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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자나 우매자나 죽음은 일반이다 2:12~17
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전의 일일 뿐이리라
13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14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5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16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내 수고의 결실도 내 것이 아니다 2:18~26
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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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뛰어나도 당하는 일은 같습니다. 지혜자와 우매자 모두 영원히 기억되지 않고 후일에는 잊히고 죽습니다. 지혜를 다해 수고한 결과도 뒤를 이을 자가 관리하므로 결국 헛됩니다. 일평생 근심하며 수고해도 슬픔뿐이지만,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기쁨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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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26절
❝하늘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삶❞
❚ 세상의 지혜와 땅의 것을 얻기 위한 수고가 헛됨을 알고, 꼭 필요한 것만 갖는 삶이어야 합니다.
✔ 기쁨과 행복을 얻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 노력의 대가에 만족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8~19절).
전도자는 하늘 아래서 애쓰며 수고하는 일이 모두 싫어졌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애써 수고해 보아야 결국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18절). 그것을 물려 받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 알 수 없는데, 해 아래서 지혜를 짜고 애를 써서 얻은 것을 물려 주어야 한다니 이 또한 헛된 일(19절)이라고 밝힙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일을 최대 목적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또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수고하고 마음에 근심하며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고하고 애쓴 것들은 세상을 떠날 때는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탐욕은 인생의 짐을 가중 시키는 헛된 것입니다. 바울은 가진 것이 없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은 예수님 안에서 자족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며 주를 의지하는 삶을 살 때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더도 말고 노력의 대가에 만족하여 하늘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하늘에 보물을 쌓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20~23절).
전도자는 세상에서 애쓴 모든 수고를 생각해 보니 실망뿐(20절)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이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넘겨 주어야 하니 이 또한 헛된 것입니다(21절). 또한 사람이 해 아래에서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애를 쓰지만, 결국 평생 하는 일이 괴로움과 슬픔뿐이고, 밤에도 그의 마음이 편히 쉬지 못하니, 이 수고 또한 헛된 일(22~23절)이라고 한탄합니다.
일평생을 밤낮 쉬지 않고 일을 하지만, 결국 내 인생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것들을 소유하기 위한 수고가 얼마나 헛된 것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것을 구하고 사모하며 살아가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땅에서 수고하고 애써 모은 소유와 재물은 결국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죽어서 자녀들에게 넘어가든지, 사업이나 경제가 흔들려서 모든 것이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땅의 보물을 쌓아두기 위해 헛된 수고를 하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 간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것을 사모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하늘의 것들을 사모하고, 그분의 나라를 소망하므로 하늘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일상의 선물에 감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24~26절).
전도자는 사람이 수고한 보람으로 먹거 마시며 즐기는 일만큼 좋은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24~25절)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수고로 인해 얻은 것을 모아 재산을 쌓아 가지만 하나님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십니다. 나아가 죄인이 수고한 것까지 그에게 주시니 이 또한 바람을 잡듯 헛된 일(26절)입니다.
내 자신이 먹고 마시는 일상적인 즐거움조차도 나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누림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그분의 선물이라는 것 또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것들이 모두 헛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헛되고 의미가 없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오늘 내 자신에게는 이러한 일상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매일 기뻐하고, 감사하며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상의 삶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늘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가진 것이 없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며 주님을 더욱더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매일 주어지는 것들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전 2:18~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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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전도자는 지혜자나 우매자가 결국 당하는 일은 같다고 한다.
지혜자도 우매자도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며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는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
한 사람이 지혜와 지식과 노력을 기울여 수고해도 모든 업적은
결국은 수고하지 않은 자들이 차지 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도 헛되고 수고도 헛되다라고 말씀하신다.
묵상: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시작했다.
