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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둘레길 길동무 원문보기 글쓴이: 수명산
호남정맥 종주 1구간(국사봉ㆍ불암산)
종주일자 : 2001년 6월 28일
종주구간 : 섬진강 외망마을 ~ 국사봉 ~ 불암산 ~ 토끼재
날 씨 : 흐림/맑음
도상거리 : 15.5km
섬진강변(외망마을) - 0.7km - 망덕산 - 0.8km - 2번국도 - 1.25km - 190봉 - 0.9km - 천왕봉 - 0.6km - 남해고속도로 - 2km - 뱀재(869번지방도) - 1.1km - 상도재 - 2.5km - 국사봉 - 2.65km - 탄지재 - 1.35km - 불암산 - 1.65km - 토끼재
우리의 산줄기 호남정맥을 찾아 떠나는 오늘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하루는 내내 설레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물을 범하지 못한다’ 는 것이 우리 선조 들의 지리 관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은 남으로 내리 닫으면서 여러 개의 산줄기를 흘리며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선조 들은 우리의 산줄기를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일제는 땅속의 지질 구조선을 따라 산줄기를 구분하고 산맥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우리는 90년 간 민족 고유의 산줄기 개념을 잊고 지내 왔다.
호남정맥은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가지를 쳐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이 분기점인 주줄산에서 다시 금남정맥과 갈리면서 첫 번째 만덕산(762m)을 시작으로 경각산, 오봉산, 묵방삼, 왕자산, 고당산, 내장산, 백암산 상왕봉, 대각산, 추월산, 광덕산, 산성산, 봉황산, 무이산, 연산, 만덕산, 국수봉, 북산, 무등산, 안양산, 오산, 천왕산, 구봉산, 천운산, 태악산, 촛대봉, 두봉산, 계당산, 봉화산, 고비산, 군치산, 봉미산, 국사봉, 가지산, 용두산, 제암산, 곰재산, 사자산, 이림산, 활성산, 봉화산, 방장산, 주월산, 존제산, 백이산, 고동산, 굴목이재, 조계산, 오성산, 유치산, 무유산, 바랑산, 농암산, 수이봉, 갓꼬리봉, 형제봉, 도솔봉, 한재에 이어 정맥의 끝인 백운산에서 남쪽 줄기를 따라 섬진강을 휘감으며 망덕산(197m)에 이르는 호남을 동서로 가르는 도상거리 400km가 넘는 긴 산줄기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종주 첫날
밤새 달려와 순천에서 별미 콩나물해장국으로 배를 채운 정맥꾼들이 섬진강 하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4번지 외망 마을 포구에 도착하면서 조용한 아침이 열리고 있다.
호남정맥의 출발점인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서 발원하여 남해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길이 212.3km, 유역면적 4896.5km²로 한국에서 아홉 번째로 긴 강으로 본디 모래가람, 다사강, 사천 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며 대체로 강 너비가 좁고 강바닥에 암반이 많이 노출되어 있다. 1385년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 때문에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발원지는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금남호남정맥에 있는 팔공산(1151m) 상추막이골의 머리 부분(근처에는 고랭지채소와 약초가 재배되는 평원이다)에서 시작하여 이곳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에서 합수되는 호남정맥에 속하는 대표적인 강이다.
05시 30분 덕산사로 오르는 콘크리트계단을 따라 호남정맥 첫발을 내딛는다. 덕산사 창건 공적비가 서있는 경내에서 김종국대장의 간단한 호남정맥 자료 보충설명을 들은 후 대원들은 완주를 다짐한다.
05시 50분 덕산사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는 길에 덕유산악회 산이 좋은 사람들의 노란색 리본이 반기고 새들의 지저귐 속에 억새풀들이 가득한 산길은 산안개가 자욱하다. 4분 가량 가파르게 오르던 잡목과 중키에 소나무숲길이 완만해 지며 잡풀이 무성한 묘1기를 지난다.
