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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제작 / 2004 국내 개봉 / 163분>
=== 프로덕션 노트 ===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구로사와 아키라가 영화화한 작품. 70대의 구로사와가 만든 <란>은 그 스스로 자신의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말한 그런 영화이다. 여기서 구로사와는 우선 스크린 위에 장대한 비주얼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고 그 결과 표현주의적 작품에 가깝다고 할 만큼 시각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다른 한편으로 <란>은 하늘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 조건을 내려다보려는 야심찬 시도를 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제7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 (1987) 외국어영화상
제7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 (1987) 감독상
제4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1987) 분장상
제4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1987) 외국어영화상
제20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1986) 촬영상
제20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1986) 작품상
제5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1986) 의상상
제33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1985) OCIC상
제11회 LA 비평가 협회상 (1985) 외국어영화상
제11회 LA 비평가 협회상 (1985) 음악상
제50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1985) 최우수 외국영화상
의리도 정도 없는 이 세상, 어찌 누구를 의지하며 살려고 하는가...
이제 너무나 늙어버린 성주 히데토라는 어느 날, 아들들을 데리고 한낮의 사냥을 마치고 즐기다가 낮잠에 든다. 홀홀 단신으로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다는 꿈을 꾼 그는 큰 결심을 한다. 히데토라는 아들들에게 각각 화살 하나씩을 주고 부러뜨려 보라고 하고 화살은 쉽게 꺾인다. 그러나, 세개의 화살을 한꺼번에 꺾기는 힘듦을 알려주고, 세 형제가 힘을 합쳐 나라를 이끌어 가라고 한다. 세 아들에게 3개의 성을 각각 나눠주고, 첫째 타로에게는 장남이기에 가문을 이끌도록 한다. 또한 둘째 지로와 셋째 사부로에게도 성을 하나씩 주고 자신은 성주의 칭호와 지위만 유지한 채 세 아들의 성을 돌아다니면서 살겠다고 한다. 두 형제는 기뻐하지만, 막내인 사부로는 오히려 화를 낸다. 의리도 정도 없는 이 세상에서 왜 자식을 의지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삼형제가 서로를 피로 물들일 거라는 예언을 한다. 이에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사부로를 내치고 다시는 아들로 치지 않겠다고 한다. 첫째 아들 타로가 가업 승계 축하연을 열고 그곳에 참석한 아버지는 심한 모욕을 당한다. 아버지의 부하가 자신을 무시했다며 장남인 타로는 아버지에게 앞으로 자신의 말에 복종하겠다는 서약문에 피로 혈장을 남기라고 한 것이다. 이치몬지는 자신이 성주의 칭호와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것을 잊었냐고 하지만, 타로는 자신에게 가문을 물려주지 않았나며 대들고 결국 히데토라는 심하게 화를 내며 다시는 타로를 보지 않겠다고, 둘째 지로의 성을 찾아가는데...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1910.03.23 ~ 1998.09.06)
'일본 영화계의 천황' 구로사와 아키라는 일본영화계가 낳은 최고의 거인이었다.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산다는 것> 등의 작품으로 그는 세계 영화사에서 굵은 발자욱을 남겼다. 구로사와는 서구양식과 일본양식을 교접하는데 천재였으며 가부키와 노 등 전통적인 일본 예술은 그의 영화를 통해 서구에 효과적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의 현대 미국 감독들은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존 포드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아버지상을 봤다.
1910년에 태어난 구로사와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등의 책을 탐독하고 미술에 관심을 기울인 사춘기를 보내고 1936년 24살 때 도호 영화사에 취직했으며 연출부 말단부터 차근차근 길을 밟아 33살 때인 1943년 <슈가타 샨슈로>로 데뷔했다. 비교적 과작인 구로사와의 전성기는 1950년대. <라쇼몽>이 195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구로사와의 운이 트였다. 한 사무라이의 죽음을 두고 산적과 사무라이의 아내,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과 나무꾼의 증언을 교차시킨 이 영화는 일본 시대극을 '현대화시킨' 구로사와의 취향이 잘 드러난다. 초반부에 나무꾼이 숲 속으로 나무를 하러 가는 장면에서 라벨의 음악 '볼레로'를 깔면서 다양한 촬영각도로 나무꾼의 행동거지를 잡아낸 연출은 당시 일본영화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구로사와의 서구식 화술은 또 다른 <7인의 사무라이>에서도 돋보인다. 산적들의 습격을 견디다 못해 농민들이 사무라이들을 고용해 산적들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존 포드의 서부영화를 빼 닮았다. 이 영화 속의 사무라이들은 서부에 문명화된 사회의 기초를 닦기 위해 무법자들을 제압하는 존 포드 서부극의 총잡이들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잘 다듬어진 일본식 정원처럼 세세한 인공적 솜씨를 느끼게 하는 구로사와의 연출은 존 포드식의 고전영화 화법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빠른 이동촬영과 편집으로 극적인 장면에 방점을 찍으면서 구로사와는 자신의 영화에 서명을 남겼다. 이 영화는 공동체의 단결을 묘사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동선을 원 형태로 연출한 '원구도'로도 유명하다. 구로사와는 자기 영화에 가부끼의 연기양식을 곧잘 도입해 꾸미는 것으로 서구와 일본의 접합을 꾀했다.
