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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樂門의 “長樂”
1. 들어가기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H. Maslow)는 하나의 慾求가 充足되어야 다음 단계에 욕구가 나타나며 이를 충족하고자 한다고 한다. 즉 生理的 慾求가 해결되어여야 다음 단계인 安全, 社會的, 尊敬, 自我實現의 慾求가 充足 될 수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우리 俗談에도 “가난은 나라님도 救濟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먼저 일상 생활에 衣食住가 充足되어야 사회문화 생활과 인간다운 즐겁고 幸福한 삶을 누릴 여유를 가질 여유가 있다.
인간의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 중 ‘장락(長樂)’이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음식을 맛있게 먹 고 便安한 睡眠을 취하며 마음에 드는 입을 입고 싶어하는 바람같이, 의식주 등에 구애 받지 않고 편안하고 걱정없이 삶의 질 향상과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향유하길 바라듯 시간과 장소, 쓰임새에 따라 “太平聖代“, 혹은 ”長壽“, ”快樂“ 등의 의미로 종래부터 동북아 문화권에서 中國은 물론 삼국시대, 고려, 朝鮮의 궁궐과 생활 주변에, 가령 고급 음식점, 중국집 및 가정의 미신으로 사용하는 등 우리내의 日常과 不可分의 關係를 맺어 왔다.
또한 조상님들은 ”不老長生의 女神 西王母“, ”三千甲子 東方朔“ 등 신화(神話, 태초, 국가 등 시공간), 전설(傳說, 마을, 구체적 시공간), 민담(民譚, 개별적, 막연한 시공간) 등 구전되어 오던 애깃거리와 不老長生의 먹거리, 토템미즘 혹은 애니미즘 등 신앙과 종교 활동을 통해 오래 살고자 하는 바람을 念願하였다.
2. 長樂이란 ?
1) 長壽관련 神話, 傳說
(1) 西王母/長壽의 女神, 이름 양회
서왕모(西王母, 요지금모(瑤池金母))는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역병, 형벌, 죽음, 生命, 不 老長生, 不死를 관장하는 女神이다.
도교 전설에서 仙人들을 다스리는 최고위 지위에 있는 여신으로 산해경에 의하면 곤륜 (春秋戰國時代 오늘날 청해성 일대와 그곳에 사는 민족들을 지칭한다는 설과 漢代 우전(于 闐)의 남산(南山)(신장위구루자치구 화전설, 옥산 동굴에서 살다 궁전으로 이전, 韓 武帝)산 정상에 있는 宮殿에 살고. 西王母는 神仙들의 尊敬을 받으며 반도원(蟠桃園)이라는, 먹으 면 불로장생을 가져다준다는 신비한 복숭아 반도(蟠桃, 선도 복숭아라는 전설속의 속의 복 숭아)가 열리는 과수원 소유하고 있어서, 반도(복숭아)가 열릴 철에 요지(연못)에 모여 蟠桃 會를 열어 복숭아를 나눠준다고 한다. 이와같이 西王母는 不老長生, 不死를 관장하는 長壽 의 女神으로 불로장생을 꿈꾸는 사람과 신선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前漢의 武帝(BC 156 ~ BG 57)는 죽지않고 영원히 사는 것에 관심이 많아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신선들이 강림할 수 있도록 궁전을 지었고 不死를 위해 神仙들을 찾았다.
어느날 東方朔(실존인물)이 무제에게 西王母의 강림을 예견했고 마침내 BC 110년 7월 7 일 아홉 빛깔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 왔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웠으며 무제가 불사약 을 구한다고 하니 東方朔이 西王母의 蟠桃(복숭아)를 훔쳐 먹었다고 답했다 한다. 동방삭 은 서왕모의 蟠桃園에서 3번이나 蟠桃를 훔쳐 먹어 삼천갑자(180,000년, 1갑자 60년)를 살 았다 하고 그런 연유로 ”三千甲子 東方朔“ 라는 말이 생겨났다.
(2) 동방삭(東方朔, BC 154년 ~ BC 92년)/不老不死의 대명사
東方朔은 이름은 장만천(張曼倩), 平原君 염차현(廉次縣, 현재 山東城 링(隆)縣) 壓次 出 生이고. 前漢 武帝 때 상사랑, 태중대부(太中大夫)까지 지냈던 관료. 풍자와 해학 및 유머 와 달변의 문장가로 實存人物이자 중국 고대설화에 등장하는 不老不死의 대명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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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무제가 호화롭고 사치스런 상림원(上林苑)이란 정원을 만들자, 東方朔이 上林苑의 造成은 “百姓의 기름진 땅을 뺏는 일로, 위로는 나라의 수입을 줄이고 아래로는 농사 와 누에치기의 기초를 해치는 것입니다. 이미 되어 있는 일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나가는 일”이라며 바른 소리를 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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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說에 의하면 東方朔은 西王母의 蟠桃(3,000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는 복숭아)를 3 번이나 훔쳐 먹어 三千甲子(1갑자 60년, 18만년)를 살아서. “三千甲子 東方朔”으로 일컬어 진다. 著書로 답객난(答客难), 비유선생론(非有先生论) 등이 있으며 東方朔의 墓地는 山東 城 링현(隆縣) 신두진(新都镇) 서남쪽에 있다.
