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해석
일부 철학자들은
그리스 신화의 현대적 이해의 기원을 신화를
"거짓말", 또는 전해져 오는 우화로 재해석하는
"기독교적 악의에 찬 전통적 태도"에 대한
18세기 말의 반발 작용으로 인한 것으로 평가한다.
1795년경, 독일에서는 호메로스와 그리스 신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였다.
요한 마티아스 게스너는 괴팅겐에서
그리스 연구를 다시 부활시켰고,
그와 동시에 후임자인 크리스티안 고트로프 하이네는 요한 요아힘 빙켈만과 함께
독일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 신화 연구에 대한 기초를 다졌다.
비교와 정신 분석적 접근
막스 뮐러는 비교 신화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비교 신화학》(1867년)을 통해서 초기 유럽 민족과 "미개" 민족 신화 간의 "복잡한" 유사성을 분석하였다.
19세기 비교 언어학의 발전과 20세기의 민속학적 발견이 더해져,
신화는 신화학이라는 학문 형태로 정립하게 되었다.
낭만주의 이래로 신화에 대한 연구는
모두 비교 연구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빌헬름 만하르트,
제임스 프레이저 경,
스티스 톰프슨은
민담과 신화의 주제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
비교 연구 접근 방법을 사용하였다.
1871년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는
그의 저서 Primitive Culture에서
비교 연구 방법을 적용하여 종교의 기원과 발달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넓게 분리된 문화권들의 물질 문화, 종교와 신화를 한데 모으는
타일러의 절차는
카를 융과 조셉 캠벨에게 영향을 미쳤다.
막스 뮐러는
신화 연구에 비교 신화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도입하여
아리아인의 자연 숭배의 왜곡된 잔해를 발견하였다.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는
신화가 공통의 사회적 기능을 이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역설하였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를 비롯한 구조주의자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신화들의 형식적인 관계와 유형을 비교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신화가 인간의 보편적이고 생물학적인 개념,
그리고 억압된 발상의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로이트 신화 해석의 논거는
해몽으로,
프로이트의 개념인 꿈 작업은
꿈 속에서 나타난 어떤 개별 요소든지,
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전후 관계가 중요함을 인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 의견은
프로이트 개념에서
신화에 대한 구조 언어학자와 정신 분석적 접근 간의 관계 회복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카를 융은
자신의 이론 "집단 무의식"과
신화에서 흔히 보이는 부호화된 원형 ("태고적" 양식의 승계)을 통한
보편적이고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신화를 해석했으며,
"신화 형성 구조의 요소는 무의식 정신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로버트 A. 세갈은
융의 방법론과
조셉 캠벨의 이론을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 지었다.
"캠벨의 신화 해석은
단순히 원형을 동일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오디세이아》 해석은
오디세우스의 삶이 어떻게 영웅적 양태에 합치하는가를 보여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융은 원형의 동일시가
단지 신화 해석의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의 현대적 연구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칼 케레니이는
융의 그리스 신화에 대한 원형 이론을 적용하고자
신화에 대한 자신의 초기 견해를 철회하였다.
기원론
칼 케레니이는 신화에 대해 "신과 신과 유사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에 포함된 재료의 주요부이며, 영웅의 전투와 지하세계로의 여행 —신화소 (mythologem)는 이것을 표현하는 최고의 그리스어다—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상의 재형성에 제한이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현대에는 그리스 신화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있다.
성서적 이론에 따르면,
신화적 전설은 실제 사실에서 가장되고 바뀐 부분은 있으나
모두 성서 속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적 이론에서는
신화에서 언급되는 모든 인물은 실존 인물이며,
그들과 관련된 전설은 단지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본다.
이 이론에서는 아이올로스의 이야기를
아이올로스가 티레니아 해에 위치한 어떤 섬의 지배자였다는 사실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한다.
우의적 이론은
모든 고대 신화가 우의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추정한다.
이와는 다르게
물리적 이론에서는
공기와 불, 물의 원소가 본래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주요한 신들이 이러한 자연의 힘을 신격화한 것이라는 생각을 따르고 있다.
막스 뮐러는
인도유럽 종교의 형태를
"본래" 명시하던 아리아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방식을 통해서 이해하고자 했다.
1891년,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9세기에 이르러 완성된 인류 고대사에 관한 최고로 중요한 발견은 ...
다음의 표본 등식이었다.
산스크리트어 디아우스 피트르 = 그리스어 제우스 = 라틴어 주피터 = 고대 노르드어 티르"
서로 다른 지역의 신화에서 드러나는 특성과 기능은
밀접한 평행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것은 전승이 공유되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우라누스와 산스크리트 바루나 또는 스모이라와 노른의 경우처럼
언어의 유사성을 보이는 증거가 부족하여 확실한 입증은 어렵다.
한편, 고고학과 신화학에서는
그리스가 소아시아와 근동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아도니스는
근동의 죽음의 신과 유사성을 띄는데,
신화보다는 숭배 의식에서 그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아프로디테의 도해가
셈족 여신에서 파생된 부분이 많은 반면,
키벨레는
아나톨리아 문화를 그 뿌리로 두고 있다.
초창기 신의 세대(카오스와 그의 자손들)와 에누마 엘리시의 티아마트 또한 공통점이 많다.
메이어 라인홀드는
"권력을 원하는 세대의 투쟁, 폭력을 통한 신의 계승을 비롯해서 근동의 신통기적 개념은 ...
그리스 신화 속으로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인도유럽과 근동 기원에 더하여 일부 학자들은
그리스 신화가 크레타, 미케네, 필로스, 테베, 오르코메누스와 같은
프레헬레닉 문명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로 추측하고 있다.
종교 역사학자들은 크레타와 관련된 수많은 고대의 신화 구성에 매료되어 관심을 가졌다.
(황소의 신, 제우스와 에우로페, 황소와 관계를 맺어 미노타우로스를 낳은 파시파에 등)
마틴 P. 닐슨 교수는 주요한 고전 그리스 신화가 미케네 문명과 선사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결론 지었다.
그러나, 역사학자 부르케르트는 크레타 궁전 시대의 도해로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이론은 확증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