반복되는 자연 현상에서 인생은 헛되다라고 말씀하셨고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고, 수고도 헛되고, 지식도 헛되고, 육체적인 쾌락도 헛되고
많은 재물과 명예도 부귀영화가 다 헛되다라고 고백했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해 아래서.... 헛되다라고 표현되는 구절이 많다.
1. 지혜가 헛것이라고 말씀하신다.(13)
지혜자가 우매자 보다는 월등히 뛰어나다.(13)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과 같은 차이가 있다.(13)
지혜자는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두움에 다니는 것과 같은데(14)
우매자가 당하는 것을 나도 당하니 이것도 헛되다고 한다.(15)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며(16)
지혜자의 죽음과 우매자의 죽음은 일반이다.(16)
그러므로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17)
2.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헛 되다고 하신다.(18)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물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18)
내가 해 아래서 지혜를 내어 수고한 모든 결과를 저가 관리하니 이것도 헛것이다.(19)
그러므로 내가 해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에 대해여 마음으로 후회하게 된다.(20)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여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넘겨 줄 수 밖에 없으니 이것 또한 헛되다.(21)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며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니
이것도 헛것이라 하신다.(23)
오늘 본문 말씀에 유난히 자주 반복되는 단어와 주어가 있다.
해 아래서 ...헛되다라고 하는 구절도 참 많이 있다.(15,17,18,19,20,21,22,23,26)
더 많은 단어가 있는데 바로 "내가", "나도", "나의", "내게", "내" 등과 같은 단어다.
전도서 2장 전체에는 약40번이상 등장하는 단어이다.
무엇을 뜻하는 단어들인가?
삶의 모든 촛점이 자기 중심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세상의 중심에 자기자신이 서 있는 것이 죄이다.
세상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겸손히 그 분에게 인생을 맡길 때
우리 삶에 기쁨이 있고 의미가 있고 해 아래 살고 있지만 해 위에도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는 소망 가운데 사는 삶이 인생의 본분인데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 지혜와 쾌락과 부귀 영화를 다 누려 보아도 결국은
헛되고 헛되다라고 고백하는 인생이 바로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다.
하나님 아버지
내 중심의 인생에서 주님 중심의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지혜와 쾌락과 명성과 재물과 권력을 좇아서 살아가는 헛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인간의 본분을 다하는 삶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 살기를 소원합니다.
성령님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듯이 주님을 떠나서 살지 않도록 인도하옵소서.
인생의 허무함을 잘 통찰하는 삶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하루에 감사하는 인생되게 하옵소서.
영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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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허무함을 극복한 부활
전도서 2장 12~17절
전도자는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우매함을 생각하여 보았는데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은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으며 지혜자는 그의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둠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혜자와 우매자는 함께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러므로 전도자는 사는 것을 미워하고 해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괴로움이요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도자는 연구하여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을 알았지만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허무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부활신앙으로 죽음을 초월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지만 영원한 하늘 나라를 소망하며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혜자는 그의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둠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 당하는 일은 모두 같습니다. 지혜자와 우매자는 함께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자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우리를 맞아 주실 것을 소망하며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된 삶을 잘 감당하며 주님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죄악으로 인하여 지혜자나 우매자나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우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의 소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된 삶을 살며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일과 쉼의 균형
전도서 2장 18~26절
전도자는 자신이 해 아래에서 수고한 모든 것을 자신의 뒤를 이을 이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일이 헛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데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기쁨을 주시고, 죄인에게는 모아서 쌓는 수고를 시켜서, 그 모은 재산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주게 하시는데 죄인의 수고도 헛되어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주시고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죄인들이 모은 재산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주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의식주를 제공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일하는 수고에서 보람을 느끼며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는 자신이 해 아래에서 수고한 모든 것을 자신의 뒤를 이을 이에게 넘겨주어야 함을 기억하며 일과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일과 쉼의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의식주를 제공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저희가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며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일과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일과 쉼의 균형을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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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경주마에게 차안대(눈가리개)를 채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얼굴의 양옆으로 눈이 있어 볼 수 있는 시야가 그만큼 넓기 때문입니다. 