서구양식과 일본적인 것의 절충이라는 구로사와 형식은 셰익스피어의 '멕베스'를 일본식으로 옮긴 <거미의 성>에서 절정에 달했다. 헐리우드 영화를 뺨치는 규모의 스펙터클에다 셰익스피어라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예술성을 갖춘 이 영화는 일본 봉건시대의 역사에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녹이되 하얀 마스크를 쓴 것처럼 진하게 화장한 등장인물들의 양식화된 몸짓에 일본전통예술인 가부키와 노의 양식을 섞은 장관을 연출했다.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 <악인이 더 편히 잠든다>, <요짐보> <쓰바키 산주로> 등으로 시대극과 현대극에 두로 능했던 구로사와의 전성기는 <붉은 수염>을 고비로 하강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일본영화산업이 기울고 구로사와의 영화도 높은 제작비에 비해 흥행을 보장할 수 없음이 증명되자 구로사와는 일본영화계의 기피인물이 됐다. 폭스에서 제작한 <도라, 도라, 도라>의 감독 직에서 해임된 후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받은 구로사와는 최초의 색채영화인 <도데스카덴>마저 흥행에 실패하자 자살을 선택했다. 자살은 미수에 그쳤지만 이는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구로사와는 그 이후 외국자본을 출구로 삼아 소련에서 제작비를 댄 <데루스 우잘라>를 시작으로 일본과 미국 합작의 <카게무샤>, 프랑스 자본의 <란>, 미국 자본의 <꿈>을 연출했다. 만년의 두 작품인 <8월의 광시곡>, <마다다요>만이 일본자본으로 제작됐다. 구로사와의 후기 걸작은 <카게무사>였으며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보증을 서고 20세기 폭스가 제작비를 댄 이 영화는 장대한 역사허무주의를 보여주는 예술적 스펙터클로 칸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구로사와의 후기작들은 화려하고 탐미적인 영상에 탐닉했으며 뭔가 허전한 느낌을 준다.
영화사가인 제랄드 매스트는 구로사와가 전통적인 일본영화의 명상적인 리듬보다는 미국영화의 날렵한 속도감을 영화에 받아들여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구로사와의 영화는 가부키와 노의 정적인 리듬과 화려한 이동화면, 극단적인 딥 포커스 촬영을 적절히 배합해 기존의 영화예술의 경계를 넘어 자신만의 미학적 영토를 개척했다. 구로사와는 또 잘 가꿔진 일본식 정원 같은 단아한 인공미의 정수를 영화에서 보여줬다. 구로사와의 영화는 이제는 보기 힘든 대가의 웅혼한 연출력을 보여줬으며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대 일본영화의 전설이었다.
=== 참고자료 === <2014년 7월 7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 진회숙 글>
영화속 클래식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85년에 내놓은 영화 [란]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일본판으로 각색한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영화로 만든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보다 훨씬 전인 1957년 [맥베드]를 일본식으로 각색한 [거미집의 성]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었다. [란]을 보면 원작을 일본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약간의 수정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리어왕]이 두 명의 노인을 중심에 두고 이중구조로 전개되는 데에 반해 [란]은 권력을 잃은 영주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에게 부모를 잃은 오누이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리어왕]에서는 세 명의 딸이 나오지만 [란]에서는 세 명의 아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6세기 일본의 전국 시대이다. 세 아들과 부하, 다른 성의 영주들과 멧돼지 사냥에 나선 성주 이치몬지 히데토라는 사냥이 끝난 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주겠다고 선언한다.