05시 56분 사거리 갈림길에 서있는 정상까지 410m라 표기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나고 곧이어 안동 권씨 묘지를 통과하는 넓은 등산로는 소나무숲길을 따라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06시 07분 화평 윤씨 쌍무덤이 있는 펑퍼짐한 망덕산(△197.2m) 정상이다. 삼각점은 찾을 수 없고 북동쪽으로 조금아래에 산불초소 밑으로 사선대가 보이지만 짙은 안개로 시야가 가려있다.
뒤돌아 오르던 길로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 갈림길에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산허리 길을 돌아서니 체육시설이 있는 옛 절터(06:25)가 나타난다. 샘터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대나무 숲을 지나 키 작은 소나무 숲에 야트막한 능선을 따르다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산허리 길로 이어지던 정맥은 파헤쳐진 산길을 내려서면서 2번 국도를 만난다.
06시 50분 도로를 가로지르면서 1m 높이에 도로 분리대를 넘어 급경사에 절개지를 오른다. 명감덩굴이 옷깃을 붙잡는 오름길에는 잡목들이 엉켜있고 반바지로 시작한 박덕주선배에 다리는 어느새 상처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06시 16분 110봉을 지나 완만한 중키의 소나무숲길로 정맥은 이어진다. 이름 없는 무덤 옆에서 잠시 다리쉼(06:20)을 하며 뒤돌아보니 잿빛하늘 아래지만 처음으로 우리 앞에 펼쳐져 그 모습을 드러낸 섬진강 하구는 한 폭의 그림 같다. 190봉으로 오르는 바윗길에서 좌우로 내려다보는 경치 또한 일품이다. ‘길따라 정맥따라’ 부산 건건산악회의 노란색 리본은 호남정맥에서도 우리의 길 안내자가 되어준다.
07시 30분 190봉 암봉에 오르니 단숨에 가슴속까지 확 트이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다. 왼쪽(서쪽) 수어천 건너 광양 아파트단지가 빤히 내려다보이고 그 위로 가야산이 구름에 걸려있다. 남쪽으로 검게 다가오는 광양제철의 시설물들, 광양만 너머로 여수 영취산도 조망된다. 망덕산 뒤로 섬진강대교가 보이고 섬진강하구 뒤로 남해 망운산(758.9m)도 보인다. 우리가 가야할 백운산도 그 모습을 드려낸다. 정맥은 북릉을 타고 이어진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 사이로 키 작은 아카시아나무와 참나무가 길을 메우고 있고 완만한 오르막길에는 풀벌레 소리가 정맥꾼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07시 40분 확 트인 190봉을 뒤로 바위길을 내려서니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능선길이다. 한결 운치 좋은 소나무숲길을 따라 봉우리 하나를 넘어 천왕봉을 향한다. 철망 울타리를 통과하여 울타리를 끼고 이어지는 솔잎 가득한 내리막길엔 독버섯이 즐비하다.
07시 55분 안부에서 철망 문을 통과하고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천왕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오름길을 커다란 바위를 끼고 오른다.
08시 5분 암봉으로 된 천왕봉에 서니 다시 한번 멋진 조망을 선사한다. 북으로 반듯하게 경지 정리된 푸른 들녘과 남해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내려 다 보인다. 되돌아보니 망덕산에서 이어온 정맥능선이 선명하게 이어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름 위에 떠있는 백운산 이 한 폭에 그림 같다.
08시 15분 천왕봉에서 수어천을 내려다보며 누어있는 전주 최씨와 진양 조씨 합장 묘를 뒤로 너덜길을 내려선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소나무와 잡목들이 빽빽이 들어찬 잡목지대를 통과하여 과수원 울타리(그물망)를 넘는다.
08시 35분 남해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여 다시 능선에 붙는다. 대나무 숲을 끼고 고구마 밭을 따라간다. 밀양 박씨 무덤을 지나 정맥은 큰바위가 있는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키 작은 밤나무밭을 지나는데 어느새 산딸기가 대원들을 유혹한다. 아름드리 노송 숲을 통과하여 참깨, 가지, 고추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는 밭 한쪽으로 피어있는 보라색의 도라지꽃이 아름답다.