경주를 위해 달려갈 방향과 목적지만 바라보아야 할 눈이 좌우 주변에 있는 경쟁마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달려갈 길을 한마음으로 가야만 할 우리 성도에게도 필요한 장치라고 여겨집니다. 다른 관심과 다른 욕심을 흘깃거리다 보면 자연히 달려야 할 레인을 이탈하거나, 포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늘 자신의 시작과 끝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말입니다. 날마다 십자가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내가 달려가야 할 길을 벗어나지 않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와 주의 말씀만 바라보고, 듣게 하소t서
사람은 좀체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충격적인 일이 사람을 바꾸기도 하지만 그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진정 바뀌는 것은 두 가지의 경로 외에는 없습니다. 사랑과 죽음을 통해서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있을 필연적인 죽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죄가 없으심에도 나의 죄를 속(贖)하기 위해 대신 죽음을 감당하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을 보게 합니다. 해 아래에서는 있을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경험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단지 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만 계획하시고, 친히 행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는 이와 같은 죄인의 죽음과 구원을 이루신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만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헛된 인생이 기쁨과 복락으로 나아가는 변화는 해 아래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 진리와 믿음이 오늘도 나의 삶을 지배하기만 소원합니다. 주여, 진정 나의 기쁨은 오직 그리스도 되신 주님께만 있습니다. 나와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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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헛됨(2:12~17)
지혜는 분명 어리석음보다 낫습니다. 그 차이는 마치 빛과 어둠의 차이와 같습니다.
지혜자는 총명함 덕분에 모든 것을 정확하고 바르게 분별하지만, 우매자는 미련함 때문에 어둠 속을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지혜자나 우매자나 결국 당하는 일은 모두 같다고 말합니다.
지혜자도 우매자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며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지혜자나 우매자가 궁극적으로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면,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전도자는 이 땅에서의 삶을 한탄합니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
든 일이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의 삶이 본향인
천국을 준비하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인생에 대한 깊은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점은 무엇이고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가 가진 지혜와 지식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교만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고의 헛됨(2:18~26)
노동과 수고는 값지고 귀한 것이지만, 집착하며 염려하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못합니다.
전도자는 자신이 한 모든 수고에 대해 한탄합니다. 자신이 수고해서 이룬 업적도 결국 자신의 뒤를
이을 이에게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수고를 이어받을 자가 지혜로운 사람인지
어리석은 사람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지혜와 지식과 노력을 기울여 수고해도 모든 업적은
결국 수고하지 않은 자의 차지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참된 지혜자는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일하는 과정을 즐기며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에 만족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루하루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염려와 욕심을 버리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 묵상 질문: 전도자는 자신이 행한 모든 수고가 왜 헛되다고 말할까요?
- 적용 질문: 일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염려하며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전도자가 말하는 ‘헛됨’을 깊이 묵상하는 영적 유익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한숨과 체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대신에, 쇠하고 사라질
이 땅의 모든 것 위에 홀로 우뚝 서신 영원하신 주 하나님께 제 시선을 고정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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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2절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해 아래 세상의 허무함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전도자는 누구보다 슬기로운 왕으로서 부와 권력을 총동원해서 지혜와 어리석음에 관한 탐구를 마치고, 세상의 지혜를 얻는 것도 ‘헛되다’고 결론 내립니다(15절). 새로운 왕이 등장해도 이미 했던 연구를 반복할 뿐이고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새로운 인물이 우리를 허무함에서 구원하리라는 기대도 허무할 뿐입니다. 허무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에게 없습니다. 해 너머 하늘로 눈을 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13-15절 지혜는 어리석음보다 낫지만, 지혜가 인생을 허무에서 건져 내진 못합니다. 지혜자든 우매자든 자기에게 닥친 운명을 피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불현듯 고난이 닥치는데 지혜는 속수무책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지혜의 유익이 있으니 무시해선 안 되지만, 지혜를 과신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고통의 현실 앞에서 구해야 할 것은 지혜보다 은혜입니다.
