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최창조는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및 전북대학교 강사를 거쳐 국토개발연구원 주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청주사범대학 지리학과 교수, 전북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의 자생풍수』, 『한국의 풍수지리』, 『좋은 땅은 어디를 말함인가』, 『땅의 눈물, 땅의 희망』, 『닭이 봉황 되다』, 『풍수접설』등이 있다.
현대인은 고독하다. 군중 속에 있으면서
현대인은 고독하다. 군중 속에 있으면서 단절감을 느낀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을 잃고 고독감을 느끼며 불안하고 우울하다. 이유 없는 광기나 폭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현대인들이 겪는 수많은 스트레스는 무릉도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곳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을 떠난 이후로 결코 찾을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지금, 이곳에서’ 그런 곳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도시 명당이라 부른다. 고독하고 우울한 현대인들에게,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도시인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필자는 ‘대도시 명당’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문명을 비판하고 자연으로 회귀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라 생각하는 것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풍수는 근본적으로 그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선인들의 지혜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삶이다. 변수는 상황이다. 지금은 당연히 옛날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그러니까 현 시점에서 우리가 자연과 친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대 도시풍수의 가장 큰 지향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풍수에서 완벽한 명당은 없다. 훌륭한 터란 매우 복잡...현대인은 고독하다. 군중 속에 있으면서 단절감을 느낀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을 잃고 고독감을 느끼며 불안하고 우울하다. 이유 없는 광기나 폭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현대인들이 겪는 수많은 스트레스는 무릉도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곳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을 떠난 이후로 결코 찾을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지금, 이곳에서’ 그런 곳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도시 명당이라 부른다. 고독하고 우울한 현대인들에게,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도시인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필자는 ‘대도시 명당’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문명을 비판하고 자연으로 회귀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라 생각하는 것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풍수는 근본적으로 그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선인들의 지혜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삶이다. 변수는 상황이다. 지금은 당연히 옛날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그러니까 현 시점에서 우리가 자연과 친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대 도시풍수의 가장 큰 지향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풍수에서 완벽한 명당은 없다. 훌륭한 터란 매우 복잡한 장풍, 내룡, 득수, 좌향, 형국 등의 형세를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가 쉽게 발견될 수는 없다. 흔히 풍수는 땅을 사람에 비견한다.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땅이란 없다. 그래서 풍수에서는 터의 결함을 방비하거나 혹은 보충, 변경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비보(裨補)와 압승(壓勝), 혹은 염승(厭勝)이다. 기가 허한 곳은 보하고 기가 드센 곳은 눌러 주는 것이다. 한방에서 사람 몸의 기를 보하고 푸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모자라는 경우에는 비보하여 보완하고 지나친 경우는 압승하여 적당히 눌러 준다.
자연은 선이고 인공은 악이라는 도식은 잘못된 것이다. 보존과 보전만이 능사는 아니다. 철저히 통제되고 관리되는 개발이 필요하다. 그래야 실질적인 자연 보호가 가능하다. 또한 그럼으로써 난개발의 폐단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현대 풍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