(3) 天子: 천자(天子)의 母親을 長樂宮
천자(天子, 殷.周의 임금)는 “하늘의 아들”로 황제의 별칭. 劉邦때에는 長樂宮(유방 死 있어 함께 살았으나(왕, 신하, 제후 등) 유방의 둘째 아들 前漢 2대 皇帝 惠帝(유영, 劉 盈)가 서쪽에 未央宮을 건립하자 어머니 呂雉(고황후, 대비)의 處所를 長樂宮으로 삼았다 한다.
가. 中國
天子는 殷.周의 황제로 황제는 진시황이 새로 만든 지위이며 중국 역사상 한족이 그들의 군주를 천자로 불렀다 힌다.
BC 1000년 경에 은(殷), 주(周)의 임금을 천자라 불렀고 나머지 제후들은 공(公), 후(侯) 등으로 칭했다(예) 춘추오패).
天子는 秦始皇代는 쓰이지 않다가, 초 의제(楚 義帝)가 卽位할 때 復活하여, 뒷날 前漢 劉邦이 卽位하면서 皇帝를 天子라 부른 이후 오늘날까지 천자는 황제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나. 韓國
高句麗의 경우, 廣開土王陵碑文에서 廣開土王을 영락태왕(太王)이라 부르고 '太王의 업 적은 皇天에 달하며 위력은 사해에 떨쳤다'(太王恩澤皇天威武四海)라고 하여 天孫의 국가 를 칭한 바 있으며, 함경북도 오매리 절터에서 발견된 고구려 금동판에서도 자신들의 임 금을 천손(天孫, 하늘의 자손)이라 일컫은 기록이 있다. 1897년 大韓帝國이 선포된 후 皇 帝라는 稱號가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구글 위키백과
다. 하늘을 統治하는 皇帝내지 왕의 大妃의 處所를 長樂宮이라 稱함.
2) 장락문(長樂門)의 장락(長樂)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1) 개념 :”길이 즐거움을 누린다“. ”한비자(韓非子)“의 공명(功名) 편 “존엄한 군주의 지 위를 가지고 충신을 제어하면 길이 즐거움이 생기고 공명을 이루게 된다(以尊主御忠臣, 則 長樂生而功名成)라고 하였고, ”논어(論語)“의 이인(里仁)편 “오직 어진 사람만이 길이 즐거 움에 처한다(子曰 不仁者, 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라고 전함. 즉 장락은 임금이 어진 정치를 베풀어 길이 즐거움을 누리라는 염원의 말이다.
(2) 장락문(長樂門)
가. 글씨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년) 이하응
나. 장락궁 : 전한(前漢) 산시성 서안(西安), 한 무제 때 天子의 모친(대비)을 칭함 천자(天子)는 殷周시대 임금으로 하늘을 다스리는 사람. 즉 임금. 천제(天帝)의 아들.
다. 昌德宮에 長樂門은 樂善齋와 演慶堂 등 두 곳에 있다.
3) 실록(實錄)에서의 장락궁(長樂宮)
조선은 대왕대비의 정치적 위상과 존재감의 의미와 수단으로 “동조(東朝)”’, “장락궁(長樂 宮)”’, “자전(慈殿)” 등으로 지칭했고 또한 그의 처소를 세자와 동격으로 동쪽에 마련하는 궁궐제도 원칙에 따라 “동궁(東宮)”, “‘동전(東殿)” 이라고 했다. 실례로 성종 때 대비들의 처소 마련을 위해 창경궁을 건립하면서 장락궁과 동조를 언급(태조실록 3년 2월 23일, 세조 실록 3년 4월 13일, 예종실록 죽위년 9월 19일, 1년 12월 18일, 년 1월 11일, 성종 17년 5월 22일, 순조 21년 1821년 1월 1일 기사 등 50회 쓰임)하고 있는데 장락궁은 대왕대비 전(現王의 祖母) 또는 대비전(現王의 母)을 가리킨다.