16절 죽음 앞에선 지혜자와 우매자가 동일합니다. 우매자가 당한 죽음을 지혜자도 똑같이 당합니다. 많은 업적을 남겨도 세월이 흐르면 똑같이 잊히고 맙니다. 살아서 누린 것은 달라도, 죽어서 누울 자리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죽음이 있는 한 허무함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고를 낱낱이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영생과 부활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 삶은 죽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17절 전도자는 결국 삶을 혐오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다를 바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자, 살아갈 의미와 이유마저 잃어버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전도자의 깊은 고뇌는 곧 새로운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미워할 만큼 삶에 대해 고심한 그로부터 삶의 찬미가 들려올 것입니다. 깊은 앓음의 과정을 통과할 때 참된 앎에 이릅니다. 허망한 인생에 절망해 본 사람만이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소망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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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시간에도 지금 우리는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까? 또 무엇 때문에 마음이 우울하고 낙심해 있습니까?
혹 내가 바라던 일 때문이 아닙니까? 그 일이 잘 되었기에 그 일 때문에 기뻐하고 있으며, 또 그 일이 잘 되지 않으며 그 일 때문에 낙심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내가 열심히 수고해서 성공한 그 일도 결국 남에게 다 넘겨주어야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일로 승부를 거는 삶은 헛되고 헛된 삶이다.
인생의 참된 성공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너는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살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단순한 이론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특히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떤 신학자는 모든 신학과 신앙의 뿌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초점을 두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죽음가운데 부활하셔서 40일 동안이나 부활의 몸을 입고 이 땅에 계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라졌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부활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살아가야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지금도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느끼고 깨닫는 비결은 오직 성령하나님에 의해서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이 더 실재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즐거움과 기쁨의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하루도 눈에 보이는 일이나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실재로 느끼며 보며 교제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일과 사람이었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내 마음가운데 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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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는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미워한다고 과격하게 표현합니다. 이어서 그 이유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괴로움뿐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전도자는 과거 지혜자로 살며 큰 지혜와 능력으로 전무후무한 치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업적을 생각하며 자랑스러워 했었습니다. 그러나 해 아래에서 이룬 모든 업적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와 다를 바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괴로움이 더욱 커져서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운명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해 아래 모든 인간은 목숨을 내 놓으라는 세월을 대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세월을 피해 도망칠 수 없습니다. 또 누구나 해 아래에서 행한 그 어떤 것을 세월에게 주어 내 목숨을 대신하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월 앞에서는 해 아래 행한 모든 일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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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상(2:18-26)
전도자는 인간의 지혜로 삶의 참의미를 찾을수 없게되자 다른 방향으로 시각을 돌린다. 철학적으로 인생의 규명에 실패하자 이제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참된 삶의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세상의 재물들과 세계적인 명성들(왕상 10:6,7)은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결과를 낳게 하는가? 그리고 인간이 추구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1) 심령으로 낙을 누려야 함
이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돈을 벌기위해 노력하며, 자신들의 쾌락을 즐기기 위하여 재물을 쌓아놓는다(2:3-5). 전도자는 이세상에서 오는 웃음과 육체적으로 느끼는 쾌락은 미친 것이며 인생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전2:2).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기 위하여 술을 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해보아도 그것이 결코 인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죽음은 인생이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일순간에 허물어 버리고 만다.
2)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
인간의 욕심은 인생의 즐거움과 여유를 앗아간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동체에 필요한 사랑과 봉사와 교제의 참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바꾸려는 인간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참된 인생의 가치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다.
