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 한국 남자를 지켜온 세 가지 자부심이 있었다. 우선 생산인으로서의 자부심이다. 누가 뭐래도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 정도까지 된 것은 한국 남자들의 희생 때문이다. 불과 50~60년 전만 하더라도 이 나라 사람들은 미군 '찌프차' 뒤를 쫓아다니며 "기브 미 껌! 기브 미 초콜릿!"을 외쳤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어설 가능성이 전혀 없어보이던 그 불쌍한 나라를 도와주러 세계 각국에서 왔다. 그중에는 필리핀, 태국 사람들도 있었다.
장충체육관은 그때 필리핀 사람들이 지어준 건물이다. 우리 능력으로 그런 돔형 체육관을 짓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던 때였다. 광화문 오른쪽에 서 있는 쌍둥이 건물, 즉 미국대사관과 문화관광부 건물 역시 필리핀 사람들이 지어준 것이다. 태국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한국전쟁 당시 태국군은 정말 용감하게 싸웠다. 태국의 병사들이 한국의 고아들을 품에 안고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진은 지금도 볼 수 있다. 포천 쪽을 지나다 보면 잘 가꿔진 태국군 참전비를 볼 수 있다.
그때 그 고통스럽고 한심했던 나라가 지금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필리핀 사람이나 태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로 취업하는 나라가 되었다. 심지어는 불법으로라도 일하고 싶어 하는 '코리안드림'의 나라가 되었다. 불과 수십 년 전 우리가 '아메리카드림'을 꿈꾸고 어떻게든 미국에 가고 싶어 했던 것처럼.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일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이토록 짧은 기간, 이토록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는 없었다. 지난 세월, 남자들의 어깨는 이 기적적인 성장에 대한 자부심으로 빛났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는 떨고 있다.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던 회사에서 언제든지 잘려나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오늘도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회사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해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내가 온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나 없이도 회사는 아주 잘 돌아간다. 아쉬운 것은 오히려 나다. 내가 이 회사, 이 나라를 세웠다는 자부심을 버린 지 오래다. 틈만 나면 은퇴한 후 받을 수 있는 연금이나 퇴직금을 계산할 뿐이다.
두 번째 자부심은 가장으로서의 자부심이다. 바깥에서 아무리 비굴하게 돈을 벌어도, 집에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 아버지들은 왕이 되었다. 아침에 아버지가 집을 나서려면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다린 옷을 내왔다. 아버지는 팔을 뒤로 내밀기만 하면 되었다. 넥타이도 매줬다(연속극에서 여자가 넥타이를 매주는 장면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아버지가 퇴근하는 시간, 아이들은 문간에 일렬로 늘어서서 아버지를 맞았다. 대문을 들어서며 아버지는 꼭 헛기침을 하셨다. 목이 아프신 것도 아닌데 꼭 그렇게 헛기침을 하셨다. 가장이 돌아왔다는 신호다.
아버지가 세수를 마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안방으로 들어서면, 어머니는 아랫목에 식탁을 펴고 정성스럽게 저녁을 내왔다. 아, 그 맛있고 귀한 달걀 프라이는 오직 아버지의 몫이었다. 가끔 어머니는 생계란을 내오시기도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미제 빠다'와 '왜간장'을 비벼 드시는 아버지의 식탁을 온 식구는 군침을 삼키며 그저 부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버지는 그러셔야만 했다. 우리 가족의 운명은 오직 아버지의 어깨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아내들은 더 이상 남편들을 위해 밥을 짓지 않는다. 오직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한다. 아내가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청국장찌개를 끓여주지 않은 지는 정말 오래 되었다. 아이들이 청국장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는 매주 쉬지 않고 식탁에 오른다. 느끼한 스파게티 소스를 내가 그토록 싫어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도 없다. 이제 스파게티의 붉은 토마토소스나 희멀건 크림소스에 질릴 만도 하건만 아이들은 매번 피자 아니면 스파게티다. 결국 난 식탁 한구석에서 김치와 남은 반찬을 긁어 밥 한 공기를 때운다.
아, 그 간장게장은 또 어떻고, 간장게장을 먹고 마지막 남은 '게 껍데기'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은 게장을 먹는 가장 아름다운 목적이다. 그런데 스파게티만 좋아하던 아이들이 어찌하다 '게 껍데기'에 밥 비벼 먹는 재미를 알게 된 거다. 이젠 '게 껍데기'는 당연히 저희들 차지다. 그 옛날 침흘리며 아버지의 달걀 프라이를 바라본 것처럼, 이젠 젓가락을 빨며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세 번째 자존심은 수컷으로서의 자부심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남편은 아내를 만족시켜줄 수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다가도 식탁을 치우고 "하자!" 하면 바로 할 수 있었다. 아내는 넘쳐나는 남편의 성욕을 귀찮아하고 부담스러워했다. '짐승' 같다고도 했다. 아, 그런데 그게 전혀 아니었다. 어린 아내는 아무것도 몰랐을 따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정은 달라진다. 달라져도 그렇게 달라질 수가 없다.