이는 朝鮮이 前漢((BC 206~220) 劉邦이 장락궁(長樂宮)과 미앙궁(未央宮)을 건립한 것을 요즘 한창 유행하는 용어처럼 벤치마킹하여 창덕궁(예)낙선재 수강재)과 창경궁(성종 15년 1484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 한씨 등 3분의 대왕대비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을 확장하여 동향으로 세운 별궁)을 조성한게 아닐 까 싶다.
“조선왕조실록”, 기타 문헌(중국서 정대창의 옹록(雍錄). 서거정의 신증동국여지승람, 이긍 익의 연려실기술 등)을 보컨대 “동조”의 어원은 한나라에서 시작되었고 前漢의 궁궐 “長樂宮”에서 기원한다(정대창(程大昌, 1123~1195)의 雍錄)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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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央宮은 한성의 서쪽에 있고 長樂宮은 동쪽에 있다. 장안은 韓의 도읍지다. 제후 및 신하 그리고 왕 등이 장락궁에 있었으며, 당시에는 未央宮은 없었다. 惠帝(2대)이후 未央宮(西朝) 에서 모두 거주했으며 장락궁(長樂宮)은 통상 母后(임금의 모친, 대비, 東朝)가 거주했던 곳 이다.
匠案을 중심으로 未央宮은 西朝(서쪽의 왕조)라고 칭했고 長樂宮은 東朝(동쪽의 왕조)라 불 렀다/程大昌(1123~1195)의 雍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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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00년 한(漢)나라 고조(前漢 劉邦) 7년 10월 진나라(진시황, BC 221 춘주전국시 대를 통일했으나 15년만에 한 유방(항우)에게 점령당함)의 별궁 “興樂宮” 자리에 전한 유방 (최후 항우에게 승리)은 “‘長樂宮”을 건립했다/구글 위키사전.
4) 사전적 의미 : 오래 즐기다/네이버 국어사전
5) 현대적 長樂의 의미
장락의 목적과 용도, 욕구에 따라 다양하게 長壽(오래도록 즐거운을 누림) 혹은 太平聖代 (위정자가 나라를 잘 統治하여 主權者인 만백성이 의식주 걱정없이 편안하게 삶을 營爲하 는 것)의 의미로 混用되어 사용되고 있다.
3. 장락(長樂)의 類型과 例
1) 장수(長壽)와 강녕(康寧)
(1)조선왕조실록(實錄)에서의 장락궁(長樂宮) : 大王大妃殿 또는 大妃殿, 大妃의 長壽와 康寧 念願
인정전에 나아가서 대왕 대비 등의 존호와 전문을 올려서 진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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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대비전(王大妃殿)의 전문에 이르기를,
"선궁(璇宮, 왕후의 궁전) 의 자리에 계시자 일찍이 자비로운 모범을 보이시니, 아름다운 보책(寶冊)을 드려서 여정(輿情)에 잘 부응(副應)합니다. 즐거움이 신린(臣隣, 신민) 에게 넘 치고 경사가 종사(宗社)에 뻗칩니다. 공경히 생각건대 인혜 왕대비(仁惠王大妃) 전하께서는 성품이 깊고 아름다우시며 몸소 검소하고 부지런함을 행하시어, 일찍이 선왕(先王)의 배필 (配匹)이 되어 내조(內助)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시고 태후(太后)에게 잘 효도하여 장락궁 (長樂宮)의 즐거움을 공경히 받들었으므로, 욕례(縟禮)를 이미 거행하여 온전한 복이 아울러 이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臣)은 용렬(庸劣)한 자질로서 외람되게 큰 기업(基業)을 이 어받으니, 동관(彤管), 붉은 칠을 한 붓대) 이 더욱 빛나서 홍호(鴻號)를 길이 빛내시고 화봉 (華封)의 축복(祝福). 요(堯)임금이 화산(華山:화봉(華封))을 순행할 때 백성들이 임금의 덕 (德)을 찬양하여, “성인(聖人)은 수(壽)하시고 성인은 부(富)하시고 성인은 다남(多男)하시 기 원합니다." 하고
인수 왕비전(仁粹王妃殿)의 전문에 이르기를,
"장락궁(長樂宮)에 계시자 다 모의(母儀)의 높으심을 우러러 보므로, 휘칭(徽稱)의 책례(冊 禮)에 응하여 여정(輿情)의 바람에 잘 보답합니다. 경사가 종사(宗社)에 뻗치고 영광이 간책 (簡策)에 더 높습니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인수 왕비(仁粹王妃) 전하께서는 품성이 부드럽고 아름다우시며 마음가짐이 깊고 성실하시어, 선고(先考)를 가까이에서 도와서 새로운 큰 천명 (天命)을 열으셨으며, 뒷사람을 깨우치고 도와서 큰 기업(基業)을 흔들리지 않도록 굳건히 하였습니다. 이에 욕례(縟禮)를 거행하여 홍명(鴻名)을 크게 떨치게 합니다. 엎드려 생각하 건대 신(臣)은 외람되게 용렬(庸劣)한 자질로서 자훈(慈訓)을 과감히 이어받아, 관저(關雎,시 경(詩經) 국풍(國風)의 편이름)의 노래로써 덕(德)을 기리어 비록 명언(名言)을 다하지 아니 하더라도 천보(天保), 시경 소아의 편 이름)의 노래로써 시(詩)를 읊어서 거의 송축(頌祝)하 기에 부지런할까 합니다."
