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10. 아옵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
신앙고백
찬송 57 즐겁게 안식 할 날
기도 하경숙 권사,조용림 권사,염성섭 장로,이원준 장로,
성경말씀 베드로전서1:6~9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순종하게 하소서.
찬송 364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광고 시립 전환을 위해 기도(하나님께 감사)
봄 정기노회-4월8일~9일, 부활주일예배(4월21일, 직원총회)
찬송 338 천부여 의지 없어서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하얀 매화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노랑 산수유도 활짝 피었습니다.
섬진강 줄기에도 꽃들이 만발해서 상춘객들이 몰렸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세먼지 때문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이제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걱정도 잠시 사라질 것 갔습니다.
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8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 베드로의 편지입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에서 수제자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살아생전의 모습이었던
일상생활을 낱낱이 지켜 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고난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모습까지도
비겁했지만 찌웃찌웃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그리고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세 번씩이나 사랑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입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절,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절,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그리고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산 증인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절입니다.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신지 30여년이 흘렀습니다.
이때가 AD70년경입니다.
교회가 많이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성도님들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네로Nero황제가 기독교 박해를 심하게 할 때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예루살렘교회를 조금도 흔들림 없이 세워 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베드로는
바울이 로마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목회자로서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로마로 달려갔습니다.
로마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교회가 여러 가지로 고난과 역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해받던 성도들을 위해서 눈물로 쓴 편지가
베드로전서입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편지를 썼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제가 개척할 당시 일자무식인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성령의 힘으로 글을 깨쳤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성도님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살았겠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찌 근심걱정 한개도 없이 살았겠습니까?
엊그제 우리 서정애 성도님을 119 구급차로 원대병원 응급실갔습니다.
목구멍에 있는 의료기를 교체하고 콧구멍 줄을 갈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보호자님은 전혀 소식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이 우리의 사명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뒤 따라 나서려는데
우리 석 권사님이 목사님을 따라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 권사님 손 붙잡고 함께 응급실로 갔습니다.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석 권사님께서 화장실부터 찾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자 화장실을 쪼매쪼매 열어드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나오시자 조금 있으니 또 다시 화장실을 찾고, 또 찾고
얼마나 힘들게 하시는지.
그렇지만 목사인 저는 행복했습니다.
우리 석 권사님과 함께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옆에 계신 분에게 우리 목사님이라고 자랑하시는 겁니다.
심한 치매 때문에 자주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모습이 미안 했던가 봅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세상구경 사람 구경하면서
우리 석 권사님 바람쐐 드려서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매일 응급 상태로 살아가시는 우리 서정애 성도님을 볼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응급실에 가는 목사님 손 붙들고 콧바람이라도 쒸려는
치매가 아주 심하신 우리 석 권사님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그냥 감사하지 않습니까?
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성한 두 다리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 합니까?
그러니 어떠한 시험이 올지라도 잠시 잠깐 아니겠습니까?
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아멘이올시다.
어떤 시험이 몰아쳐 올지라도 오히려 기뻐하는
성숙한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때 사도바울은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찬송하면서 기뻐하지 않았습니까?
사도행전 16장 23절입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가 죽어라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것도 발에 족쇄를 찬 체로 옥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매는 40대에서 한 대를 뺀 39대를 맞고 옥에 갇혔으니
바울과 실라가 죽을 지경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로마법에 40대의 매를 맞으면 사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을 때릴 수 없도록 한 법 때문에 39대를 맞은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만신창이가 되어 죽기 일보직전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내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로 나가기 원합니다.(364장)
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시련입니다.
마치 금광석을 불속에 넣어서 녹이고 때려서 순금을 뽑아내듯
우리에게 시련과 근심과 환난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순수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7절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아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시련과 슬픔은
잠시 잠깐입니다.
그래서 참고, 참고 또 참으며 견뎌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날이 옵니다.
8절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아름답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가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할 수 있었을까?
한 때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철저하게 통회하고 깨달은 진리 아니겠습니까?
베드로는 결국 영혼의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9절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으리라.
저는 소원이 있다면
영혼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어떠한 시련이 있을지라도
사도바울처럼 즐거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자유함입니다.
저는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를 자주 봅니다.
이 분들은 깊은 산 속에서 자유함을 만끽하면서 살아갑니다.
대부분에 이 자연인들은 죽을병에 걸려서 마지막으로 버려진 곳이
깊은 산골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실패하고 버려진 땅이 깊은 산 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버려진 깊은 산골이 생명의 땅이었습니다.
이 버려진 깊은 산골에서 가장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항복!
한마디로 내가, 졌소!
두 손 드는 것입니다.
찬송가도 이런 찬송가가 있습니다.
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손을 들면 눈물만 나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 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찬338장)
그러면서 모든 욕심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위로받고 치유되면서 죽어가는 육신도 회복됩니다.
결국 우리가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는
영혼의 문제인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아름답습니다.
역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석제자입니다.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 깨달음을 말 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가 못했습니다.
성격도 얼마나 과격했습니까?
그래서 그 성격 때문에 로마병정의 귀를 자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잘난 체도 얼마나 했습니까?
항상 큰 소리로 절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하고
곧 세 번씩이나 배반했습니다.
그러면서 크게 인생을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말씀 아니겠습니까?
22절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우리의 믿음의 시련이
마치 금광석을 불속에 넣어서 녹이고 때려서 순금을 뽑아내듯
우리에게 시련과 근심과 환난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순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순종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가식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냥 형제가 믿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80, 90이 넘으신 우리 권사님들을 뵐 때
항 상 배우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냥 목사님께서 하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권사님 따라해 보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면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따라 하십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모습이 순종입니다.
며칠 전에 임 집사님이 황급히 내려 왔습니다.
목사님, 4층에 장로님께서 화가 크게 났습니다.
목사님께서 올라가 보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4층에 올라갔습니다.
아버님께서 저에게 노발대발 하셨습니다.
뜬금없었습니다.
목사인 아들을 부모학대 죄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역정을 내시는지.
우리 성도님들 뵙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평생을 대접만 받고 사신분입니다.
학교에서는 제자들, 학부모님들께 크게 대접을 받았습니다.
옛날에는 스승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교회에서는 장로님이셨습니다.
얼마나 흉숭한 대접을 받았습니까?
아들인 제가 곁에서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90이 다 되셨습니다.
베풀면서 사시면 참 좋겠습니다.
아무리 치매증상이 있으실지라도
항상 기도하시면서
항상 감사하면서 사시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목사인 저도 걱정입니다.
제가 아버님을 꼭 빼 닮았습니다.
어찌되었던 목사라할지라도 제가 아들인 것은 맞습니다.
목사인 제가 불효자입니다.
우리 어르신들께는 속을 다 빼 줄 것처럼 잘하는데
우리 아버님께만 못합니다.
그러니 아버님께서 화가 날 만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빕니다.
우리 선교비젼센타, 요양원에는 100명이 먹고 삽니다.
매일 근심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님들께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며 순종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목사인 저도 나이가 들어서 요양원에 있을 땐
우리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감사하면서 살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