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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7졸업 50주년 기념식 참가 후기. (서울편)
노래를 만들 때 작사가 먼저가 작곡이 먼저가,아니면 작곡을 하고 작사를 하나? 둘다 맞다. 대7졸업 50주년 기념 "만남의 날"행사에 참가하고 온지도 빠르게 하마 4일이 지나 갔다. 카톡방에는 승율이가 벌써 참가기념 사진들을 속 속 올려 놓았다. 그러니 이게 작사에 해당되는지 작곡에 해당되는지 하여간 사진을 작곡이라고 보고 작사를 하기로 하자. 나는 '대7 졸업 5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러 경주로 출발하는 2호차 집결지 남부터미널역으로 가기위해, 잠실 전철역서 전철을 기다리며 잠시 옆지기 안사람 모습을 바라 본다. 많은 성상 변화의 부침을 겪으며 부부 연 맺었던 40년 전 보다 더 먼 세월 전에, 인연지기 까까머리 어깨 동무들을 만나러 가는구나 생각하니, 나이리지(나이 마일리지 합성 신조어) 쌓여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달구벌 교정의 지난 3년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말이 50년이지 정말로 긴 세월이다.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벌써 약속 시간 전에 거의가 먼저 탑승해 내 뒤로 신청한 한명만 더 오면 출발한다고 대기중이다. 목동서 출발한 1호차도 양재숲에 곧 도착한다고 연락오고, 2호차도 내 뒤로 마지막 인원 상현이가 큰 카메라 메고 정시에 도착해서,이제 서로 만나기로 한 양재숲으로 출발한다. 양재숲에 도착하니 1호 차에 탑승한 장동식회장이 내려 2호차의 몇명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동기들 정식 인사는 휴게소서 하기로하고 늦지않게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생각하면 50주년 행사를 대구본팀과 1년을 준비하면서,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자며 애쓰는 장동식회장의 헌신적인 노력은, 전임 회장들도 그렇게 했으니까 더 신경 쓰인다고 하면서 우리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감히 이 난을 통하여 말 해도 되지 싶다. 이런 행사에서 제일 어렵고 중요한 것은 집행 예산 모금 이고 또 동시에 보다 많은 동기들이 참석하는것. 그리고 대구 본팀의 메인 계획에 서울 의견 접목 원만한 의견조율 이런 과정에 무슨 난제가 있을 때, 유선통화로 타협이 안되는 것은 시간을 쪼개서 서울 집행부가 대구에도 내려가 대구의견 서울의견 주고받고 하며 절충안 도출, 서울 집행부의 한 일원으로 행사를 마치고 보니 미진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냥 괜찮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예산 확보에 많은 도움을 주신 동기분들이 너무 고맙고, 보다 자세한 경과 보고와 수치는 연말 행사때 보고 되겠기에 여기서는 행사 이틀 기행한 소식을 전한다. 너무나 갑작스레 입원한 회장 박헌규 동기를 문병하러 장회장외 집행부가 행사 전날 밤 아산병원을 찾았다. 심근경색으로 경북대병원서 서울 아산병원으로 이송, 수술을 마치고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 중환자실에 머물고 있어, 면회를 신청 가족도 만나고 회장도 문병했다. 