가서도 책, 책이 없으면 우울증이 발병하는 걸로 보인다.
사실 강산이 입장도 좀 이해가 간다. 나도 놀러 갈 때, 혹은 여행을 갈 때 뭔가 읽을거리를 지참하는 게 필수였기 때문이다. 한소네(점자정보단말기)가 생긴 후에는 전자도서 파일을 꽉꽉 채워서 갔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MP3에 음악이라도 꽉꽉 넣어서 갔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해서 신경을 분산시킬 게 꼭 있어야 했다. 창밖을 보면 멀미가 좀 해소된다고들 하는데, 시각장애인은 창문 바라봐도 보이는 게 없다. 바람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덧붙이자면 멀미약은 몸에 안 받아서 못 썼다.
그래도 나는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의 주인공 강산이처럼 활자(점자)가 반드시 있어야 심신이 안정되는 증상은 없다.
여하튼 놀이공원에 도착해서도 책이 없어 대신 기구의 안내문이나 표지판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던 강산이는 친구들과 귀신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책을 발견하고, 손을 뻗는 순간, 갑자기 몸이 쑥 끌려가 낯선 세상으로 떨어지고 만다. 바로 나무들의 영계, 대나무 검사와 대왕 배나무가 있는 ‘나무들의 법정’이었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 읽은 적 있는 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에두아르도 하우레기의 <동물들의 인간 심판>이 떠올랐다. 인간이 동물들의 법정에 서서 골든 리트리버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코브라 검사와 다른 동물 증인들의 고발에 반박하는 이야기, 부엉이 판사의 판결 이야기 말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다음에는 식물들이 사람 심판하겠다고 나서는 거 아닐까 상상했었더랬다. 그런데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에서 내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단지 이 책에서는 변호사가 딱히 없을 뿐이다. 솔직히 변호인 없어도 되겠더라. 주인공 산이가 알아서 위기를 헤쳐 나가니까.
나무들이 산이를 법정에 소환한 이유는 산이가 책벌레이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모자라 그 책을 읽으라고 다른 친구들에게 마구 권했기 때문이다. 책은 종이로 만들고,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를 베어야 한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그 책을 만들기 위한 나무 베기 현상을 촉진한다는 의미고, 그 책을 권한다는 것 역시 나무 베기 현상을 부추기는 의미가 된다. 바로 이런 논리 하에 산이는 나무들의 ‘공적’이 되었다.
사진 설명: 하얀 꽃이 흐드러진 배롱나무. 보통 붉은색 꽃이 피는데, 하얀 꽃송이가 피어나는 경우도 있다.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의 환경적 면모, 가뭄과 병충해와 화염 대마왕을 물리치는 방법은?
“인간은 자기네만 영혼이 있고, 자기들만 생각을 하는 줄 알고 있지. 인간은 아주 미련하고, 오만한 것들이야.”
당연하지만 나무 영계의 나무들은 산이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들 중에도 소년을 유독 밉게 보는 나무들이 있었으니, 대나무 검사는 차치하고, 일단 대왕 나무부터가 시선이 곱지 못하다. 뿌리는 어디 갔는지 없고 줄기로 쿵쿵 걸어오는 배나무. 그는 초장부터 호통이다. 책 같이 웬 괴상한 걸 만들어서 나무들을 왕창 학살하는 것도 눈꼴이 시린데, 그 책을 열심히, 아주 많이 읽는 산이는 오죽할까?
또 부피감이 굉장한, 그러니까 위로 뻗는 게 아니라 줄기 둘레가 굵직한 나무 역시 불만 많은 목소리를 높인다.
알고 봤더니 이 나무들은 각각 유명한 나무들이었다. <삼국지>에 등장해 조조에게 베이고 만 신령한 배나무, <어린왕자>에서 별을 박살낼 위험이 있다고 싹부터 뽑혀버린 바오밤나무가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기구한 사연도 있고 하니 사람이 싫을 만하다. 그리고 그 나무들 가운데는 어릴 적 내 눈물샘을 자극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사과나무도 있었다. 단지 사과나무는 성격 때문인지 산이에게 퍽 우호적이었다.
산이는 자신의 억울함을 반박하기보다 사람들에게 다치고 상처입은 나무들에게 위로를 건네면서, 그리고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내면서 나무들의 마음을 돌린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이 꽤나 흥미로웠다. 반박보다 수용하고 공감하고 잊지 않는 행동으로 호의를 사는 장면 말이다. 솔직히 어린이들의 동화 세계라서 가능한 전개 같지만, 원래 희망은 이렇게나 이상적인 법이고, 동화는 어른들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를 담는 법이다.
어찌저찌 법정이 흐지부지가 되는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위기가 찾아온다. 나무 영계에 가뭄 기운, 병충해, 화염 대마왕의 습격이 차례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위기일발의 상황 속에서 산이는 자신이 읽은 책의 지식을 바탕으로 가뭄, 병충해, 화재를 하나하나 막아낸다. 기실 산이가 나무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도 다 ‘책’ 덕분이었다.
나는 이번에 독서하며 소나무의 해충 ‘솔잎혹파리’에 대해 알게 됐다. 물론 처음 들어봤다. 세상에 이런 파리가 있을 줄이야!
덧붙이자면 솔잎혹파리의 천적 ‘솔잎혹파리먹좀벌’이란 곤충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것도 벌 맞아?
