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에너미 앳 더 게이트 (2001년) :
감독 장 자크 아노/ 주연 주드 로, 조셉 파인즈
“준비된 사수의 일발은 백전백승의 시작”
원샷원킬 蘇-獨 두 스나이퍼、전장 운명 걸고 마지막 승부
스탈린그라드 전투서의 소련 실존 인물, 끝모를 침묵 속 목숨 빼앗는 비정함 섬뜩
독일군 저격수 역할을 맡은 에드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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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은 심리전(心理戰·psychological warfare)이다. 강한 물리적인 전투력이 우선이지만 군사·정치·경제적인 수단을 이용한 선전활동을 벌여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리 군의 대북방송도 심리전의 하나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탄환을 맞고 운명 직전에 “방패로 날 가려다오”라고 말한 것도 우리 조선군의 사기를 위한 심리전술이다.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하는 데도 ‘몽골 기마병은 잔인하다’는 소문이 크게 기여했다.
세계 각국은 심리전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를 갖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과 독일군이 그랬고,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도 심리전 부대가 크게 활약했다.
심리전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은 전단·확성기다. 그 외에 라디오·신문·영화·책·잡지 등 대중 매체들도 이용한다. 특히 전단은 2차 대전 때 위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서방 연합군이 살포한 전단만 최소 80억 장으로 추산된다.
소련군의 영웅으로 떠오른 저격수 바실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주드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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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2차 대전 중 소련과 독일군 저격수 간의 대결을 소재로 심리전을 그린 영화다. 전세가 불리했던 소련군은 군의 사기를 살리기 위해 대중매체인 신문을 이용한다.
소련군 선전장교 다닐로프(조셉 파인즈)는 선전 전단을 뿌리기 위해 뛰어든 스탈린그라드 전장에서 소련 병사 바실리(주드 로)의 기막힌 사격 솜씨를 보고는 패색이 짙은 소련군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바실리를 영웅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바실리는 연일 신문 1면에 장식되면서 심리전에 이용된다.
영화는 저격수를 다루기 때문에 고막이 찢어질 듯한 총성과 포성은 없다. 대신 물속 같은 침묵을 유지하며 단 한 번의 사격으로 적군의 목숨을 앗아가는 스나이퍼들의 비정한 세계를 보여 준다.
주드 로가 연기한 바실리 자이체프는 실제로 2차 대전 때 활약한 인물로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242명의 적군을 사살한 최고의 스나이퍼였다. 영화의 배경인 스탈린그라드는 소련군과 나치 독일군 스나이퍼 간의 저격전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1942년 가을, 나치 독일군이 아시아의 유전을 확보하기 위해 볼가강 유역의 도시,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련군 선전장교 다닐로프는 선전 전단을 뿌리러 간 스탈린그라드에서 우연히 바실리의 뛰어난 사격 솜씨를 보고는 그를 심리전에 이용할 계획을 세운다. 그 전술에 따라 바실리는 나치 독일 장교들을 완벽하게 처단하는 저격수로 변신하고, 평범했던 그는 전설적인 소련군의 영웅으로 탄생한다.
그 와중에 바실리는 미모의 여군 타냐(레이철 와이즈)를 만나 사랑한다. 타냐를 만나게 된 다닐로프 역시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그들은 삼각관계에 놓이게 된다.
많은 독일군 장교가 제거되자 나치도 바실리를 없애기 위해 독일군 최고 저격수 코닉(에드 해리스) 소령을 급파한다. 이후 두 저격수의 양보할 수 없는 두뇌 싸움이 계속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다닐로프의 희생으로 결정적 기회를 잡은 바실리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바실리는 수소문 끝에 죽은 줄만 알았던 타냐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 단 한 번의 사격으로 적을 절명하게 하는 것은 아군에겐 아주 경제적인 전술이다. 집중력이 생명이다. 그것은 오랜 기간 훈련을 해야 얻을 수 있다. 소년 바실리는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에서 늑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서 주문처럼 되뇐다.
“나는 돌이다. 나는 정지해 있다. 아주 천천히 나는 입속으로 눈(雪)을 집어넣는다. 그렇게 하면 놈이 내 입김을 볼 수 없다. 나는 놈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 내게는 단 한 발의 총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놈의 눈(眼)을 겨냥한다.” 이처럼 바실리는 저격수가 갖춰야 할 평정심과 집중 요령을 어린 나이에 일찍 터득한 것이다.
영화는 드물게 2차 대전 당시 소련이 연합군에 편입됐다는 이유로 소련군을 우호적인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데, 선전장교 다닐로프가 동지에서 연적으로 바뀐 바실리에게 내뱉는 말이 퍽 인상적이다. “나는 평생 사람과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고 믿고 그 신념을 위해 싸워 왔지. 하지만 아무리 싸워도 별수 없이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더군. 누구는 아름다운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만큼 매력적이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지. 누구는 총을 잘 쏘고 누구는 서툴지….”
영화는 소련 공산주의를 은연중 비판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 부분, 주인공 바실리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나가며 무기를 지급 받는 과정에서 앞사람에겐 총을 주고 뒷사람에겐 총알 5개만 줘서 앞사람이 죽으면 그 총을 사용하라고 하는 장면은 인민을 위한다는 공산주의의 허구와 전쟁의 참상을 잘 전달하고 있다.
#잘 준비된 사수의 일발은 백전백승의 시작이다. 우린 단 한 발만 장전이 가능하고, 사격 후엔 위치 노출 때문에 바로 자리를 떠야 하는 열악한 화승총으로 호랑이를 잡고 외세를 물리친 범 포수의 후예들이다. 뭐니 뭐니 해도 총을 잘 쏘는 군인이 강군이다.
<김병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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