수술은 성공적이라 곧 일반병실로 옮긴다고 하고, 박회장 상태도 우리하고 50주년 행사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 할 정도로 회복이 되어 있고, 본인은 이 행사 준비를 마지막 동기회 봉사라 생각하고 열심히 뛰고 임하다 이렇게 병석에 누워 있는게 상당히 안타까워하는 표정이고 동기들께 미안 스러워 하는데,우리 로서는 위로의 말 몇마디 밖에 할 수없었고,약속은 행사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테니 염려말고 몸 빨리 회복하고 행사 후 다시 오겠다하고 나오는데, 박회장의 참가 못해 아쉬워하는 표정이 이루 말 할 수 없이 역력하다. 54명이 28인승 리무진버스 두대에 나누어 타고 같이 고속도로를 내려 가고 있다. 지난 행사 땐 진행 미숙으로 음식준비 다 해놓고 한 차에는 술만 잔뜩 싣고 다른 또 한차에는 안주만 가득 싣고 가다 어느 휴게소서 나누어 싣기로 했으나, 복잡한 휴게소에서 더구나 시차로 만나지도 못해 술과 안주를 나누어 교환도 못 하고 그림의 떡이 된채 입맛만 다시고 동기들 배를 굶기고 내려간 경우가 있어, 이번에는 애시당초 두대를 랑데뷰 해서내려간다. 계획이 철저하지 못해 대구팀과 시간을 못 맞추어 점심도 따로 먹고한 쓰라린 경험의 시행착오도 겪은터라,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데는 사전계획이 치밀하지 않으면 욕(?)먹기 딱 좋은게 행사집행 아닌가? 이번에는 정확한 메뉴얼 가지고 옥산 휴게소에서 1호 목동 분당팀과 2호 남부 터미널팀과 정식 아침 인사하고 준비해 간 술과 안주를 교환하고 출발한다. 새로 생긴 당진 영덕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차량도 한산하고 빨라 얼마 안가 군위 영천휴게소에 도착한다. 두번째 이 휴게소에서 경주에 도착 할 시간을 조율하며 여유를 즐긴다. 이 휴게소는 명칭이 길다 군위면 군위 영천이면 영천 하나가 되지 못한게 아마 지역끼리 의견 다툼이 있어 그랬나 나름대로 해석한다. 늙다리들이라고 자청해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서 그런가 차 중은 조용하다. 한참 전에 중장년 때 모임 이었으리라 버스 뒷자리는 주당 축에 든다는 사람들의 차진데, 그래서 마시면서 떠들며 갔는데 이젠 다 지난 이야기다. 그 들은 어디로 갔는가? 늙었는가 익었는가. 노사연이는 알거다. 아무튼 차 안이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도로는 밀리지 않아 예정 시간에 맞추어 경주 인터체인지를 통과하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길섶의 솔나무 가지마저도 고풍년 스럽게 기와장 위를 낮게 드리우며 천년을 속삭인다. 고도 답다. 고송은 보았을까? 마의를 입은 신라 태자의 쓸쓸한 마지막 뒷 모습을…… 오랫만에 찾은 경주는 형성된 시내 번화가라도 밑바닥을 파헤치면 온통 신라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옛 생각에 젖어 차창 밖 풍경을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언제 또 와서 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작년에 강타했던 강도5.8의 대지진이 이 고요한 고도를 순식간에 뒤흔들었을 때를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에 또 일어나는거 아닌가하는 불길한 생각도 잠시 든다. 