이런 거 보면 지구는 참 다채로운 것 같다. 인간 혼자만 사는 세상은 확실히 아니었다.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는 이런 책벌레 산이의 지식을 빌려 자연계의 생태사슬이나 역학관계 등을 자연스레 알게 만든다. 가뭄에 대처하는 숲의 지혜, 화재를 방비하는 나무들의 힘도 배울 수 있다. 책벌레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다가, 그에 더해 환경적인 지식까지 전해주는 이야기인 셈이다.
사진 설명: 전주 한옥마을 수령 600년 넘은 고목나무. 마을의 수호목 내지 마스코트가 아닐까 추정한다.
결국은 사랑,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을 다해 아끼고 위한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말없이 희생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 내고, 제 몸을 바쳐 집을 지어 줍니다. 나무는 기꺼이 책을 만드는 재료가 되어 줍니다. 나무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작품 초반에는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나무들의 법정에 설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런 이유로 생각한 건 아니었다. 내가 점역교정사이기 때문에 생각하게 됐다.
언제 한번 이런 일이 있었다. 점자책 출력물에 대거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이 말을 풀자면, 팔지 못할 만큼 점자가 안 나왔다는 뜻이다. 당시 점자 프린터기가 문제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반적인 책을 기준으로 하자면, 잉크가 번지거나 해서 파본이 나왔다는 것과 동의어라고 하겠다.
당연하지만 이러면 출판사에 손실이다. 출력하긴 했는데 점자 퀄리티가 떨어져서 내놓을 수 없고, 다 버려야 하니까 관련 처리 비용이 생기고, 제작비는 이중으로 든다. 솔직히 그래서 어지간하면 불합격 사인을 안 주는데, 그때는 점자 질이 너무했었다. 하여튼 그 바람에 종이가 산더미로 쌓였다. 과장 아니고 문자 그대로 더미더미 쌓였다. 점자책은 부피가 상당하다.
만지면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이게 쓰러지면 나 하나 파묻히는 건 참 쉽겠다 싶기도 하고, 이 종이, 정확하게는 폐지를 대체 어쩔까 한숨 나오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무야, 미안해!” 하는 탄식이 절로 터졌었다. 당시 출판사 대표님은 종이와 씨름하는 나를 위로하러 격려차 들렀다가 내가 앓듯이 뱉은 나무에게 사과하는 말을 들으시고 “응? 나무한테 왜 미안해?” 하고 의아함을 표하시기도 했다.
그야 그때 그 상황에서는 당연하다. 점자 찍는 종이, 일명 ‘점자지’도 종이 아닌가. 이거 만들려고 나무가 대체 몇 그루나 아작이 난 거란 말인가. 그렇게 애써 만들어진 종이가 이렇게 폐지 신세가 됐으니, 나무들의 한이 쌓이다 못해 유령으로 출몰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 같은 게 절로 들었다. 평소 별반 생각이 없었더라도 그 폐지의 하얀 무덤을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의 나무 학살 폐지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이 얘기를 재활통신망 쪽지로 들은 후배는 “그 종이들은 다시 재생지로 태어날 것”이라며 나를 위로했었다.
하지만 그 일이 워낙 충격적이었는지 지금도 기억에는 선연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더욱 오타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오타 때문에 수정 후 재출력 뜨면, 최소한 이미 출력한 1부는 폐지가 되니 말이다.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를 읽고, 나무 영계 법정에 서는 산이를 보며 내가 이 사건을 떠올린 건 당연했다. 따지자면 점자책 또한 나무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것이니까.
한편 책을 덮으면서는 ‘사랑’에 대해 떠올렸다. 제 몸을 깎는 것도 모자라 갈아넣는 묵묵한 사랑. 그 자리를 지켜주는 사랑.
나는 툭 까놓고 말해 그런 사랑을 할 자신 없다. 동경은 하지만 소설에나 있을 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그런 사랑과 가장 유사한 건 ‘어머니의 사랑’뿐이다.
비록 그런 사랑을 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잊지 않고 되새길 자신은 충분하다. 어쩌면 그것이면 되었는지도 모른다. 금방 변하고, 금세 지나가, 금방 잊혀지는 오늘날, 기록으로나마 남겨 잊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의의가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라고 나무들은 기꺼이 책이 되는 것일 테니까.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는 전반적으로 괜찮은 작품이었다. 액자식 구성이나 전개가 다소 전형적인 듯한 인상도 들지만, 작가님이 환경 문제, 나무들의 가치, 사랑과 희생, 독서의 중요성 등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속이 아주 꽉 찬 석류나무 같달까?
사진 설명: 전주 한옥마을에 시크릿 가든 담장 너머에 석류나무. 열매가 아주 실하다.
단지 데이지도서로 제작되는 과정 문제인지 중간중간 빈 페이지가 등장해서 독서의 맥을 끊는 게 좋지 않았다. 추측하자면 그 빈 페이지에 그림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번 《나무들을 구한 책벌레》에는 그림이나 사진 설명도 없다. 무분별한 이 빈 페이지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P.S. 위에 사진들은 카페 작은 도서관 사서가 발품 팔아서 찍고, 인터넷 검색하고 해서 소장한 사진들임을 밝힙니다. 책에서 건진 사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