히데토라는 아들들에게 '세 자루의 화살' 이야기를 하며 형제 간의 우애를 강조한다. 화살 한 개는 쉽게 부러뜨릴 수 있지만, 세 개를 합치면 쉽게 부러뜨릴 수 없다고 하면서 아들들에게도 화살 세 개를 합친 것처럼 서로 합심해서 가문을 발전시켜 나가라고 당부한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을 대신해 가문을 이끌어갈 후계자로 장남 타로를 지목한다. 그리고 둘째 아들 지로와, 셋째 아들 사부로에게는 각각 두 번째와 세 번째 성을 주겠다고 한다.
자신은 현역에서 물러나 외곽에서 호위대를 거느리고 자식들에게 기대어 안락하게 여생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에 장남과 차남은 찬성을 하지만, 막내아들 사부로는 반대한다. 아버지가 형제 간의 우애를 강조하지만, 권력과 재산을 물려받는 순간 서로 탐욕에 눈이 어두워져 형제 간에 권력투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사부로의 생각이다. 하지만 히데토라는 이런 사부로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아들 입장에서 아버지를 위해 솔직하게 충고한 것인데, 자신의 생각을 비웃었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내며 사부로와, 그와 같은 취지의 충고를 한 충직한 가신 히라야마 탄고까지 내쫓는다. 아버지에게 쫓겨난 사부로는 이웃 영주인 후지마키의 성으로 간다.
히데토라가 아들들에게 권력을 물려준 후, 사부로의 예언이 현실로 돌아온다. 상속을 받을 때는 온갖 입에 발린 말로 아버지에게 아양을 떨던 장남과 차남이 권력을 갖자마자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히데토라는 먼저 장남 타로를 찾아간다. 하지만 타로는 이런 아버지를 홀대한다. 그리고 그동안 아버지가 누렸던 모든 지위와 권리를 박탈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아내 카에데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카에데가 “모든 권력과 호칭을 넘겨받지 못하면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말로 남편을 부추긴 것이다. 카에데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히데토라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종이호랑이가 되자 앙갚음을 시작한 것이다. 아내의 사주를 받은 타로로부터 이제는 내가 영주이니 아버지도 내 말에 따라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히데토라는 격분해서 타로의 집을 나와 둘째 아들 지로의 성으로 간다.
하지만 그는 지로에게서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지로는 서른 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자신의 성으로 온 아버지에게 수행원들은 떼놓고 아버지만 혼자 성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이에 진노한 히데토라는 둘째 아들의 성에서 나와 들과 산을 방황한다. 분노와 배신감에 그는 거의 미치광이가 되어버린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막내아들 사부로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내쫓은 아들에게 의탁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히데토라는 간신들의 모함에 빠져 셋째가 버리고 간 성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로와 지로의 연합군이 성을 공격해 온다. 이 과정에서 차남 지로의 가신이 장남 타로를 죽인다. 그 결과 이치몬지 가문의 권력은 지로에게 돌아간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카에데는 시동생인 지로에게 가서 그를 유혹해 그와 정을 통한다. 그런 다음 지로의 아내인 스에를 내쫓고 자신이 지로의 정식 부인이 되려고 한다. 그녀는 신하를 시켜 스에를 죽이고 그녀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한다.
이러는 와중에 힘을 기른 사부로는 군대를 이끌고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사부로와 함께 쫓겨났던 탄고가 간신히 광인의 모습이 되어 들판을 헤매고 있던 히데토라를 발견해 사부로에게 데려온다. 아들과 재회한 히데토라는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손을 맞잡는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 동안 지로의 군대가 쏜 화살이 사부로를 맞힌 것이다. 히데토라는 화살을 맞고 죽은 사부로를 보고 오열하다 자신도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렇게 아들을 믿고, 세상을 믿었던 늙은 아버지의 삶은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란]에 사용된 영화음악과 관련해서는 두 명의 중요한 작곡가가 거론된다. 먼저 20세기 일본 작곡가 도루 다케미츠이다. 다케미츠는 거의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해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곡가이다. 처음에는 드뷔시, 프랑크, 메시앙 같은 프랑스 작곡가, 그중에서도 특히 드뷔시의 음악에 깊이 매료되었다. 이후 일본의 전위음악가 이치야나기를 통해 유럽의 아방가르드 음악을 접했으며, 1951년 일본의 전위음악 그룹 ‘실험 공방’의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초기에는 일본 전통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세계적인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를 통해 일본 전통음악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일본 전통음악에 내재된 소리와 시간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서양음악의 급진성과 동양음악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결합시킨 작품을 썼다. 마림바, 첼레스타, 차이니즈 공, 탐탐 같은 악기들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조성을 없앴으며, 전통적인 서양음악 12음 체계 밖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을 도입해 낯설고 신비로운 음향세계를 연출했다.
