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앞세운 아픔을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참혹한 슬픔이라는 뜻이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다. 참척의 고통을 겪은 부모 가슴의 상처에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딱지가 앉지 않는다.
어제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에세이'에 그 참담한 아픔을 베풀고 나누며 이겨낸 부모 이야기가 실렸다. 서울에서 트럭운송회사를 하던 이용준·문숙 부부는 1977년 고려대 농학과 2학년이던 아들 명훈씨가 과(科) 수련회에 갔다 물에 빠져 숨지는 참변을 당했다. 이씨 부부는 슬픔을 잊어버리려 몇 달 뒤 사업을 접고 경기도 화성으로 내려가 젖소를 키우며 살았다. 그리고 이듬해 아들 이름을 딴 명훈장학회를 만들었다.
부부는 우유를 팔아 모은 기금으로 지금까지 32년 동안 아들의 후배 80여명에게 3억원의 장학금을 줬다. 아들의 모교에 첨단 멀티미디어 강의실도 기증했다. 강의실엔 아들 이름이 동판으로 붙었다.
이씨 부부는 학기 초마다 화성 농장의 작은 태극기가 걸린 사무실에서 가족 잔치처럼 장학금 수여식을 열고 장학생들에게 "아들이 못 이룬 꿈을 이뤄 달라"고 당부한다. 명훈씨의 동기생들과 아흔 넘은 지도교수 손응룡 선생, 그리고 사회에 나간 장학회 출신들도 다달이 장학금을 보탠다. 몇년 전엔 명훈씨의 조카가 결혼하면서 받은 축의금을 모두 장학회에 기부했다.
선후배 장학생들은 여름이면 농장에 모여 남자들은 사료로 쓸 옥수수를 베고 여자들은 젖소 똥을 치운다. 자식 잃은 부모의 애절함이 친구를 잊지 않는 우정과 옛 제자의 뜻을 기리는 스승의 사랑과 만나 일군 아름다운 장학회다. 병석에 누운 여든아홉의 이용준씨는 얼마 전 농장 땅 일부를 팔았다. 등록금이 오른 만큼 장학금이 커지지 못하는 걸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다 기금을 늘리려고 결심한 일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숨진 여대생 이승영씨의 어머니는 딸이 일기에 남긴 '하고 싶은 일 14가지'를 대신 이뤄 오고 있다. 보상금 2억5000만원은 교회에 기부해 승영장학회를 만들었고 호스피스로 봉사하면서 딸의 꿈을 한 가지씩 실현하는 것으로 삶의 기쁨을 얻고 있다.
명훈장학회 소식을 전한 에세이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큰일을 당한다. 어떤 사람은 큰일을 당해 주저앉고 말지만 어떤 사람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보람 있는 일을 생각해내고 바로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그 일을 극복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