하였다.
백관(百官)들이 하례(賀禮)하는 전문(箋文)을 올렸는데 대왕 대비전(大王大妃殿)의 전문(箋 文)에 이르기를,
"장락궁(長樂宮)에 높이 계시니, 모두 자의(慈儀)를 우러러 보므로, 휘칭(徽稱)의 예(禮)를 드리어 현책(顯冊)의 영광에 응하고, 경사가 종사(宗社)에 뻗치고 즐거움이 신민(臣民)에 넘 칩니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대왕 대비(大王大妃) 전하께서는 부드럽고 아름다우시며 조용 하고 전일(專一)하시며 온화하고 어지시며 엄숙하고 거룩하시어 집안에서도 알맞으시고 나 라에서도 알맞으시니, 국모(國母)로서 세 왕조(王朝)에 임(臨)하시고 아들에게 전(傳)하시고 손자에게 전하시어 공(功)이 천고(千古)에 높아 존호(尊號)를 더 올리는 일이 잇달으고 칭 송(稱頌)하는 소리가 많이 사방에서 들끓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 등은 다행히 창성 (昌盛)한 시대를 만나서 성대한 예(禮)를 보게 되었으니, 왕모(王母)의 큰 복을 받아서 올바 른 도리를 본받기를 원하며, 호배(虎拜)를 만년토록 드리면서 주아(周雅, 주(周)나라의 아악 (雅樂) 를 화답할까 합니다." 하고
왕대비전(王大妃殿)의 전문에 이르기를,
"선궁(璇宮)에 계시니 일찍이 자의(慈儀)가 나타나므로 옥책(玉冊)이 정원(庭園)에서 드날 리어 크게 현호(顯號)에 응하고, 경사가 종사(宗社)에 뻗치고 즐거움이 신린(臣隣)에 넘칩니 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인혜 왕대비(仁惠王大妃) 전하께서는 부드럽고 온순하시며 조용하 고 전일(專一)하시며 자비롭고 온화하시며 깊고 아름다와 우빈(虞嬪)063) 의 지극한 덕(德) 에 짝할 만하여 선왕(先王)을 가까이에서 도와서 주(周)나라 태사(太姒)의 휘음(徽音)을 이으 시고 단정히 장락궁(長樂宮)에 계시니, 이에 욕례(縟禮)를 거행하여 더욱 온전한 복을 누립 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 등은 외람되게 용렬(庸劣)한 자질로써 성대한 일을 보게 되니, 한전(漢殿)의 반열(班列)에 달려가서 날뛰면서 춤추는 즐거움을 어찌 이기겠습니까? 화봉 (華封)의 축복을 본받아서 유구(悠久)한 축수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하고
인수 왕비전(仁粹王妃殿)의 전문에 이르기를,
"모의(母儀)의 덕(德)이 높아 영양(榮養, 자식이 부모를 영광스럽게 봉양하는 것)에 응하시 고 높이 장락궁(長樂宮, 한(漢)나라 고조(高祖) 5년에 모후(母后)를 받들기 위해 세운 궁전. 즉 대왕 대비(大王大妃)·대비전(大妃殿))에 계시니 크게 휘칭(徽稱)을 받았습니다. 경사가 종 사(宗社)에 뻗치고 즐거움이 조야(朝野)에 들끓습니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인수 왕비(仁粹王 妃) 전하께서는 단정하시고 깊고 아름다우시며 거룩하고 슬기로우시며 자비롭고 어질으시 어, 문모(文母,문왕(文王)의 비(妃) 태사(太姒)를 주(周)나라 서울에서 맞이하여 주(周)나라의 국운(國運)을 더욱 빛내시고 두후(竇后,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비(妃)) 를 대왕(代王), 문제 (文帝)가 황제의 위에 오르기 전의 봉호(封號))의 사저(私邸)에서 받들어 한(漢)나라의 왕가 (王家)를 다시 일으키듯이 하였으니, 이에 마땅히 보책(寶冊)을 드려서 더욱 온전한 복이 모 이는 것을 누려야 합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 등은 다행히 밝은 시대를 만나서 기꺼이 성대한 의례(儀禮)를 보게 되니, 춤추고 기뻐 날뛰면서 달려가서 하례(賀禮)하는 반열(班列) 에 참여하여 유구(悠久)하도록 송축(頌祝)하는 정성을 갑절이나 다하겠습니다." 하였다/성종 실록 9권, 성종 2년 1월 18일 신묘 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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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에 나아가 하례를 받고 교서를 반포하였다. 그 교서에,