08시 55분 소로 길을 가로질러 오르는 길 왼쪽으로 잘 가꾸어 놓은 가족묘를 통과하는데 부산의 준과 희, 언제나 정맥에서 만나는 주홍색 리본이 대원들은 반갑다. 자갈이 깔린 임도를 만나면서 정맥은 임도를 따른다.
09시 30분 진월면과 진상면 표지판이 서있는 869번 지방도 상의 뱀재 고갯마루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에 붙어 밤나무 밭 아래에서 다리쉼을 한다. 바람이라도 좀 불어주었으면 좋겠는데 바람은 여행을 떠났는지 소식이 없다. 매화나무 밭을 끼고 밤나무단지를 지나면서
10시 15분 국립건설연구소에서 설치한 소삼각점이 훼손된 167.2봉(△167.2m)에는 비석 없는 묘가 자리잡고 있다. 167.2봉을 뒤로 10분 가량 뚝 떨어지다가 안부에서 밭을 끼고 소나무숲길은 3분후 소로를 만나고 대원들은 송전탑을 향해 잠시 내려선다.
10시 30분 상도재를 통과한다. 상도재를 뒤로 임도을 따르던 대원들은 산길로 들어서면서 힘겨운 오르막이 시작된다. 송전탑(10:43)을 통과하여 키 작은 소나무와 잡풀이 무성한 정맥에는 뻐꾹새 울음소리가 능선에 울러 퍼진다. 진달래나무가 잡목과 엉켜있어 헤쳐나가기 조차 힘에 겨운 오르막에서 우회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잡목을 헤쳐가며 올라선 봉우리가 고도가 270m 정도에 봉(11:00)인데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다.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서 평탄한 능선은 키 작은 잡목들이 즐비한 십자로안부를 통과하여 정맥능선을 뚝 잘라서 평지를 만들고 들어선 묘 5기를 지나 힘겹게 언덕을 올라서니 시야가 터지며 섬진강을 내려다 볼 수가 있다.
11시 14분 한차례 다리쉼을 하고 올라서는 길이 진달래가 들어차 있어 길조차 희미한데 명감덩굴이 옷깃을 붙잡는다. 억새군락도 이어지고 바닥에 깔린 잡목들 사이로 소나무 몇 그루와 참나무가 서있는 밋밋한 봉우리(11:32)를 오르면서 413봉이겠지 하지만 아니다.
11시 50분 한번 더 속은 후에야 413봉(△413m)에 올랐다가 억새풀이 가득한 능선을 따라 내려선 안부에서 허기를 채우고 안부를 뒤로 완만하게 이어지던 오름길이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봉우리가 국사봉이다.
12시 18분 삼각점(하동 15, 1989년 재설)이 있는 국사봉에 올랐을 땐 대원들은 모두다 지쳐 있었다. 2시간 이상을 빽빽이 들어선 진달래와 잡목들로 길조차도 희미하고 때론 그늘도 없는 능선을 헤치며 오르다보니 애꿎은 물병만 바닥이 들어 나 버렸다. 옛 산성인 듯 흔적이 남아 있다.
12시 35분 국사봉을 내려선다. 완만하던 내리막길이 3분쯤 뒤 가팔라진다. 다시 3분 가량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시원하게 내려서던 길이 다시 잡목들이 길을 막는다. 바위지대를 통과하고 넝쿨들이 길을 막는 잡목지대를 지나 안부에 내려섰다 올라서는 길 역시 진달래와 잡목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헤쳐 나가기가 힘에 부친다. 나지막한 봉을 연이어 넘는다. 바위지대도 나타난다.
13시 3분 왼쪽으로 나있는 갈림길을 지나면서 탄지재로 오르는 2번 국도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수어지와 비평리 마을들의 평화로운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지만 대원들 모두가 물이 떨어져 힘겨운 모습들이다.
