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전 플로피 디스켓을 정리하다가 나온 기록을 여기에 옮깁니다.
온산에 나뭇잎이 몽실몽실 피어나고 계곡에는 푸르름이 가득하다.
5월의 싱그러운 바람을 타고서 논에서는 개구리가 시절 좋게 울어대고
짝짓기가 한창인 소쩍새도 구애의 목소리를 한껏 높인다.
연천군에서는 5.3일부터 5.5일까지 제11회 연천전곡리 구석기축제를 성대하게 개최했다.
가동할수 있는 모든 역량을 풀 동원하여 치뤄진 이번 행사는
중공군이 한탄강의 3.8선을 넘어온 이래 최고의 인파를 기록했다.
축제의 성공여부는 참여인원의 많고 적음으로 산정하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2003년 5월은 연천군에 있어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할수 있겠다.
행사를 검점하기 위해 날마다 선사유적지에서 진두지휘했던 김규배 군수는 30만년전 전곡리를 누볐던
네안데르탈인 얼굴처럼 검게 그을려있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어른들에게는 잃어버렸던 역사현장으로 안내한 구석기행사는
관과 민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역작이다. 이번 행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연천군은 수해 상습지역으로서 사람이 살아가기에 매우 나쁜 이미지라는 것을 어느정도 불식시킬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뢰지역, 상시 군사작전지역, 댐 건설의 보도 등 일련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잠재우는데도 기여를 했으리라 보여진다.
살기 좋은 땅을 찾아 끝없이 헤멘 인간이 전곡리 구릉지대에 안착하여 문화의 꽃을 피웠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왔을것이다.
인류의 출생지는 유럽과 아프리카로서 그 당시에 사용했던 주먹도끼가 전곡리에서도 쓰였다는 것은
문화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축제를 진행하는 동안 행사주차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드넓은 한탄강의 주차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근의 자동차 야외극장까지 빌려 써야했다.
구석기축제가 지역경제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한탄강과 재인폭포 인근의 식당에서는 평상시보다도
많은 손님이 붐볐으며 행사장에서 멀리 떨어진 숭의전 앞 고려가든
주인도 많은 손님들이 내왕했다며 기쁨을 표시하기도 했다.
kbs전국노래자랑을 연천에서 개최하는것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국노래자랑의 일정이 꽉 짜있는 것을 가만할때 짧은 시간내에
유치한다는 것도 각고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5월4일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 축제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구석기 체험스쿨에서 보여준 석기제작, 사용, 복원, 토기제작, 움집 및 가상발굴 과
한양대학교에서 계획한 세계 인류기원전은 이번 행사가 이벤트 쑈 로 끝날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켜주었다.
즐거움이 동반되지 않는 축제행사는 안하는 것만 못하고 행사목적에서 벗어난 축제 또한 실패한 것이라 볼때
이번의 행사는 즐거움과 구석기 체험학습이 적절히 조화된 프로그램 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행사장에 그늘막이 없었던 것과 한탄강 주차장에 가나다라로 블록을 설정해 두었다면 외지분들이 자동차
찾기가 수월했을 것이다.
발굴 피트도 행사장에서 너무 떨어져 있어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연천의 빈약한 경제를 반영하듯 각 회사마다 가지고 나온 물건도 풍성하지 못했는데
구석기 축제를 알리는 기념품의 제작이 전무한 실정이고 보면은 내년도 축제에는 상품을 개발하여
관광객들에게 파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겠다.
한탄강구석기 유적에 대해서 최무장 교수는 전기, 후기의 문화 양상이 뚜렸하기 때문에
전곡리는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을 차지한다고 한다. 전곡리선사유적지라 하면 불현듯
아쓜리안이 떠오르고 아쓜리안 하면 전곡리선사유적지가 떠오른다.
크고 작던 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붙여진 애칭이 있었으니
보통사람 하면 노태우가 생각나고 햇빛을 보면 김대중이 떠오른다.
이런 의미로 볼 때 11회 전곡리구석기축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연천군수는 아쓜리안 군수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