"해옥(海屋)에 주(籌)를 더하니(주(籌)는 산대임. 해상의 신선이 사는 집에 해학(海鶴)이 해마 다 한 개씩 주(籌)를 물고 와서 집에 가득하다는 전설인데, 사람의 장수를 비는 데 쓰는 말) 삼양(三陽, 정월, 正月) 을 궁중에서 맞이하고, 혼인의 경사가 넘쳐서 60년의 세월이 이르렀 으므로, 떳떳한 법을 크게 거행하여 성실한 이름을 편다. 삼가 생각하건대, 왕대비께서는 아 름다운 법으로 왕실의 아름다운 이름을 크게 이으셨다. 우리 동방의 요(堯)·순(舜) 같은 임금 과 짝하시니, 육오(六五)의 황상(黃裳, 왕후의 덕이 크고 바르다) 의 큰 길함에 합하셨다. 여 자 가운데 증민(曾閔, 공자(孔子)의 제자로서 효자로 유명한 증삼(曾參)과 민손(閔損)) 의 행 실을 몸소 행하셨으므로, 고금의 동사(彤史, 옛날 여사(女史)가 궁중(宮中)에서 궁중의 정령 (政令)과 후비(后妃)의 일을 기록할 때 쓰인 붓)에 아름다움을 짝할 만한 사람이 드물었다. 온 나라가 그 정숙함을 영구히 힘입었으니 진실로 명성(明聖)한 어머니의 거룩하신 덕에 부 합되었고, 하늘이 장수로 보답하여 인원 왕후처럼 높은 연세에 오르셨다. 더구나 부족한 내 가 일찍 큰 터전을 이어받았으므로, 의지하고 믿는 바는 장락궁(長樂宮, 대왕 대비전(大王大 妃殿, 현재 왕의 祖母)과 대비전(大妃殿 현재 왕의 母)으로 한(漢)나라 고조(高祖) 5년에 모 후(母后)를 받들기 위하여 세운 궁전. 혜제(惠帝) 이후 황제의 모후는 모두 이곳에 거처했 음. 황제가 거처하는 미앙궁(未央宮)은 서쪽에 있었는데 반해 이 궁은 동쪽에 있었으므로 동조(東朝)라고 부름) 뿐이었다/순조실록 23권, 순조 21년 1821년 1월 1일 계축 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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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낙선재 수강재(壽康齋): 대비 순원왕후 안동김씨의 長壽와 康寧 念願 , 예전 端宗 壽康 宮 터로 정조 9년 1785년 건립
(3) 華城行宮 長樂堂 : 대비 혜경궁 홍씨의 침전으로 어머니의 長壽와 康寧 念願, 懸板 글씨 정조 이산
(4) 演慶堂의 長樂門 :대비 순원왕후의 長壽와 康寧 念願, 대비 순원왕후 안동김씨(純元王 后 1789~1857, 순조 정비)의 생신 40주년 進爵禮(순조 28년 1898년 음 6월 1일, 왕과 왕 비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며 歌舞公演을 했던 宮中(왕실) 잔치의 하나)와 순종에 尊號를 올 리기 위함 및 純元王后가 입궁 전에 친정 安東 私家와 비슷하게 지어 어머니가 편안하게 處所에서 지낼 수 있도록 효명세자(이영, 1812년 7월 31일 ~ 1830년 6월 13일 )가 1828 년 건립.
(5) 景福宮 자경전(慈慶殿)의 長樂門: 대비 신정왕후의 處所로 大妃의 長壽와 康寧 念願, /고종실록 4년 1867년 8월 18일,
(6) 前漢의 長樂宮(東朝) : 초기에는 韓의 수도 장안의 長樂宮에는 임금과 제후, 신하들이 거 주했으나 전한 2대 황제 혜제(유영, 유방의 둘째 아들) 서쪽에未央宮(西朝, 서쪽의 왕 조)이 건립되면서임금의 모친(여치, 유방의 비 고황후) 대비가 머무는 處所가 되었고 어머 니 長壽와 康寧을 念願하는 공간.