이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그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인생의 최대 목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은 헛되다. 인간들이 맛볼수 있는 물질적, 육체적, 영적인 참된 즐거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수 있어야 한다(약1:17). 이세상이 주는 것은 유한하여 결코 삶의 목적이 될수 없다. 죽음뒤에 오는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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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기억되지 못하는 인생(12~17절)
“그러니 산다는 것이 다 덧없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얽힌 일들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이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도자는 해 아래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누구도 해 아래의 삶을 피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죽음도 피할 수 없습니다. 잊히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도서의 핵심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제게는 이 말씀들이 이렇게 말을 걸어옵니다.
유명해지는 일에 목숨 걸지 마라. 업적을 이루는 일에 열심 내지 마라.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내지 마라.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에 인생을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회도 어쩌면 해 아래 인생의 한 연장 선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가장 첨병에 서 있음에도 해 아래 인생이 가는 길을 온전하게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음성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오늘도 선물로 주신 내 인생을 감사로 받고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를 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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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의 의미>
2:18-26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이 땅의 수고의 의미에 대해 말합니다.
1.수고의 열매
전도자는 세상의 수고에서 무가치(허무)를 발견합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18절) 자신의 수고로 많은 것을 얻게 되었을 때 참 기뻤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수고를 미워'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큰 고통'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미워함'이 될 정도로 허무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자는 왜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까요? 그가 그렇게 수고하여 얻은 재산을 자신이 계속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넘겨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넘겨주는 억울함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수고로 부를 쌓고 후손에게 넘겨져 그것이 잘 사용되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렇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19절) 사람이 이 땅에서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돈을 모았어도 그가 죽고 후에 그 돈을 상속받은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면 그 돈은 어리석은 일에 사용될 것입니다. 만약 악한 사람이라면 악한 일에 사용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그렇게 수고하여 모든 돈은 어리석은 일에 사용되도록, 악한 일에 사용되도록 번 것이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자식에게 상속하였다고 좋은 일이 아닙니다. 악한 일에 사용된다면 그 돈을 벌어 모아 놓고 죽은 사람도 그리고 그것을 악하게 사용하는 자식도 다 불쌍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부를 남겨 두고 떠나는 사람이 그것이 어떻게 사용될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렇게 열심히 수고하여 재물을 남기는 것이 다 헛된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였겠습니까? 그런데 그 수고의 열매가 이렇게 허망한 결론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그래서 세상의 수고를 다시 생각해 보니 참으로 헛되고 '미워'질 정도로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수고는 분명히 열매를 낳습니다. 그런데 당장은 열매인 것 같은데 헛수고가 될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악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많은 재산을 남기는 것이 결코 그리 행복한 일은 아닙니다.
2.수고의 기쁨
사람의 수고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많은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수고에서 기쁨을 숫자(재산의 증식)나 미래에만 둔다면 그 사람의 수고는 허망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수고하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오늘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24절)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알고 보니,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24절 새번역)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그리고 자신의 수고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나는 이러한 기쁨을 발견하는 능력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았다"(NET번역)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유법으로 생각하여서 '삶을 지탱하기 위한 기본적인 활동'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작은 수고를 동반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에서 기뻐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일인데 그러한 행복을 발견하려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 먹고 마시며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 삶을 위해 땀을 흘리며 기뻐하지 않고 있다면 '수고의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즐김'입니다.
수고에서 기쁨을 찾을 때 단순한 숫자의 증가(재산 증식 같은)가 아니라 지금 당장 그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보람을 발견하십시오. 오늘 내가 살고, 이웃을 살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향과 길을 알고 그 길을 가십시오. "그분께서 주시지 않고서야, 누가 먹을 수 있으며, 누가 즐길 수 있겠는가?"(25절) 개역개정은 히브리어 본문을 따라 '나보다 더'로 해석하지만 칠십인경이나 다른 중요한 사본은 '그 분을 떠나서는'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많은 성경들이 그것을 따라 번역을 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수고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의미를 발견합니다.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수고는 많은 열매를 맺은 것 같아도 헛된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의 수고는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의 수고에 기쁨이 없다면 그 일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빨리 우리의 수고에서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의 수고의 열매에서 일이 되게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수고는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이 즐거움은 우리의 마음이 행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수고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하게 해 주는 리크머스지 역할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수고를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기쁨이 없다면 다시 점검하여 기쁨을 회복하십시오.