지나가는 거리 저 경주 시민들은 그 때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웠을까? 내가 여기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공이 송연해 진다. 대구본팀과의 약속된 장소 대능주차장 근방은 토요일이라 일반 차량과 관광객들로 북적되어,주차장 에서의 대구 동문들과의 만남은 교동 쌈밥집에서 하기로 하고 중간 도로변에 내려 쌈밥집으로 향한다. 식당안은 미리 와 있는 대구 동기들과 서울 우리와 한꺼번에 몰려 인사하랴 자리잡을랴 밥먹을랴 모두 바쁘다. 많은 동문들 이름은 일일이 기록은 않겠다만서도 이 중엔 서로 몇 십년만에 해후 하는 동기들도 많으리라. 삼겹살 쌈밥으로 식사를 하고 이제 스케줄데로 유적 탐방에 나선다. 스치 듯 본 대능은 누구의 능들인가 크기도 하다. 장님 코끼리 만지 듯 하며 지나치고 첨성대로 향한다. 말 그대로 경주는 곳 곳이 보물창고다. 해설사의 맛 갈나는 해설을 들으며 첨성대 4방을 둘러 보니, 방향따라 365일의 의미가 한꺼번에 저 돌 사이 사이 박혀 무언가 우주의 신비를 그 기운을 그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데, 후손들인 우리가 그 뜻을 못 알아보는 듯 첨성대는 신비로운 자태로 거기 지금 서 있고 내일도 서있으리라. 이 고도에 오기를 잘 했구나, 처음 계획을 잡을때는 대구에서 호텔에 숙소를 정해 서울팀들 편하게 하루밤 호텔서 묵으며 쉬고, 다음 날 모교행을 택한 큰집의 고마운 배려도 있었지만, 50주년 기념행사를 그렇게 밋밋하게 보낼 수는 없지않나? 그런 여러 문제 들을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구 서울 집행부가 대구교육청 근방 어느 초밥집에 앉아, 갑론을박 격론 끝에 경주행으로 정한 것이 참 잘 했지 않나 싶다. 걸어서 다음 탐방 안압지로 발길을 돌린다. 우리는 안압지가 명칭이 익숙하지만, 지금은 원래 신라 때 명칭으로 동궁과월지로 부른다고 한다. 세자가 살던 곳으로 외국사절이 오면 여기서 기거하고 축하연도 열었다고 한다. 주위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근세에 연 못 물을 퍼내니 그 당시 쓰던 생활 유물이 몇 천점 햋볕을 보았는데, 해설에 의하면 고려군이 궁에서 쓰던 비품들을 한꺼번에 쓸어 연 못 속으로 내팽개쳤다고 한다. 점령군들의 행패가 상상 되어지는 대목이다. 유물 중 하나만 이야기하자. 처음 들어보는 명칭인데 요즈음으로 말하면 주사위 처럼 생기고 용도도 같은 목적으로 사용한 노리개다. 이것은 14면체이다. 혹시 이렇게 방송 퀴즈에 나올 법한 이 노리개의 이름은? "주령구!"- 신라 귀족들의 노리개로 술 마실 때 벌칙을 정하는 문구가 다섯가지 적혀있다. 하나 소개하면 '자창자음'이라고 스스로 노래 부르고 술 마시기 또 음악없이 춤추기 요즘 말하면 무반주 댄스 등 이런 다섯가지 벌칙을 주고 받으며 놀던 통일신라 귀족들의 노리개, 귀족 놀음으로 태평성대가 그려지지만 자고로 동서고금을 통해 그런 나라가 얼마나 오래 가겠나? 왕건 한테 접수 될 수 밖에 없었던 신라의 운명이 오늘 우리 시대와 겹쳐 크로즙되어 씁쓸한 기분은 영 가시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 되는가? 역사 탐방은 이 정도로하고 시간이 되어 보문단지 켄싱턴 리조트로 향한다. 