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변산 해수 사우나...>
난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말했다.
"형님! 아직도 정리가 안 된 거예요?"
"응.. 그림의 내용은 서해안 어느 섬을 나타내는 것 같고,
글씨는 위고암개금 주몽어시어별성교(蝟高巖開金 朱蒙於是魚鼈成橋)라고 써있는데,
뒷문장의 주몽어시어별성교(朱蒙於是魚鼈成橋)는 알겠는데,
앞문장의 위고암개금(蝟高巖開金)은 모르겠어.. 좀더 생각을 좀 해야 되겠어."
진영이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머리가 아프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한문 공부 좀 할걸..."
"나에게만 미루지 말고 우리 모두 위고암개금(蝟高巖開金)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아무래도 퀴즈 같아!"
"그래요. 진영아~ 우리 같이 연구 해보자...알았지?"
"알았어요..."
우린 탕 속에서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했지만 별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목욕이 끝나가는 데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앞으로 각자 생각을 계속하기로 하고 탈의실로 나와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한문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던 진영이가 깜짝 놀라며 말한다.
"형님! 저기 tv 뉴스 좀 봐요. 혹시 아까 동굴속의 그림의 서해안 섬이 위도를 말하는 거 아닐까요?"
고개를 돌려보니 tv에는 요즘 위도 방사능폐기장 문제로 부안군민의 민심이 술렁인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화면에는 위도(蝟島)라고 크게 써 있었다. 민혁이 형이 무릎을 치며 말한다.
"위도(蝟島)가 맞다. 왜 그걸 몰랐지? 그럼 위고암(蝟高巖)은 위도의 제일 높은 바위..라는 말이고..
진영이가 한건했네?.... 그럼 이번엔 개금(開金)은 뭘까?"
"개금(開金)이라...."
"쇠를 연다?" 그때 내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어릴 때 할아버님께서 열쇠를 개금(開金)이라 하시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다.
"형님! 잠깐만요. 어릴 적에 들었는데요. 할아버지께서 열쇠를 개금(開金)이라 하시던데요?"
"그래? 그렇다면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위도의 제일 높은 바위에 고주몽 설화의 열쇠가 있다?"
순간 우리는 심장 박동이 멈춘 듯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개금(開金)이 열쇠 맞나보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당장 위도로 가자는 눈빛이었다.
아~~ 너무 아쉬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우린 뛰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침착하려 노력했다.
민혁이 형님이 말한다.
"우리 조금 더 알아보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일단 다음 일요일에 위도로 출발하자"
"그래요. 일단 현지에 가서 바위를 눈으로 본 후 다시 의논해요."
<2003년 7월 13일 일요일>
위도로 가는 배에는 민혁이 형, 진영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타고 있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태연한척 감추며 긴장된 표정으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씨가 꿀꿀하고 비가 부슬 부슬 내렸다. 우린 비를 맞으면서도 갑판에 그냥 서있었다.
그 이유는 1993년 위도 페리호 전복사고가 떠올라서 솔직히 배 밑으로 내려가기가 무서웠다.
때는 1993년 10월 10일(일) 오전 10시 10분경
서해 훼리호가 북부안군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부안군 격포 항으로 가던 중
동쪽으로 6㎞쯤 떨어진 임수도 부근 해상에서
적재량과 승선인원 초과와 삼각파도와 돌풍으로 침몰해서 292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가 있었지...
그때 그 사고는 너무도 참혹한 사고였다. 우린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묵념으로 영혼을 위로했다.
"부디 이승에서의 고통을 다 잊고 행복만 가득하시길..."
격포 항을 떠난 지 40분 만에 위도에 도착했다. 다행이도 비는 이미 그쳐 있었다.
위도는 고려 때부터 조정 관리들이 유배되면서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고슴도치를 닮았다하여 고슴도치 위(蝟)자를 쓴다.
또 벌금 항에서 걸어서 15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위도해수욕장은
고운 모래사장으로 유명하고, 모래밭을 건너 빼어난 절경에 빠져 있노라면
곧 분지를 이루는 산이 나오고 그곳에서 으악새(억새)가 떼거지로 슬피 운다.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섬을 한바퀴 돌 수 있는 12km의 해안일주도로는 연인들에게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꿈꾸던 율도국의 실제 모델로 알려질 만큼 풍요롭고 아름다운 섬...
그런데 요즘.. 그림처럼 평화로운 섬 위도가 핵폐기물센터 유치를 둘러싸고 술렁이고 있는 것이다.
어서 모든 게 순리대로 잘 해결 되어 예전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으로 돌아가길 진심으로 바랬다.
마음이 바쁜 우리는 서둘러 망월봉(望月峰, 255m)에 올랐다.
역시 망월봉 정상에 바위가 있었고,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바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바위 표면엔 글씨인가 그림인가 뭐가 있긴 있는데..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모두 이 바위 위에 올라가 메아리를 불러 대서 그런지
바위에 새겨진 그림이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어서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눈이 부릅뜨고 세 명이서 돌아가며 바위를 살펴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격포 항을 향하는 마지막 배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는데 어쩌지?
"휴~~~"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봐 뭘 그리 보는가? 지금은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을 텐데?"
그 소리에 우린 귀가 번쩍 뜨였다
"지금은? 그럼.. 예전에는 보였다는 것 아닌가?"
돌아보니 연세가 지극한 노인 분이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혹시 이 바위에 무슨 글씨가 있었나요?"
"나도 이야기만 들을 것뿐인데 글씨는 아니고 그림이라 하던데..."
"어르신 혹시 무슨 그림인지 아세요?"
"응... 어릴 때 조부님께 들었는데 그 바위에는 용의 그림이 있다고 들었네..."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어서 민혁이 형을 보니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눈치다.
말을 마친 노인은 산 아래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우린 공손히 인사드렸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우리 셋은 이곳을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형님! 다음주에 다시 한번 와야겠네요. 오늘은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하네요."
민혁이 형은 미련이 남아서인지 자꾸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지만 진영이 와 난 형을 재촉하여 산을 내려오는데
산 중턱에 아까 그 노인이 앉아있다. 진영이가 인사를 건넨다.
"어르신 저희들 먼저 내려가 볼게요.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건강하시고요."
진영를 보는 노인의 눈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진영이를 불러 세운다.
"어이~~ 젊은이! 나 힘들어 못 내려가겠는데 나 좀 업고 내려가 줄 수 있겠나?"
진영이의 등에 업힌 노인이 놀라운 말을 한다.
"작년에도 누가 물어봤었는데.. "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셋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다.
우리 셋은 노인의 말을 끊으며 동시에 물었다.
"저희 말고 누가 그걸 물어 본 적이 있었어요?"
"일년쯤 되었지 아마......."
아! 우리가 한발 늦었나보다. 모든 게 수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한 가지 안 가르쳐준 게 있지"
"그게 뭔데요?"
"음... 사실은 용의 그림 주변에 구름도 있었고
용 그림위에 누가 장난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닭의 머리를 그리려다 그만 둔 것 같은 그런 닭의 그림이 있었지.. "
우리가 그들보다 한발 늦었다는 생각에 기운이 다 빠진 채로 산을 내려 왔다.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과연 비밀을 알아냈을까?)
노인분과 헤어지려는데 노인분이 한마디 더 하신다.
"이 사람들아~ 힘내.. 그림이 세 개 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네들뿐이야~~"
그래.. 그들이 먼저 왔다지만 우리가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어르신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우린 진심으로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고 격포 행 배에 올랐다.
- 계속 -
- 예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