다케미츠는 매년 200~300편의 영화를 볼 정도로 열정적인 영화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음악 분야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1956년 나카히라 고 감독의 [미친 과실]을 시작으로 40년 동안 총 93편의 영화음악을 썼다. [란]도 그중 하나이다. 이 영화와 관련해서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영화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구로사와 감독이 다케미츠의 음악에 마음대로 손을 댔는데, 이것을 다케미츠가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실 작곡가로서 자기 작품에 누군가가 손을 대는 것은 몹시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을 계기로 다케미츠는 다시는 구로사와 감독과 같이 작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란]의 영화음악과 관련된 또 한 사람의 중요한 작곡가는 구스타프 말러이다. 구스타프 말러는 1860년 지금의 체코 남서쪽 변방에 위치한 칼리슈트에서 알코올 증류업과 선술집을 경영하는 유태인 베른하르트 말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은 부유했지만 말러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집안 분위기도 우울했다. 부모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형제들 대부분이 심신이 온전치 못하거나 어려서 세상을 떠나는 불운을 겪었다. 이런 성장 배경은 말러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음악에 팽배해 있는 정신적 긴장, 염세주의, 냉소,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말러는 오페라단이나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한 경험에서 얻은 관현악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교향곡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작곡가이다. 말러의 교향곡에는 아주 다양한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다. 현학적인 것과 단순한 것, 고상한 우주적 관념과 소박한 민중적 정서가 한 곡에서 발견된다. 음악적으로 보면 소박한 민요 선율과 농민들의 춤곡, 서정적인 노래, 자연 풍광의 묘사, 퇴폐적인 대중음악, 코랄 주제, 행진곡, 패러디, 장송행진곡 등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여러 요소들이 한 곡 안에 들어 있다.
그의 교향곡의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우선 길이가 아주 길고, 형식이 복잡하며, 엄청난 연주 인원을 필요로 하고, 표제음악적이며, 합창이나 독창 같은 성악적 요소를 중요하게 취급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말러는 미완성 작품까지 포함해 모두 10편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네 편에 제목이 붙어 있다. 제1번 [거인], 제2번 [부활], 제6번 [비극적], 제7번 [밤의 노래]이다. 제8번을 [천인교향곡 ]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말러가 붙인 것이 아니고 연주하는 데에 엄청난 인원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란]에서 쓰인 말러의 음악은 교향곡 제1번 [거인]이다. 부하들이 죽은 사부로와 히데토라의 시신을 운구하는 장면에서 이 교향곡의 3악장이 나온다. [거인]의 3악장에는 ‘완만하지 않게, 장중한 위엄을 가지고’라는 지시가 붙어 있다. 프랑스 화가 칼로의 작품에서 악상을 얻었다고 하는 이 악장은 팀파니의 울림을 배경으로 콘트라바스와 첼로, 튜바가 어두운 느낌의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래 이 선율은 프랑스 민요 [자크 형제]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에게는 “Are you sleeping, are you sleeping? Brother John?"이라는 동요로 잘 알려진 곡이다. 이 노래는 장조의 밝은 노래이다. 하지만 말러는 교향곡 [거인]의 3악장에서 이것을 단조로 바꾸어놓았다. 경쾌한 동요를 무거운 장송행진곡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템포도 느리고, 연주 악기의 음색도 어둡다. 그래서 원곡의 밝은 느낌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둡고 음울한 정서만 가득하다.
이 무거운 선율에 맞추어 사부로와 히데토라의 시신이 어딘가로 옮겨진다. 광야에서 헤매던 히데토라를 탄고가 찾아내 사부로에게 데려왔을 때, 그리고 두 사람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말을 타고 갈 때만 해도 우리는 영화의 해피 엔딩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의 어리석은 기대에 불과했다. 말러가 가벼운 동요를 어두운 장송곡으로 바꾸어놓은 것처럼 신들도 얼마든지 인간의 삶을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그렇게 신의 농간에 의해 두 사람은 죽음을 맞았다. 두 사람의 시신이 운구되는 장면을 보면서 [리어왕]에 나오는 글로스터 백작의 대사가 생각난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6.11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