13시 25 고도 290m을 가리키는 봉우리를 넘어 가랑잎이 가득한 내리막길에서 경전선 철길도 확인 할 수 있다. 급경사에 내리막길을 지나 나리꽃이 피어있는 송전탑을 통과하며 임도를 만나지만 1분후 다시 숲길엔 중키에 누렇게 잎이 말라버린 소나무가 꽉 들어차 있고 넝쿨들이 정맥꾼을 괴롭히고 있다. 십자로 안부를 가로질러 무덤이 지키고 있는 봉을 넘는다. 다시 완만한 내림길 뒤에 가파른 오름막을 오르면서 늘 정맥에서 듣기 좋았던 산새에 지저귐도 오늘은 다 시끄러운 소리로 들릴 뿐...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서 열차의 기적소리가 탄지재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13시 55분 넓은 헬기장이 있는 249봉에서 다시 잡목숲길로 급경사에 내리막을 내려서면서 벌 때에 공격을 받는다. 다행이 나는 괜찮았지만 대원들 대부분이 벌에 쏘여 통증을 호소한다. 임도에 이어 2번 국도 탄지재에 내려선다. 모두가 탈진 직전에 모습들이다.
14시 10분 조그마한 표지석이 서있는 해발 100m에 탄지재 고갯마루는 진월면과 진상면 경계 표지와 성원산업(주) 레미콘 공장 입관판이 서있다. 탄지재에서 대원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호남석해공업(주)를 찾아가 직원에게 물을 좀 얻자고 부탁을 했더니 들어오면 안 된다고 나가란다. 사정을 해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여서 정맥꾼들은 돌아서고 말았다. 세상에 인심도 고약하지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되었나 눈물이 날 정도다. 다시 탄지재로 되돌아서다 산장 입간판을 따라 한참을 내려서니 산장 마당에 수도꼭지가 대원들은 반갑다. 얼마나 많은 물을 마셨는지 모른다. 떨어져 있는 살구 열매로 허기를 채운다.
14시 50분 탄지재를 뒤로 임도를 따르다가 감나무밭을 통과한다. 진달래나무과 중키에 소나무가 이어지는 정맥길은 고도를 높이면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 증상이 나타난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오름길에 왼쪽으로 갈림길을 통과하고 320봉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2분 가량 내려선 안부에서 다시 오르고 내림이 이어진다. 힘이 떨어져 자연히 휴식도 잦아지고 불암산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졸음도 밀려온다. 싸리나무, 억새풀이 엉켜있는 오름막길엔 명감덩굴도 덩달아 지친 정맥꾼을 붙잡는다.
15시 48시 불암산(△431.3m)정상에 오른다. 삼각점(1985 재설 ,하동 452)이 있고 주위로 억새풀과 싸리나무가 둘러쳐진 최고의 전망을 선사하는 곳이다. 북동쪽으로 지리산 능선으로 시작하여 섬진강 하구며 가깝게는 서쪽 아래로 수어댐에 이르기까지 그 멋진 광경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난 지금 너무나 지쳐있었다. 대원들은 저 많은 봉우리를 발로 걸어서 이곳까지 넘어왔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며 다리품에 대가를 신기하게 여긴다.
하산길이 시작된다. 하루종일 잡목을 헤치느라 진을 뺀 대원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10분 가량 내려왔을 때 선바위(?) 모습의 바위를 통과하고 다시 얼마를 걸었을까? 거대한 바위가 두 개 우뚝 솟아있는 능선을 지나면서 철조망을 넘는다.
16시 50분 고도가 230m을 가리키는 마지막 봉에 올랐다가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길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보기 좋다. 임도를 만난다.
16시 55분 다압면계 표지판이 서있는 2차선 포장도로 토끼재에 내려선다. 손톱만큼 남은 체력으로 차에 오른다.
호된 신고식을 끝낸 호남정맥 일구간 종주 첫날을 끝내고 진상면 소재 거북장에서 하루 밤을 보낸다. 잠이 오지 않는다. 자야하는데... 잠을 자야지... 자정을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