이 땅에서 우리의 수고가 자식 좋은 일?만 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식에게 좋은 일도 결코 되지 못합니다. 자식이 그 돈을 어떻게 쓸지 누가 알겠습니까? 수고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수고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수고는 단순히 재산 증식이나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수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 살아가기(생존) 위한 작은 수고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에 기뻐하면서 수고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삶의 터전을 주시고 수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는 작은 수고에서부터 큰 수고까지 모든 것을 누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고 귀한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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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26
전도자는 이생에서의 수고와 애씀이 무의미한 이유는 수고의 결과물을 스스로 누리지 못하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며, 다음 세대가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이 전도자를 허무주의로 이끌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게서 주신 것에 만족하며 짧은 인생을 즐기는 것이 선한 것이라는 반성적 지혜 를 제시한다.
전도자는 이 땅에서의 규범적 지혜에 따라 성실히 살아온 모든 수고를 되돌아보는 행위가 전도자의 마음을 낙담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인과응보의 결과를 얻기 못하기 때문이다. 인과응보는 정의가 통용되는 세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지혜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열심히 살았는데 그 열심만큼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들을 본다. 정의가 통용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은혜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원래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의 수고의 대가를 내가 받지 않아도 억울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에게 이웃에게 애정을 가진 자들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은혜를 받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한 수고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이 되는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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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 의식을 가지라 >
지혜와 지식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지식은 사람의 생각과 사상으로 가득 찬 것이기에 지식만 있으면 까다롭고 교만해진다. 반면에 지혜는 지식과 더불어 은혜와 사랑이 바탕에 깔려있기에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하다. 지식을 앞세우면 강퍅함과 교만으로 적이 형성되지만 지혜를 앞세우면 온유와 조화로 팀이 형성된다.
행복을 부르는 참된 지혜를 얻으려면 평등 의식을 가지라. 사람은 거의 똑같다. 솔로몬이 고백했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12절).” 솔로몬은 자기 뒤에 오는 자도 자기처럼 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다 똑같다는 말이다.
또한 솔로몬은 지혜자나 우매자가 비슷한 일을 당한다고 했다(13-15절). 그것이 세상 지혜의 한계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지혜자나 우매자나 더욱 차별이 없다(16-17절).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 공평한 죽음 앞에서 겸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지혜다. 왜 인간관계에 문제와 상처가 생기는가? 대접 받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힘과 능력과 권세를 가진 사람이 법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이다. 자기를 특별하게 보고 법과 질서와 윤리를 피하려고 하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인간다운 삶과 성도다운 삶의 기초를 든든하게 쌓으려면 사람은 다 똑같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라. 사장이 잘못한 직원에게 훈계할 때는 잘못한 사안에 대해 훈계해야지 훈계하면서 “사람이 그러면 못써.”라고 인격까지 문제 삼으면 그 훈계는 잘못된 것이다. 앉는 의자가 다르다고 인간이 다른 것은 아니다. 자리가 높은 것을 사람이 높은 것으로 오해하면 문제가 생긴다. 지위가 높아져도 항상 평등 의식을 잃지 말라.
< 은혜를 앞세워 살라 >
행복을 부르는 또 하나의 참된 지혜를 얻으려면 은혜를 앞세워 살라. 특히 시간을 잘 활용하는 지혜를 갖추라. 병으로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으면 가장 먼저 아쉬운 것이 시간을 아끼며 살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시간이 많을 때는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다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면 그때야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세월과 시간을 아끼라. 지혜자는 시간 손실을 가장 슬퍼한다. 인생 관리나 성공 관리의 핵심은 시간 관리에 있다.
