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5
현재 처하게 된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타개하고자 할때 보통 사람들의 시선은 미래지향적이기 보다는 과거지향적이다. 요한복음의 태생소경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을 선명히 보여준다.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과거의 잘못된 행위로 인하여 지금의 상황이 초래되었다는 프레임을 전제로 그 원천행위를 바로잡음으로 현재에서 질서를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그 사람이 본래는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마침내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이 사람이 틀림없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물론 이것은 자신들이 듣기를 원하는 답을 얻기위한 일종의 압박이긴 하지만 전혀 새로운 접근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이러한 현실의 변화를 초래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 패러다임의 실현을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미래를 꿈꿀수 있는 창조적 능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오늘은 “성모 영보 대축일” 이다. 산기슭은 진달래 꽃으로 물들어 가고 내 방 앞의 목련은 겨우내 앙다물었던 꽃잎들이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나이 들어 꽃피는 봄을 맞는 정서가 젊은 날과 같을 수는 없다.
年年歲歲花相似(연년세세화상사) 해마다 꽃은 서로 같건만
歲歲年年人不同(세세연년인부동)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