(7) 천자의 長樂宮: 殷,周 임금의 어머니 寢殿으로 長壽와 康寧 念願
2) 太平聖代
(1) 昌德宮 樂善齋 長樂門
樂善齋의 長樂門의 長樂은 “임금이 올바른 교양으로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이 편안하고 걱정없은 삶을 누리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은 太平聖代를 갈망(渴望)
(2) 明代의 長樂宮
가. 長樂의 槪念 : 명나라가 오래도록 즐겁기를 축원(명나라의 太平聖代)하다.
나. 長樂宮은 明末 李自成의 농민반란(1627 ~ 1646) 때 불태워 졌고(1636년) 명왕조는 277 만에 終末을 告(1644년한다. 장락궁은 옛모습은 간데없고 성벽만 청나라 때 새로 건립.
(3) 산시성(陝西省) 시안 성곽(西安 城廓) 東門 長樂門/청대 새로이 축조
ㄱ. 東門인 長樂門 : 장락문의 장락(長樂)은 명나라가 오래도록 즐겁기를 축원하다.
명말에 이자성(1627 ~ 1646년 농민반란, 명 멸망의 계기)이 시안(西安)을 쳐들어올 때 城門에 걸린 “長樂門”이라는 扁額(널빤지에 쓴 붓글씨)을 보고서 “皇帝가 오래도록 즐거 우려면 百姓은 오래도록 苦痛스러야 하겠지”라고 하자 곁에 있던 부하가 즉시 長樂門의 성루(城樓)를 불태웠다고 한다. 지금의 長樂門의 城樓는 청나라 때 다시 건립 됨. 이외에 중산문은 손중산(孫中山, 쑨원)을 기념 하기위해 1927년 건립했고 조양문(朝陽門)은 성문 이 태양을 향해 있다는 의미로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 건립되었다/주간경향.
城廓 東門의 長樂門의 長樂은 “청나라가 代代孫孫 太平聖代하라”
ㄴ. 西門인 安定門 : 서쪽의 변방을 안정시킨다.
ㄷ. 南門인 永寧門 : 수나라 때인 582년 때 건립. 성벽문 중 가장 오래된 문으로 본래 안 상문 (安上門)이었다가 명대 영녕문(永寧門)으로 개칭되었으며 의미는 “영원히 안녕하라”
ㄹ. 北門인 安遠門 : 明代 北門으로 건립. 安遠門은 소수민족을 포섭하려는 염원이 담겨 있는 문으로 “안원(安遠)”은 멀리 있는 이민족을 위무(慰撫)하여 歸順하게 한다는 의미.
현재 산시성(섬서성) 시안 성벽에는 18개의 성문이 있는데, 위의 동서남북문 외에는 새 로 건립됨.
3) 즐거움(樂)
전통 한옥, 호텔, 여관 등 建物 이름, 고급 한정식이나 중국 요리 飮食店, 옷가게 이름 등 에 쓰이는 長樂宮이란 표현의 “長樂”은 편안한 수면의 즐거움, 음식의 먹음으로써 갖게 되 는 맛의 쾌락을 말하고, 옷에 대한 기호, 취향, 및 입게 됨에 따른 만족을 느끼는 즐거움 등 衣食住을 통한 人間 누구에게나 內在된 基本的이고 本能的이며 創造的인 즐거움(樂)이 다.
4. 산시성(陝西省, 섬서성) 시안(西安)/長樂宮의 千年古都 시안(西安)
1) 시안(인구 3,876만명)
당제국 수도이자 주, 진, 한 등 13번 스도이자 현재 산시성 수도인 실크로드 코스모폴리 스(국제도시) 시안(西安),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習近平, 습근평) 아버 지 시중쉰(習仲勳, 습중훈)의 고향이고도 한 도시(푸핑, 富平)다.
시안하면 언뜻 떠오르는 秦始皇의 大明宮, 8~10KM에 달하는 거대한 前漢 劉邦 長樂宮 (유방)과 未央宮闕(2대, 혜제)에다 코스모폴리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호희(이란 기생), 당 현 종과의 애틋한 사랑 양귀비(楊貴妃), 여자 호걸 則天武后 등 시안의 여인들 …
시안은 중국의 서부 대개발 기회의 도시이자 과거 “장안의 봄” 의 영광을 재현을 위한 야 심찬 꿈에 2011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신장에 홍콩까지 고속철도 건설 전국 1일 생활권 국제화 대도시 건설을 선언했다.
시안의 주작대로는 48차선(약 150m), 한국 광화문 16차선(약 50m), 장개석을 감금하여 2차 국공합작을 이끌어 낸 西安事件의 都市이다.
2) 백거이(白居易)의 長恨歌/806년
당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비련(悲戀)에 관한 내용/총 4장
1장 : 당 현종과 양귀비의 만남. 4장 : 天上(하늘 위)과 人界(인간계)의 단절에서 느끼는 뼈저린 아픔과 한탄을 노래.