시계의 ‘똑딱, 똑딱’ 소리를 ‘지금, 지금’ 소리로 들으라. 시간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늘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지만 자신이 우선순위로 둔 일을 할 만한 시간은 늘 있다. 시간이 없음을 아쉬워하지 말고 시간을 잘 활용하는 지혜가 없음을 아쉬워하라.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자본금이다. 그 자본금을 잘 활용할 때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
“내일 하자.”라고 자꾸 할 일을 미루지 말라. 오늘의 하루는 내일의 이틀과 같다. 오늘 땀을 흘리라. 땀은 인생을 배반하지 않고 반드시 열매를 준다. 그 열매가 후대까지 지속되게 하려면 하나님이 그 열매를 지켜 주셔야 한다. 땀을 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그 땀의 소산을 지켜 주셔야 한다. 그래서 세월과 시간을 아끼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사는 것은 더 중요하다.
솔로몬은 자신의 모든 수고를 미워했다(18절). 한정된 삶에서 수고의 열매를 다 누릴 수 없을뿐더러 자신이 물려준 것을 후대가 잘 관리하지 못해서 헛수고로 만들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솔로몬 사후에 찬란한 그의 왕국은 없어지고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어 점차 약해지다가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했다. 그처럼 땀과 수고로 이룬 것을 후대가 망칠 때가 많기에 하나님이 땀의 소산을 지켜 주셔야 한다. 그 사실을 깨닫고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사는 것이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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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지혜로움을 추구하는 삶(12-16절)
우리는 세상에서 지혜롭게 사는 것을 큰 가치로 여깁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리석게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불쌍하게 여깁니다. 하자민 전도자는 오늘 말씀에서 자신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았지만 자신과 반대로 사는 어리석은 사람과 그 결국을 비교해 보니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과 결국에는 같은 운명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허무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지혜롭다고 해서 인생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로병사의 모든 죄로 인한 고통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죽음의 문제 앞에서는 그들은 동일한 입장에 서게 되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혜롭게 살았던 자나 우매하게 살았던 자가 함께 사람들의 기억속에 지워져 버리고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이것은 참으로 허무한 일임을 우리로 알게 합니다. 진정한 지혜로운 삶은 이땅의 것을 많이 얻기 위해서 추구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게 하며 천국을 소망하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사는 삶인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참된 지혜를 온전히 소유하고 사는 자인가?
2.하나님의 기쁨이 되라(18-26절)
사람이 또 하나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다음 세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행하는 이 일을 맡을 다음 사람이 지혜로울지 아니면 우매할 지를 알 수 없습니다. 평생을 바쳐 좀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절제하며 노력하지만 그 다음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이 내가 세운 그 일을 다 망쳐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 역시 참으로 허무한 일이 되고 맙니다. 솔로몬은 인간의 노력과 관계없이 그 결과를 결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자신이 가지려고 애를 쓰며 모아 두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재산들을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에게 나누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이 잘되고 못되는 것이 사람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 되시고 주권이 그의 손에 있음을 바로 깨달아서 먼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세상을 얻는 첩경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성령님 365 묵상, A.W.토저>
오늘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지금 당신은 기도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은 물질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지금 당신은 낙심한 자들을 위로할 수 있다.
당신이 살아 있는 이 시대에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라.
쓸데없이 좌우로 두리번거리지 말라.
그분께만 당신의 모든 사랑을 드려라.
전심으로 그분을 섬기며 헌신하라. 「이것이 성공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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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에 당신의 계획을..<성령님 365 묵상, A.W.토저>
“하나님, 제 야망을 포기합니다.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손에 당신의 계획을 맡겨드려라.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평안과 감사로 넘칠 것이며,
하나님이 당신을 인도하실 것이다. 「세상과 충돌하라」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시115:1)