하룻밤 머무는 곳이라 많은 인원의 숙소 배정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사전 공론화 여론 취합 수렴하여, 3학년 때의 반별로 여섯명씩 각자 숙소 배정 1301호 부터 1319호까지 입실 완료하고, 가지고 간 짐 풀고 잠시 휴식 후 18시30분에 메인 이벤트 지하 포럼홀로 내려가니, 여기 테이블도 3학년 같은 반별로 배치해 놓아 대구 반동기들과 섞여,오랫만에 한자리 앉아 옛 얘기하며 몇 십년만에 만난 동기도 그냥 허물없이 어제 그제 자주 본 사람같이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니 이게 동기 관계 아니면 가능하지 않으리. 국민의례가 시작되고 병상에 있는 박회장 대행으로 서울 장회장이 축사를 한다. 70은 숫자 일 뿐 군 출신답게 카랑 카랑한 목소리 눈초리는 아직도 현역인가 싶을 정도다. 뒤이어 미국 출장서 서둘러 귀국해 참석한 이용희 부회장의 격려사는, 기업가 답게 조리정연하고 우리가 살아있슴을 일깨워 줘 기분 좋았고, 축하 해 주려고 대구서 달려온 총 동창회 후배 기수 13회 김항재 회장과 관내 행사 마치고 조금 늦게 도착한 후배 기수 11회 최양식 경주시장도 자랑스럽고, 축하해 주어 자리가 더욱 알차고 빛난다. 저녁 식사는 전문 행사팀의 흥겨운 노랫가락에 부페로 즐기고 행사전에 여흥 시간을 어떻게 진행하느냐,대구 서울 집행부가 숙의하여 우리끼리 아마추어가 진행하면, 그 많은 동기 내외 모셔 놓고 지루하게 시간을 떼우는 어색한 분위기가되니, 그런 우를 범하면 안된다 프로페셔널 불러 진행하자, 그리고 우리 시간은 대구. 서울 대항 노래 경연하자 이렇게 되어 각 5명씩 출정, 서울팀은 경선 없이 평소 때 들어 본 실력으로 강제 차출 박희주 부인.이기성 부인. 이시형 부인.오진호. 문창욱 이렇게 정예(?)부대를 만들어, 그야말로 합동 연습 한번 없이 생으로 무대에 섰는데 몇 분은 긴장이 되었는지 중간에 음이 약간씩 샾(#)이 되고 목에 힘이 들어간다. 대구팀은 서로 나갈려는 지원자가 많아 선별(?)에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하여간 심사는 프로 출연진이 공정하게 했으니 결과는 3 : 2로 대구팀 승리! 그래도 대회인데 상금이 있을거 아닌가, 단체 우승 대구 30만 준우승 서울 20만( 상금을 30만. 20만으로 하면 안되겠냐고 묻기에 조금 더 쓰지 라는 말이 꿀떡 같았지만 알뜰 집행관 짠돌 k씨 얼골이… 택이나 있겄냐?😜) 출전하신 서울팀들 고맙습니다. 희주 부인께서 단체 상금을 건내며 동기회 기금으로 찬조가 어떠냐고 묻는다 .좋은 제안이라 다른 출연자와 의견 종합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장회장 한테 전달 했다. 22시30분 흥겨운 칠순 잔치(?)가 끝나고 내일의 스케줄을 챙기고 각자의 숙소로 올라갔다. 연분 때문인가 몇 년전 같은 시끌한 분위기는 차분하게 변화되었고 매번 이름 밝히기를 한사코 고사하는 서울 동기가 제공한 맥주 소주가 그냥 박스 채 벽에 쌓여 있다. 숙소에 올라오니 주류 비주류가 갈린다. 몇호실인가 대구 서울 주류천하가 몰려 시끄럽다. 그 방에 강제로 불려 갔더니 아까 홀에서 원샷 부르짖던 그 사나이들은 어데로 갔나? 벌써 맛(?)이 갔나? 이 방에 안보인다 신 주류로 방이 가득하다. 흘러간 세월에 옛 주류 멤버가 생각난다 이 참에 그리운 이름 한번 불러보자 많이 보고싶다. 야들아~ 오늘 50주년 졸업 기념일이다! 충건아! 영학아! 영덕아! 건일아! 봉열아!충기야! 동혁아! 너네끼리도 축하 천상주 한잔 하고 있제! 하늘서 편히 쉬거라이~😢