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
한나라 황제가 색을 중히 여겨 나라는 기울어가네,
御宇多年求不得 어우다년구부득
오랜 세월 세상을 살펴도 얻지 못하였도다.
楊家有女初長成 양가유녀초장성
양씨 가문에 갓 장성란 딸이 있었는데
養在深閨人未識 양재심규인미식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니 누구도 알지 못했네.
天生麗質難自棄 천생려질난자기
하늘이 내린 아름다움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일조선재군왕측
하루 아침에 간택되어 임금(현종) 곁에 있도다.
- 중 략 -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선 비익조(눈과 날개가 하나 뿐인 상상의 새)가 되기를 원했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
땅에서는 연리지(서로 다른 나무가 뒤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나무)가 되기를 바랬죠.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하늘과 땅이 장구해도 다할 날이 있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두 사람의 슬픈사랑은 끝없이 이어져 사라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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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 현종과 양귀비(楊貴妃)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 의 무대, 호희(胡姬, 이란인, 서역 여인), 則天武后가 남편인 고종과 함께 안장된 乾陵(두명의 황제가 하나의 능에 합장은 세계 유일), 주- 진(秦)-한(漢)-수-당(唐, 당시 인구 40만(637) 세 계 최대 도시) 등 13번 수도(북경 약 7번)로 이어졌던 화려한 중화제국의 수도이며 장제스(蔣 介石)를 감금해 항일을 위한 2차 국공합작(1937 ~ 1945)을 이끌어내 공산당의 궤멸을 막아 준 시안사변의 현장 이었던 천년고도이다/중국연구소 연구원 신경진
5. 결론
“장락(長樂)”은 입고 싶은 옷을 가질 수 있고 기호에 맛는 음식을 즐기며 아름다움과 안 락함이 깃드는 집에서 편안하고 걱정없이 삶의 질 향상과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 으로 시공간과 쓰임새에 따라 구체적, 개별적인 대상의 “장수와 강녕”, 포괄적인 계층 아우 르는 “태평성대“, 폭 넓고 추상적인 계층의 ”즐거움과 행복“ 등의 의미로 쓰인다.
즉 長樂宮의 ”長樂“은 實錄上의 長樂宮, 殷‧周代의 天子의 大妃殿 長樂宮, 前漢代 惠帝 劉榮의 어머니 ”呂雉“를 모신 長樂宮, 成宗代의 3분의 大妃를 위해 건립한 昌慶宮,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한 華城行宮의 長樂堂, 순원왕후 안동김씨 40주년 생일 進爵禮를 위한 演慶堂 長樂門, 신정왕후 풍양조씨 大妃殿을 위한 慈慶殿 長樂門 등의 의미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長壽와 康寧“을, 그리고 明代의 長樂宮과 淸代 건립한 시안성 벽 東門의 長樂門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太平聖代를, 그리고 昌德宮 樂善齋의 長樂門은 ”長樂“은 포괄적 개념인 ”太平聖代“ 를 가리키며, 마지막으로 쓰인 長樂은 구체적이고 개 별적 대상의 즐거움이 아닌 의식주 등의 日常生活에서 폭 넓고 추상적인 계층의 ”즐거움 과 幸福“의 意味이다.
위에서 前述한 바와 같이 長樂宮의 ”長樂“은 “조선왕조실록”, 중국서 정대창의 옹록(雍 錄). 徐居正의 新增東國輿地勝覽,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의 燃藜室記述 등을 보컨대 “東朝”의 語源은 前漢 劉邦의 妃이자 惠帝(유방의 차남)(의 母后 呂雉 大妃殿인 “長樂宮” 에서 祈願하며(정대창의 雍錄) 長樂宮은 大王大妃((現王의 祖母), 大妃(現王의 母)의 處所 이자 長壽와 康寧을 念願하는 意味로 쓰인 것이고 同一한 東北亞 文化圈에 傳來 受用된 것이며 종래의 西王母 神話, 東方朔이야기는 古代說話의 神話, 傳說, 民譚으로써 단순 용 어상 “長壽” 의 의미로 입에서 입으로 수천년에 걸쳐 구전된 사람들의 오래 살고자 하는 바람인 것이다.
그리고 時代와 與件, 使用用度에 따라 “長樂”은 때로는 長壽와 康寧, 太平聖代, 딘순한 즐거움과 前者를 混用하는 표현 등 多樣한 意味로 쓰였다.
위의 내용을 簡略히 整理하면 다음과 같다.
