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와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 제안과 좌절
이로운넷, 정범진 편집위원/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2023.02.20.
1. DMZ와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제안들(중앙정부)
DMZ와 접경지역을 남북이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는 제안은 한국전쟁을 겪고 20년이나 지나서야 처음 등장했다. 그것도 남북이 아닌 외국, 외부자의 목소리를 통해서였다. 그만큼 DMZ와 접경지역은 분단으로 인한 대치와 긴장, 갈등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DMZ와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발상은 금기시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1971년 당시 남쪽 DMZ의 관리자였던 유엔군 대표 로저스 소장이 이미 비무장지대가 비무장지대가 아니며 중화기 등으로 중무장한 지역이고, 언제라도 DMZ 내에서의 작은 충돌도 확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비무장지대의 실질적 비무장화를 제안한다.
비슷한 시기에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를 방문한 하와이대학교의 글렌 페이지 교수가 강연에서 DMZ를 평화공원화, 생태공원화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후 80년대를 거치며 DMZ와 접경지역의 군사시설 제거, 남북 공동조사, 도로 연결, 설악-금강 자유관광지역 조성, 평화시 건설, 합작공장 건설,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공동 어로 수역 설정,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정, 한강 하구 공동 이용,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한반도 신경제구상 접경지역 평화협력벨트 조성, 근접 감시초소 철수, 현 윤석열 정부의 DMZ와 접경지역 그린데탕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부마다 실로 다양한 제안들을 내놓았다. 여러 제안들은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내용상으로는 중복이 많고, 실제로 거의 대동소이하다.
2. DMZ와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제안들(지방정부)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DMZ와 접경지역을 관할하는 3개의 광역 지방 정부도 중앙정부가 내놓은 그림 하에 자신들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평화적 이용 제안들을 내놓는다.
이들 제안은 유형별로는 ‘산업‧경제 협력 모델’, ‘생태 중심 협력 모델’, ‘경제‧생태 복합 협력 모델’ 등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인천광역시의 경우, 서해평화협력지대(인천-개성-해주)-인천경제자유구역청(Incheon Free Economic Zone: IFEZ) 연계 검토, 경기도와 한강하구 해양평화공원 조성 검토, 서해 5도 남북공동어로구역‧해상 파시 조성 추진 검토, 남북평화도로 건설, 동서평화고속도로 연장, 서해안 광역철도 신설, 백령공항 건설, 인천-순안(평양), 원산공항길 개설 검토, 인천 영종-강화-이북 간 경기만 고속도로 및 경기‧강원 접경지역 간 평화고속도로 건설, 수도권-중앙정부 서해평화협력 거버넌스 구축, 서해안 해상교류 활성화 대비 등이 있다.
경기도의 경우에는, DMZ 생태‧역사문화‧평화관광 벨트 구축, 이북 인접지역에 통일경제특구 조성 추진 검토, DMZ 및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 한강하구‧임진강 수계 공동관리 및 개발 추진, 유라시아 연결철도망 건설과 하이웨이의 경기도 접경지역과 이북 접경지역 연결 검토 등이 있다.
강원도의 경우에는 평화특별자치도의 지위에 걸맞게 더 다양하고 많은 사업이 있다. 통일 및 북방경제시대 남북교류와 ‘평화벨트’ 연계, 스마트 평화빌리지 조성, 동해선 및 동서고속화철도, 내륙종단선 등 확충, 춘천-철원, 속초-고성, 포천-철원, 제천-삼척, 철원-고성 등을 연결하는 종‧횡축 대륙화 전진기지 고속도로망 추진, 환동해권 신해상 교역항로 및 평화크루즈 항로 개설 방안 모색, 양양공항의 동북아 거점공항 육성, 접경지역 연결도로망 구축, 평화통일특별지구 설치, 남북산림협력센터 조성, 남북 백두대간 민족평화트레일, 국제관광자유지대(강릉~설악산~금강산~원산, 설악~금강권, 설악~고성~강릉), 동계올림픽특구, 한반도 고원생태자원 연구와 휴양 거점지대 조성 및 백두대간 천연자원 산업기반 구축, DMZ를 포함한 평화지역 및 남북 백두대간 생물다양성 확보 및 생태복원, 산림복지 빌리지 조성, 설악산-금강산 연결 국제평화공원화, DMZ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 등을 꼽을 수 있다.
3. 왜 기존 제안들은 실패했는가?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제안들은 중앙과 지방을 불문하고 제안과 동시에 유작이 되는 아픔을 겪었다. 왜 기존의 제안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첫째, 부처별로 각기 별개의 계획들을 입안하였으나, 그 내용은 대동소이한 경우가 많았다. 둘째, 대부분의 계획들이 보전과 개발 개념이 혼재하거나 상충되는 경우가 많았다. 셋째, 사업 명칭에는 DMZ라는 공간이 명기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관할권 문제 등으로 실제 내용은 DMZ가 아니라 그 주변 지역을 대상으로 한 계획이 대부분이었다. 넷째, DMZ의 평화적 활용을 위해서는 북측(조선)이라는 상대방과의 협의와 협력이 불가피하지만, 대부분의 계획들은 북측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다섯째,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광역·기초)가 중심이 된 상명하달 방식을 유지해서 주민은 배제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지도 않았다. 여섯째, 동식물 분포와 자연은 행정단위를 뛰어넘거나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생태계의 보전과 평화적 이용에 대한 여러 제안도 지방정부의 행정단위 중심으로 사업 영역이 설정되어, 그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 효율성 문제가 계속 지적되어왔다. 일곱째, 일회성 제안, 중복 제안, 무엇보다도 정치‧군사적 상황에 철저히 종속되어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요소들이 다양한 DMZ와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 제안들을 중층적‧근본적으로 제약하며 제안과 동시에 유작이 될 수밖에 없도록 이끌었다.
출처 이로운넷(https://www.eroun.net)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