옛날처럼 내키는 대로 그냥 "하자!"고 했다간 큰일 난다. 촛불도 켜야 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도 배경음악으로 깔아야 한다. 깨끗이 샤워하고 향수도 뿌려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있다. 아주 오래, 기술적으로 잘 버텨야 한다. 갈수록 어려워진다. 두려워진다(내 친구 송한욱은 아직도 자신을 "두 시간 송입니다"하며 소개한다. 젠장!).
아내들의 불만족은 여성지의 권말 부록으로 바로 표현된다. '누운 남편을 일으켜 세우는 20가지 방법' '조루 남편 변강쇠 만들기' 등등. 한번은 잘 아는 여성지 편집장에게 물었다. 도대체 여성지 권말 부록의 제목은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를. 그래야 잡지가 잘 팔린단다.
신문에 나오는 여성 월간지의 광고는 죄다 대문짝만 한 전면 광고다.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다. 신문에 올 컬러로 실린 전면 광고의 한구석에 꼭 있는 권말 부록의 문구를 발견할 때마다 사내들의 가슴은 철렁한다. 사내들끼리 앉아 자조한다. 요즘은 '자이데나'가 대세다(내친구 홍석한이 직접 임상실험한 결과란다).
'호주제'도 폐지되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성'이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자신이 여전히 가족을 대표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호주제가 사라진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이 자동적으로 가족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지 않으면 그 '대표 자리'는 단번에 날아간다.
이젠 동양 남자 특유의 짧은 다리까지 문제가 된다. 키가 180센티미터가 안 되면 '루저(loser)'라는 거다.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루저'라는 단어에 철없는 사내들이 발끈하며 고소를 하고 피해보상까지 요구한다. 이 황당한 사태의 이유는 단순하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거다. 그보다 더 심한 이야기는 이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청춘의 황금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군복무에 대한 어떤 사회적, 심리적 보상도 없고, 내 아이들이 내 성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만 야릇해도 고소를 당하는 상황에서, 180센티미터가 안 되면 남자도 아니라고 무시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예쁜 여성이, 그 키 크고 아름다운 외국 여인들 앞에서 아주 내놓고 한국 남자들의 자존심을 짓밟아버린 것이다.
외국에 좀 살아본 한국 남자들은 다 안다.동양 여자와 사랑하는 서양 남자들은 그렇게 많은데, 서양 여자와 사랑하는 동양 남자는 왜 그렇게 희귀한가를. 서양 영화에 묘사되는 동양 남자란 일사분란하게 키 작고 못되고 비겁하다. 게다가 그 착한 동양 여인들을 하녀처럼 막 다룬다. 이런 서양인들의 편견에 기죽지 않을 동양 남자는 별로 없다. 그렇지 않아도 서양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움츠러드는 한국 남자들에게 한 철없는 여인이 공중파에서 키 작은 남자는 남자도 아니라는 인종적 열등감까지 건드린 것이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루저' 해프닝에는 남북 분단의 민족 모순, 시대 변화에 따른 성 역할 모순, 더 나아가 인종 모순까지 함께 섞여 녹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손해배상이나 청구하고 그 처자의 신상을 뒤져서 익명으로 욕설이나 내뱉는 유치한 반응 이외에는 별다른 저항의 수단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업자득이다. 자신을 둘러싼 이 땅의 온갖 역사, 문화적 변동에 아무 성찰 없이 투덜댄 결과다. 어, 어, 하다 보니 결국 몰릴 대로 몰려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여인들의 눈길에 맞춰 배에 식스팩 근육 만드는 수술을 하고, 여인들이 사랑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교태를 부리며 살아남는 일뿐이다.
어쩔 수 없다. 이제까지 남자들의 눈길에 맞춰 가슴에 소금물 주머니를 삽입하고, 엄지발가락이 휘어지도록 높은 하이힐을 신어 엉덩이를 치켜세워야 했던 여인들이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이야기를 아주 조금씩 내놓고 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 엄청난 문화 변동의 소용돌이 앞에서 철없는 사내들은 그저 '루저'라는 단어에 씩씩댈 뿐이다. 이젠 더 이상 달걀 프라이 안해준다고, 게 껍데기에 밥 비벼 먹지 못한다고..... 이런 루저들 같으니라고......
첫댓글 위의 글은 김정운(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명지대교수)님의 <남자의 물건>이란 책에서 인용했습니다^^~
읽다보면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