1. 中國서 정대창(程大昌)의 옹록(雍錄) 등 기타 문헌을 보면 前漢 劉邦의 妃이자 惠帝(유 방의 차남)(의 母后 呂雉 大妃殿인 “長樂 宮”에서 祈願하고 長樂宮의 長樂은 大妃의 長 壽와 康寧을 意味한다.
2 , 長樂宮은 實錄, 成宗代 昌慶宮 건립, 華城行宮 長樂堂 등을 보건대 大妃殿을 指稱한 다.
3. 西王母 神話, 東方朔 傳說은 인간의 “長壽”의 염원인 說話이다.
4. 長樂은 의미는 時代와 與件, 用處에 따라 多樣하게 쓰였다.
글을 맺음에 앞서 長樂宮의 “長樂”에 대한 先行硏究 全無, 筆者의 非專門性, 時間 上, 이 分野에 知識의 限界를 實感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에 滿足한다. 나머지 부족한 부 분은 後發 硏究者의 몫으로 남기고 長樂宮의 “長樂”에 대한 具體的이고 體系的인 硏究가 뒤따라 定說의 早速한 確立의 바람을 가지며 이만 글을 줄인다.
* 글/양은석 작성
* 참고사항
1. 서안 : 서주(西周), 진(秦), 전한(前漢), 신(新), 서진(西晋), 전조(前趙), 전진(前秦), 후진(後 秦), 하국(夏國), 서위(西魏), 북주(北周), 수(隋), 당(唐)까지 13개 왕조의 수도이고 현재 인 구 3,876만명인 반면에 북경은 연, 거란(요), 금, 명, 청,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등 약 7번 수도였고 현재 인구는 2,143만명이며 현재 중국의 수도이다.
* 참고자료
1, 국사편찬위원회
2, 문화재청 홈페이지
3. 섬서성 홈페이지, http://www.shaanxi.gov.cn
4. 주간경향
5.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신경진
6. 정대창의 옹록
7. 구글 위키사전
8. 네어버 지식백과
* 이미지
1. 전한 유방 때 건립된 장락궁(동쪽) , 미앙궁(2대 혜제 때 건립, 서쪽)/청나라 필원의 상상도/중국건축예술사 상권/구글 실록 위키 사전
2. 창덕궁 낙선재 장락문, 24대 헌종 이환, 1847년 건립, “임금이 올바른 교양으로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이 편안하고 걱정없은 삶을 누리게 해달라”는 "太平聖代" 염원/사진 정재하
3. 서왕모 : 장수의 여신/구글 이미지/아주경제신문
4. 동방삭/중국 역사에서 인재를 적재적소에 가장 잘 배치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고조 유방의 화상(畵像)
삼천갑자 동방삭/강원대 김풍기 교수/월간 중앙
5. 시안성벽 동문 장락문 : " 장락" 명나라가 오래도록 즐겁기를 축원(명나라의 태평성대)하다. 명말 이자성의 농민반란(1627 ~ 1646) 때 불태워졌다. 청나라 때 새로 건립. 1636년 반란, 명멸망 1644년/주간경향
6. 연경당 장락문/효명세자 이영이 1827 ~ 28년 건립, 순원왕후 생신 40주년 진작례, 장수와 강녕 기원/양은석
7. 화성행궁 장락당/화성 행궁의 혜경궁 홍씨(헌경왕후) 침전, 1795년 윤 2월 회갑연/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비는 의미의 정조 친필 편액. 어머니의 장수와 강녕 염원/양은석
* 전한 유방 때 건립된 장락궁(동쪽) , 미앙궁(2대 혜제 때 건립, 서쪽)/청나라 필원의 상상도/중국건축예술사 상권/구글 실록 위키 사전
* 창덕궁 낙선재 장락문, 24대 헌종 이환, 1847년 건립, “임금이 올바른 교양으로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이 편안하고 걱정없은 삶을 누리게 해달라”는 "太平聖代" 염원/사진 양은석
* 서왕모 : 장수의 여신/구글 이미지/아주경제신문
* 시안성벽 동문 장락문 : " 장락" 명나라가 오래도록 즐겁기를 축원(명나라의 태평성대)하다. 명말 이자성의 농민반란(1627 ~ 1646) 때 불태워졌다. 청나라 때 새로 건립. 1636년 반란, 명멸망 1644년/주간경향
* 연경당 장락문/효명세자 이영이 1827 ~ 28년 건립, 순원왕후 생신 40주년 진작례, 장수와 강녕 기원
* 화성행궁 장락당/화성 행궁의 혜경궁 홍씨(헌경왕후 홍씨) 침전, 1795년 윤 2월 회갑연/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비는 의미의 정조 이산(1776,02 ~ 1800,06, 24년 3개월 재위, 22대)친필 편액. 어머니의 장수와 강녕 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