주거니 받거니 몇 순배 돌고 돌리고, 몇 십년만에 처음 보는 병화가 자기 소개도 하고 옛 교실서 일어났던 재미있는 그 반 그들만 아는 숨은 이야기, 입담 좋게 한바탕 웃어 재끼고 슬~슬 술 마시는 밤이 익어간다. 그런 그 반만의 아는 추억들이 좋아 반창회가 필요하고, 해서 해보니 재미있고 팔 다리 멀쩡 할 때 1년에 한번씩 명분 만들어, 지방으로 놀러도가고 하면 총동기 모임에는 안나와도 그런 반창회 모임에는 꼭 나오는 반동기가 있더라는 이야기도 덧 부친다. 늦은 시간 내일 새벽 5시30분 석굴암 일출 보러 간다고 떠드는 주류들 과연 몇 이나 일어나 갈까 궁금해 하며 내 방으로 왔다. 운기조식하느라 금주하고있는 시형이는 술을 한방울도 안먹었는데도, 내일 새벽 석굴암 등정은 피곤해서 안간다 그러고 취침에 들어간다. 새벽에 갈증이 나서 머리맡 물을 마시러 일어 났는데, 옆에 자던 시형이가 없다.석굴암 안간다 그랬는데 세면대 불이 켜져있어 화장실 갔구나 생각하고 나는 또 눈을 부치고 7시 쯤 일어났는데,
그 때도 시형이는 안보이고 세면대 불은 켜져있고, 아~항 일어나 석굴암 갔구나 역시 시형이는 책임감이 강하다.석굴암팀 인솔해야 되니 말이다. 시형이께 전화하니 일출은 날씨 흐려 보지 못하고 6시30분에 경내에 들어가 관람 중이란다. 경내는 촬영 금지라 관람만 한단다. 대구9명 서울 25명이 올라 왔단다. 일어나 나 혼자 리조트 근방 산책을하고 있는데 핸폰이 울린다. 부산 광국이다. 어제 낮에 경주 올라와 밤에 부산 내려 갔는데 전화를 했다. 웬 일고 새벽에? 그래 너 지금 석굴암 올라 갔나? 아이다 나는 어제 밤 주류천하 하느라 늦어 안갔다. 그랬나 야~ 조심해라. 지금 부산은 비 억수로 퍼붇는다. 석굴암 올라간 사람 조심해라 캐라. 웬 비? 경주는 흐릴 뿐 괜찮은데? 그래도 고맙지 않나 비온다고 일부러 전화해서 조심하라고 걱정하는 동기 있으니 이 정도면 우리 올바로 살은거 맞제! 8시30분에 아침을 해장국으로 해결하고 다 함께 불국사로 향한다. 일요일이라 국내외 관광객들로 주차장부터 혼잡스럽다. 불국사 전경은 사진으로나 직접 방문으로나 다른 관광지보다 자주 접하니 금방 눈에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해설사의 구수한 멘트에서 줄~줄 풀려나오는 불국사 역사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다들 진지한 표정이다. 불국사는 하나의 우주가 여기에 다 들어 있다는 해설사 이야기를 들으며 청운교 백운교 휘 돌아 대웅전 앞에서 또 해설을 듣는다. 또 진지하게들 경청한다. 다들 청운교 넘어 부처님 찾아 극락왕생 할려고 열심히 듣는다. 나무 관세음 보살^^^👏
화려하기는 다보탑이 보기 좋으나 나는 석가탑이 더 끌려 가까이 섰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 그럴까 석가탑보다 무영탑이라 부르고 싶다. 단체 사진도 찍고 경내 한바퀴 돌고 불국사 후문에서 대기하는 버스에 올라타고 11시 좀 넘어 대구 교정으로 향한다. 일요일 오후 인데도 고속도로는 뻥뚫려 13시 모교 교정에 정확히 도착 했다. 후배들 체육 대회는 한창 무르익어 고함 응원소리 왁자지껄 하고 고기 굽는냄새 코를 간지러고 잔치 분위기 고조인데, 그 시간에도 야구장에는 후배 선수들 땀을 흘리며 연습하고 있다. 아~! 여기가 달구벌 우리가 여기 있었제!
점심 때라 식탁에 준비 한 육개장 한사발 말고 맥주 몇 잔 씩하고, 조금 전 나눠준 빨간색 목도리 목에 두르고 운동장 한 가운데 정렬 우리 기수가 준비한 장학금 3.000만원을 총동창회에 기증하는 기증식을 끝내고, 이제 마지막 공식 행사로 후배들 박수 속에 운동장 한바퀴 돌며 고별행진을 한다. " 만수 무강 하십시요!" 축하 해주는 후배들의 그 외침이 한 순간 콧등이 찡해 지고 눈시울이 젖는다. 그 한마디가 50주년 총 결산의 보상이다 생각하니 우뚝 솟은 본관 건물이 싱긋이 미소 짓는다. 잘 가시요~~ 잘 있게나 달구벌 언덕아 ~~
2017. 10. 19.
첫댓글 글꾼 문총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